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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주암정舟巖亭의 사계四季(1) / 이정록


조진향 기자 / joy8246@naver.com입력 : 2024년 06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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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암정의 여름(사진 이정록)


舟巖亭의 四季(1)

이정록 문경문화원 향토사연구회 연구위원

1. 개요(槪要)

이중환은 택리지 <山水條>에서 '夫山水也者可怡神暢情也 居而無此則令人野矣'
“대저 산수는 정신을 즐겁게 하고 감정을 화창하게 한다. 사람 사는 곳에 산수가 없으면 사람이 거칠어진다.” 라고 언급하면서 주거지(住居地))의 필수 조건으로 산수가 좋은 곳을 택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백두대간의 중심부에 위치한 문경은 예나 지금이나 살기 좋은 고장으로 첫손가락에 꼽힐만하다. 문경뿐 아니고 우리나라 어디를 가도 산수가 수려하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금수강산(錦繡江山)이라 하지 않았던가.

조선조 선비들의 ‘복거(卜居)’ 의식에 대해서 <택리지> 「복거총론」에서 기술하고 있는 것을 참고하면 “우리의 현명한 선비들은 먼저 지리(地理)를 살피고, 다음에 생리(生利)를 살피며, 그 다음 인심(人心)을 살피고, 그 다음 산수(山水)를 살폈다. 이 네 가지 요소를 모두 만족시켜야 비로소 살기 좋은 곳(樂土)이라고 말하고 마음을 놓았다.” 고 기술하였는데 흥미로운 것은 ‘산수’를 우선순위에서는 끝에 두었지만 “근처에 구경할 만한 산수가 없으면 성정(性情)을 제대로 도야(陶冶)할 수 없다.”고 해서 주거공간의 지리·사회·경제적 조건 못지않게 미학적 환경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사실이다.

한국인의 전통적 정신세계는 산수에서 기원하고, 산수에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선조들께서는 산 좋고 물 맑은 계곡을 찾아 자연과 벗하며 심신을 수양하였다. 특히 조선조에 이르러서 성리학자들은 자연을 거스르지 아니하고 섭리(燮理)에 따르는 것을 도(道)에 이르는 첩경(捷徑)으로 보고 시(詩)와 가사(歌辭)를 통하여 물아일체의 즐거움에 동화되려고 노력하였다.

백두대간에서 뻗어 나온 숫한 지맥들이 전국 곳곳으로 뻗어 내려 수려한 산 능선을 이루고 그 능선이 닿는 곳마다 골짜기가 형성되어 맑은 물이 사시사철 마르지 않으니 골골마다 정자가 없는 곳이 없고 정자가 있는 곳마다 풍류 또한 없을 수가 없으니 이것이 우리나라의 정자문화가 발달하게 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때 정자는 선비들의 여유 공간이고 풍류 공간이다. 행세께나 하는 양반이라면 정자 하나쯤은 있어야 체면이 설 정도로 정자는 어느 사이엔가 그 가문을 평가하는 척도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권수환ㆍ정종현, 『朝鮮時代 氏族마을 亭子의 多技能性에 關한 硏究』에서 정자는 입지조건에 따라 산의 산정(山亭), 시내의 계정(溪亭), 강의 강정(江亭), 바다의 해정(海亭), 연못의 지정(池亭), 바위의 암정(巖亭), 언덕의 안정(岸亭), 마을의 촌정(村亭)으로 나누고 있다. 

또한 정자는 이용형태에 따라서는 노닐며 경치를 감상하는 유상(遊賞)의 장소, 독서하고 강론하는 강학(講學)의 장소, 조용히 심성을 수양하는 장수(藏修)의 장소, 선조의 무덤을 바라보며 은덕을 생각하는 추모(追募)의 장소, 전답농사를 감독하는 감농(監農)의 장소, 먼 곳을 조망하기 위한 조망(眺望)의 장소 등으로 나누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한 가지만을 위해서 정자를 세우지는 않는다. 대체로 유상하고 강학하고 장수하는 장소를 겸하여 다목적적인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정자를 경영하는 주체에 따라 궁가의 정자, 관가의 정자, 문중의 정자, 유림의 정자, 개인의 정자, 촌락의 정자로 구분한다고 하였다.

舟巖亭은 문경시 산북면 서중리 44-4번지 주암(舟巖) 위에 건립한 정자이다. 배(舟) 모양을 한 큰 바위 위에 정자를 지어 정자 이름을 주암정이라 하였다. 

주암정의 주인은 채익하(蔡翊夏:1633-1675)인데 자는 비언(棐彦)이고 호는 주암(舟巖)이다. 주암(舟巖)은 채익하(蔡翊夏)의 호이기도 한데 후손들이 주암 채익하를 기리기 위하여 갑신년(甲申年 1944)에 십시일반으로 모금을 하여 주암정을 건립하였다.

주암 채익하는 난재(懶齋) 채수(蔡壽)의 4세손 진용교위(進勇校尉) 암재(巖齋) 채득렴(蔡得濂)의 손자이고 아버지는 충의위(忠義衛) 채극명(蔡克明)이다. 주암 채익하는 康熙12년(1673년) 봄 생원시에 입격하였으나 2년 후에 세상을 버리시니 주변 사람들이 정승 판서를 지낼 큰 별이 떨어졌다고 모두들 애석해 하였다.

주암정을 앞의 정자(亭子) 분류법에 따라서 분류해본다면 바위 위에 세워졌으니 암정(巖亭)이고, 노닐며 경치를 감상하는 유상(遊賞)의 장소이고, 문중에서 성금을 모아 마련한 정자이니 문중의 정자라고 할 수 있다.

주암정 앞에는 금천이 흐르고 금천 너머로 넓은 들판과 그 들판 끝자락에 근품산이 의연하게 솟아있고 금품산에 의지하여 인천채씨 집성촌인 현리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주암정은 바위 위에 지어졌으니 암정(巖亭)이기도 하지만 시냇가에 있으니 계정(溪亭)기도 하다. 주암정은 팔작지붕에 전면 3간 측면 2간으로 중앙에 마루가 있고 마루 좌우에 방 한간을 두었는데 협문은 없는 구조이다.

문인 안대복은 주암정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주암정의 출입문인 작은 맛대 일각대문은 북쪽으로 나 있고 정자는 동북향을 하고 있다. 대저 건축물은 남향이 많으나 경관적인 측면을 더 중요시하여 지금의 방향으로 세운 것이다. 정자 건물의 기단 높이는 한자 반 정도 높여서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초석이 배(舟)라는 점을 감안하여 기단은 가능한 한 낮추어 수평을 유지하는 정도로만 바닥을 보안하여 높이를 최대한 낮추었다. 배 모양의 암반 선실 부분에 정자를 세웠기 때문에 마루높이도 90cm가 일반적이나 주암정은 그 반 정도에도 못 미치는 43cm밖에 되지 않는다.”

아무튼 주암정은 배 모양의 암반(巖盤)위에 세워져 있는 특이한 정자이고 마을과 닿아 있으면서도 세속의 때가 물들지 않은 청순함이 있다.

이 주암정은 주암 채익하의 10대 종손 채훈식 씨가 평생을 주암정에 기거하다 싶이 하면서 정자는 물론 정자 주변의 환경을 다듬고 가꾸어 사시사철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 문경을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정자가 되었다.

↑↑ 글쓴이(이정록, 좌측)와 주암 종손 채훈식 씨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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