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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으로] 성주읍 구동골 ‘비애 혹은 그리움’


조진향 기자 / joy8246@naver.com입력 : 2020년 11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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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회관 옆 좁은 골목길 안쪽, 깔끔하게 벽화가 그려진 담장 맞은편에 오래된 돌담이 여기저기 부서진 채 또다른 골목으로 이어져 있다.


골목 끄트머리에는 담쟁이넝쿨인지 잡목에 둘러싸인 벽이 있다. 가까이 다가가자 퇴색한 나무 대문이 풀과 메마른 넝쿨에 둘러싸인 채 굳게 닫혀 있다. 그곳은 마치 나니아 연대기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발견한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 같았다.

저 너머에는 소죽을 끓이려고 군불을 때는 할아버지와 가마솥에 넣을 여물을 삼태기 가득 담아 쏟아넣는 할머니, 마당을 쫓아다니는 코흘리개 어린 아들의 코를 치마 끝단으로 닦아주는 어머니가 계실 거 같다.

밭을 갈러 소를 몰고 나간 아버지는 해거름 답에나 달구지를 몰고 터벅터벅 돌아오시지 않을까?

고등학교에 들어간 누나는 때묻은 교복칼라를 떼내 마당 수도가에서 빨고, 작은 형은 A,B,C… 알파벳을 공책에 눌러 적으며 영어숙제를 하느라 볕이 늘어진 마루에 배를 깔고 엎드려 있을테고.


저물어가는 하늘가에 까치가 울고, 부엌에선 가마솥에 밥물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두부를 숭덩숭덩 썰어넣은 뚝배기에선 된장찌개의 구수하고 맵짠 냄새가 이웃집 담을 넘어가지 않았을까?


빗물에 패인 담장 위로 기와 대신 양철과 함석조각이 임시방편으로 비쭉빼죽 올라있는 담을 따라, 그 아래 쏟아지는 소나기를 피하는 아이들의 운동화들이 오종종 서있었을 것이다.

골목 끄트머리에서 숨바꼭질하자며 부르던 단발머리 계집애, 회관 앞마당에서 자기 키보다 더 높은 고무줄을 겁도 없이 발로 휘감아내던 주야, 희야도.

소꼴이나 군불 땔 나무를 한짐씩 해오던 아지야도 골목에서 마주쳤을테고, 소를 먹이러 뒷산에 갔다 돌아오는 앞집 머슴의 삐죽한 키와 덥수룩한 머리도 지나쳤으리라.

술래잡기와 숨바꼭질하러 동네 아이들이 모여 웃고 떠드느라 마을회관 앞이나 골목길은 아이들의 발자국 소리로 늘 시끌벅적했으리라.


황토를 바른 회벽은 비를 피하기 좋고 숨바꼭질하기엔 너무 노출된 장소다. 깨진 유리문이 비스듬히 걸쳐진 창고는 뻥튀기나 과자, 알사탕을 팔던 예전 구멍가게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 집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 왠지모를 슬픔이 스물스물 묻어났다. 


손으로 떼 먹던 마른 메주덩이처럼 군데군데 움썩 패인 돌담, 흙벽에 봉창을 막은 초가를 나무기둥으로 지지하고 한쪽은 함석으로 막고, 위에 슬레이트를 얹은 아래채. 


방의 창살이 뜯어지고 문풍지에 바람구멍이 숭숭난 채 환삼덩굴이 엉키고, 처마밑에 댄 합판이 마른 종잇장처럼 들고 일어나 있다. 


시멘트벽과 슬레이트 지붕 아래로 촘촘한 창살과 유리를 끼운 문이 가운데 있고, 왼편에는 창살에 문풍지를 바른 미닫이 문, 오른편엔 합판을 댄 부엌문이 닫힌 안채.


빛이 바래고 곰팡이 자욱이 난 굵은 나무기둥과 짚으로 짠 넓은 멍석을 얽기설기 가린 소 마구나 헛간이 있는 대문간.


사랑방에 어른들이 모여 앉고, 안채에는 동네 아낙들이 나물을 다듬거나 홀치기를 하며 나누는 이야기 소리가 두런두런 들려오던 곳. 지금은 오가는 발길이 끊겨 들고양이나 들여다보는 대문없는 집.

골목의 끝자락으로 나왔다.


개울을 건너 또다른 골목으로 들어서자 담이 반나마 뜯긴 단칸 기와집에 오후 해가 새하얀 벽에 비스듬히 와서 부딪힌다. 무거운 기와를 떠받치는 나무기둥이 두루미 다리처럼 가냘프고 마루를 덮은 흰색 장판, 여닫이 안방문과 건넛방문의 낡은 살이 살짝 부서지고, 문풍지가 빛이 바랬다.

알루미늄 샤시로 바꿔단 부엌문, 조립식 판넬로 새로 지은 아래채. 마당가 부뚜막 위에는 커다란 양은솥이 그을린 채 걸려있고, 텃밭에 쪽파가 오종종하게 자라고, 맨드라미꽃이 선명하게 붉어서 쓸쓸하다.

이 집엔 홀어머니와 하나밖에 없는 딸이 살지 않았을까? 마치 시집간 딸을 동구밖까지 나와 기다리는 어머니의 정감이 고여 흐르는 듯하다.

이 골목 안쪽에 귀도 멀고, 말도 어눌해서 할 수 있는게 기도밖에 없다는 신심깊은 할머니가 사신다는 허름한 집의 대문이 굳게 닫혀있다. 아무리 밖에서 소리쳐 불러도 소리가 건너가지 못하는 담이 있다. 초하루와 보름마다 기도를 올리러 빠짐없이 절에 들른다는 그 어르신의 바램은 무엇일까?



밭 한가운데 공룡화석처럼 덩그러니 놓인 커다란 검은색 바위는 이끼를 덮어쓴 채 무심히 웅크린 곰처럼 앉아있고, 저멀리 은행나무는 아직은 초록 잎이 무성하다.

마을을 휘감아 흐르는 개울가로 벚나무가 줄지어 서있고 작은 교회당이 있는 곳, 성주읍 구동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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