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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대지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조진향 기자 / joy8246@naver.com입력 : 2025년 0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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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대지, 앙투안 드 생택쥐페리 지음, 김윤진 옮김, 시공사, 2016.

'이처럼 메르모즈는 사막과 산, 밤, 그리고 바다를 개척했다. 그는 사막에, 산에, 야간에 그리고 바다에 한 번 이상 추락했었다. 하지만 다시 살아 돌아왔을 때, 그것은 언제나 다시 떠나기 위해서였다.'

 어느 날 비행을 같이하던 동료 메르모즈는 추락했고 그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주인공은 우편물이 잔뜩 실린 항공기를 이륙시켜 자신의 항로를 나섭니다. 미개척 항로를 불완전하게 오가는 그들은 언제 어디서든 추락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위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데스 산맥의 어느 작고 눈에 띄지도 않는 오두막에서 흘러나오는 그 불빛 하나. 그 불빛 하나를 의지해 자신의 항로를 이탈하지 않고 계속 비행한다는 것입니다. 거대하고 눈에 띄는 건물이 아니라 정말 눈에 띄지도 않는 작은 샘 하나, 실개천 하나가 안개 속에서 삶의 방향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리고 비행기의 추락은 곧 죽음과 연결되기도 합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고자 하는 그의 마음을 땅에만 붙잡아 두지는 못했습니다. 사막과 산 그리고 바다 위를 날았고 그동안 그 장소에서 한 번 이상 추락했고 죽을 고비도 숱하게 넘겼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떠나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열정은 무엇일까요?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그 용기는 어디서 온 것일까요? 그가 다시 돌아오는 이유가 언제든 다시 떠나기 위해서였다니. 삶도 결국 그런 것 아닐까요? 우물쭈물 시도해 보지도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은, 아무 것도 배울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용기는 두려움 속에서도 뚜벅뚜벅 발걸음을 떼어놓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는 보여주었습니다. 삶의 숨은 비밀을, 목숨을 걸고 알아내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목숨을 걸 만큼 가치있는 것이고 목숨을 걸어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는 비밀이지요. 삶은 그냥 호락호락 그 비밀을 내어주지 않는다는 걸 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겁니다. 지금 아무런 시도조차 하지 않는 나는 무엇이 두려운 것일까요? 다들 자신의 재능을 쌓아가기 위해 피땀을 흘리고 있는데 나는 왜 제자리에만 머물러 있는 것일까요? 왜 뒷걸음치는 걸까요? 목숨을 걸어야 알 수 있는 삶의 비밀은 나에겐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끊임없이 이야기하는데도 한 발짝조차 떼어낼 용기가 없습니다. 이젠 지금까지 부여잡고 있던 것을 놓아야 할 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익숙하게 알아왔던 것들, 습관처럼 해왔던 일들에서 벗어나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그 어느 것도 잃어버린 동료를 대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랜 친구들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함께한 그토록 많은 추억들, 함께 겪은 수많은 고된 시간들, 그토록 잦았던 다툼과 화해, 마음의 움직임, 그런 보물만큼 값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 우정은 다시 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떡갈나무를 심어놓고 곧바로 그 그늘 아래 몸을 피할 수 있기를 바라는 건 헛된 일이다.
삶이라는 게 그렇다. 처음 우리는 풍요로웠고 여러 해 동안 나무를 심었지만, 시간이 그 작업을 해체하고 나무를 베어내는 그런 시기가 온다. 동료들은 하나씩 우리에게서 자신의 그늘을 걷어낸다. 그리고 우리의 슬픔에는 늙어간다는 말 못할 회한이 서린다.'

메르모즈라는 동료를 잃었을 때 그를 대신할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저 또한 오랜 친구들과 함께한 그 많은 추억들, 함께했던 시간들이 있었기에 그만큼 값진 관계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삶은 모든 것을 휩쓸어가고 빛을 바래게 합니다. 시간은 모든 관계를 해체하고 제 손으로 심은 나무를 베어내는 시기가 오고 그들의 그늘을 거둬가는 시기가 옵니다. 그러기에 슬프고 아쉽고 그리워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자리에서 한 발짝 걸음을 떼어놓는 것, 부지런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비록 지금 당장 삶이 끝나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삶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인간의 증오, 우정, 기쁨의 거대한 극이 그 얼마나 빈약한 무대 장치 속에서 이루어지는지! 아직도 미지근한 용암 위에 위태롭게 서 있고, 앞으로 닥쳐 올 모래와 눈에 벌써부터 위협을 받으면서도 인간들은 대체 어디서 영원에 대한 취향을 끌어오는 것일까? 인간들의 문명이란 허술한 도금에 지나는 않는다. 화산이 터지거나 새로 바다가 만들어지거나 모래바람만 불어도 지워지고 말 것이다.
이 도시는 보스 지방(프랑스 북서부 지방으로, 전통적인 대곡창지 중 하나)의 땅처럼 깊숙한 곳까지 풍요롭다고 생각되는 진정한 토양 위에 자리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래서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생명이란 하나의 사치이며 인간의 발 아래 진정 깊숙한 땅은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잊는다.'

 저도 제가 딛고 선 이 땅이 흔들릴 것이라는 것을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바램이라는 것을 압니다. 천 년이나 만 년 뒤에도 이 땅이 이 자리에 가만히 있으리라는 생각이 어리석다는 것을 압니다. 내일 당장, 아니 지금 당장도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습니다. 하루살이 임에도 십 년을 꿈꾸고 백 년을 꿈꿉니다. 영원히 살 것처럼, 죽음이 피해갈 것처럼 여깁니다. 그리고 이 땅도 영원할 것처럼 여깁니다. 내가 아는 그 사람이 영원히 곁에 머물 것처럼 여깁니다. 몇 천년 전 남겨진 문명도 너무나 쉽게 지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한낱 먼지조차 되지 못하는 인간의 삶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집착하는 걸까요? 딱딱하게 굳은 땅 위에 서 있다고 여기지만 불과 몇 킬로미터만 들어가면 펄펄 끓는 용암이 있는, 그 위를 떠다니는 판 위에서 어쩜 이리도 당당한 것일까요? 흔들리지 않는 순간을 잠시 허락하신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그 이외는 욕심이고 신기루일 뿐인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주어진 이 짧은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소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는 것, 그것이 이 짧은 순간을 허락하신 분의 뜻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1900.6.29.-1944.7.31.)
1900년 6월 29일 프랑스 리옹에서 부유한 옛 귀족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4살 때 아버지가 뇌출혈로 갑작스레 돌아가셔서 남부에 있는 친척집으로 옮겨가 예수회 학교에 들어갔으나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어머니의 영향 아래 문학적 소양을 키웠다. 1921년 입대, 다음 해 조종사 면허를 따고 직업군인이 되려고 했지만 약혼녀였던 여류작가 루이즈 드 빌모랭과 양쪽 집안의 반대로 파리에 사무직 일자리를 얻었다. 약혼이 파혼되자 1926년부터 라테코에르 항공사에서 다시 비행했고 툴루즈에서 아프리카 디카르까지 우편물을 수송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 시기에 틈틈이 첫 장편소설 <남방우편기>(1929)를 집필했다. 1929년에는 파타고니아 노선 개발책임자로 임명되어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자리를 옮겼고, <어린왕자> 속 장미의 모델이 된 콘수엘로 순신과 만난다. 항공로 개척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30년 레종도뇌르 훈장을 수상했고, 1931년 생사를 넘나드는 노선 비행사들의 개척 활동을 담은 두 번째 장편 <야간비행>을 발표했다. 이 작품으로 페미나상을 수상하며 본격 작가의 길에 들어선 생텍쥐페리는 이후 비행과 집필 활동을 병행하며 1939년 자전적 소설 <인간의 대지>를 발표, 그 해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대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미국에서 <바람과 모래와 별들>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이 작품은 작가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안겨주었다. 진정한 행동주의 작가였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전투기 조종사로 종군했고, 미국의 참전을 독려하는 글을 발표해 큰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미국 망명 시절에도 집필 활동을 멈추지 않고 <전투기 조종사>(1942), <어린왕자>(1943), <어느 인질에게 보내는 편지>(1944) 등 작품을 발표했으며, 다시 유럽으로 돌아간 후 프랑스군 소속 정찰기를 맡아 비행을 계속했다. 1944년 7월 31일, 계속된 부상에도 불구하고 독일군 정보 수집을 위해 다시 출격했으나 귀환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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