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에 이어
3. 나를 치유한 신묘장구대다라니
老비구니 스님이 혼자 기도 드리는 백암사에 잠시 머문 적이 있다. 그런데 아파서 날마다 부처님 뜨락에 가서 울었다. 눈물을 쏟으며 법당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울었다. 그때는 우는 일이 기도였다.
하루는 너무 머리가 아픈데 스님은 뒷밭에 깨를 털러 나가시고 혼자 너무 아프다 못해 괴로워 어느새 나도 모르게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외웠다.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집중해서 끊임없이 외웠다. 온몸과 정신을 집중해서 외우다보니 머리의 통증이 점점 나았다. 그때부터 회복이 되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매일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외우고 있고 이제는 눈을 감고도 다 외운다.
또 청암사에도 열흘간 가 있었는데 새벽에 비구니 스님들이 줄을 맞춰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낭송하는데 그 낭랑한 울림은 말도 못하게 가슴을 후려쳐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그런데 거기서도 몸이 아픈데 약이 없으니 도저히 공부를 못 하겠다고 큰스님께 인사드리고 나왔다.
담당스님이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열심히 외우세요. 그게 대광명을 비춰주는 기도입니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러고 시간이 흐르니 더디지만 몸이 나았다.
청도 운문사나 갈 만한 곳은 다 다녀봤지만 몸이 아프니 모두 도중 하차했다.
4. 가난한 농부 아버지와 신내림을 받은 보살 어머니
연화사가 원래는 집터였다. 어머니가 산기도를 많이 다니셨는데 하루는 기도 중에 부처님 말씀을 들었다고 한다.
‘가엾은 중생아 너는 내 제자가 돼야할 사람인데 여기 와서 기도하는구나. 너가 불쌍하니 어느 곳으로 가면 절터로 쓸 집이 있는데 거기다가 절을 지어라’ 하는 계시가 기도 중에 떠올랐다고.
절터에는 한번도 와 본적이 없는데 기도에서 가르쳐준대로 오니까 그런 집이 있어서 연화사를 지었단다. 그런데 오는 사람들마다 절터가 정말 좋다면서 연봉산 아래 수촌6길 연화사는 그렇게 해서 생겨났다.
그때가 중학교 1학년때인 1973년, 어머니와 아버지가 직접 연화사를 창건했다.
당시에는 어머니가 절을 운영하는 보살로 있으면서 미륵종단에서 스님이 부임해오시면 봉양했다, 한번은 나이가 어린 법원스님이 10년간 머무르기도 하셨다.
그후 다른 곳으로 가시고 또 다른 스님들이 3년, 2년, 6개월. 구름처럼 인연이 닿는데로 머물다가 가시길 거듭하다보니 37년간 이어져왔다.
5. 소화 데레사, 세례를 받다.
어머니는 산에서 기도 중 부처님의 계시로 절을 지었는데, 어릴 때 저는 성당에 다녔다. 중학교 1학년인 12살 때 세례를 받았다. 세례명은 소화 데레사, 견진성사도 받았다. 권비안네 수녀님이 딸처럼 거둬 주시곤 하셨다.
권수녀님이 엄마처럼 간식도 챙겨주시고 어려운 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어 주셨다. 그렇지만 어느날 홀연히 다른 곳으로 부임하시는 바람에 인사도 없이 떠나셔서 아쉽고 그리웠다.
어릴 땐 불교가 있는지도 몰랐고, 어머니가 하시는지도 몰랐다. 어머니가 한번도 부처님께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제가 성당에서 영세받던 날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참석해서 진심으로 축하해 주셨다.
어느 날, 성당에 주일헌금을 하려고 어머니에게 돈 500원만 달라고 했더니 그 순간 어머니가 야단치셨다.
“절에서 나온 돈을 왜 성당에 갖다주냐?”고. 그 순간 헌금하려는 돈은 내가 노력해서 내 힘으로 번 돈으로 해야겠다고 어린 마음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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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처님께 올리는 정화수. 요즘은 작은 물병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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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사도 예법에 따라 접는 방법과 순서가 있다는 원행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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