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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우리예절에 관한 소고 / 이기정


조진향 기자 / joy8246@naver.com입력 : 2025년 09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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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우리예절에 관한 소고

이기정
경북향토사연구회 회원(경산)


 우리는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일제의 식민지 시절을 지내면서 우리의 전통예절이 많이 변형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가가례(家家禮) 혹은 가가지례(家家之禮)라고 하는 아주 망발된 말을 자랑스럽게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의 총독이 조선인들은 무식하고 야만적이라서 제대로 통일된 예법(禮法)이 없어서 집집이 그 예법이 다 다르다고 폄하(貶下)하는 말로 사용한 말입니다. 그런데 이를 마치 우리나라는 예법이 많은 문화민족이라는 정 반대되는 말로 해석을 하여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언어예절에 대하여 말씀드리자면 남자들의 경우 상팔하팔(上八下八)의 법칙이 있습니다. 풀이하자면 나(本人)를 기준으로 하여 나보다 여덟 살 많거나 작은 경우에 서로 평교(平交) 즉 “허게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단 조혼 풍습으로 인하여 결혼을 일찍 하게 되어서 부자간에 서로 상팔하팔의 범위 내의 사람과 친분을 맺었을 경우 아버지와 아들 중 누구와 먼저 친분을 맺었는지를 따져서 아버지와 먼저 친분을 맺었다면 아들이 먼저 청주 한 병 들고 찾아가서 어느 곳에 사시는 무슨 자, 무슨 자 쓰시는 분께서 저의 가친이십니다. 하여 제가 저의 가친과 친분을 맺으신 것을 모르고 실례를 범하였음을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부터 새로이 부집(父執)으로 존대하겠습니다. 라고 용서를 구한 후 “어르신”이라고 호칭을 하면서 존대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들하고 먼저 친분을 맺었으면 상대방이 역시 청주 한 병들고 먼저 나(本人)의 아버지를 찾아와서 제가 어르신의 자제분과 친분을 맺었음에도 모르고, 어르신과 평교(平交)를 하는 결례(缺禮)를 범하였습니다. 이에 용서하여 주시기를 청하오며, 앞으로는 자제분의 친구로서 어르신으로 모시겠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또 한가지는 조혼으로 남편은 10살 짜리 꼬마 신랑이고 아내는 열여덟 살짜리 일 경우 중간에 일곱 살 혹은 여덟살 많은 처남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아내의 동생 즉 손아래 처남이 됨으로서 비록 여섯 살 혹은 일곱 살이 많은 처남이라도 열 살짜리 꼬마 신랑이 손위가 되기에 열 살짜리 꼬마 신랑에게 열일곱 살의 처남이 깍듯이 새 형님이라고 호칭하며, 위대 즉 존댓말을 하게 됩니다. 이 두가지 경우 외에는 남매지간(처남 매부지간) 이나 남자 동서들에게도 상팔하팔의 법칙이 올바른 언어예절입니다.

 남자들이 친구를 사귐에도 상팔하팔의 법칙이 적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을 전쟁을 치르기 위하여 병력자원을 필요로 함에 따라서 복종심이 반드시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하여서 나이를 불문하고 조선인을 일본인들에게, 후배는 선배에게, 하급자는 상급자에게, 무조건 복종을 강요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풍습이 남아서 우리가 중학교 시절에는 한해 후배가 선배에게 존댓말을 하였고, 길을 가다가 한해 선배를 만나면 부동자세로 경례를 하기도 하였었답니다.

 또한 남자들이 처가에 가서는 여자들에게는 말을 놓는 법이 없습니다. 비록 처제이든, 처남의 딸이나 손녀일지라도 여자에게는 하소 말 즉 존댓말을 하는 것이 올바른 언어예절입니다. 허나 요즈음은 처제에게 “숙아” 혹은 “자야” 또는 처제야, 〇〇아라고 호칭하는 것은 아주 망발(妄發) 된 언어사용입니다.
이런 언어(말)들은 일제 잔재물들로써, 이런 말들을 하는 것은 일제의 적폐(積幣)를 청산하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차례와 제사에 관하여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요즈음 서점에 가면 각종 예절에 관한 책들이 출판되어 있습니다. 혹은 인터넷이나 동영상 등도 흔히 볼 수 있답니다. 여기에서 차례란 우리 민족은 하늘의 자손 즉 천손이라고 합니다. 하여 조상인 하늘에 대하여 제사를 올리던 것이, 세속 즉 풍속으로 발전하여 온 것이라 유추합니다. 

 제사는 돌아가신 조상님을 추모하는 의식입니다. 그러면 제사는 돌아가신 날 지내는 것일까요? 아니면 돌아가신 다음 날 지내는 것이 맞을까요? 여기에 대하여 명확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전날 제사를 모신다고 하시는 분과 돌아가신 다음 날 모셔야 한다는 두 가지 의견으로 대립 되고 있습니다. 

 이는 예전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의 차이를 알면 쉽게 해결이 됩니다. 예전에는 기간을 자시(子時), 축시(丑時), 인((寅時),(이하 생략)로 표기하였으며, 현대적인 시간 표기법은 밤12시를 기준으로 하여 1시, 2시, 3시로 표기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옛날 표기식으로 하면 자시는 밤 11시부터 새벽 1시를 말함이니 현대식으로는 밤 11시부터 12시까지는 돌아가신 전날이 되고, 밤 12시부터 새벽 1시까지는 돌아가신 날이 됩니다. 하여 자시부터 제사를 모시면 밤 11시부터 밤 12시부터는 돌아가시기 전날이 됩니다. 

 그래서 뜻도 모르고 전날이라고 하시는 분들, 밤 12시부터 새벽 1시까지는 돌아가신 날이 되니 두 가지 다 맞는 것 같습니다만 현대의 시간으로는 돌아가신 날로 제사를 모셔야 옳지 않겠습니까? 돌아가시기 전날 제사를 모신다면 돌아가시지도 않은 분의 제사를 지내게 됩니다. 자시에 제사를 모시다가 생활의 변화에 따라 초저녁에 제사를 모시게 되니 돌아가시기 전날이 되지않습니까? 

 그러다가 세월의 변화에 따라 통행금지 시간이 생기게 되니, 점점 제사를 모시는 시간이 앞당겨지면서 밤 11시에서 저녁 8시경으로 제사를 모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경우 다음 날 저녁 8시경에 제사를 모셔야 옳으나, 자시인 밤 11시에서 앞당기게 되니 완전히 돌아가시기 전날 제사를 모시게 되는 우(愚)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돌아가신 날 제사를 모시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또 진설에 대하여도 대추는 암수가 한 몸이며, 꽃 하나에 열매가 반듯이 열림으로 자손을 반듯이 낳아야 한다. 혹은 씨가 하나이니 임금을 뜻한다 라고 하거나 씨가 통씨이니, 절개를 뜻하며, 순수한 혈통과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는 의미라고 하며, 밤은 씨가 세 개이니 삼정승을 뜻한다, 시(柹) 또는 이(梨)는 씨가 여섯이라서 육판서를 뜻한다는 등의 해설이 그럴듯하게 들리기도 하나 이는 별 뜻이 없으니 넘어 가도록 하겠습니다. 

 조율시이, 조율이시, 홍동백서, 조동율서라고 하는데 어떤 이유인지 아십니까? 제사 상에 진설(陳設)을 하는데 어찌하여 조율시이와 조율이시로 적어 놓았으며 또 홍동백서나 조동율서로 진설을 하는지요?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그냥 무조건 자기 말이 맞다 라고 우기기만 하는 현실입니다. 

 중국의 예서(禮書)에도, 퇴계 선생의 가례집에는 그냥 과(果), 과(果), 과(果), 과(果), 과(果)라고 적혀 있습니다. 율곡 이이 선생의 격몽요결에도 과, 과, 과, 과, 과로 적혀 있습니다. 어느 예서에도 조율시이니, 조율이시니, 하는 진설법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나 이를 꼭 구별하려면 파당 즉 당파에 의하여, 진설법을 서로 다르게 한 것으로 유추합니다. 남인, 서인, 동인, 북인, 노론, 소론 등으로 파당이 생기면서 너의 집 안에서는......, 우리 집 안에서는 너의 집안과는 달리 저렇게 하겠다 라고 하여 각각의 집안마다 예법이 달라졌었다고 유추합니다. 

 그래서 예서마다 조율시이, 조율이시들을 누구의 책에 적힌 예법이 옳다고 정의할 수가 없으니 제사를 모시는 분이 남인의 자손인지, 서인의 자손인지를 구분하고, 동인의 예법(禮法)과 서인의 예법(예법)을 따져서 남인의 자손들은 (예를 들자면) 조율시이로 진설하고, 서인의 자손들은 조율이시로 진설함이 옳다라고 정의하여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명절이나 제사로 인한 스트레스로 심지어 주부들의 명절증후군이라는 신조어도 생기고 있습니다. 이는 과도하게 제물을 즉 음식을 준비함으로 인하여 생기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조선 시대에는 고인의 벼슬의 높낮이에 따라서 진설하는 제물을 정하여 최고 18가지에서 최하 8가지로 정하였었습니다. 

 최근에는 1962년도에 박정희 대통령께서 가정의례 준칙을 발표하여서 제사 간소화를 국가에서 강제로 정하였으나, 각 가정의 과시욕에 의하여 제사를 모신 다음 날에는 온 동네 음식을 한 상 차려서 어제 우리 집에 제사 지냈어요, 라고 하면서 돌린 적도 있었답니다. 

 이는 조선 시대에 소 왈 양반들이 20%만이 족보가 있었으며, 족보가 없으면 제사를 모시지 못하였으나 반상의 신분이 없어지면서 아무나 족보를 만들게 됨으로써 제사를 모신다는 것은 족보가 있는 양반의 자손이라는 것을 과시하는 수단이 되었던 것입니다. 

 무릇 제사 음식이란 제사 당일 제관(祭官)들이 음복을 하고, 다음 날 아침을 먹는 정도로 만 준비를 한다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오전에는 시댁에 행사를 마치면 오후에는 친정으로 갈 수 있도록 배려를 하여 준다면 명절 증후군이라는 말은 없어지리라 생각합니다. 

 약 25년 전에 지인이 모씨 문중 행사에서 가짜 족보를 제시하면서 문중의 일족으로 인정하여 달라고 요구하였다가 가짜 족보라는 것이 발각되어서 수모를 당하는 것이 소문이 나서 곤욕을 치르는 것을 직접 듣고, 그 당사자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하여 제가 고아원에서 입양도 하고 또는 업동이도 키우는데 그냥 조용히 넘어가지 그랬느냐? 고 하니, 차라리 6.25 때 혹은 남북으로 갈라지면서 어려서 뿌리를 모르겠지만 어른들에게 들었다고 한다면 무후(無後)의 대를 잇는 식으로라도 배려를 할 수 있었지만, 가짜 족보를 만들어 온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호주제가 철폐되고 가족관계부가 생기면서 핵가족화가 가속화 되면서 가족이라는 개념에도 변화가 오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재종간만 되어도 아주 먼 친척처럼 되어 버렸으니...... 이제는 옛날로 원상 복구가 되기는 어렵겠지만 서로 간에 일족(一族)으로서의 유대감을 가지고 상호 노력을 하여야 할 사안이라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절이란 구성원의 각자의 숭모(崇慕)의 정신을 가지고 화합의 정신으로 모여야 한다는 것이라 말씀드리겠습니다. 서로의 의견이 달라서 언쟁을 한다거나, 혹은 재물(祭物)을 과도하게 장만함으로서 허례허식에 치우치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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