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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고등학교 졸업후 미용실 시다(잡일꾼)로
나는 대학교를 다른 사람들보다 늦게 갔다. 계명대학교 영문과에 응시했다가 떨어졌는데, 어느날 큰아버지 손에 이끌려 서울 사촌언니가 하는 미용실로 가게 됐다. 거기서 미용기술을 배우라고.
하루 종일 미용실에 앉아 사촌언니가 퍼머하는 걸 들여다보니 옆에서 고무줄이나 종이를 쥐어주는 보조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이것저것 순서대로 전달하니까 사촌언니가 “너, 센스있다. 이거 배워라” 그래서 2년간 미용기술을 배웠다.
한달에 7만원을 받고 한달에 한번 놀면서 열심히 일했다. 새벽 6시부터 12시까지 일하고 퇴근한 후 직접 손으로 염색하거나 머리닦은 수건을 주물러 빨았다. 그리고 퍼머나 커트를 하고 난 후 손님들의 머리를 감겨주고,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쓸고 치우는 잡일부터 시작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나니 친구들이 “너가 이런 일을 할 줄 몰랐다”며 놀라워했다. 머리를 예쁘게 만지는 일을 하다보니 어떻게 해야 모양이 나오는지 연구를 하고 집중하게 됐고, 일이 점점 재미있어졌다.
처음 마음먹기를 ‘미용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앞으로 어떤 일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악착같이 배웠고, 누가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쉬지않고 일했다.
미용실에 손님이 많으면 아무리 점심시간이라도 밥도 안먹고 일을 끝냈고, 그러고 나서야 밥을 먹는 스타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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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불. 나를 지켜주는 부처님. 수호천사. 부처님마다 이름을 새겨서 모시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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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새벽에 침입한 강도, 정신적 충격
그렇게 미용일을 10년 정도 했다. 서울 2년, 대구서 3년, 벽진면사무소 앞에서 4년. 20살때 고등학교 졸업하고 시작해서 10년간.
그런데 어느 날 새벽, 미용실에서 자고 있는데 강도가 들었다. 강도가 칼로 목을 겨누는데 빌 수밖에 없었다. “살려 달라고, 목숨만은 살려 달라고” 그때 성폭행을 당했다. 그 충격으로 정신병을 얻었다. 그후 미용실을 그만두고 시공부를 하기 위해서 서울로 올라 갔다.
그때 미용실 주인아주머니하고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스트레스를 자주 받았다.
새벽에 그 일을 당하고 경황도 없이 주인아주머니가 사는 아파트로 달려갔는데 경비아저씨가 새벽에 뛰어오는 나를 보고 질겁을 하셨다. 그때 내가 무슨 정신이 있었겠나? 경찰이 오고 동네사람들이 모여들고 난리가 났다.
다시 미용실로 가 있으니 경찰이 와서 주인아주머니에게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 드릴까요?” 물었다.
순간 어이가 없었다. 경찰이 강도에 대한 처리를 피해자인 나에게 물어야 하는데 주인아주머니에게 묻는거다.
어떻게 처리해 드릴까요? 그러자 주인아주머니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해 주세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미칠 지경이었다.
어떻게 그 일이 아무일도 없었던 일이 될 수가 있지?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는 느낌이 어떤 느낌인지 모를거다.
그때 충격으로 정신병을 얻었다. 사람사는 세상에 정답은 없다.
아주머니가 그렇게 이야기하는 바람에 범인도 못 잡고, 성폭행 강도 사건에 대한 수사는 흐지부지돼 버렸다.
당시 병원에 가서 유전자 검사라도 하고 피해자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취했어야 하는데 모든 것을 덮어버리고 쉬쉬하면 된다고 생각한거다.
병원에 가서 칼에 베인 상처를 꿰매는데 의사선생님이 “이만하기 다행이다”고 했다. 지금도 강도가 휘두른 칼에 베인 상처가 남아 있다. 그렇게 죽을 고비들이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성폭행 피해자의 인권이란 건 생각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경찰도 무구한 시민이 피해를 입었는데 어떻게 하면 되는지 그 방법을 피해자에게 이야기해 줬어야 하잖나?
어떻게 피해자가 아닌 제3자에게 강도의 처리를 물을 수가 있는건지? 내가 마치 주인아주머니의 부속품 쯤으로 전락해버린 느낌이었지. 그 충격은 뭐라 말할 수 없이 내 정신을 관통해 버렸다.
그런데 그 강도가 나가면서 뭐라고 했는지 알아? “미안하다” 한마디하고 나가더라.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 한마디에 용서가 됐다. 말이 안 되지만.
그 강도는 이십대 초반 남자였다. 자고 있는 내 팔다리를 꽁꽁 묶어 놓고 흔들어 깨웠지. 난 같이 일하는 아가씨가 깨우는지 알고 ‘어머나 왜 그래?’ 하고 잠꼬대를 했지. 그런데 그 아가씨가 아닌거야.
같이 일하는 아가씨는 그날따라 남자친구를 만나러 나가면서 미용실 셔터문을 열어놓고 나간거지. 난 너무 피곤해서 저녁 9시에 일이 끝나면 그대로 쓰러져 잠들어 버렸다.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그때 내가 미용실 일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말로다 못 한다. 일만 했다, 오직. 한달에 두번 월요일에 놀았는데 연애도 한번 안 해봤다.
그런데 미용실 주변에 고등학교가 있어서 남학생들이나 2~30대 젊은 남자들이 머리카락을 자르러 미용실에 많이 왔다. 여자들보다 20대 젊은 총각들이 많이 왔지.
여자들도 젊은 사람들보다 나이든 아주머니들이 파마하러 자주 오곤했다. 그 범인도 아마 미용실에 자주 왔을거야. 그러니 미용실 구조를 잘 알고 나를 잘 아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농땡이 한번 친적이 없고, 고리타분하고 고지식한 외곬수여서 이 일이 아니면 안된다, 이것 못 하면 다른 거 아무것도 못 한다는 식으로 일을 했기 때문에 옆도 뒤도 안보고 일만 했다. 그렇게 일한 사람에게 믿었던 사람이 뒤통수를 치더라.
이젠 그냥 담담하게 이야기 할 수 있다. 다 흘러간 과건데 지금와서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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