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모노, 성해나 글, 창비, 2025. p367.
모자처럼 붙어 지낸 지 장장 삼십년. 돌이켜보면 그렇게 오랜 세월 붙어 있었는데도 할멈과 나는 각별하다기보다는 실리적인, 참으로 별난 관계였다. 괴벽한 노인네였지. 입맛뿐 아니라 취향이며 습관도 유별났고 변덕이 손바닥 뒤집듯 해 곤혹스러웠던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놈이 그러더라. 넌 이제 감이 다 죽은 것 같다고. 자기가 정치판에서 굴러먹은 게 몇 년인데 니세모노 하나 구별 못하겠냐고. 니세모노. 그 단어에 퍼뜩 감이 온다. 할멈이 자주 쓰던 말. 저건 분명 할멈이다.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습니까. 하라는 건 다 했는데, 드릴 수 있는 건 다 드렸는데... 쉴 새 없이 떠들어대던 신애기가 말을 멈추고 내쪽을 빤히 본다. 묘한 살기를 띤 눈으로, 나를 똑바로. 문수야. 신령님... 드디어 내 부름을 받으셨구나. 감격하며 할멈의 말을 기다린다. 하지만 뒤이어 들려온 말은... 할멈이 너한테 준다고 했던 거, 그거 너 대신 내게 준단다. ...뭐? 네가 그렇게 되고 싶어하던 문화재, 그거 나 하게 해준다고. 할멈이 넌 너무 늙었다네. 늙은 게 야심만 가득해 흉하다네. 신애기가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웃는다. 큭큭큭큭, 큭큭큭. 손가락 사이로 기분 나쁜 웃음이 새어나온다. 온몸의 피가 머리로 쏠린다. 종아리가 풀리고 손이 저려온다. 모르겠다. 지금 나를 향해 조소하는 것이 할멈인지 저 애인지, 허깨비인지 인간인지, 진짜인지 가짜인지...
이게... 원래 이렇게 가벼웠나. 할멈상을 벽에 던진다. 텅, 하는 소리와 함께 할멈상이 바닥에 나뒹군다. 텅, 텅, 텅... 그 꼴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온다. 큭, 큭큭큭큭큭, 큭큭큭, 큭큭큭
<혼모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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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연 진짜로 살고 있는가? 소설가 성해나의 혼모노를 읽고 난 후 문득 이런 질음이 떠올랐습니다. 나는 누구를 위해 아니, 나 자신을 위해, 내가 주인공이 되어 살고 있는가? 나름 버둥거려도 봤고 북장단에 추임새도 넣어봤지만 그건 오로지 다른 사람의 굿판이었을뿐. 굿판 가운데 고개를 들고 나의 생각을 말 할수록 더욱 냉담하고 멀어지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맞나 싶기도 했고, 입을 다물어버리니 정말 관계가 끊어져 버리고. 한 판의 굿처럼 짧게 가버리는 인생에 왜이리 부침이 많은가 싶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진짜가 되기 위해 어떠한 질문을 던지고 걸어나가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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