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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金泉 芳草亭에 대한 考察(1)/이갑희


조진향 기자 / joy8246@naver.com입력 : 2025년 04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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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초정 전경

경북 지역의 향토사료에 대해 발굴.조사한 자료를 널리 알리고 많은 분들이 자료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경북향토사연구회에서 해마다 출간하는 '향토경북'에 게재한 원고를 본지에 공유하오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 글은 향토경북 21집(2023년 간행)에 게재된 원고이며 이 글의 저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활용이나 공유할 경우, 사전에 허락을 얻어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인용할 경우, 출처와 저자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편집자주]


金泉 芳草亭에 대한 考察


이갑희
경북향토사연구회 회원(김천)


Ⅰ. 들어가면서

 김천(金泉)은 영남의 서북내륙지역에 해당되어 소백산맥(小白山脈)의 여러 지맥에 둘러싸여 있다. 소백산백의 지맥 중 금릉평야(金陵平野)를 기준으로 서쪽의 황악산(黃岳山), 서남쪽의 대덕산(大德山)과 수도산(修道山), 남쪽의 백마산(白馬山) 등이 산재하여 있는 비교적 산림면적이 많은 도농복합형 도시이다. 

 본고에서 논하고자 하는 방초정은 김천시의 남쪽에 해당하는 구성면 지역이며 조선조에 지례현(知禮縣)에 속한 지역으로써 연안 이씨(延安李氏)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상원리(원터마을)에 위치하고 있는 루정(樓亭)으로 보물 제2047호(2019.12.30)로 지정되어 있으며 본 루정에는 이루지 못한 애틋한 부부의 사랑에 얽힌 사연과 그 주변의 여러 가지 문화재와 각종 현판 등에 대하여 고찰하여 보고자 한다.


Ⅱ. 방초정에 대한 현황


1. 방초정의 개요

 방초정의 위치는 김천시 구성면 상좌원길 41에 위치하고 있으며 면적은 4,594.2㎡(대지451,유지 1,140, 도로 3,000.2㎡) 정면 3칸 측면 2칸 중층 루정이며 겹처마 팔작지붕형태로 되어 있고 특이하게도 아래층에 온돌구조를 설치하고 2층에는 문을 달아, 걷어 올리면 마루가 되고, 내려 닫으면 방이 되는 구조로 되어 있어 영남지역 타 루정과는 대조적이고 특이한 형태이다.


2. 방초정의 건립 시기

 방초정(芳草亭)이 위치한 원터마을은 연안 이씨(延安李氏) 부사공파(副使公派)의 문중사람들이 대대로 모여 살고 있는 씨족마을로, 조상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마을이다. 

 방초정은 마을 초입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 루정을 건립하게 된 배경은 1625년(인조3) 방초(芳草) 이정복(李廷馥)이 선조와 절개를 지킨 부인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는데 방초(芳草)란 뜻은 '만물(萬物)과 봄을 같이 누리는 마음'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후 1689년 훼손된 것을 이정복의 손자인 이해(李垓)가 중건하고 이의조(李宜朝)가 1727년에 다시 중수(重修)하였으며 1736년 대홍수로 인하여 유실되었으나 1788년 수해로부터 안전한 현 위치로 이건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 방초정


3. 문헌에 등장하는 방초정

1) 품천사집(品川史集)

 『품천사집(品川史集)』은 김천 구성 출신의 최규동(崔奎東)이 구성면의 명례당(明禮堂)에서 간행한 향토지(鄕土誌)로, 방초정에 관련된 내용은 고가인(高可寅) 지례현감과 후손 이급(李圾)의 시(詩) 2편과 후손 이해(李垓)의 방초정중수기(芳草亭重修記), 이의조(李宜朝)의 방초정중수기(芳草亭重修記), 이수호(李遂浩)의 방초정중수상량문(芳草亭重修上樑文)이 수록되어 있다.

2) 교남지(嶠南誌)

 『교남지(嶠南誌)』는 1940년에 정원호(鄭源鎬)가 편찬한 김천 지역의 지리, 인물, 풍속 등을 포함한 각 군의 지지(地誌)를 한데 모아 편찬한 지리지다. 이 책의 정자편에 소개된 방초정은 군 북쪽 10리에 위치하며 부호군 이정복(李廷馥)이 세우고 이의조(李宜朝)가 중수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또한 이호민(李好閔), 조찬한(趙纘韓), 이수원(李遂元)의 시(詩) 각 1편씩이 기록되어 있다.

3) 지례현지도(知禮縣地圖)
 
 1872년에 제작된 조선시대 지례현지도(知禮縣地圖)에 방초정이 2층 누각형태로 표시되어 있다.

4) 연재집(淵齋集)

 『연재집(淵齋集)은 송병선(宋秉璿)의 문집으로 1907년에 간행되었는데 「행장」편에 37세에 황악산을 등정하고 하산하면서 방초정을 방문하고 판상운시를 지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5) 유행록(遊行錄)

 『유행록(遊行錄)』은 옥소(玉所) 권섭(權燮)이 수만리에 걸쳐 발품을 팔아 탐승(探勝)한 기행문이라 할 수 있는 기록이다. 이 책에 기록된 내용을 요약하면 “지례현의 상좌원촌을 지났는데 마을 앞의 시내는 얕고 기슭은 매끈하였으며 언덕의 무성한 풀숲에는 이오봉의 후손이 지은 작은 누각이 있었는데 처마에 걸린 조현주(趙玄洲)가 쓴 기문을 읽고서 방초정임을 알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4. 방초정을 건립한 이정복의 이력

 방초정을 건립한 이정복(李廷馥, 1575∼1637)은 연안 이씨 이종서(李宗緖,생몰연대미상)와 고성 남씨(固城南氏)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자는 덕노(德老), 호는 방초(芳草), 관직은 부호군(副護軍)이다. 정양공(靖襄公) 이숙기(李淑奇) 6세손이다. 18세에 성묘(省墓)차 한양에서 김천 구성으로 내려왔을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 구성의 능지산(陵旨山)으로 피난을 가게 되었는데 이때 선조(宣祖)임금께서 피난길에 나섰다는 소식을 듣고 호종을 하기 위하여 달려 가던 중 사방에 왜군이 널려 있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북쪽을 향하여 통곡하였다고 한다. 왜란이 끝나고 조정에서 그의 충의를 인정받아 십오공신회맹록(十五功臣會盟錄)에 등록되었으며 말년에 구성으로 낙향하여 방초정을 건립하고 석학들과 교유하면서 생을 마감한 인물이다.

5. 방초정에 전해져 오는 전설

 방초정과 관련한 애틋한 부부의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가 김천의 모든 향지에는 자세하게 기록되어 전해져 오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방초(芳草) 이정복(李廷馥)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인 1591년에 김천 하로마을의 화순 최씨(和順崔氏) 부인에게 장가들었다. 그러나 당시의 풍습은 1년을 친정에서 생활하다가 그 후 시집으로 오는 풍습이 있었는데 그 이듬해에 신랑인 방초 선생이 한양에서 성묘 차 구성으로 내려왔을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 구성 능지산으로 피난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한 부인 화순 최씨는 죽어도 시집에서 죽겠다며 남편이 있는 구성쪽으로 찾아 떠났는데 마침 왜적을 만나 능욕을 당할 찰나에 부녀자의 정절을 지키기 위하여 마을 앞 연못에 투신하였다. 그때 여종 석이(石伊)가 부인을 구하려고 못에 뛰어 들었으나 구하지 못하고 함께 목숨을 잃었다는 일화가 있으며 이에 방초 선생은 화순 최씨부인을 그리워하며 슬픔에 잠겨 있었다. 그 후 최씨부인의 정절을 잊지 않기 위하여 최씨부인이 투신한 못을 최씨담(崔氏潭)이라 명명하였다. 훗날 유림에서는 최씨부인의 정절을 기리기 위하여 조정에 상소하여 1632년 어필 정려문을 내렸다. 그리고 1975년 최씨담 준설공사 도중에 조그만 비(碑)가 발견되었는데 '충노석이지비(忠奴石伊之碑)'라 새겨진 비(碑)이며 약 400여 년의 세월 속에 최씨 담안에서 잠자다 마을 주민들에 의하여 주인인 화순최씨정려각 앞에 다시 세워지게 되었다.

↑↑ 연못


6. 방초정 주변의 문화유산

1) 화순최씨 정려각(和順崔氏旌閭閣)

 화순최씨 정려각은 방초정 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방초(芳草) 이정복(李廷馥)의 부인인 화순 최씨 정려각이다. 정식명칭은 '절부화순최씨정려각(節婦和順崔氏旌閭閣)'이다. 
 절부 화순 최씨는 화순인 최율(崔律)과 상산 김씨(商山金氏) 사이에서 태어나 1591년 방초공과 혼인하였으나 임진왜란이 일어나 신혼의 꿈도 피우기 전에 왜적에게 잡혀 능욕을 당할 처지에 놓이자 스스로 못에 투신하여 정절을 지킨 부인이다. 
 이후 마을 주민들은 최씨부인이 투신한 연못을 최씨담(崔氏潭)이라 명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유림에서는 최씨부인의 정절을 기리기 위하여 조정에 청원하여 1632년에 인조어필이 내려졌으나 후에 유실되었고 후손들이 예조에 청원하여 1764년에 정문을 건립하고 1812년에 여각을 증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정판에는 '절부부호군이정복처증숙부인화순최씨지려(節婦副護軍李廷馥妻贈淑夫人和順崔氏之閭)'라 새겨져 있다.

2) 관락사(寬樂祠)

 관락사(寬樂祠)는 방초정 뒤편의 종손가에 위치하며 이시애(李施愛)난을 평정한 공적으로 적개공신(敵愾功臣) 1등훈과 성종 즉위에 세운 공으로 좌리공신(佐理功臣)의 직첩을 받은 정양공(靖襄公) 이숙기(李淑奇)의 위패를 모신 불천위 사우(祠宇)이다.

3) 가례증해판목(家禮增解板木)

 가례증해판목(家禮增解板木)은 1758년(영조34) 이의조(李宜朝)가 아버지 이윤적(李胤績)의 유업(遺業)을 물려받아 관혼상제의 예법을 널리 보급하기 위하여 주자의 4대 예서(禮書)중 하나인 『가례(家禮)』를 예를 들어 해설하고 몇 가지 생각을 덧붙여 1772년에 총 10권 475매를 판각하였으나 현재는 411매만 김천 구성의 숭례각에 보관하고 있으며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67호로 지정되어 있다.

4) 소학집주증해판목(小學集註增解板木)

 소학집주증해판목(小學集註增解板木)는 김천시 구성면 상원리 구성초등학교 앞 숭례각(崇禮閣)에 보관되어 있는 책판이다. 율곡 이이(李珥)선생이 소학(小學)에 대한 각종 주석서를 모으고 절충하여 『소학제가집주(小學諸家集註)』를 만들어 유학자들이 소학을 이해하는데 표준을 제시하였는데 김천 구성출신의 이수호(李遂浩)는 여기에 소석(疏釋)이 없는 것을 보충하기 위하여 증해(增解)를 편집한 판목이다. 현재 숭례각에 211매가 보관되어 있다.

5) 운평선생문집판목(雲坪先生文集板木)

 운평선생문집판목(雲坪先生文集板木)은 김천시 구성면 상원리 구성초등학교 앞 숭례각(崇禮閣)에 보관되어 있는 책판이다. 이 책판은 송능상의 시문집 책판으로, 가례증해를 펴낸 이의조(李宜朝)의 스승이다. 당시 운평선생은 『소학(小學)』, 『근사록(近思錄)』을 배울 가치가 없는 책이라 비판하여 『상례비요(喪禮備要)』도 조목에 따라 폄하 하는 등의 일로 순조(純祖) 9년 3월27일에 사학유생 윤우대(尹遇大) 등의 탄핵을 받아 29일에 문집의 각판(刻板)을 파기하라는 왕명을 받았다. 그러나 현재 전해지는 문집에 당시 유생들의 비판 대상이었던 <상례비요지두사기(喪禮備要紙頭私記)>가 삭제되지 않고 그대로 수록되어 있는 점이나, 제자인 이의조가 문집 간행에 많은 기여를 한 것, 또 송능상의 아들인 송환기(宋煥箕)가 지은 이의조의 행장에 의하면 이의조가 스승인 송능상의 포증(褒贈)을 청한 사실이 기재되어 있고 《책판목록》에 초간본의 판각이 지례 이참봉택(이의조)에 남아 있다고 한 것, 이의조의 집안에서 송능상의 문집 간행에 깊이 관여한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문집목판은 당시에 파기되지 않고 이의조의 집에 몰래 보관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현재 숭례각에 170매가 보관되어 있다.

6) 충노석이지비(忠奴石伊之碑)

 충노석이지비(忠奴石伊之碑)는 방초정 옆 절부화순최씨정려각 앞에 위치하고 있으며 절부 화순최씨를 따라 못에 함께 투신한 여종 석이(石伊)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제작되었을 것으로 판단되나 당시의 시대 상황은 반상의 차별이 심했던 터라 세우지 못하고 못에 넣은 것으로 보이나 1975년 못을 준설하면서 출토된 것이다.

7) 풍기진씨열행비각(豊基秦氏烈行碑閣)

 풍기 진씨(豊基秦氏)는 부친 희태(喜泰)와 모 일선 김씨 사이에서 출생하여 18세에 연안인(延安人) 기영(丌永)과 결혼하였으나 남편이 병환으로 앓아 눕자 밤낮으로 쾌차를 위하여 지극 정성으로 기도하였으나 하세하자 “군자를 내가 죽였다”고 몹시 슬퍼하고는 “남편이 차가운 방에 누웠는데 내가 더운 방에 있으랴”하고는 시신이 안치된 방으로 들어가서 식음을 전폐하고 10여 일이 지나 남편을 뒤따르게 되었다. 이에 영남의 유림에서 열행비(烈行碑)를 세웠다. 안동인(安東人) 김한(金漢)이 행적비문을 찬(撰)하였다.

↑↑ 풍기진씨열행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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