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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곽호철, 행복한꿈1, 캔버스에 유화, 2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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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우명식
부부가 인연을 맺으면 약지인 넷째 손가락에 반지를 나누어 끼는데요. 하필이면 많은 손가락 중에 넷째 손가락에 반지를 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섯 손가락을 따로따로 펼 때 다른 손가락은 잘 펼 수 있지만, 넷째 손가락은 단독으로 펴기 힘들답니다. 약지에는 다른 손가락이 가지고 있는 폄근이 없기 때문입니다. 약지는 다른 손가락의 폄근을 공유해서 움직인다고 합니다. 부부의 인연도 그런 거 같습니다. 부족한 두 사람이 만나 서로의 폄근이 되어 시련이 닥치면 도와주고 의지하라는 의미 아닐까요.
저도 삼십 년 전 오월 초이레 날, 넷째 손가락에 약혼반지를 끼고 정인이 있다는 걸 만천하에 알렸지요. 약혼식만 떠올리면, 반지에 얽힌 사연이 섬광처럼 스쳐 제 얼굴은 금방 노을빛으로 물이 듭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형부의 소개로 선이란 걸 처음 보았어요. 웃는 모습이 착해 보이던 남자, 그 남자가 육 남매의 장남인 남편이었죠. 남편 말을 빌리자면 저는 호박 따다 들킨 아이처럼 큰 눈만 껌벅이며 순진해 보였다지요. 세 번 만나고 착해 보인다는 이유 하나로 약혼 날짜를 잡았습니다.
약혼식은 저의 친정에서 했지요. 오빠의 사회로 식이 진행되고 드디어 반지를 서로에게 끼워주는 순간이 되었어요. 남편이 왼손을 주었는데 왜 뿌리치고 굳이 오른손가락에 반지를 끼웠는지 지금 생각해도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반지가 잘 안 들어가서 젖 먹던 힘까지 내어 억지로 밀어 넣었지요. 순간 사람 좋아 보이던 남편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개의치 않고 안간힘을 써서 임무를 완수했어요.
사람들은 대개 왼손보다 오른손 마디가 더 굵다는 걸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그 사이 손가락만 키웠나, 시간이 얼마나 흘렀다고 굵어졌을까.’ 구시렁대며 새침하게 눈까지 흘겨보았지요. 오른손가락에 반지를 끼고 난 후 남편 얼굴은 서서히 흙빛으로 변해갔어요. 약혼식이 끝나고 큰언니가 나를 살짝 불러서 갈 때까지도 상황 판단을 전혀 못 했지요. 언니는 갈퀴눈으로 나를 째려봤어요.
“너는 무슨 억하심정으로 오른손에 반지를 끼우니? 억지로 밀어 넣어 손이 퉁퉁 부었더라. 저 노릇을 어쩌면 좋아.”
부엌에는 야단법석이 났습니다. 남편은 안절부절못하고 벌건 얼굴을 한 채 손을 내밀고 서 있더군요. 작은언니는 콜드크림을 바르고 그것도 안 되니까 비누칠을 해가면서 남편 손에서 반지를 빼려고 용을 쓰고 있었지요.
큰언니와 작은언니는 동생을 위해 완전 범죄를 계획한 것 같았어요. 해끗하게 째려보던 눈의 독기를 애써 감추고 사람 좋은 웃음을 실실 흘리며 말했습니다.
“제부 씨, 손이 너무 복스러워 잘 살겠어요.” “복은 손에 있다던데 그새 손이 더 통통해져서 얼마나 보기 좋은지 모르겠어요.”
동생 허물을 덮으려는 두 언니 거짓말이 부엌 가득 봄바람처럼 살랑대는데 죄 없는 남편은 우리 눈치를 보면서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지요.
“반지 맞출 때는 잘 들어갔는데 왜 작아졌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상황에 왜 웃음이 나오던지요. 당황하는 언니들을 뒤로한 채 혼자 실없이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한참 웃다가 생각하니 갑자기 슬퍼지더군요.
남편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육 남매의 맏아들로 부모님을 대신해 가장 역할까지 홀로 감내하고 반지라는 사치는 처음 누려 본 사람이었습니다. 반지가 튕겨 나간 자리는 퉁퉁 부어올라 있었지요. 남편 손을 보며 ‘저 사람의 힘이 되어 주리라.’ 다짐했습니다.
그날 이후 반지는 남편 손에서 벗어나 지금까지 고스란히 서랍 속에 있습니다. 내 생에 뜨거운 봄날은 가고, 시린 겨울만 남았다고 느껴질 때 슬며시 반지를 꺼내어 그대 손에 또 내 손에 끼워주고 싶습니다. 세월의 깊이만큼 빛은 바랬지만, 반지에 담긴 뜻은 세상 끝나는 날까지 변치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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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명식 한국수필학회 작가 현대 수필 작가회 나섬학교 교장 문해교육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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