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입원실에는 발, 손목, 어깨를 다쳐서 입원중인 사람들이 무수히 많다. 11층 가운데 7층부터 10층이 입원실인데 하루에도 입원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수술실 안에도 마취주사를 맞고 수술을 기다리는 환자들이 누워있는 침대가 길게 줄 나리미를 섰더라고 엄마가 말했다.
엄마는 증세가 심한 왼손을 먼저 수술하고 오른손은 다음날 수술하기로 했다. 한시간 남짓 수술이지만 오전 8시에 입원 수속하고 9시에 수술실로 들어가 10시 10분경 수술을 끝낸 후 입원실이 비기까지 꽤 오래 밖에서 기다렸다.
엄마는 아직 마취가 풀리지 않았다며 아픈 줄 모르겠다고 했지만 수술을 담당한 의사는 엄마의 증세가 많이 심하다고 했다.
그 순간 이날까지 쉬지도 않고 일한 열개의 손가락이 마디마다 관절염을 앓는다는 사실이 새삼 떠올라 뜨거운 무엇이 치밀어 올랐다.
7인실에서 엄마와 같은 날 손목 수술을 하고 입원한 70대 중반 아주머니는 자그마한 체구의 남편이 따라왔다가 딸이 오고 싶어 한다며 점심 식판을 가져다주고 다 먹은 그릇을 내놓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 아주머니는 집에서도 잘 도와준다며 남편을 칭찬하고, 아저씨는 내가 집에서도 잘하긴 한다며 수줍은 듯 이야기해 모두들 와 웃었다.
엄마 바로 옆자리에는 80대 초반의 어르신이 넘어지면서 오른손을 짚다가 부러졌다며 퉁퉁 부어오른 손을 내민다.
그러면서 엄마의 손목 수술은 자신에게 대면 아무것도 아니란다.
부기가 가라앉도록 얼음찜질을 하는 중이라는데 골다공증 치료가 먼저라는 담당 의사의 말과 손의 부기부터 빼달라는 할머니가 옥신각신하는 소리를 들었다.
창가 쪽에 다리를 다쳐 수술한 70대 중반의 아주머니가 한분 있고, 그 맞은 편에는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 어깨뼈가 부러져 수술하려고 들어왔다는 50대 중반의 여자.
그녀의 침대에 걸터앉아 마스크를 쓰고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남편이려니 생각하고 바라봤는데 내 초등학교 동기랑 닮았다. 긴가민가하다가 물으니 그 친구가 맞다. 대구시내 하고많은 병원 중에 친구와 만나다니 신기한 일도 다 있다.
그 옆자리가 남편이 집에서도 잘 한다는 손목 수술한 어르신이다.
또 그 옆에는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무지외반증으로 튀어나온 부위를 수술한 여자분이 붕대를 싸매고 누워 있다.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침대에는 왼쪽 발목 복숭아뼈를 다친 50대 후반의 여자가 왼발에 붕대를 싸맨 채 누워있다.
왼발에 붕대를 싸맨 여자가 두사람 중 한 사람은 미용을 위해, 또 한사람은 살기위해 수술했다며 자신들을 소개했다.
무지외반증으로 발의 관절이 튀어나와 예쁜 신발을 신을 수가 없어 수술했다며 나머지 발도 수술할 생각이라는 여자는 염색한 머리칼이 50대로 밖에 안 보이는데 60대가 넘었단다.
왼발에 붕대를 싸맨 여자는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빗길에 미끄러져 복숭아뼈가 부서졌단다.
두달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당뇨로 실비보험에도 못 들어가 보상받을 것도 없단다. 그래도 회사에서 해고하지 않고 병원치료나 잘 받고 오라고해서 고마웠다고.
병원에서는 엄마에게 빠른 회복을 위해 고압산소치료를 받으라고 권유했다. 내심 너무 많은 비용이 들까 염려스러워 꼭 받아야 되느냐 물으니 회복이 빠르고 적정한 시기에 산소치료 받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의사의 말에 엄마는 선뜻 받겠다고 한다.
정말 필요한 처치를 하는 건지 이걸 기회로 치료비를 왕창 받아내려고 하는 건 아닌지 약간 의구심이 들었다.
그렇지만 평생 자식만 바라보며 살아온 엄마에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마음을 다잡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러 오기 전 동생 주라고 싸준 쑥떡과 참외를 동생네에 들러 전해주고 서너 시간이나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왔다.
두 조카도 코로나 때문에 집에 있었다. 다음날 오른손 수술할 때는 동생이 가서 엄마 옆에 있었다. 동생은 병원에 가면서 바나나와 요구르트를 푸근하게 사와서 입원실에 계신 다른 분들에게 나눠줬단다.
병원을 나와 동생네로 가기 전 동기가 병원 옆 작은 카페에서 딸기주스를 사줬다.
이 병원이 꽤 이름나고 7-8명 가까운 수술 전문의가 있다고 했다. 그 친구가 몇년전 구미에서 양쪽 어깨를 다쳐 그곳 병원에서 수술했는데 다시 재발하는 바람에 이 병원으로 와서 재수술했고 지금까지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초등학교때 이야기며, 두 아들이 공부를 잘 한다는 이야기, 지금 대학생이고 큰아이가 군대에 갔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리고 초등학교 6학년때 무지막지한 담임에게 매를 맞던 이야기를 떠올리고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은 건설업 일을 한다는데 경기가 안 좋아 몇 달째 손을 놓고 있단다.
그러면서 너는 잘 되느냐 묻는다. 나는 씁쓰레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친구는 그런데도 그 일을 하느냐며 한심한 눈빛으로 나를 본다.
그러게 말이다. 내가 무엇 때문에 이 일을 시작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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