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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아가신 영가들을 위해 기도하는 제단. 사진은 원행스님의 아버지. |
| 5편에 이어
13. 나이 많은 부모님, 냉담한 가족들
가족들과는 지금도 떨어져 지낸다. 동생이나 배다른 오빠는 나에게 냉정했다. 여동생은 나보다 먼저 결혼식을 올렸고 서울에서 살고 있다. 어느 날, 나에게 “언니도 평범하게 결혼해서 살지 뭐 때문에 이러고 사냐?”고 물었다.
너무 깔끔한 성격의 동생은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을 못마땅해 했다. 마음의 병으로 자신을 추스르는 것조차 힘들고 어렵다는 걸 동생은 이해하지 못했다.
오빠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절을 돌보지 않고 내버려뒀다. 추운 겨울, 수도가 얼어터지거나 어디가 세거나 금이 가도 "이제부턴 너가 알아서 해라"하며 냉정하게 돌아섰다. 손을 내밀어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어머니는 오직 오빠만 바라봤다. "아들, 아들"하며 떠받들던 어머니였다. 오죽했으면 힘들게 10여년간 미용일을 하며 벌어놓은 적금을 오빠 땅 사야한다고 내놓으라고 했을까? 그렇지만 지금 돌아온 댓가는 차갑기만 하다.
학교 다닐 때, 친구들은 부모님이 대부분 젊었는데 내 부모님은 나이가 많으셨다. 세대차도 많이 느꼈다. 어머니에게 뭔가를 물어보면 어머니는 늘 “니가 알아서 해결해라” 그러셨다. 난 늘 막막했고, 누군가 앞에서 끌어주는 사람이 필요했는데 그럴 사람이 주위에 없었다. 혼자 큰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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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래전부터 이 터를 지켜주는 수호 할머니상. |
| 14. 흉터, 부끄러운 사춘기
3살 때 화상을 입었다.
펄펄 끓는 어묵솥에 빠진 것이다. 부산에서 부모님이 운영하던 포장마차에서 외할머니께서 등에 업혀있던 나를 어머니에게 건넸다. 그런데 배가 고팠던지 엄마와 떨어져 있다보니 엄마품이 그리웠던지 그 순간 내가 발버둥을 쳤다고.
그 바람에 펄펄 끓는 어묵솥에 빠졌다. 말도 못하던 난 종일 울어댔다고 했다. 그런데도 윗목에 밀쳐뒀다고, 병원에 갈 돈이 없어서. 그냥 죽더라도 할 수 없다고.
하지만 그때의 기억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 중학교때 문제가 생겼다.
한창 사춘기. 이쁘게 보이고 싶고, 꾸미고 싶은 나이. 친구들은 예쁜 원피스나 반팔을 마음대로 입고 다니는데 난 그런 옷을 입을 수가 없었다.
팔과 다리까지 내 절반을 수놓은 흉터 때문에. 아마 그때부터 열등의식 생긴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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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원행스님 |
| 초등학교 때는 글 쓰는걸 좋아했다. 내가 쓴 글이 가끔 게시판에 붙기도 했다.
중1학년 때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라는 붓글씨를 써갔더니 담임선생님이 잘 썼다고 칭찬하시면서 게시판에 붙여 주셨다.
친구들이 "그게 무슨 뜻이야?" 묻는데 그때는 나도 그 의미도 모르고 썼다. 머릿속에 한순간 떠오른 생각을 썼던 거였다.
그 뜻을 이해하는데 50년이나 걸렸다. 이제와서야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는 걸 느끼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때는 담임선생님이 사람의 장기를 노트에 그대로 그리라고 해서 따라 그렸는데 선생님이 내 그림을 보고 또 칭찬해 주셨다.
미술시간에 재료를 하나도 안 가지고 가도 선생님에게 성냥을 구해서 본드로 붙여 공작물을 만들기도 했는데 그것도 교실 뒤편에 전시해 놓기도 했다.
담임선생님이 내게 아이디어가 다양하고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하셨다.
지난해 성주도서관에 미술반이 생겼다. 그곳에서 수채화 데생을 배우고 그림을 그린다. 같은 반에서 배우는 분들이 "스님은 조금만 더 집중하면 그림을 훨씬 잘 그리겠다"고 격려해 주기도 한다.
그림을 그리다보면 집중이 잘 되고 흥미가 생긴다. 그렇게 그린 그림으로 올해 연화사 달력을 만들었다. 그림을 보고 다들 좋아해주셔서 뿌듯하고 기뻤다.
그때부터였다. 병을 드러내 놓고 밖으로 나가기 시작한 것이. 나가서 부딪히다보니 남에게 인정도 받고 지금은 인생과 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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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신도수가 줄어 군데군데 칠이 벗겨지고 제대로 보수를 못하고 있는 극락전 문살. |
| 15. 어머니의 임종, 겹쳐 일어나는 고난
어머니는 작년에 돌아가셨다. 올해 어머니의 첫제사를 지냈다. 아버지는 돌아가신지 10년이 다 돼 간다. 어머니는 88세, 아버지는 78세 때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3년전 중풍으로 쓰러져 요양병원에 꼼짝없이 누워 지내셨다. 매일 어머니 병수발을 들러 가야했다. 혼자 힘으로는 밥도, 거동도 못 하시니 아침저녁 가서 돌봤다.
어머니 임종도 내가 지켰다. 어머니를 그렇게 보내고 나니 서운하고 외롭고 말할 수 없이 복잡한 심정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걱정스럽기도 했다. 이웃들도 걱정을 많이 해줬다. 그렇지만 지금은 오히려 담담하게 살아가고 있다.
7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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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원행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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