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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이름/우명식


조진향 기자 / joy8246@naver.com입력 : 2021년 1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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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이름

우명식

“우리 어매, 딸 셋 낳아, 분하다고 지은 내 이름 분한이 내가 정말 분한 건, 글을 못 배운 것이지요… 구십에 글자를 배우니까, 분한 마음이 몽땅 사라졌어요” 이 글은 ‘전국 성인문해 교육 시화전’에서 대상을 받은 아흔한 살의 제자 ‘권분한 학생’의 시입니다.

‘분한 학생’을 처음 만난 건, 4년 전 봄이었지요. 한글 교실로 향하는 길은 나뭇가지마다 봄물이 올라 줄기 끝에 꽃망울이 터지는 환한 봄날이었습니다. 

느티나무 밑을 지나, 풀 냄새, 꽃냄새, 두엄 냄새를 맡으며 고샅길로 들어서자, 한글 교실 앞을 지키고 있는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띄었습니다. 깊은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않는 외로운 나무, 늦봄까지 죽은 듯이 싹을 틔우지 않던 고향 집 뒤란의 대추나무가 그곳에도 있었습니다. 여름 바람 한번 지날 때 꽃을 피우고 꽃인 듯 잎인 듯, 연둣빛 꽃 속에 숨어있던 어머니의 한숨 같던 대추꽃. 피는 듯 마는 듯 지나버리지만, 향기만은 오래 멀리 갔습니다.

한글 교실 문 앞, 색색의 고무 슬리퍼가 빼곡히 나를 반겼습니다. 고단한 삶의 무게를 슬리퍼에 벗어 두고 왁자하게 목청을 돋우어 당신만의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세상 풍파 견디며 사니라꼬 글 배울 시간은 없었지만, 우리가 영 무지렁이는 아니지러.”
부녀회장, 어르신이 걸걸한 목소리로 기선을 제압하셨습니다.

“인자 와서 글을 배와 머 하겠노. 곧 저승 갈긴데.”
“저세상 가서 이름 한 자 못 쓰면 구천을 헤매고 다닐지도 모르제요.”
“입때껏 이름 없이 살았는데 꼬부랑 할매가 이름 찾아 머 할라꼬.”
“죽으면 흙이 될 긴데, 다 소용없지러.”
“내는 글이고 나발이고 아픈 허리나 쪽바로 펴주면 제일 좋겠구먼.”

스물세 명의 어르신들이 한마디씩 툭툭 던지는 말에는 울분과 한이 서려 있었습니다. 거친 언어 내면에 자리한 속말은 ‘제발 글 좀 가르쳐달라’는 아우성이었습니다. 말속에 든 가시를 걷어내고 가시 속에 숨겨진 간절함을 찾아주고 싶었습니다. ‘이름자’라도 시원하게 쓰고 다른 사람 도움 없이 아들딸네 집을 찾아갈 수 있게 해주고픈 충동이 내 안에서 뜨겁게 타올랐습니다.

먼저 이름을 찾아드리기로 했습니다. 이제까지 한 집안의 며느리, 아내, 어머니로 살아왔지만, 오늘부터는 ‘나‘로 살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스물세 명의 이름을 써서 출석부와 이름표를 만들었습니다. 이름표를 목에 걸고 마디 굵은 손으로 쓰다듬는데 싸한 것이 가슴을 훑고 지나갔습니다

한 사람씩 이름을 불렀지요. 병원에 갔을 때 말고는 처음 들어본다는 당신 이름이 어색하다고 했습니다. 모깃소리만 하게 대답하면서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친구 대신 천연덕스럽게 대답하는 어르신도 있었지요. 발갛게 주름진 얼굴에 보일 듯 말 듯 짓는 웃음이 왜 그리 서럽고 애틋하던지요.

딸만 낳아, 너무 분하다고 지은 이름, 분한이, 분해… 남동생을 꼭 보고야 말겠다고 지은 이름, 차남 1, 차남 2… 아들 낳겠다는 일념으로 지은, 영태, 태늠, 순길, 원불, 춘남, 일남… 이런 이름이 태반을 넘었습니다. 고유의 존재 가치가 아닌, 오롯이 아들의 배경으로 살아야 했던 우리네 어머니들, 당신 자신의 인생은 살 수 없었고, 오직 아들을 위해 헌신해야 했습니다. 공부는 감히 꿈도 꿀 수 없었지요. 이름에 얽힌 저마다의 사연을 들으며 가슴이 시렸습니다.

이제부터 ‘어르신, 할머니, 구계 댁, 덕암 댁’이 아닌, ‘○○○ 학생’으로 부르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학생들은 손뼉을 치면서 좋아했습니다. 가장 어린 학생이 일흔을 훌쩍 넘겼고, 아흔 넘은 학생도 다섯이나 되지만, 우리는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일학년입니다. 모든 시름 내려놓고, 어린 학생으로 돌아가 책가방 둘러멘 푸르디푸른 일학년입니다.

제 이름을 궁금해하셔서 ‘우명식’이라고 소개하니까 한 말씀씩 하셨습니다.
“우리 선상님도 남동상 볼라꼬 그래 지었제요?”
“그라도 내 이름보다는 헐쓱 낫지러.”
쪽 찐 머리에 한복을 단정히 입은 아흔한 살의 ‘차남 학생’이 위로의 말을 건넵니다. 

오빠가 셋이나 있는 저에게 남자 이름을 지어준 데는 외할아버지의 깊은 뜻이 있었지요. 세상에 밝음을 심어주고, 빛나게 살기를 바라셨거든요. 여태 이름값 못하고 살았는데 어르신들을 만나 이름값 하면서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남자 이름이 대세인 이곳에서 얼른 친해지려고 공범을 자처했습니다. 그때부터 제 이름도 남동생을 보기 위해 지어진 이름이 되었고, 은밀한 비밀을 공유한 것처럼. 우리는 한패가 되었습니다.

날마다 약봉지 하나씩 곁에 두고 연필 쥔 손에 힘을 줍니다. 꾹꾹 눌러 잡은 연필만큼이나 배움에 목말랐던 한을 하얀 종이 위에 새깁니다. 마음먹은 대로 글자는 써지지 않고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다 보니 애꿎은 공책만 찢어집니다. 삐뚤빼뚤, 글인지 그림인지 구별이 안 됩니다. 

자음과 모음이 만나 글이 되는 원리를 설명하지만, 학생들 귀에는 들리지 않습니다. 얼른 내 ‘이름자’라도 시원하게 쓰고 싶고, 시장갈 때 타고 가는 버스 번호도 알아야 하고요, 자식에게 마음대로 전화도 걸고 싶습니다.

“에고 선상님요, 보고 쓰는데도 요래 틀려서, 우애야 될동 몰시더.”
공책에 늘어나는 빨간 꽃을 보면서 아흔 살 ‘분한 학생’은 안절부절 못하고 애달아 합니다.

이번에는 아흔한 살 ‘차남 학생’이 무심하게 한마디 툭 던집니다.
“우리 생에 꽃 잔치가 몇 번이나 남았을꼬.”

창밖은 봄꽃으로 사방이 환합니다. 하얗게 산천을 수놓은 조팝꽃을 보면서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한을 쏟아냅니다. 배고팠던 시절에도 더 절실했던 건, 배움이었다고, 배움이 더 고팠다고 했습니다. 뼈마디에 귀뚜라미 소리 들리고 힘든 노동에 지쳐, 공벌레처럼 둥글어진 등으로, 이제야 돌아와 책상 앞에 선 어르신들, 공부가 제일 재미있다는 말씀이 명치에 걸려, 무시로 저를 찌릅니다.

고추 모종을 급하게 심고 밭고랑을 고르다가, 호밋자루 던지고 수업에 늦을세라, 바람처럼 달려오신 어르신, 발보다 가방이 먼저 들어섭니다. 고된 노동에서 벗어나 오늘만은 온전히 내 이름으로 생의 마지막 날처럼 살고 싶습니다. 누가, 피는 꽃을 아름답다 했던가요. 지는 꽃도 눈물겹게 아름답습니다.

처음 글을 배우고 일기를 쓰기까지 평범한 일상을 몇 줄 글로 적는 작업이, 학생들에게는 버거웠습니다. 할 말은 많지만, 글이 되지 않아 애먼 이름자만 왕청스레 적어 가져온 학생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말이 글이 되었습니다. 언어의 유희가 아닌, 살아 숨 쉬는 글이었습니다.

글 속에는, 한 맺힌 과거와 치열한 일상이 새겨져 있고, 내일이라는 희망이 숨어있었습니다. 한 자 한 자 배워나가는 열정의 다른 이름은 바로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시화를 준비하면서 우린 더 가까워졌지요. 농사일보다 시 짓는 일이 더 어렵다며 꾀를 부리는 아흔세 살 왕언니를, 아흔 살 아우가, 살갑게 다독입니다. 늦은 시간까지 글을 쓰면서 우리는 울고 웃었습니다. 시고 맵고 짠 세월을 글로 풀어내고 옹이 진 마음마저 함께 치유했습니다. 완성된 시화에, 화룡점정, 당신 이름을 적으며 ‘나도 시인이다.’라고 외치셨습니다.

제가 집에 가는 어두운 길을 걱정해주던 어르신이 갑자기 제 앞에 밥그릇을 내밀었습니다.

“선상님, 이거 자시면 속이 따뜻해져요.”

아, 그릇 속에는 커피가 찰랑거리고, 저의 눈에는 눈물이 찰랑거렸습니다. 구순을 넘긴 학생이, 밥그릇 넘치게 타주는 커피를 마시며 뜨거운 사랑도 함께 삼켰습니다.

계절이 세 번 바뀌면서, 학생들은, 잃었던 당신의 이름을 온전히 찾았습니다. 공책에도 그림에도 이름을 또박또박 적으며 행복해하셨습니다. 오랫동안 꿈을 그린 사람은, 그 꿈을 닮아간다고 했습니다. 학생들과 함께한 시간이 그랬습니다. 우리는 꿈을 꾸었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조금 무모하다고 생각하던 일도, 감히 도전해 보았습니다. 조금씩 용기가 생기고 희망이 보입니다. 꿈꾸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 어매 딸 셋 낳아, 분하다고 지은 내 이름 분한이
내가 정말 분한 건, 글을 못 배운 것이지요…
구십에 글자를 배우니까, 분한 마음이 몽땅 사라졌어요”
‘분한 학생’의 시 읽는 소리가, 낭창하게 울립니다. 저의 가슴이 마구 방망이질합니다.
분한이, 분해, 차남이…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맞추며,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이름 불러봅니다.

↑↑ 우명식 수필가
강원도 영월 생
‘현대수필’ 등단
안동시 한글문해교사
나섬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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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작가가 2019년 안동시 한글배달교실에서 한글문해교사로 어르신들을 한글을 교육하며 느낀 점을 쓴 수필입니다. 따뜻한 글이기에 함께 나누고 싶어 올립니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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