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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푸른 탐라 / 우명식


조진향 기자 / joy8246@naver.com입력 : 2025년 05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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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호철 작, 유화, 2016

푸른 탐라
우명식


 오늘은 나섬 학교 전교생 13명이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는 날입니다. 절대 늦지 말라고 당부했건만, 버스는 곧 출발해야 하는데 아이들 그림자도 보이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몸이 달아 학생에게 전화하기에 바빴지요. 형이는 잠에 취한 목소리로 겨우 대답하고, 머리 말린다는 혁이는 전화 받자마자 매정하게 뚝 끊어버립니다. 금방 일어났다는 민수는 단말마 같은 비명을 지르며 자기도 꼭 데려가야 한다고 무조건 기다리라고 엄포를 놓습니다.

 우리 학교 풍각쟁이 윤이는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끝까지 연락되지 않아 선생들 애간장을 태우고 있었지요. 시계를 보며 하마나 올까. 숫자를 세고 있는데 콜택시를 타고 나타난 윤이는 해맑게 웃으며 여유 있게 버스에 오릅니다. 사실 여행이란 기다리는 연습인걸요. 바깥세상이 두려워 안으로 안으로만 숨던 아이들이 세상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못 말리는 귀여운 악동들과 생활하면서 날마다 인내를 배우고 있습니다. 작년 새내기 일꾼으로 부임해서 아직 교장이라는 직함은 어색하고 아이들과 친구처럼 지낸 13년 차 국어 선생이 저에게는 훨씬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귀찮게 하고 괴롭히는 아이들 덕에 영적인 근육을 견고하게 키우고 있으니, 악동들은 저의 스승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안동에 자리한 위탁형 대안 고등학교입니다. 전교생이 13명인 작지만 특별한 학교이지요. 저마다 아픈 사연 하나씩 간직하고 아이들은 우리 학교에 들어옵니다. 

 따돌림을 견디지 못해 찾아온 아이, 사건 사고를 일으켜 퇴학 위기에 처한 아이, 가정폭력에 시달려 만신창이가 된 아이, 마음이 아파 정신과 약을 먹고 멍한 표정으로 하염없이 울던 아이, 깊이를 알 수 없는 인생의 바다에서 만난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작은 문구를 빼곡하게 마음에 새기고 제발 도와달라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파요.’ ‘자존감이 바닥입니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사라지고 싶어요.’ ‘학교가 싫어요.’ ‘꼭 안아줄 사람이 필요해요.’ 세상 고뇌를 다 짊어진 아이들 내면의 소리가 어느새 심장에 박혔습니다. 마음의 문을 수없이 두드리며 아이들의 불량한 눈빛과 거친 행동을 조금씩 바꾸어 가고 있습니다. 절대 대학에 가지 않겠다는 아이들에게 자기 적성을 찾아 대학 진학의 꿈을 꾸게 하고 있습니다.

 컴퓨터 앞을 떠나 파란 하늘이 기다리는 자연으로 갈 준비를 마치고 우린 드디어 대구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탑승 수속을 하고 비행기에 올랐지요. 수업 시간에 자주 졸던 아이들이 눈을 빛내며 비행기 창을 통해 바라본 풍경에 빠져듭니다. 새로운 산과 강, 나무, 하늘을 만나 아픈 마음을 치유하고 잃었던 꿈을 찾고 나를 들여다보는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귤과 당유자가 익어가는 제주는 가을로 가득합니다. 토속 음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아쿠아플라넷으로 향합니다. 개성이 강한 아이들이 낯선 곳에서 일탈이 염려스러워 선생님들은 바짝 긴장하여 촉수를 세우고 행동을 살핍니다.

 작은 바다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아름다운 아쿠아플라넷에서 바다 생물의 신비를 보았습니다. 바다사자와 한참 눈을 맞추며 바라보던 윤이 얼굴이 환합니다. 제주 해녀의 물질 시연을 보면서 아이들은 모처럼 진지합니다. 물 밖의 삶과 물속의 생을 오가며 기계장치 없이 오로지 맨몸으로 물숨을 참아가며 바닷속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해녀의 삶을 아이들은 어떻게 이해할까요.

 여행은 목적지가 다르지만, 되돌아오는 곳은 같다고 했습니다. 방황하던 아이들이 이번 여행에서 따스한 세상을 담아올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슬아슬 줄타기하며 고군분투하는 지금, 이 순간도 지나면 아름다운 추억이 되지 않을까요. 강을 건너고 비를 피하는 법을 아이들 스스로 배우게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우린 방을 정했습니다. 남학생과 여학생 따로 조를 짜서 편한 친구랑 같은 방을 쓰기로 했지요. 잠자기 전에 넓은 방에 모여 장기자랑도 하고 맛있는 것도 나눠 먹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가을밤이 깊어졌습니다.

 10시에 취침하기로 약속했는데 무언의 눈짓을 주고받던 악동들은 평소에 하지 않던 애교까지 부리며 조금 더 시간을 달라고 생떼를 썼습니다. 모질게 거절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1시간만 더 주는 대신 조건을 달았습니다. 음주는 절대 안 되고 밖에 나가는 건 더욱 안 된다고 했습니다.

 전 교장 선생님이 들려준 일화가 생각났습니다. 예전에 수학여행 왔을 때 여학생이 몰래 나가 술 먹고 오토바이를 타고 차와 충돌했답니다.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는 아찔한 말이 떠올라서 초긴장 상태로 아이들을 지켜봤습니다. 남학생과 여학생이 허물없이 지내며 늦은 밤까지 같이 있는 것도 염려되었지요.

 궁리 끝에 새로운 교육법을 만들기로 작정했습니다. 여행 오기 전날 아이들 안전이 걱정되어 새벽에 써 놓았던 주의 사항을 공문으로 급조했습니다. 교육청 주무관님 이름을 살짝 빌어 선생님과 아이들이 있는 단체 채팅방에 올렸습니다.

‘... 이러한 사유로 수학여행에서 잠을 잘 때 여학생은 반드시 여선생님과 함께 방을 쓸 것, 이를 어겼을 경우 초·중등교육법 0조에 의해 퇴학 조치한다.’ 공문을 보내고 잠시 후 예상대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윤이가 뾰로통한 얼굴로 입을 삐죽이며 소심한 항의를 했습니다.

 “교장 선생님, 수학여행 와서 선생님과 함께 잔다는 말은 처음 들어봐요.”

반응을 예상했던 저는 세상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 다정하게 말했습니다.

 “그래 수학여행 끝나면 우리 손잡고 교육청에 가서 따지자. 그런데 난 윤이랑 잔다고 생각하니 너무 좋은데 어쩌지?”

윤이는 새침하게 눈을 흘기며 피식 웃었습니다. 달빛이 하얗게 쏟아지는 가을밤 윤이와 나란히 누웠습니다. 은은하게 비치는 달빛 탓인지 윤이는 나직하게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엄마는 재혼해서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고 아버지는 폭력을 일삼아 마음 둘 곳이 없어 나쁜 친구들과 어울렸다고 합니다. 중학교 때부터 사건 사고를 일으켜 본교에서 골치 아픈 아이로 낙인찍혀 학교 가기가 싫었다고 했습니다. 심리적 불안감은 무기력으로 이어져 오랫동안 우울증 약을 먹고 있다고 조곤조곤 털어놓았습니다.

 “괜찮아. 다 괜찮아. 내가 옆에 있어 줄게.”

가만히 윤이 등을 어루만졌습니다. 윤이의 지친 영혼을 기댈 수 있는 비밀스러운 안전기지가 되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왜소한 윤이 몸이 파르르 떨리고 어깨가 들썩입니다. 아픔을 숨기려고 악을 쓰던 윤이 모습이 떠올라 명치끝이 저릿합니다. 상처가 아니어도 아픈 밤입니다. 소리도 없이 울어야 하는 그런 밤입니다.
 
 씩씩하게 그리고 두려움 없이 어둠 속에서 맞잡은 손이 있다는 걸 윤이가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젖은 슬픔을 바짝 말리고 여행에서 돌아올 때 윤이와 나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공유하고 행복하게 웃었습니다.

↑↑ 우명식
한국수필학회 작가
현대 수필 작가회
나섬학교 교장
문해교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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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섬학교는 2년 전까지 안동에서 그다지 이미지가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학교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모여 수업시간에도 엎드려 자거나 제멋대로 행동해도 통제가 안되는 광경이 늘상 벌어지던 곳이랍니다. 그렇지만 우명식 교장선생님이 부임한 지난 3년 동안 조금씩 바뀌었답니다. 조금씩 조금씩 나섬학교 학생들은 자신이 존중받는 존재라는 걸, 상처를 위로해 줄 사람이 있다는 걸, 자신은 빛나는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되었던 거지요. 이렇게 변화하기까지 교육자의 교육에 대한 방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됩니다. 이 글은 2024년 한 라디오 프로에 나섬학교를 알리기 위해 보낼 글로 방송을 타면서 나섬학교가 알려지게 되었다고 하네요. 나섬학교 학생들은 조금씩 자신의 상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조금씩 치유되어 갑니다. 지금은 나섬학교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예비학생도 꽤 늘었다고 하네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픈 아이들을 어루만져주고 계시는 우명식 교장선생님께 응원과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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