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최종편집 : 2026-04-03 21:34:48 회원가입기사쓰기
뉴스 > 시.수필.소설

수필] 산불이 비켜간 용계리 은행나무와의 만남 그리고 인연


조진향 기자 / joy8246@naver.com입력 : 2025년 05월 18일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밴드밴드 카카오스토리카카오스토리 네이버블로그블로그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에 있는 수령 700년이 넘은 은행나무를 만나러 가는 길. 주변의 산들은 여름에 접어드는데도 겨울잠에서 미처 깨어나지 못해 여름옷을 갈아입지 못하고 우중충한 갈색과 검은 색 옷을 입고 있다.


안동은 2년 만이다. 해마다 안동에 들르곤 했는데 지난 해에는 어쩌다보니 해를 넘겼고, 올해는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지 않으면 또 지나가버릴 거라는 우려 때문에 시간을 내서 귀한 인연을 만나러 안동에 왔다.
 
이러한 연인이 시작된 건 2007년부터니까 햇수로 18년 째다. 방송대 국문과 동기인 우리는, 그녀가 안동에서 대구에 있는 방송대 대구경북지역대학까지 공부하러 왔고, 같은 교실에서 출석수업을 듣고 기말시험을 치르면서 스며들듯 알게 되었다. 그녀는 이미 수필로 등단한 작가였고, 나는 글이 뭔지도 모르면서 막연히 소설이 좋아 국문학과에 입학해 뒤늦은 공부맛에 빠져 있던 때였다. 

4년여 시간이 지나 방송대를 졸업하면서 대부분의 국문과 동기들과는 소식이 끊겼다. 우리는 둘 다 활발하거나 사교적이지 않고 조용하고 글을 좋아하고 원칙과 질서를 따르면서 사색을 즐긴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졸업한 후 우리는 해마다 만났다. 주로 그녀가 있는 안동으로 찾아갔다. 내가 사는 칠곡군 왜관에서 안동까지는 차로 1시간 15분의 거리였고, 갈 때마다 안동에서 가보고 싶은 곳을 정해서 찾아다녔다.

그녀와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안동 제비원 부처님을 뵈러 갔던 것 같다. 너력바위 위에 부처님 머리가 오똑 올라가 있는, 너무나 잘 생기고 키가 큰 부처님이었다. 


두 번째 만나 찾아간 곳이 봉정사였다. 봉정사 극락전에 앉아서 그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가. 다행히 이번 산불이 봉정사는 피해갔다. 의성 고운사에 있던 스님들이 고운사 경내에 있던 유물들을 봉정사로 옮겼고 산불을 피하기 위해 봉정사에 머물렀다는 이야기를 그녀로부터 전해 들었다. 고운사의 전소는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녀와 함께 고운사에 다녀온 적도 있었다.  

↑↑ 사진 우명식

그동안 봉정사에는 한두 차례 더 들른 적이 있다. 아마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후 공사중이었던 때로 기억하는데 템플스테이를 하기 위해 건물을 짓고 있었고 영산암을 수리한다고 출입을 통제하던 때였다. 다시 찾은 봉정사는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세월의 흔적이 지워질까봐 우려했는데 최소한으로 손을 봤는지 처음 들렀던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고 그래서 편했다.


평일이었는데 몇 몇 외국인들도 눈에 띄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문화해설사의 해설을 들으며 경내를 둘러보았다. 대웅전에서는 스님의 목탁과 염불소리가 고요히 퍼져 나왔고, 절마당에는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색색의 연등이 걸려 있었다. 


만세루에 오르니 두 사람들이 외국인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단박 고양이를 알아보았다. 내 눈엔 띄지도 않았는데 그녀는 고양이에게 다다가 준비해 온 사료를 꺼내 주었다. 고양이는 몸통과 특히 다리 쪽에 털이 뭉텅 빠져 있고 배가 홀쭉하니 말라 있었다. 고양이는 맛있게 사료를 받아 먹었다. 물을 주려고 찾았으나 없어서 다시 차에 있던 물을 컵에 부어다 가져다 주었으나 마시려 하지 않았다. 고양이가 물을 잘 먹지 않으면 무슨 병에 걸릴 수 있다면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자비로워 보였다. 측은지심. 보살의 모습이었다. 


대웅전 우측, 산쪽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을 오르면 영산암이 있다. 우화루를 통해 영산암으로 들어갔다. 봉정사의 암자인 영산암은 세월의 흐름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응진전과 송암당, 관심당의 처마의 색이 바랬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고, 보는 이의 마음을 편하게 했다. 세월 속에 한 때 잠시 머무는 인연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암자를 내려와 대웅전 왼쪽에 있는 극락전에 들어가 부처님께 삼배를 올렸다.   


묵계서원에 들렀다가 만휴정으로 갔다. 만휴정으로 가는 동안 길 가의 집터와 공장 건물, 비닐하우스, 농가의 창고, 농기구들이 불탔다. 지붕이 내려앉거나 통째로 휘어진 채 서 있는 것도 있었다. 몇 몇 집터에는 잔해를 끌어 모은 곳도 보였다.

↑↑ 사진 우명식


그런데 신기한 것은 산 바로 아래에 있는 몇 몇 집들은 화마를 피했다. 바로 코 앞까지 화마가 뻗쳤을텐데 어떻게 그 집들은 피할 수 있었을까? 

↑↑ 사진 우명식

눈을 들어 멀리 산등성이를 살펴봤다. 이쪽 산 등성이에서 저쪽 등성이까지 불꽃이 날아 건너산들은 타고난 후 시키멓게 그을렸다. 만휴정은 산불 피해 복구가 끝날 때까지 출입이 통제되어 아쉽지만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용계리에 있는 은행나무를 보러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렸다. 용계리로 가는 동안에도 산불로 주변 산들이 시커멓게 불탄 채 있었다. 정말 다행인 것은 용계리 은행나무는 산불의 피해를 입지 않고 푸른 입들을 싱싱하게 피워올리고 있었다.


수령 700년이 넘은 이 나무는 용계초등학교 운동장에 있던 나무였는데 임하댐이 건설될 때 수몰될 뻔 했다가 그 자리에 15m 높이의 인공섬을 만들어 그대로 들어올려 옮겨 심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가지가 부러져 원래의 위용은 사라졌다고. 그러나 여전히 건재하고 웅장했다. 은행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아래 쪽에 철재로 된 구조물들이 나무를 떠받치고 있다. 


이 은행나무는 수많은 세월을 지나오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을까? 세상사를 달관한 듯한 그 모습 앞에 숙연해진다. 은행나무 뒤로 보이는 산도 불에 타 갈색빛으로 변했다. 이 인공섬의 주위에 있는 산들이 산불에 그을러 갈색빛인데 이 은행나무는 푸릇하다. 


소나무나 침엽수는 불기운이나 연기를 마시면 고사한단다. 그런데 활엽수는 살아난단다. 700여 년을 이어오면서 수많은 위기와 불운을 만나기도 했을 은행나무.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나무들과 자연과 벗하며 살고 있는 신선을 만난 느낌이다. 

비록 산불 피해를 입었지만 새살이 돋아나듯, 안동도 더욱 새롭게 변화하리라 기대해 본다. 그리고 그녀와의 인연도 오랜 세월 이어지기를 기도한다. 어떤 전생의 인연이 있었기에 이 생에서 만나 흉허물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마음을 터놓을 수있는 인연이 되었을까? 용계리 은행나무가 푸른 잎을 해마다 피워내듯 그녀와의 우정도 해마다 새로워지기를. 700여 년을 살아낸 은행나무와 자연의 섭리 앞에 더없이 작고 보잘 것 없는 인간임을, 그렇기에 이 순간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포토뉴스
오피니언/기획
문화의 창
조진향 기자 | 03/11 23:37
예천의 토성 예천임씨(1)/조윤
조진향 기자 | 03/01 16:27
방언 어휘의 어원 연구(8) 함박눈, 고드름의 어원 / 신승원
조진향 기자 | 02/24 12:23
경북향토사연구회, 향토경북 제23집 출판기념회 및 정기총회
조진향 기자 | 02/22 16:00
꽃빛고을 일월면 주곡2리 감복동 이야기(1)/박원양
조진향 기자 | 02/16 09:13
제호: 뉴스별곡 / 주소: (우)39889, 경북 칠곡군 왜관읍 회동1길 39-11(왜관리) / 대표전화: 010-8288-1587 / 발행년월일: 2019년11월11일
등록번호: 경북 아00555 / 등록일: 2019년 10일 15일 / 발행인·편집인 : 조진향 / 청소년보호책임자: 조진향 / mail: joy8246@naver.com
뉴스별곡 모든 콘텐츠(기사, 사진, 영상)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뉴스별곡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합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