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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사 가는 길
이 정 록
산 아지랑이가 아스라이 피어나는 산길! 사불산 밋밋한 능선을 휘돌아 가는 구불구불 10리가 넘는 산(山)길이 대승사로 오르는 길이다.
우수(雨水) 경칩(驚蟄)을 지나면 양지바른 산자락에 잔설(殘雪) 녹는 소리가 곱고, 산새 울음소리와 발밑을 흐르는 개울물 소리가 어울려 적적함을 달래주는 길이다. 동반자가 없이 홀로 오른다고 하여도 쓸쓸함을 느끼지 않는 길이다. 십 리 길이 결코 가까운 거리는 아니건만 굽이굽이 돌아갈 때마다 바뀌는 주변 경치에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 길이며, 솔가지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아스라한 하늘을 바라보며 소박한 꿈 한 자락 피워올리는 길이다.
대승사 가는 길은 천년하고도 오백 년이 훨씬 넘는 먼 옛날 하늘에서 비단 자락에 쌓여 내려온 천강사불(天降四佛)을 맞이하기 위하여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어가(御駕)가 올랐던 길이고, 진평왕의 어명(御命)으로 비구니 망명(亡名)이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열심히 독송하기 위하여 이따금 올랐던 길이다. 비구니 망명(亡名)이 죽어 장사를 지낸 곳에 연꽃이 피어났는데 이 연꽃을 보기 위한 참배객이 개미 때처럼 벌 떼처럼 끝도 없이 오르고 또 올랐던 길이다.
대승사 가는 길은 선(禪)과 함께 하고픈 길이다. 서산대사(西山大師)의 불교개론서인 선가귀감(禪家龜鑑)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以無言 至於無言者 禪也 以有言 至於無言者 敎也 乃至 心是禪法也 語是敎法也> <말이 없음에서 말 없음에 이르는 것이 선(禪)이고, 말 있음에서 말 없음에 이르는 것이 교(敎)이니, 마음은 선법(禪法)이요 말은 교법(敎法)이다.>
선(禪)이란 마음을 바로 보아 깨닫는 것이니,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 불립문자(不立文字) 생사해탈(生死解脫) 이 네 구절이 선의 참 면목이고, 선(禪)은 논리로서 밝힐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니, 더 이상 나아 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막다른 곳에서 자신의 참모습을 밝혀 활로를 찾는 것이 선(禪)의 세계라고 한다.
직지인심(直指人心)이란 불도(佛道)를 경전(經典)적 가르침에 의거(依據)하지 않고 불교의 핵심인 마음을 곧장 가리켜 성불하는 가르침을 표방한 것이니 이것이 바로 사람의 마음을 곧장 가리킨다는 뜻의 직지인심(直指人心)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견성성불(見性成佛)이란 모든 사람이 불타(佛陀)의 성품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독경이나 좌선·예불·계율과 같은 수행의 형식을 중요시하지 않으며, 단지 마음을 닦아서 자기의 본성을 찾아 불법을 이루어 성불에 이르는 것을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고 한다.
불립문장(不立文字)란 선종(禪宗)에서, 부처의 가르침을 말이나 글에 의하지 않고 바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여 진리를 깨닫게 하는 법을 불립문자(不立文字)라고 말하는 것이다.
생사해탈(生死解脫)이란 중생(衆生)들이 업보(業報)로 윤회(輪迴)하면서 생사(生死)에 끌려다니는 온갖 번뇌 망상·두려움·슬픔·고통·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활달한 경지에 도달하여 열반(涅槃)의 세계를 얻는 것을 생사해탈(生死解脫)이라고 한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오월! 대승사 가는 길은 신록으로 곱게 단장을 한다. 신록 사이를 살랑거리는 바람도 초록색이고 개울에 흐르는 개울물도 신록을 닮아 초록색이고 간간이 들리는 개울물 소리도 초록이다.
파란 하늘에 연꽃 같은 구름이 천강사불(天降四佛)위로 둥실둥실 피어오르면 대승사는 온통 신록(新綠) 속에 묻힌다. 묘법(妙法)을 교묘하게도 연꽃에 비유하는데, 안으로는 바로 한 마음을 가르치고 밖으로는 온갖 경계(境界)를 포괄한다고 한다. 꽃 피자 열매 맺고 진흙 속에서 자라지만 항상 깨끗하니 이는 연꽃의 실상이요, 중생과 부처가 본래 갖추고 있는 윤익(潤益)과 변개(變改)와 다름이 없으니 이는 경계(境界)의 실상이다. 마음과 경계의 온갖 것을 통칭하여 '법'이라 하니, 곱고 거친 것이 일치하고 범부(凡夫)와 성현(聖賢)도 또한 근원(根源)은 같다고 한다.
모든 세간법은 현상을 따른 것이니, 언어로 말할 수 없고 분별로 이해할 수 없는 것, 이것을 '묘'라고 칭한다. 여섯 갈래에 미혹(迷惑)하여 윤회(輪回)함도 이를 미혹(迷惑)함도, 모든 부처가 닦고 증득(證得)한 바를 이것을 증득(證得)한 것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뿐이 아니라 널리 연설한 언교(言敎)에서 무수한 방편(方便)에 이르기까지 다 이것 때문이다.
다만 중생(衆生)은 번뇌(煩惱)의 때가 무겁고 근기가 순수(純粹)하지 못하므로 우선 삼승(三乘)을 설(設)하여 가명으로 인도하는 것은 방편이지 진실은 못 된다고 하며 거칠기만 하고 정묘(淨妙)롭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모든 거름(잘못됨)의 더러움을 제거하고 마음이 서로 가까워지고 신뢰(信賴)하는 데 이르러 비로소 실상을 보이고 일승(一乘)에 회귀(回歸)하게 하니 묘할 뿐이지 거침은 없다. 삼세 부처님의 할 일이 모두 여기에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른바 '묘법(妙法)'은 거친 것을 제거하고 묘한 것을 취한 것이 아니라 대개 거침에서 묘(妙)함을 나타내고, 일승(一乘)은 셋을 떠나서 하나를 설하는 게 아니라 셋을 모아 하나에 돌아가는 것이고, 거침에서 묘함을 나타내는 것은 연꽃이 진흙 속에 살면서도 항상 깨끗한 것에 비유하였고, 셋을 모아 하나에 돌아감은 연꽃은 꽃을 따라 열매가 함께 맺히는 데 비유한 것이다. 법과 비유를 함께 드러내고 이름과 실상을 겸하여 나타내므로 '묘법연화(妙法蓮花)'라 한다는 것이다.
가을로 접어들면 대승사 가는 길은 울긋불긋 단풍이 곱게 물들고, 산길 모퉁이를 돌 때마다 연보라 구절초의 청순한 미소가 향기로 피어난다. 토실토실 살이 오른 도토리가 하나둘 떨어지는 대승사 가는 길은 이토록 깊은 명상(冥想)에 빠져들고 만다. 빨간 단풍잎 사이로 언뜻언뜻 나타나는 파란 하늘은 올려다보며 보고 싶은 이의 얼굴을 가슴 깊숙한 곳에 차곡차곡 채워두고 싶은 길이다.
대승사 가는 길은 대승사를 창건할 때 어디선가 홀연 소 한 마리가 나타나 대승사 건립에 소용되는 건축자재를 우직하게 실어 날랐던 길이다. 대승사 창건 설화에 얽힌 우직한 한 마리의 소처럼 누군가를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행복이다. 그 누군가를 언제나 마음껏 그리워할 사람이 있다면 그것도 또한 행복이다.
이정록 프로필
안동대학교 인문대학 한문학과 졸업 안동대학교 한문학과 석박사 통합과정 수료 한국문인협회 회원(시, 수필) 국가기록원 문경시 민간기록 조사위원 문경문화원 향토사연구소 연구원 문경문화원 근현대인물사 편집위원 경북향토사연구회 부회장 겸 편집국장 문경시사(聞慶市史) 편찬위원회 조사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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