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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봉수제도와 칠곡 박집산 봉수대(2)/정석호


조진향 기자 / joy8246@naver.com입력 : 2026년 06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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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봉수 노선과 구조



조선시대 봉수제도와 칠곡 박집산 봉수대(2)

정석호
경북향토사연구회 회원(칠곡)

Ⅳ. 봉수의 거화(炬火)

 사방이 확 트인 봉우리에서 3km마다 있는 봉수는 흐린 날씨만 아니면 정확한 상황의 파악이 가능하다. 하지만 더욱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낮에는 활활 타오르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로 알렸다.

 신호체계는 평상시는 1개, 적이 나타나면 2개, 경계에 접근하면 3개, 경계를 침범하면 4개, 접전을 벌이면 5개의 홰(봉수신호)를 올리도록 했다. 따라서 봉수대마다 5개의 봉수를 설치, 신호를 전달했다. 날씨가 좋지 않으면 봉수군이 직접 다음 지역까지 달려가기도 했다.

↑↑ 봉수의 거화

 이러한 5거의 구분도 바다와 육지로 나누어서 시행하였는데, 바다에서는 평상시에는 1거를 올리고, 적이 바다에 나타나면 2거를 올렸으며, 해안에 적이 접근하면 3거를 올려 위급을 알렸으며, 아군의 전함과 외적의 전함이 접전하여 전투가 벌어지면 4거를 올렸다. 그리고 외적이 해안에 상륙하여 아군의 육지방어군과 전투가 벌어지면 5거를 올려 급보를 알렸다.

 한편 육지에서는 평시에는 1거를 올리고 있다가 적이 국경밖에 나타나면 2거를 올렸으며, 적이 국경에 접근하면 3거, 국경을 침입하면 4거를 올려 위급에 대비하도록 하였으며, 아군과 적이 교전하면 5거를 올려 급보를 서울의 목멱산의 종착지에 알렸다.


Ⅴ. 봉수군

 세종 4년(1422) 각 도의 봉수대 시설을 정비하기 시작해서 세종 20년(1438) 16년 만에 완비했다. 연해나 변방에 설치된 각 ‘연변봉수’에는 목수가 쓰는 자로 높이 25척, 둘레 70척의 봉수대를 쌓고, 그 아래에 깊이·너비 각 10척의 참호를 팠다. 봉수대 위에는 임시로 집을 지어 각종 병기와 생활용품을 준비해 놓고, 봉화군·봉졸·봉군으로 이뤄진 봉수군과 봉수군을 통솔하고 감시하는 오장(伍長)이 생활하면서 임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봉수군은 봉졸(烽卒)·봉군(烽軍)·봉화간(烽火干)·간망군(看望軍)이라고도 불리는데 봉수대에 상거(常居)하며 실제적으로 순찰과 후망, 거화 및 방비시설의 관리 및 보수, 거화재료의 확보 등의 중추적인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각 봉수대에는 3~6명이 배치되어 5~6일씩 교대근무를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의 「인동부읍지(仁同府邑誌)」 봉수의 박집산봉수(朴執山烽燧)와 건대산봉수(件岱山烽燧)에는 두 곳에 각각 별장(別將) 1인, 오장(伍長) 20명, 군인(軍人) 80명이 있다고 하여 오장 1명에 보가 4명씩 배정되어 있었다.

 봉수군의 주거공간은 고문헌자료와 시·발굴조사보고서 등을 분석한 결과, 주거지의 배치형태는 연대, 방호벽·호 등 봉수대 구성요소와 인접관계에 따라 유형을 분류해 보면 일곽형, 연접형, 분리형, 연대 단독형으로 구분되고, 고문헌상의 기록에 나타난 주거건물의 형태는 대부분 기와집으로 규모는 2~3칸 정도이다.

 이러한 건물지의 규모는 시·발굴보고서상에 나타난 건물지 관련 조사내용을 분석해 보면 대체로 가로 6.0~10.0m, 세로 3.0~5.0m 정도이고, 다수의 건물지에서는 아궁이나 부엌 시설의 존재를 추정케 하는 소토나 재 등이 분포하고 있으며 일부 온돌 유구가 발견되는 곳도 있다. 

 또한 건물지 주변에서는 와편이 많이 수습되고 있어 주거의 형태가 와가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대부분의 내지봉수에서 채택한 출입시설 형태는 개구형(開口形)으로 개구형은 봉수 내외부로의 출입을 위한 별도의 시설이 없이 방호벽을 정면 U자 혹은 V자 형태로 개방한 시설을 의미한다. 따라서 계단형 보다는 축조시 공력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봉수대의 출입형태

 일반적으로 좌우 방호벽 사이에는 봉수군 1인 정도의 출입과 물자 수송이 용이하게 적당한 폭으로 개방되어 있다. 하부는 폭이 좁으며 상부는 폭이 넓은 관계로 정면 모습이 상광하협(上廣下峽)의 V자 형태인 경우가 많다. 아울러 개구협 출입시설의 경우 과거 출입문의 부착여부는 확인이 곤란하다. 다만 어떠한 형태로든 임시적이나마 개폐시설(開閉施設)을 마련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출입시설을 낼 시에는 주된 출입방향으로 한 곳에만 내거나, 장축방향의 능선으로 좌우 두 곳에 내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출입 시설을 최소화해야만 외부로부터 침입하려는 악수(惡獸) 혹은 침입자로부터 봉수군의 신변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석결과, 봉수군의 주거형태와 구조는 3칸의 와가가 일반적으로 내부공간은 봉수군이 산상에서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하는데 요구되는 방과 부엌 등으로 구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발굴조사된 대다수의 건물지에서 기둥을 세우기 위한 적심석이나 초석이 잘 보이지 않고 긴 석렬 유구만 확인되는 점으로 미루어 건물의 벽체구조는 토석이나 토벽으로 두껍게 발라 벽을 만들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시대 내지봉수대에 관한 구조와 형태적 특성, 전형(典型)에 대하여 분석⸱고찰한 결과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었다.

 1) 내지봉수의 평면형태는 일반적으로 타원형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결과는 조선시대 봉수제가 5거제(擧制)로 모두 5개의 연조를 봉수대 내에 배치해야 하는 기능적인 요구에서 비롯되었다고 판단된다. 봉수대의 단변과 장변의 비(比)를 살펴보면 타원형의 평균 세장비는 1:1.9이다. 봉수대의 규모는 방호벽의 전체 둘레 길이로 가늠해 볼 수 있는데 38개 내지봉수의 평균적인 전체 둘레는 78.1m이다.
 2) 연조 유구가 드러난 14개의 내지봉수에서는 3~5개의 연조가 확인되고 있다. 연조의 평면 형태는 원형이 주를 이루며 일부 방형도 나타난다. 연조의 직경은 1.5~2.5m의 크기가 일반적이며 연조 간 이격거리는 대개 4~7m 정도를 유지한다.
 3) 방호벽의 잔존 폭은 평균 1.0~1.2m이며 재료는 석축이 일반적이다. 봉수대는 대개 산봉우리의 끝부분을 삭평하여 조성하였기 때문에 방호벽은 정상부 아랫부분부터 내탁(內托)하는 수법으로 쌓아오다 정상부 높이에서는 협축(挾築)하는 수법으로 쌓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4) 내지봉수의 출입시설 형태는 크게 계단식(階段式)과 개방식開放式), 경사로식(傾斜路式)으로 분류된다. 이중 대부분의 내지봉수에서 채택한 출입시설 형태는 계단식과 개방식이다.
 5) 고사(庫舍)의 평면형태와 규모는 방형(方形)의 1×1칸 크기이며, 석축으로 축조하여 방화(防火)의 구조를 가지도록 하였다. 위치는 연조와 인접시켜 배치함으로써 거화 재료나 각종 비품의 반·출입 및 보관에 편의성이 확보되도록 하였다.
 6) 조선시대 내지봉수는 세종 29년에 제정된 복리봉화배설지제(腹裏烽火排設之制)의 규정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내지봉수의 보편적인 전형(典型)은 본 연구에서 제시한 것과 같이 거화 및 방호시설을 두루 갖춘 형태로 정립될 필요가 있다고 사료된다.

 이러한 결론을 바탕으로 향후 우리지역 박집산봉수대를 복원한다면 참고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다음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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