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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칠곡 송림사(漆谷 松林寺)의 기원과 사적에 대한 고찰(3)/여환숙


조진향 기자 / joy8246@naver.com입력 : 2024년 08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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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림사 대웅전

칠곡 송림사(漆谷 松林寺)의 기원과 사적에 대한 고찰(2)

여환숙

3) 대웅전(大雄殿)

송림사는 신라 진흥왕(眞興王) 때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나, 주불전(主佛殿)인 대웅전의 초창 시기는 정확히 전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효종(孝宗) 8년(1657)에 대웅전에 목조삼존불좌상(木造三尊佛座像)을 봉안하면서 기록한 「팔공산 송림사 대웅전 불상조성이필봉안기(八空山松林寺大雄殿佛像造成已畢奉安記)」가 있어 1657년에 중창되었음을 알 수 있다. 대웅전 현판은 숙종(肅宗) 12년(1686) 숙종어필로 현판이 걸려 있다. 또 영조(英祖) 51년(1775)에 작성된 「대웅전 중수기(大雄殿重修記)」와 철종(哲宗) 1년(1850)에 작성된「칠곡송림사 대웅전 중수상량문(漆谷松林寺大雄殿重修上梁文)」이 있어 해당 시기에 중수되었음이 확인되었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건물로, 장대석 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원기둥을 세워 상부가구(上部架構)를 구성한 후 겹처마 맞배 기와지붕을 얹었다. 포작(包作)은 기둥 위로 평방(平枋)을 놓고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내3출목 외2출목의 포작을 배치한 다포형식(多包形式)이다. 정면 어칸(御間)과 협칸(陜間)에는 주간포(柱間包)를 적절한 간격으로 배치하였지만, 정면 퇴칸(退間)에는 기둥 간격이 좁아 주간포를 설치하지 않았다. 건물 측면에는 공포를 생략했는데, 지붕 형태가 맞배지붕이기 때문이다.

대웅전의 출입문은 정면 칸의 너비 만큼이나 다양하다. 어칸의 4짝 창호(窓戶) 중 가운데 2짝은 출입이 가능하도록 만살 청판여닫이문을 달고, 좌우에는 채광(採光)을 위한 꽃살문을 붙박이로 설치했다. 협칸에는 3짝 씩을 달았는데, 가운데에 빗살 안여닫이문을 달고 좌우에는 빗살 청판문을 달았다. 퇴칸에는 만살 청판문을 외짝으로 달았다.

↑↑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대웅전 중앙에는 후불벽(後佛壁)을 설치한 고주(高柱)가 자리하고 있어 불전 앞 공간이 협소하다. 상대적으로 불벽의 뒤쪽은 공간의 여유가 있다. 수미단(須彌壇)에는 2009년 보물로 지정된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木造釋迦如來三尊座像)이 각각의 불대좌(佛臺座) 위에 안치되었다. 목조석가불좌상의 높이는 282㎝이고, 좌우에 문수보살좌상(文殊菩薩座像)과 보현보살좌상(普賢菩薩座像)은 높이 265㎝로 경상도 지역에서 유일한 대형 불상이다. 대웅전의 전면 기둥에는 주련이 걸려있다.

주련(柱聯)은
天上天下無如佛 천상천하 어디에도 부처님같은 분 없고
十方世界亦無比 시방세계에도 역시 비교할 이 없네
世間所有我盡見 세상에 있는 모든것 내가 다 보아도
一切無有如佛者 부처님같이 귀하신 분 없네.



↑↑ 송림사 응진전

4) 응진전(應眞殿)

응진전은 나한전(羅漢殿) 이라고도 하는데, 응진전은 석가모니 부처님 제자들을 모시기 위한 전각이지만 그 분들은 모두 부처님의 제자이므로 주존으로는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위시하여 협시보살(脇侍菩薩)로 미륵보살(彌勒菩薩)과 제화가라보살(提和竭羅菩薩)을 모셨다.

과거불인 정광여래(定光如來)의 화신 ‘제화가라보살’과 현재불인 ‘석가모니불’, 미래불인 ‘미륵보살’을 모셔 과거·현재·미래의 삼세를 상징한다. 응진전에는 석가모니 부처님 직제자 가운데 정법을 지키기로 맹세한 십육아라한을 모시고 있다.

특별히 석가모니 부처님이 입멸하신 후 부처님 생전의 가르침을 정리하고 편집하기 위한 모임인 경전 결집에 참여했던 오백아라한을 모시는 경우도 있다.

* 미륵보살(彌勒菩薩)
미륵은 친구를 뜻하는 미트라(mitra)에서 파생한 마이트리야(Maitreya)를 음역한 것으로, 자씨(慈氏)로 의역된다. 따라서 미륵보살은 흔히 자씨보살(慈氏菩薩)로도 불린다. 
불교사상의 발전과 함께 미래불(未來佛)이 나타나 석가모니 부처님이 구제할 수 없었던 중생들을 남김없이 구제한다는 사상이 싹트게 됨에 따라 미륵보살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 미륵보살은 인도 바라나시국의 바라문 집안에서 태어나 석가모니불의 교화를 받으면서 수도하였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授記)를 받은 뒤 도솔천(兜率天)에 올라가 현재 천인(天人)들을 위해서 설법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부처가 되기 이전 단계에 있기 때문에 보살이라고 부른다.

그는 석가모니불이 입멸(入滅)한 뒤 56억7000만 년이 되는 때, 즉 인간의 수명이 8만 세가 될 때 이 사바세계에 태어나서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서 성불(成佛)하여 3회의 설법으로 272억의 사람을 교화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미륵보살이 도솔천에 머물다가 다시 태어날 때까지의 기간 동안 먼 미래를 생각하며 명상에 잠겨 있는 자세가 곧 미륵반가사유상(彌勒半跏思惟像)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특히 삼국시대에 이 미륵반가사유상 불상이 많이 조성되었다.

또한 미륵보살을 신앙하는 사람이 오랜 세월을 기다릴 수 없을 때는 현재 보살이 있는 도솔천에 태어나고자[上生], 또는 보살이 보다 빨리 지상에 강림하기를[下生] 염원하며 수행하는 미륵신앙이 우리나라에서 널리 유행하였다. 현재 미륵보살이 상주하면서 설법하고 있는 도솔천은 지족(知足)이라고 번역되는 하늘로, 지나친 욕심이나 번뇌망상(煩惱網狀)으로 방탕함이 없는 세계이다.

신라의 원효대사(元曉大師)는 도솔천에 왕생하여 미륵보살의 제자가 되는 길은 관행인과(觀行因果)에 있다고 보았다. 이 관행은 도솔천의 뛰어난 장엄과 미륵보살이 수행(修行)의 결과로 누리는 과보(果報)의 뛰어남을 관(觀)하는 것이다. 이 관에 수반되는 행으로는 미륵보살을 경애하는 마음으로 이미 지은 죄를 참회(懺悔)하는 것과 미륵보살의 덕을 우러러 받들고 믿는 것, 그리고 탑을 닦고 마당을 쓸며 향과 꽃을 공양하는 등의 일이다. 우리나라에는 3000년 설에 입각하여 미륵보살이 대부분 비바람 아래 관을 쓰고 있는 모습으로 많이 조성되어 있다.

↑↑ 응진전 삼존불

* 제화갈라보살(提和竭羅菩薩)
현세의 복은 과거생의 공덕인연(功德因緣)에서 비롯되며, 미래생의 복덕은 현생의 지은바 대로 얻어진다. 보살의 모습 역시 여러 생을 걸친 인연에서 얻어졌으며, 부처의 모습도 이와 같다. 

제화갈라보살(提和竭羅菩薩)은 석가여래 여러 전생(前生) 가운데 제2 아승지겁(阿僧祗劫)에 다섯 송이 연꽃으로 부처님께 공양하고, 자신의 머리칼을 진흙에 깔아 연등부처님이 밟도록 하였다. 이러한 인연 공덕으로 부처님으로부터 미래에 성불할 수기(授記)를 받고 미래불의 칭호를 얻었으니 이 분이 미래의 연등불(燃燈佛)이다.

제화갈라보살은 제원갈보살(提洹竭菩薩)로 번역되기도 하며, 또는 연등불(燃燈佛), 정광불(錠光佛)로 불리기도 한다. 지도론(智度論)에서는 "연등불이 생시에 일체의 주변(身邊)이 등(燈)과 같으므로 연등태자(燃燈太子)라 하고 성불해서도 또한 연등이라 하였다. 구명은 정광불(錠光佛)이다" 라고 적고 있다. 

정광불이라 하면 빛이 되어 중생을 제도하는 부처라는 뜻이며 연등 역시 등불을 밝혀 중생의 앞길을 비추어 준다는 의미이다. 보살이 중생을 직접 성불시킬 수는 없으나 중생의 바른길을 불로 밝혀 알려 준다. 현생을 거쳐 미래생까지 미혹한 발걸음에 보살의 자비와 지혜는 어두운 밤길을 인도하는 등대와 같다. 

제화갈라보살은 미래에 약속 받은 부처로서 또 다른 미래불인 미륵불과 함께 석가모니 부처님의 좌우협시로 모셔진다. 대웅전에 모셔진 석가모니 후불탱화에서 미륵보살과 제화갈라보살이 좌우 보처에서 석가 부처님의 협시가 되고 있다.

보살이 중생의 앞길에 불을 밝혀 인도하는 것은 늦은 밤 돌아오지 않는 자식 걱정에 집 앞에서 불 밝혀 놓고 서성이는 어머니의 마음과 같다. 보살의 중생을 위하는 마음이 미혹한 중생의 걸음마다 연꽃으로 피어나 오탁악세(汚濁惡世)를 연화정토(蓮華淨土)로 바꿀 수 있는 기원이다.

라한(羅漢) 이란
인도의 옛말 아르하트에서 유래된 말로 ‘아라한’ 또는 줄여서 ‘라한’이라고 하는데 뜻으로 옮기자면 ‘응공(應供), 무학(無學), 응진(應眞)’이라고 한다. 본래는 존경받을 만한 분, 공양 받을 만한 분이라는 뜻에서 응공,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는 뜻에서 무학, 진리에 도달했다는 의미로 응진이라고 하는데, 석가모니 부처님도 처음에는 ‘아라한’이라 불렸다고 한다.

특히 초기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제자들이 수행을 통해 다다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 곧 현실의 모든 번뇌와 고통을 여윈 해탈의 상태를 일컬는 말이다. 대승 불교에 이르러서는 불자들의 목표가 무수한 생을 거듭해서라도 보살도를 완성하여 스스로 부처님이 되는데 있었으므로 아라한은 소승의 수행자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

한편 ‘라한’은 부처는 되지는 못했지만 이미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성자(聖者)이므로 초자연적인 신통력과 더불어 톡특한 표정과 자유스러운 자세를 지니고 있다. 또한 라한은 미래불인 미륵 부처님이 올 때까지 중생들을 제도하라는 부처님의 수기를 받은 분들이다. 따라서 민간신앙에서는 무수한 설화들이 등장하게 되었고, 서민들의 기복신앙(祈福信仰)으로 확고히 자리 잡게 되었다.

응진전은 정면 삼칸 측면 이칸의 맞배집으로 기둥 위에 출목의 포작을 결구한 주심포(柱心包) 양식으로 처마는 연목(椽木)과 부연(附椽)을 결구한 겹처마에 지붕을 얹었다. 창호는 격자창으로 어간에는 여닫이 이분합들문을, 협간에는 여닫이 분합문을 달았다. 단확(丹雘)은 금단청(金丹靑)으로 화사하게 장식을 하였다. 정면의 네기둥에는 주련을 부착하였다.

응진전의 주련
有山有水乘龍虎 산수간에 용 호랑이를 타고
無是無非伴竹松 시비없이 대나무 소나무를 벗하네
曾昔靈山蒙授記 옛적 영산회상에 수기를 받은 분들이
而今會坐一堂中 지금 한집 안에 모여 앉았네


- 다음 편에 계속


여환숙

경북향토사연구회 부회장
칠곡군 문화관광해설사
구상선생기념사업회 이사
국사편찬위원회 칠곡군 사료조사위원회 위원
칠곡문화원 이사 및 칠곡학연구소 연구위원
2010년 제10회 동서커피문학상 수상
저서 '초록을 꿈꾼 나날들', 시집 '나'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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