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공부시간이나 체험학습, 동아리 활동이나 무엇을 하건 다 시와 영화로 연결해서 표현하고 있어요. 생활이 시죠”
봉소분교 교무실에서 나와 운동장에 섰을 때 김준호 선생님이 들려준 이야기가 귓가에 맴돈다. 12월 6일. 초겨울이라 그런지 칼바람이다. 산 아래 학교라 그런가? 운동장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니 쉬는 시간인가보다.
추운 날씨에도 그네에 여러 명의 아이들이 매달려 그네를 탄다. 선생님이 그동안 쓰지 못하고 방치된 작은 골프연습장을 가리킨다. 언제든 배우고 싶은 학생이 있으면 가르쳐줄 수 있다고, 사드가 들어오면서 이 작은 시골학교가 누리던 특권 중 하나인 골프교실이 멈췄다고 했다.
기초긴 하지만 골프를 배우러 타지에서 학생이 올 수도 있었다는 선생님의 아쉬워하는 목소리. 그로인해 젊은 사람들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다. 안 그래도 적은 학생수가 사드로 인해 더욱 줄었다는 말에 그동안 잊고 있었던 사드에 대한 생각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2016년. 성주에선 얼마나 치열하게 사드반대를 외쳤던가? 격렬하게 싸우고, 밥 먹는 것도, 운영하는 가게나 회사도 내팽개쳐 성주 경제가 거의 마비될 정도였다.
그렇게 들끓던 여론이 지금은 소성리와 김천, 성주읍 한 귀퉁이에서만 사드철회를 외치고 있다. 살기 바빠서, 더 이상 그 일에만 관심을 두기 어려워 뿔뿔이 흩어졌다. 소성리를 생각하면 성주 사람들은 가슴 한켠이 아프다고 말한다. 그들에게만 짐을 몽땅 맡겨버린 미안함과 그런 가운데도 버티고 있는 그들이 고마운 거다.
학교 전경사진을 찍으려고 돌아섰다. 그런데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공을 찬다. 괜찮은 장면이라 생각해서 찍으려니 9명쯤 돼 보인다. 뭐지, 전교생이 다 나왔나? 순간 멍해진다. 아, 이런 곳이구나! 봉소분교는.
학교에 들어섰을 때 맞아주던 김준호 선생님은 이 학교의 학생들이 모두 천사라고 했다. 이렇게 착한 아이들이 없다고. 순수하고 때 묻지 않았고, 9명의 아이들이 배척하는 것도 없이 서로 잘 어울린다고 했다. 그게 가능한 걸까? 요즘 세상에 90년대 같은 순수함이 남아 있을까 잠시 생각했다.
마침 2층에서 도자기 수업이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학생들이 직접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쓴 시화캔버스가 걸려있다. 복도에도 아이들의 시와 그림이 전시돼 있다.
그리고 도자리 수업교실 앞에는 그동안 만든 도자기 작품들이 놓여있다. 수업중인 교실은 마칠 시간인지 약간 어수선했다. 거의 마무리하고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고 한쪽에서만 색칠을 하거나 만든 작품을 옮기고 있었다.
이 아이들이 천사라고? 다시 한번 선생님의 말을 떠올렸다. 글쎄, 얼핏 보기엔 잘 모르겠다. 그냥 평범한 아이들일 뿐인데, 역시 떠들고 장난치기 좋아하는 아이들이라는 인상이다. 한 아이가 낯선 듯 나를 빤히 본다. 빙긋이 웃었지만 뭐라 말을 붙이기 어려워 ‘안녕’하며 인사했다. 여전히 어색했다.
어제 봉소초총동창회 사무국장님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한번 찾아오려고 생각지 못했다. 2016년 3월 1일자로 봉소초에서 봉소분교로 개편된 작은 시골학교. 전화의 주요내용은 “시골 작은 학교지만 이곳에서 학예발표회도 하고 시집도 출간했으니 학부모회의 요청도 있고 해서 한번 와서 모교를 좀 알려 달라”는 내용이었다.
학예발표회는 어느 학교나 하는 연중행사고 일년간 만든 작품을 늘어놓고 학부모들에게 보여주는 일상적인 일인데 특별하게 알려줄 만한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했다.
선생님은 단 세분. 그것도 1학년과 3학년 학생은 없다. 2학년은 그나마 가장 많은 다섯명에 선생님 한분, 4학년과 6학년 각 1명을 선생님 한분. 5학년 2명을 한분. 이렇게 세분이 나눠 맡고 있다.
대도시에선 상상도 못할 구조다. 한쪽에선 비합리적이고 예산낭비라고 말할 수도 있으리라. 학생수가 더 줄면 학교를 폐교하고 본교로 옮겨야할 지도 모른다.
“최선을 다해 작은 학교만의 강점으로 가르칠 수 있고 자신감도 있는데 학생수가 늘지 않네요. 거리가 먼 것도 문제지요. 성주읍에서 15분 정도 거리에 있고, 김천혁신도시에서도 20분 정도로 거리가 멀어 아이들 등하교도 문제고요. 멀어도 온다고만 하면 학원차나 유치원 버스 등 방법을 찾아보겠는데 물어오는 학부모님이 없어요”
웃으며 말하는 김준호 선생님의 모습이 씁쓸해 보인다. 본인은 그저 이 학교의 잡일 담당이라고 소개하며, 2학년 하지영 선생님과 5학년 이원일 선생님을 소개한다. 세분 모두 작년까지 초전초 본교에 있다가 올해 함께 봉소분교로 옮겨왔다고.
얼른 뛰어가서 책 2권을 가져와 내민다. 작은 동시집이다. 올해 펴낸 시집이라고 했다. 하지영 선생님이 봉소분교 9명의 아이들과 써내려간 시를 엮은 ‘파도가 이야기해’라는 시집과 초전초 시동아리 아이들과 엮은 ‘짜장면, 짬뽕, 탕수육, 단무지 추가요!’라는 동시집이다.
‘파도가 이야기해’는 지난 10월 25일 초전초 봉소분교장에서 ‘가을, 시(詩) 콘서트’를 열어 출판기념과 낭송회를 가졌다. 이날 조재국 초전초 봉소분교장이 참석했고 이후 본.분교 통합 시집 발간에도 많은 도움을 줬다고 한다.
그리고 ‘짜장면, 짬뽕, 탕수육, 단무지 추가요!’라는 동시집은 초전초와 봉소분교 시동아리 학생들, 그러니까 하지영 선생님이 1년전 맡았던 현재 초전초 3학년 학생들과 올해 본·분교 공동교육과정으로 초전초와 봉소분교 2학년 학생들의 시를 엮은 시집이다.
이 시집도 지난 11월 22일 초전초 학예회 식전행사에서 ‘작가와의 만남’을 통해 전교생에게 직접 사인해서 나눠주기도 했다. 그리고 내년 1월 30일에는 '내가 제일 잘 나가'라는 산문집도 출간될 예정이다.
하지영 선생님은 “너희는 모두 시인이야!”라고 말한다. 아이들이 시를 쓰면서 마음속에 있던 아픔과 슬픔이 사라지고 편안해졌다는 고백에 아홉살 인생에서 시를 쓰면서 삶을 치유한 경험을 했다는 사실에 마음 한자락이 먹먹해졌다고 책에 썼다.
이원일 선생님은 출타중이라 만나지는 못했다. 이원일 선생님의 지도로 5학년 아이들이 영화 ‘체험학습’과 ‘복수’의 대본과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연출하고, 2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교생이 출연한 길이 5분 남짓의 영화를 만들기도 했단다. 포스터도 손수 제작했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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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생들이 직접 제작했다는 영화포스터 |
| 1학기에는 예고편을 만들고, 2학기에 영화를 만드는데 선생님이 수업과 연관 지어 프로젝트 학습으로 생활 글쓰기와 대본쓰기는 국어, 요리는 실과 등 일상생활과 교과를 연결해 영화작업을 진행했다고.
‘체험학습’은 체험학습에 가서 겪은 일들을, ‘복수’는 운동장에서 놀다가 당했던 걸 다시 되갚는 내용으로 아이들답게 하되 과도하지 않도록 선생님이 조절해주는 역할을 했다는 설명이다.
이 영화도 지난 11월 19일부터 22일까지 초전초등학교 예술제 기간에 상영됐고, 학생들이 손수 만든 와플과 코코아를 판매한 수익금이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전달되기도 했다.
학부모인 윤하영씨는 "3년전 두 아이를 전학시켰는데, 선생님들이 폐교가 안 되도록 신경을 많이 쓰셨다. 하지영 선생은 시문학을 공부하고, 아동문학을 전공하는 분인데 아이들에게 시를 장려하고 재능을 키워주신 분"이라며 "학생들의 재능도 살리고 이 지역도 알릴 겸 미래에 이 초등학교에서 시인이라도 나온다면 그 얼마나 좋은 일이며, 그런 스승님을 잊을 수 있겠느냐?"고 했다.
그는 또 "파도야 이야기해 출판기념회에 학부모로서 참여했는데 이런 일은 이웃이나 동창들에게도 알려 학교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길 바란다"고 했다.
"주변에 이 학교의 선배들이 살고 있다면 어떤 선생님이 부임해오셨는지 관심을 갖고 살피고, 봉소초총동창회 행사에도 참여해 후배들이 선배들 앞에서 시낭송을 한다면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될 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곧 산문집이 나온다고 들었는데 이번 만큼은 동문들과 연결해 아름다운 이슈로 주변에 알려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과 한알 안에 커다란 사과 나무가 숨어있다는 말처럼 봉소분교장 아이들 하나하나 안에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끄집어내주는 선생님들을 만나 자신이 가진 가능성을 발견해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건 큰 학교에선 불가능한 일이다. 작은 학교에서 선생님과 학생이 서로 교감하고 마음을 나눌 때 알게 되는 그 아이만의 강점과 가능성이다.
현재 대한민국 교육의 현주소는 어디일까? 소위 ‘SKY’를 지향하는, 고급 두뇌들이 공무원이 되기 위해 줄을 서고, 창의력과 개성은 사라진, 존중이나 배려보다 경쟁과 최고로 대변되는, 대화조차 사라진 현실이지 않은가?
이제는 멈춰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속도전과 경쟁에서 놓여나 아이들이 마음껏 꿈을 꾸도록,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한다. 자유로운 생각은 마음껏 뛰어놀 때 가능하다.
나이나 피부색이나 재산, 재력이나 권력으로 금을 긋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빗장을 풀 때 가능하다. 왜 못 사는 사람들과 잘 사는 사람들이 나뉘어져 살아가야 하는 걸까? 언제부터 다양성이 사라지고 특권의식과 피해의식만 남은 걸까?
그 해법이 이 작은 봉소분교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봉산과 봉무, 봉소, 용봉 등 지명에서 알 수 있듯 용과 봉황이 깃들고 노니는 곳. 봉소. 하늘을 향해 날아오를 봉황의 날갯짓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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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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