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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마르크스, 자본주의의 혁명적 변혁으로서의 철학 6
이재성(계명대) 교수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모든 사람은 자신들의 자유와 주체성을 상실하게 된다. 자본주의에서 사회의 진정한 주체는 자본가나 노동자가 아니라 ‘시장’이다. 자본주의에서는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의 이득에 따라 행동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시장의 법칙과 경제적 기계 구조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자본주의는 인간을 완전히 소모품으로 전락시킨다. 인간을 단지 생산력의 한 요소, 즉 비용이 많이 들거나 과학기술을 통해 대신할 수 있으면 그 즉시 무정하게 해고해 버릴 수 있는 생산요소로 취급한다. 자본주의에는 고용 안정이라는 것은 전무하다. 노동자는 시장에 의해서 결정된 임금수준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자본가는 그 자신이 원해서라기보다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그의 사업을 확장할 수밖에 없다.
마르크스는 가끔 자본가와 부르주아를 '뱀파이어' 또는 '적대적인 형제들'이라고 불렀지만, 그들이 실제로 악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그는 그들 역시도 자본주의 체제의 희생자라고 보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본가에게도 노동자에게도 자유와 자결은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다.
요컨대 자본주의의 가장 큰 폐해 중 하나는 타락한 사람이 엘리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상이 우리 모두에게 불안하고, 경쟁적이고, 복종적이고, 정치적으로 만족하라고 가르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들 간의 관계는 ‘거래 관계’로 전락하며 사람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돈에 따라 자신의 가치를 평가받는다. 사람들은 이제 돈을 벌기 위해서 일할 뿐이며 인간관계나 직업에서 화폐로 계산될 수 없는 존엄한 성격을 박탈해버렸다.
“부르주아계급은 그것이 우세한 지역에서는 어디서든 모든 가부장적, 봉건적, 목가적인 관계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것은 인간을 ‘천생의 상전’에게 묶어놓는 여러 가지 중세적 속박을 무자비하게 분쇄했으며, 인간과 인간 간의 관계에 적나라한 자기 이익, 딱딱한 ‘현금 지불’이라는 끈만을 남겨놓았다. 그것은 종교적 열광의, 기사적 열정의, 속물적 감상주의의 가장 숭고한 엑스터시를 이기적인 계산이라는 얼음물 속에 익사시켜버렸다.
인격적인 가치를 교환가치로 용해시켰으며, 파기할 수 없는 수많은 성문화된 자유 대신에, 단 하나의 무의식적인 자유, 즉 자유무역을 가져다 놓았다. 한마디로 말해서 종교적이고 정치적인 환상으로 가려진 착취를 적나라하고, 파렴치하며, 직접적이고 잔인한 착취로 바꾸어놓았다.”(『공산당선언』)
“근대산업의 작용으로 인해 프롤레타리아 가정의 유대가 산산조각이 나고 프롤레타리아 가정의 어린아이들이 단순한 상품과 노동의 도구로 점점 더 전락되어가는 상황에서 가족과 교육, 신성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입바른 소리로 부르주아가 지껄여대는 것은 더욱더 메스껍다.”(『경제학・철학 수고』)
인간은 자기가 정말로 누구인가에 대해 자기가 만들어낸 것을 보고 사후(事後)에 고지를 받는다. ‘나는 누구인가?’는 ‘생산=노동’의 관계망 속에서, 어느 지점에 있고 무엇을 만들어내며 어떤 능력을 발휘하고 어떤 자원을 사용하고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인간은 타인과 구별되는 한 개인으로서 현재의 자기가 과거의 자기와 같으며 미래의 자기와도 이어진다는 생각인 자기동일성을 확보한 주체가 먼저 존재하고, 이 자기동일성을 확보한 주체가 차례로 타인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자기를 실현하는 것이 아니다.
관계망 속에 던져진 인간은 거기서 만들어진 의미나 가치에 따라서 자신이 누구인가를 회고적인 형태로 알게 된다. 주체성의 기원은 주체의 ‘존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체의 ‘행동’에 있다. 관계망 중심에 주관적이고 자기 결정적인 주체가 있고 그것이 내가 의사를 결정하는 데 기본이 되어 전체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된 관계의 매듭 안에서 주체가 ‘누구인가’가 결정된다는 생각은 ‘탈중심화’ 또는 ‘비중추화’라고도 한다.
중추에 고정적이고 정적인 주체가 있어 그것이 상황을 판단하고 결정하고 표현하는 ‘천동설’적인 인간관에서, 중심을 갖지 않은 관계망을 형성하려는 운동이 있고, 그 연결의 ‘얽힘’으로서 주체가 상정된다는 ‘지동설’적인 인간관으로의 이행, 이것이 바로 20세기 사상의 근본적인 경향이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사회가 되면 사람들이 자신이 지닌 본성을 다양하게 개발하리라고 예상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 오늘은 이것을 하고, 내일을 저것을 하고, 아침에는 사냥을 하고, 오후에는 낚시를 하고, 저녁에는 소를 기르고, 저녁 식사 후에는 비평을 하는 등,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 사냥이나 낚시나 가축 돌보기나 비평을 해본 적이 없어도 상관없다.”(『독일 이데올로기』) 우리는 다양한 부분, 즉 창의성, 지능, 친절함, 사나움을 모두 탐험할 수 있고, 모든 사람이 시간을 조금씩 내어 철학을 할 것이다.
이상으로 카를 마르크스 자본주의의 혁명적 변혁으로서의 철학 연재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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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성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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