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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정석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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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송림사(漆谷 松林寺)의 기원과 사적에 대한 고찰
여환숙
I. 시작하면서
대중들에게는 오랜 화두가 있다. 뭇 중생들은 길을 찾았는가 ?
이번에는 그 길을 찾기 위해 우리 지역의 명산 팔공산(八公山) 공산의 지맥 가산(架山) 송림사(松林寺)를 찾아 그 길에서 소를 만나는 심정(尋牛)으로 사적을 살펴 본다.
고개를 우러러 들어 보면 저만치 거기에는 산이 있다. 산 아래에는 우거진 송림(松林)이 있고 송림 안에는 무수한 우주가 존재한다. 송림 안에는 대가람(大伽藍)이 있다.
송림사에는 불가(佛家)에서 예견(豫見)할 수 없는 연기(緣起)가 있다. 그 연기를 찾아 보고 먼저 간 선지식(善知識)이 남긴 발자취를 느껴 보는 것이 뛰 따르는 자의 도리(道理)라고 생각한다.
이곳 송림사에는 세월의 무게가 켜켜이 쌓여 있고 그 흔적을 보는 이는 자기의 지혜만큼 보고 간다. 선인들의 고행(苦行)과 구도(求道)의 결과물을 잠시 머물면서 살펴 본다.
II. 팔공산 송림사(八公山 松林寺)의 유적(遺蹟)과 귀의처(歸依處)
1. 송림사의 창건연기(刱建緣起)
송림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桐華寺)의 말사(末寺)이다.
신라 진흥왕(眞興王) 5년(544)에 진나라에서 귀국한 명관(明觀)이 중국에서 가져온 불사리(佛舍利)를 봉안하기 위해서 창건한 사찰이다. 그 때 이 절에 호국안민(護國安民)을 위한 탑을 세웠다고 한다.
그 뒤 고려(高麗) 선종(宣宗) 9년(1092)에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이 중창(重創)하였고, 고종(高宗) 31년(1235)에 몽고병란(蒙古兵亂)에 의하여 폐허화 됐으며, 그 뒤 다시 중창하였으나 조선 선조(宣祖) 30년(1597)에 정유재란(丁酉再亂) 중 왜병들의 방화로 소실(燒失)되었다.
후에 효종(孝宗) 8년(1657)에 중창을 하여 대웅전에 목조삼존불좌상(木造三尊佛座像)을 봉안하고 기문을 남겼다. 다시 영조(英祖) 51년(1775)에 작성된 「대웅전 중수기(大雄殿重修記)」의 기록을 보면 중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어 철종(哲宗) 9년(1858) 영추(永樞) 스님이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大雄殿)을 비롯하여 명부전(冥府殿)·응진전(應眞殿)·삼천불전(三千佛殿)·삼성각(三聖閣)·선열당(禪悅堂)·요사채 등이 있다.
대웅전 앞에는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송림사오층전탑(松林寺五層塼塔)이 있다. 이 탑은 흔치 않은 신라시대의 전형적인 벽돌 탑으로써, 1959년 탑의 해체·수리 때 매우 중요한 매납유물(埋納遺物)들이 출현(出現)되었다.
당시 탑 속에서는 신라시대의 유물으로 보이는 순금제 불감(佛龕)을 비롯하여 옥으로 줄기를 만들고 금으로 잎을 만들어 붙인 보리수(菩提樹) 형태의 섬세한 공예품, 그리고 각종 구슬류와 함께 불사리(佛舍利) 4과(顆)가 발견되어 국립대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절에 소장되어 있는 경판(經板)으로는 『충장공유사(忠壯公遺事)』와 그 부록이 있다.
2. 송림사의 창건 연기설화(緣起說話)
눈발이 희끗희끗 날리며 세차게 부는 추운 겨울 점심 무렵. 아름드리 소나무가 무성한 야산에 화려한 상여(喪輿) 하나가 다다랐다.
목관(木棺)이 내려지자 상주(喪主)들의 곡성(哭聲)이 더욱 구슬퍼졌다. 땅을 치고 우는 사람, 관을 잡고 우는 사람 등 각양각색으로 슬픔을 못 이겨 하는데 오직 맏상주만은 전혀 슬픈 기색조차 보이질 않았다.
40세쯤 되어 보이는 그는 울기는커녕 뭘 감시하는 듯 연방 사방을 둘러보며 두 눈을 번득였다.
마을 사람들과 일꾼들은 그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며 수군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죄송합니다. 오늘 장례식에서는 떡 한쪽, 술 한 잔도 드릴 수가 없습니다. 또 새끼 한 뼘, 거적 한 장도 가지고 가서는 안됩니다. 그 대신 일꾼 여러분에게는 장례식이 끝난 뒤 마을에 내려가 품삯을 곱으로 드리겠습니다.”
곡도 하지 않고 두리번거리기만 하던 맏상주가 당연히 나눠 먹을 음식을 줄 수 없다는 까닭 모를 말을 하자 사람들은 술렁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만한 사연이 있었다.
간밤이었다. 돌아가신 부친 옆에서 꼬박 이틀 밤을 새운 그는 몹시 고단해 잠시 졸았다. 그때 그에게 선비인 듯한 백발의 노인 한 분이 다가와 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맏상주는 명심해서 듣거라. 그대 부친의 묘자리는 길흉이 함께 앉았으니 잘하면 복을 누리고 잘못하면 패가망신할 것이니라.”
깜짝 놀란 그는 노인에게 매어 달렸다.
“어떻게 하면 길함을 얻을 수 있을까요.”
“내말을 잘 듣고 명심해서 실천하면 되느니라. 좀 어렵겠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장례를 지낼 때 술 한잔은 물론 물 한 모금도 남에게 줘서는 안되느니라. 만약 새끼줄 한토막이라도 적선(積善)하게 되면 가세(家勢)가 기울고 대가 끊길 것이며 이르는 대로 잘 지키면 가세가 번창(繁昌)할 것이다.”
단단히 일러주고 노인은 사라졌다. 맏상주는 아무에게도 이 사연을 공개할 수가 없었다. 행여 누가 음식을 먹을까 아니면 새끼 한 토막이라도 집어 갈까 열심히 주위를 살피기만 할 뿐이었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부지런히 삽질을 하는 일꾼들은 아무래도 무슨 곡절이 있나보다며 수군거렸다. 이때 걸인들 한패가 몰려왔다. 그러나 떡 한쪽 얻지 못한 패거리들은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세상에 막걸리 한 잔 안주는 초상집은 생전 처음이구만. 어디 요놈의 집구석 잘사나 봐라. 에이 툇 툇”
그러나 맏상주는 못들은 체했다. 혹시 걸인들이 행패라도 놓으며 음식을 먹을까 염려된 그는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음식을 모두 집으로 가져가게 하고는 머슴에게 다시 단단히 일렀다.
“아무도 음식에 손을 대서는 안된다고 하여라!”
그 광경을 본 걸인들은 상소리를 퍼부으며 돌아갔다. 맏상주는 한결 마음이 놓였다.허나 그는 다시 걱정이 시작됐다.
“집으로 보낸 음식을 누가 남은 음식인줄 알고 퍼가거나 먹으면 어쩌나.”
그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네, 품삯을 세 곱, 네 곱, 아니 그 이상이라도 줄테니 묘를 다 쓰거든 거적과 새끼줄, 지푸라기 하나 남지 않게 모조리 태워 주시오.”
“아무래도 말 못할 깊은 사연이 있으신가본데, 염려 마십시오. 이왕 물 한 모금 안 먹고 시작한 일 부탁대로 잘 해드리이다.”
두 번 세 번 다짐받은 맏상주는 황급히 집으로 달려갔다. 막 대문 안으로 들어서는데 아낙들과 걸인들이 시비를 하고 있었다. 맏상주는 미친 듯 두 팔을 내저으며 사람들을 내몰았다.
한편 산에서는 묘가 다 되자 썩은 새끼 하나 남기지 않고 흩어진 새끼줄을 긁어모아 태우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깡마른 거지 소년 하나가 달달 떨며 모닥불 곁으로 다가왔다.
“이 녀석아. 저리 비켜라.” “에이 아저씨, 거지는 모닥불에 살이 찌는걸 모르시는군요.”
"잔소리 말고 어서 저리 비켜!”
일꾼 하나가 맏상주 부탁이 생각나 거지아이를 떠밀었다. 아이는 맥없이 땅바닥에 나가 뒹굴었다. 소년은 앙앙 울어댔다.
“불쌍한 아이를 말로 쫓을 것이지 밀기는 왜 미나?” “글쎄, 가엾군.”
거지소년은 일꾼들이 달래주자 더 소리 높여 울더니 막 불이 붙으려는 거적 하나만 달라고 애원했다.
“추워 죽겠어요. 그 거적 태우지 말고 나 주세요, 아저씨.”
마치 사시나무 떨듯 몸을 움츠리며 사정하는 거지아이를 보다 못해 일꾼들은 맏상주와의 약속을 저버린 채 인정을 베풀고 말았다.
“얘야, 이걸 갖고 사람들이 보지 않게 저 소나무 숲으로 빠져 나가거라. 누가 보면 우린 큰일난다. 알았지?” “네. 이 은혜 죽어도 잊지 않겠습니다.”
거적을 뒤집어 쓴 거지소년은 쏜살같이 소나무 숲으로 달아났다. 일꾼들은 적선을 했다는 기분에서 흐뭇한 얼굴로 연장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쾅하고 천지가 진동하는 폭음이 들려 왔다. 바로 거지소년이 사라진 소나무 숲에서 난 소리였다.
놀란 일꾼들이 소나무 숲으로 달려가 보니 참으로 묘한 정경이 생겼다. 거지 아이는 간 곳이 없고 숲속에는 보지 못한 절 한 채가 솟아나 있는 것이 아닌가. 일꾼들은 겁을 먹고 마을로 내려왔다.
그 후 묘를 쓴 집안은 날로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거지에게 거적을 준 일꾼들은 차차 형편이 피면서 큰 부자가 됐다.
마을 사람들은 소나무 숲(松林)에서 솟아난 절을 송림사(松林寺)라 불렀고 가난한 이웃에게 적선을 베풀 때 복을 받는다는 교훈을 되새겨 서로 도우면서 화목하게 살았다는 연기설화이다.
다음 편에 계속
여환숙
경북향토사연구회 부회장
칠곡군 문화관광해설사
구상선생기념사업회 이사
국사편찬위원회 칠곡군 사료조사위원회 칠곡문화원 이사 및 칠곡학연구소 연구위원
2008년 월간 문학세계 시 신인문학상 등단
2010년 제10회 동서커피문학상 수상
저서 '초록을 꿈꾼 나날들', 시집 '니' 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