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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원 황화실 개인전 |
| - 1편에 이어-
2. 서예와의 인연
아버지가 국어 선생님이셨어요. 집에서 자주 글을 쓰시니까 화실아 먹 갈아라, 화실아 뭐 가져와라, 화실아 이거해라 자주 부르셔서 정말 귀찮았어요. 그리고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저보고 신문 사설을 읽으라고 하셨어요. 그때는 신문이 거의 한문이라 한글이 별로 없잖아요. 사설에 나오는 한자가 어려운데 아버지한테 묻자니 창피하고 그래서 한자 1400자를 혼자 공부했어요. 그때 한문공부하고 서예 쓰는데 질렸어요. 그때는 그랬는데 지금 한문 서예를 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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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 작품 전시회에서 |
| 서예는 64살에 시작했어요. 하루는 운동하러 달오산에 가는데 어떤 여자분이 묵주를 들고 올라가요. 그래서 “산에 가면 산신령님이 계시는데 묵주는 왜 그렇게 흔들고 가십니까? 천주님은 여기 계시고 산에 가면 산신령이 계시는데 혼나려고 묵주를 그렇게 흔드십니까?” 했더니 얼마나 기가 차겠어요. 그런데 그 말이 그렇게 좋았나봐, 그분이 알고보니 칠곡도서관 사군자 선생님이에요. 그게 인연이 되어 매주 화요일과 수요일 사군자와 서예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 선생님 안 만났으면 사군자를 모르죠. 선생님이 내가 난치는 모습을 보고 작가로 만들어야겠다 생각했나봐요. 다른 학생에게 저 학생은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안다고 그러더래. 그때부터 일흔까지 5년간 한글서예을 썼는데 글씨체를 모두 썼어요. 정자부터 연습해서 수준이 되면 공모전에 내고, 입선이 되면 흘림체로 넘어가고, 또 입선하면 다른 글씨체를 쓰고. 상 받자고 한 게 아니고 연습해서 인정받으면 다른 글씨체로 넘어가고 그렇게 5년만에 다 썼어요.
하나의 작품이 나오려면 수백 장 연습해야 하고 최소 백번 이상은 써야 돼요. 대회에 나가려면 연습장에 수십 번 쓰고 작품지에 써요. 작품지 한 장이 천 원인데 잘못 쓰면 버리고 아까우니까 연습장에 충분히 연습해보고 써요.
그런데 서예하면서 협착(디스크)이 왔어요. 그래도 글쓰는 건 참 재미있어요. 붓을 열 개쯤 샀을 거예요. 작품에 작은 글씨가 있어서 제일 작은 붓을 잡고 글을 쓰다보니 넷째 손가락을 제일 많이 쓰더라고요. 나중엔 그 손가락이 잘 펴지지 않고, 개인전 준비하면서 손가락 관절도 왔어요. 큰글씨는 2·7지 제일 큰 종이에 하루 석 장씩 써요. 처음 쓰면 마음에 안 들고, 두 번째 쓰면 조금 마음에 들고, 세 번째 쓰면 힘들어요. 그렇게 하루 석 장씩 연습했어요. 처음부터 한자 기초를 다 배웠어요. 안진경체. 전서, 예서 다 배웠어요.
나는 ‘빈그릇’ 이런 글씨가 제일 좋아요. 사군자하셨던 김춘희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뒤를 이어 임봉규 선생님이 칠곡도서관에 사군자 선생님으로 오셨어요. 지금도 안 잊혀지는 게 김 선생님이 “소원, 우리 집에와, 밥 먹게.” 그때 내 호가 소원이었어요. 선생님이 호를 소원이라고 해주셨어요. 그분이 무성아파트에 사셨는데 집에서 멀어서 매번 선생님 남편분이 차를 태워주셨어요. 제일 먼저 사군자를 배운 선생님이 김춘희 선생님이에요.
이름이 황화실인데, 화목할 화(和)를 써요. 보통은 꽃 화(花)를 쓰는데 화목할 화에 열매 실(實), ‘화목해야 열매를 맺는다’는 뜻인데 뜻이 너무 커서 김춘희 선생님이 ‘작은 동산’이란 뜻으로 ‘소원(小園)’이라 지었어요. 김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임봉규 선생님 칠곡도서관 사군자 강사로 오셨어요. 젊고 패기 넘치고, 굉장히 세심하고 디테일해요. 임봉규 선생님은 칠곡도서관에 강의하다가 지금은 복지관에 강의 다니셔요.
제 작품 가운데 영남대전 특선작도 있었는데 다른 사람에게 선물했어요. 그때는 정말 열심히 집중하면서 썼어요. 지금은 작품제출을 족자로 하는데 예전엔 액자로 표구해서 하고, 크기가 커서 집은 좁고 작품을 보관하기가 힘들었어요. 그래서 사진을 찍어두고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하기도 했어요.
강수호 선생님이 칠곡문화원 한글서예 강사로 오셔서 문화원에 서예를 배우러 다녔어요. 강수호 선생님은 경북대전 운영위원이자 심사위원이고, 왜관에서는 실력자인데 강사로 오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배우러 다녔죠. 강수호 선생님께 기초를 배워 실력을 쌓았고, 뒤를 이어 3년 전부터 장태제 선생님이 한글서예 강사로 오셔서 민체를 배워 개인전을 열게 된 거죠.
어떤 선생님이 잘 가르친다면 그 선생님을 찾아가서 배우고, 어디든 쫓아가서 배웠어요. 기초를 잘못 배우면 글씨가 안 돼요. 서예는 글씨를 쓰는 법이 있어요. 그 법을 처음부터 잘 배워야 돼요. 그걸 잘못 배우면 나중에 가르쳐줘도 고치기가 어려워요. 강 선생님에게 제일 처음 배운 게 정자체예요. 한글 궁체 작품은 강 선생님한테 배운 거예요, 강 선생님이 문화원에서 한글서예를 10년간 가르치면서 작가들을 많이 길러냈어요.
최근 나도 글씨체를 만들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괜찮다는데 아직 마음에 안 들어요. 서예는 오로지 연습밖에 없어요. 얼마나 연습하느냐에 따라 실력이 늘어요.
임봉규 선생님, 강수호 선생님, 장태제 선생님이 다 가르쳐주셨죠. 개인전을 열때 장태제 선생님이 많은 도움을 주시면서 앞서 다른 선생님들이 밑받침해 주셨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라고 하셨어요. 개인전을 열려면 글자를 하나하나 교정해야 되고, 틀린 글자가 있으면 안 되니까 정말 힘든 일이죠. 장 선생님 덕분에 개인전을 열게 된 거죠. 하나하나 손이 가야하니까 너무 신경이 쓰였죠.
처음 호가 소원(小園) ‘작은 동산’이라는 뜻인데, 산은 작은 산이 없다면서 장태제 선생님이 ‘작다’(小)는 뜻 대신 ‘나무 목(木)’을 써서 ‘동산에 나무’라는 목원(木園)이란 호를 지어 주셨어요. 그래서 ‘목원’이란 호가 생겼죠. 열심히 글씨를 배워서 잘 써보겠다고 노력한거죠. 한글과 한문서예는 한꺼번에 배우면 글씨가 안 돼요. 뭐든지 하나를 완전하게 해놓고, 어느 정도 쓸 수 있으면 다른 걸 시작해야지 같이하면 두가지 다 안 돼요.
- 3편에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