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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토성 예천임씨(1)/조윤


조진향 기자 / joy8246@naver.com입력 : 2026년 03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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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춘 저 서하집(사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예천의 토성 예천임씨(1)

조윤
경북향토사연구회 회원(예천)


예천 임씨(醴泉林氏)는 고려 시대 문벌귀족 30대 성씨에 포함이 되는 대성이자 예천군의 토성이다. 고려 개국 이후 상경 종사하여 귀족과 관료가 되었지만 가세의 쇠하여 사라짐과 성하여 성장함[消長]이 여러 번이고 성씨의 분화를 계속하였다. 

한창 성할 시기에는 중앙에 3품 이상 관료를 여러 명 배출했는데, 평장사 임간(林幹)·평장사 임민비(林民庇, ?∼1193)·문정공 임광비(林光庇)가 그들이고 임유정·임춘·임자번 등 유명인물이 다수다. 예천임씨 오효자가 특히 유명해서 충효겸전의 집안이다. 이들은 고려시대 보주 임씨로 본관을 썼다. 보주는 예천군의 고려시대 옛 이름이다.

성하였던 예천임씨가 소멸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 계기는 고려 의종 24년(1170) 정중부, 이의방, 이고 등이 경인년의 무신의 난을 일으켰을 때 된서리를 맞았다. 당시 무신들이 “문인들은 다 죽이되 서하당 임춘은 박대하지 말고 목숨을 살리자”고 하여 목숨을 부지했다. 

1170년 8월 30일 서하는 난을 피해 예천으로 은거하였다. 무신란 이후 서하를 시조로 하여 본관을 예천으로 하였다. 서하 임춘을 전후하여 예천임씨는 여러 갈래로 나뉘어 분파를 형성했다. 예천임씨가 족보를 통해 성씨를 확립한 것은 <예천임씨 을해보(1875)>가 아닌가 한다. 그 족보 서문을 쓴 이는 당시 예천군수 이만수(李晩綬, 1873∼1875)이다. 서문에 이르기를,

 “예천에 고려 토성 임씨(林氏)가 특히 유명하여 임춘의 종조부인 장평공(章平公) 임간(林幹)과 문정공(文貞公) 임종비(林宗庇)는 영상(領相: 영의정)으로 뛰어난 인물이고 좨주공 임유정(林惟正)의 백가문집[林祭酒百家衣詩集], 서하공 임춘(林椿)의 백세문장이 모두 유림의 꽃이고 학문을 빛냈을 뿐 아니라 그 뒤의 걸출한 벼슬아치와 충효절의로 칭송받은 이들이 계속되었으니 오래된 명문화족이다.”
라고 하였다.

서하가 예천에 살았다고 하나 흔적이나 유물 또는 유적, 문헌상으로 뚜렷하지 않다. 당시 무신난을 피해서 은거하던 곳이 상주 개령으로 현재는 김천시 개령면이다. 임춘의 윗대인 임간, 임중간, 임종비, 임민비, 임광비 등 보주임씨(또는 양양 임씨)의 예천지역 활동상황은 잘 알려진 바가 희소하다. 이분들의 아랫대인 임춘이 예천 임씨 시조로 되어 있다.

1875년 이만수 예천군수가 을해보 서문에서 밝혔듯이 예천의 토성 임씨는 고려시대 화려한 명문이었다. 지난 시대 명가의 기준을 따지는 우선 기준은 벼슬에 있다. 천석꾼이라고 명문이라 하지 않는다. 그러나 보주 임씨는 무신란을 전후해서 가계기록이 조선시대로 유전되지 못하였다. 따라서 무신난 이전은 보주(양양)을 본관으로 하였고 이후에는 임춘을 시조로 예천임씨라 하였다.

또 고려시대 예천의 화족은 충숙왕 때의 권신으로 유천 덕달의 권한공(權漢功)을 친다. 그는 우정승에 올랐고, 율현의 임분(林賁)은 장흥인으로 평장사를 지냈다. 장흥임씨도 고려전기 30대 성씨에 속하는데 3품 이상 관료 7명을 배출했다. 지공거(시관) 배출은 예천임씨 1인, 장흥임씨 2인이다.


Ⅰ. 예천 출신 정승

조선조 들어 일인지하 만인지상에 오른 예천인 정승으로 권한공(權漢功)의 서자 권중화(權仲和, 1322~1408)가 있다. 권중화는 묵묵히 일하는 신하로 태종의 눈에 띄어 영의정에 발탁되었다. 그는 의료와 의약 그리고 글씨에 조예가 깊었다. 형 권중달은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로 화원군(花原君)에 봉군된 인물이다. 3부자가 현달한 명문이다. 

풍양 삼수정 정광필(鄭光弼)은 중종조에 영의정을 지냈고 본관이 동래다. 이들 풍양 동래정씨는 여러 대에 걸쳐 12명의 정승을 배출하였다. 회동정씨로 회자된다. 충무공을 살린 정승으로 이름난 약포 정탁(鄭琢)은 본관이 청주인데 흙수저로 태어나 정승의 반열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조선조에 정승을 지낸 이는 권중화, 정광필, 정탁 등 세 사람이다. 영남에서 상주에 3인(노수신, 정경세, 류후조), 안동에 1인(류성룡)이니 예천은 인물의 고을이 맞는다.

서하 임춘은 어려서부터 영특하여 6∼7세에 글을 깨우쳤다. 백부 임종비(林宗庇) 문하에 학문을 배워 청년기부터 문학적 명성을 날렸다. 가문의 힘을 빌려 벼슬길에 오를 수 있었으나 학문으로 입신하겠다는 기개가 있었다. 문장이 오묘한 경지에 이르러 성리종회(性理宗會), 삼재상수(三才象數) 등 여러 권의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또 유불선(儒佛仙) 3교에도 능하여 수 백 편의 시와 소설을 지었는데 그중에 국순전(麴醇傳)과 공방전(孔方傳)은 우리나라 최초의 가전체 소설로 <동문선>에 실려 있다. 그의 시문은 <삼한귀감>에도 있다.

↑↑ 동문선(사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Ⅱ. 고려의 대문호 서하 임춘

서하가 20세를 전후한 시기인 1170년 정중부의 난에 무신정변이 일어났고 온 집안이 화를 당해 몸만 겨우 피해 강남땅에 은거하였다. 여기서 강남은 김천시 개령면이다. 예천임씨 일부 주장은 난을 피해 예천의 지과리(知過里: 현 보문면 옥천리 지과실)에 은거하며 희문당(喜聞堂)을 짓고 도학 강론으로 후학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는 과거에 급제해 입신양명하여 가문을 빛내고자 하였으나 등과에 여러 번 낙방하고 얼마 후 경기 장단으로 내려가 고뇌와 고충 속에서 32세로 요절하였다. 

당대의 문인 미수 이인로는 서하의 비문에서, “이름은 태산이나 화산과 같이 불멸할 것이오, 재주는 북두칠성과 서로 다툰다”라고 하였다. 증 봉익대부 삼사사상장군에 추승되고 시호는 절의節義이다. 후일 사람들은 고래로 벼슬하지 않는 사람 중에 그 이름이 서하 만큼 난 사람도 드물다. 사후 이인로가 유편을 수습하여 6권으로 서하집을 편집하고 서문도 썼다.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상산지초(商山誌抄)』 「서하선생유고 부신유기(西河先生遺稿 附辛酉記)」는 관인이 찍힌 필사본으로, 서하 임춘의 작품 등이 실려 있다. 크기는 16.8×24.7cm이고 실린 글 제목은 다음과 같다.

 〇 양현전심록서(兩賢傳心錄序)
앞표지 내면에 쓴 것으로 본문과는 거리가 있는 내용이다. 본문 작성 후 누군가가 써 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〇 임춘(林椿)
호가 서하이고 일찍이 본주(상주)에 寓居했다. 문집이 있어 세상에 전해진다. 보건대 서하집에 있는 시가 학림 박선생이 지은 시임을 아직 알지 못했었다. 공의 본관은 학림이다.

〇 기상주정서기(寄尙州鄭書記), 상주 정서기에게
九重親奉紫泥封暫屈長才佐小邦堂上高懸絳紗帳幕中偏擁碧油幢
去珠感德初還浦猛虎知仁已渡江自喜龍門參下客巨鍾時許寸筳撞

『서하집』의 저자 임춘은 생몰이 자세하지 않으나 고려 의종 대에 태어나 30세 무렵에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사』 이인로 열전에 임춘에 관한 기록이 짧게 덧붙여져 있다. 그의 자(字)는 기지(耆之)이며 서하(西河)는 호이다. 글재주가 천하에 떨쳤으나 정작 과거 시험에는 낙방하였고 어렵게 살다가 일찍 죽었다. 무신정변 당시에 집안이 화를 크게 입었고, 그는 겨우 몸을 피해 살아남았다고 하였다.

다음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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