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문영의 자손들
문영 선생의 자손들은 삼우당(三憂堂) 문익점(文益漸) 선생의 충선공파(忠宣公派)의 삼남(三男) 문중실(文中實)의 의안공파(毅安公派) 내에 계보로 해평 월호리 계손으로 남평문씨 해은공파(海隱公派, 善山派)로 별도의 파를 형성하고 있다.
① 문관(文琯) : 해은공의 장자로 정종(定宗) 원년 기묘(己卯, 1399)년에 출생하여 태종(太宗) 임금이 내린 이름 사명(賜名)이 유손(有孫)이다. 사마시(司馬試)에 올라 문과에 급제하여 아경(亞卿)으로 한성판윤(漢城判尹)을 역임하였다. 성종(成宗) 6년 을미(乙未, 1475)년에 졸서하였다. 부인은 풍천인(楓川人) 강계부사(江界府使) 노중청(盧仲淸)의 여식이다.
② 문전(文琠) : 해은공의 차자로 문과에 급제, 관찰사(監司)를 역임하였다.
③ 문현(文顯) : 문관의 장자로 자는 회수(晦叟), 태종 15년 을미(乙未, 1415)년에 충생하여 승정원(承政院) 좌승지(左承旨)를 역임하고 세조 13년 정해(丁亥, 1467)년에 졸서하였다. 부인은 안동인(安東人) 사인(舍人) 권상(權詳)의 여식이다.
④ 문절(文節) : 문현의 아들로 자는 치고(致高)이며, 세종(世宗) 12년 경술(庚戌, 1430)년에 출생하여 성균 생원(成均 生員)으로 성종 18년 정미(丁未, 1487)년에 졸서하였다. 부인은 성산인(星山人) 군수(郡守) 이문수(李文粹)의 여식이다.
⑤ 문자인(文自仁) : 문절의 장자(長子)로 호는 나촌(懶村), 자는 가안(可安)으로 초명은 이인(以仁)이다. 세종 28년 병인(丙寅, 1446)에 출생하여 진사(進士) 참봉(參奉)이며 무예(武藝)로서 훈련원 참군(訓鍊院 參軍)에 특별히 제수되었다. 연산군(燕山君) 8년 임술(壬戌, 1502)년에 졸서하였다. 부인은 현풍인(玄風人) 참봉(參奉) 곽구(郭矩)의 여식이다.
⑥ 문이의(文以義) : 문절의 차남(次男)으로 자는 가정(可正), 세종 31년 기사(己巳, 1449)년에 출생하여 문과에 급제하여 순창현감(淳昌縣監)을 역임하였다. 성종 18년 정미(丁未, 1487)년에 졸서하였다. 부인은 상산인(商山人) 대사간(大司諫) 김극용(金克用)의 여식이다.
⑦ 문이례(文以禮) : 문절의 삼남(三男)으로 자는 가선(可善), 단종 3년 을해(乙亥, 1455)년에 출생하여 문과에 올라 사간원 헌납(司諫院 獻納)을 역임하였다. 중종 4년 기사(己巳, 1509)년에 졸서하였다. 부인은 경주인(慶州人) 승지(承旨) 김언충(金彦忠)의 여식이다.
⑧ 문이지(文以智) : 문절의 사남(四男)으로 자는 가능(可能), 세조 4년 무인(戊寅, 1458)년에 출생하여 성균생원(成均生員)이다. 중종 35년 경자(庚子, 1540)년에 졸서하였다. 부인은 진주인(晉州人) 참판(參判) 하석도(河錫圖)의 여식이다.
⑨ 문이신(文以信) : 문절의 오남(五男)으로 자는 가립(可立), 세조 7년 신사(辛巳, 1461)년에 출생하여 문과(文科)에 올라 승훈랑(承訓郎) 기장(機張), 홍원(洪源)현감(縣監)을 역임하였다. 중종 17년 임오(壬午, 1522)년에 졸서하였다. 부인은 성산인(星山人) 참군(參軍) 현공희(玄孔羲)의 여식이다. 전주인(全州人) 호조참판(戶曹參判) 최이한(崔以漢)의 장인이며, 충청, 전라도관찰사(忠淸, 全羅道觀察使), 형조참판(刑曹參判)을 역임한 최응룡(崔應龍, 1514~1580)의 외조부이다.
5. 목면(木棉)
목면 목화는 원래 열대지방의 식물로 쌍자엽(雙子葉) 아욱과의 식물이다. 보통 온대지역에서는 봄 3, 4월에 파종하여 9, 10월에 솜을 따는 1년생 관목(灌木)으로 재배되지만, 열대지역에서는 다년생 교목(喬木)으로 자란다. 재배되는 관목은 6~7개월의 생장기간 동안 키가 1~2m까지 자란다. 심은 지 80~100일 내에 분지(分枝)가 발생하며 식물체는 미색(米色) 꽃을 피우는데, 이 꽃은 분홍색 붉은색 등으로 변한다. 수일이 지나 꽃은 떨어지고 3각형의 작은 녹색 꼬투리가 맺히는데, 이를 다래라 하며 55~80일이 지난 뒤 성숙한다. 이 기간 동안에 상당히 커지는 다래 안에서 씨와 씨에 붙어 있는 솜털이 발달한다. 다래는 성숙하면 3~5실로 나누어진 흰색의 솜털 같은 종실(種實)을 터뜨리는데, 1실마다 섬유 뭉치에 파묻힌 7~10개의 씨가 들어 있다. 이 뭉치들은 흰색에서 황백색을 띠고 길이가 2~4m이며, 탄수화물인 셀룰로스가 약 87~90%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물 5~8%, 자연적인 불순물 4~6%로 구성된다.
실면(實綿)은 목화섬유(木花纖維)가 씨에 그대로 붙어 있는 것으로 씨가 무게의 2/3를 차지한다. 수확량과 섬유의 품질은 기후 조건에 영향을 받는다. 따뜻하고 습한 기후를 좋아하며 생육에 알맞은 온도는 20~28℃이다. 세계적으로 중요한 농작물 중의 하나인 목화는 비교적 값싼 면제품을 만들며, 생산량이 매우 많고 경제적인 직물이다. 섬유는 가벼운 보일이나 레이스에서 무거운 범포지(帆布紙), 여러 가지 의복에 알맞는 두꺼운 우단, 가정용품, 공업용까지 매우 다양한 직물(織物)을 만들 수 있다. 품질이 좋은 실로 만들어진 섬유는 길이가 짧은 섬유를 골라내면서 빗질을 하고, 남은 섬유들은 다시 공정과정을 거친다. 섬유들을 함께 꼬아서 실을 잣고 그 실을 면직물(綿織物)에 이용한다.
목면의 성장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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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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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면직물 무명베의 직조과정
1) 씨 빼기(씨아 繰綿機)
목화에서 채취한 다래 꼬투리에서 뽑은 목면을 가공하기 위하여 첫 단계로 씨아를 이용하여 씨앗을 빼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 종자(種子)를 제거하면 비로소 부드러운 목화솜이 된다.
2) 고치 말기(활줄)
목화솜은 실로 뽑기 위한 전단계로 솜활 줄을 이용하여 솜을 퉁겨서 가락에 말아 고치를 만드는 과정이 완성되어야 고치에서 실을 뽑을 수가 있다.
3) 무명실 뽑기(물래질)
솜을 활에 타서 말아 놓은 고치를 물레 가락에 걸고 물래를 돌려서 한 방향으로 꼬인 무명실을 잣는 실감기 과정이 이루어져야 비로소 무명실이 완성된다. 실을 꼬아서 감는 물레를 문래(文萊)가 만들었다고 회사기(回絲機) 물레가 되었다.
4) 날실 모으기
완성된 무명실은 날실이므로 한올 한올씩 모아 열 올을 모아 하나의 날실 모으기가 완성되면 날실을 삼아 놓는다.
5) 무명 날기
무명실 열 올을 베의 폭에 맞게 수십 올을 모아 베 한 필에 맞는 올을 모은다.
6) 날실 매기(도투마리 작업)
모아서 삼아 놓은 날실을 한 올씩 나열하여 실에 장력을 좋게 하기 위하여 풀을 끓여 풀솔로 풀을 먹이고 은근한 숯불이나 왕겻불에 말려 당기고 도투마리에 살대를 넣어 감고 말아 놓아야 날실이 완성된다.
7) 베 짜기(織布機)
베짜기는 부녀자들에게 가장 힘든 노동이며 베틀을 설치하여 도투마리를 베틀 뒤에 얹어 놓고 날실을 바디 칸살에 걸어 매고 올올이 어긋나게 베틀을 이용하여 북에 실구리를 넣고 빼낸 실을 이용하여 왕복운동을 하면서 비로소 베를 짜게 되는데, 이 직포기를 문영(文英) 선생이 만들었다고 문영베(文英布) 구미 선산지역에서는 무명베, 방언으로 아녀자들은 밍베, 밍비라고 부르며 특히 농가에서는 낮에는 들일하고 밤에는 호롱불을 켜 놓고 밤새 베를 짜는 부녀자들의 고달픈 베짜기 베틀노래가 유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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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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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구미의 목화 베틀가
선산지역의 구전 목화노래는 당시 큰 사찰인 도리사(桃李寺), 대둔사(大芚寺), 수다사(水多寺) 등에서도 스님들의 솜이불 공양을 위해 목화솜을 탁발 나간 가사가 전해지고 있는데 상좌스님을 통해 주지 스님의 행방을 물으며 풍자하는 노래로 이어졌다.
❙목화
“중아 중아 상재중아 너거신님 어디갔노 개령김산 너른들에 목하동냥 하로갔네.”
(중아 중아 상좌중아 너이스님 아디갔나 개령김산 넓은들에 목화동냥 하러갔네.)
선산지역의 베틀노래는 직포기의 모양을 형상화한 노래이다.
❙베틀노래
월궁이라 노든처녀 인간세상 내려와서 그할일이 하도없어 전우좌우 살려보니
옥난간이 비었구나 옥난간에 비틀노아 비틀다리 네다리요 내다리는 두다리라
신농씨라 나실적에 쌍거동이 섯는지상 그보아라 앉은양은 양다리를 돋아놓고
화판을랑 씨어시고 나삼을랑 반만걷고 북띠라고 두른양은 지낸연화 둘렀난듯
안금잔금 최발장금 양편으로 걸린모양 남의남산 무지개가 붉게서산 뻗치난듯
잉어때라 삼형제는 성진하는 기상이요 용두다리 우는소리 구시월에 새벽달밤
외기러기 짝을잃고 벗찾아간 기상이요 비갬이라 굽은양은 홍문연의 잔치쩍에
황우패공 두장군이 온천하를 다투는듯
고단할사 놀림대는 한강수라 깊은물에 한가하다 어옹들이 낚숫대를 던지는듯
콩대절때 도트마리 천년묵은 무항여리 이리왔다 저리갔다 진퇴하는 기상이라
절로굽은 신나무는 온끈에다 목을매고 지루방에 드나들면 항복하는 기상이요
그비금시 다짜내여 은장두라 드는칼로 어석어석 끊어내어 금칙으로 혀알라서
앞내물에 씻기다가 뒷내물에 히워다가 백옥같이 바래다가 서울가신 우리오빠
장남도포 말가주고 두루마기 꾸미주자.
베틀가는 노동요이며 베를 짜는 부녀자의 애환이 서린 노래이다.
❙베틀가
땅땅 보디집 치는 소리 삼간 초당이 다 울린다
쳇발 질러가는 양은
동에 동쪽 서에 서쪽 무지개가 걸려온 듯
자질개 물 주는 양은 세우비가 뿌리는 듯
자질개를 띄운 양은
게기 낚는 저 노인이 낚싯대를 띄운 듯 싶다
북 나드는 거동은 강남의 연자제비
처마 안에 새끼치고 넘나드는 연자로다
잉애대 삼형제는 드자놓자 굽니흔다
호부래비 눌기대는 일생 혼자 노는구나
엉기정 엉기정 잘도 간다
쿵절쿵 쿵절쿵 도투마리
많은 군사 거느리고 얼사쿵쿵 잘 넘어간다
이상은 목화와 베틀, 베짜는 여인네의 노동요로 채록되어 구미시지(龜尾市誌)에 수록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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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짜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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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마치면서
면직물(綿織物)은 계속될 것인가 석유화학제품, 합성섬유, 플라스틱섬유, 단열재 유리섬유, 최신 탄소섬유 소재 등이 난무하는 세상에 자연친화 소재 식물성 목면은 친환경소재로 계속 유지될 것인가?
예전에 결혼할때 혼수용으로 신랑 신부에게 비단금침 솜이불을 한 채 해주고 시부모님 이불도 사랑땜으로 한 채씩 해드렸다. 여름 이불은 삼베 홑이불이었고, 겨울 이불은 따뜻한 솜이불이었다.
부민후(富民侯) 문익점(文益漸) 선생이 목면을 전래하여 재배 한지 어언 600여년이 흘렀다. 과거 전통시대의 침구, 의복 소재는 갈화솜(蘆花), 갈옷(葛布), 삼베(麻布), 모시(苧布), 비단(緋緞)이 현세에는 인조견으로 나일론, 폴리에스테르 화섬(化纖)이 쏟아져 나온다. 탄소섬유(炭素纖維)의 등장으로 의류, 방호복, 자동차. 비행기 거의 산업전반에 이용되고 있다.
그 옛날 목면이 백성을 따뜻하게 해 주었듯이 우리네 정서에 하얀 목화꽃을 관상용이 아닌 천연소재(天然素材)의 목화송이로 우리 이웃에서 언제 다시 들판에서 볼 수 있을까? 다래가 벌어진 목화가 만발하는 풍경을 연상하는 의문을 던진다. 목면도 면면이 하얀 실처럼 만대에 이어졌으면 하는 희망이 있다.
<참고문헌>
남평문씨대동보(南平文氏大同譜)
삼우당문선생실기(三憂堂文先生實記)
선산김씨대동보(善山金氏大同譜)
일선지(一善志)
구미시지(龜尾市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