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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 한밤마을활성화센터, 2024 유교아카데미강좌 수료식


조진향 기자 / joy8246@naver.com입력 : 2024년 09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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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문화체육관광부 유교지원국고보조사업인 '2024 유교아카데미강좌'가 4월 12일부터 9월 12일까지 5개월간 진행된 가운데 군위 한밤마을활성화센터에서 9월 2일 권태룡 교수와 이민용 원장의 특별한 강의 두번째 시간이 열렸다.

군위 양산서원이 운영하고 성균관 유교문화활성화사업단이 주관한 이번 강좌에서는 50여명의 수강생들에게 수료증과 사라져가는 대구지역의 향토민요와 전래동요를 수록한 CD를 선물하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홍진규 (사)한밤마을 CTM연구소 인성교육원장은 "지난해 군위가 대구시에 편입되어 이를 알리기 위해 지난 5개월간 진행된 유교아카데미강좌에 군위보다 대구에서 오신 분들이 더 많았다."며 "국악, 풍수, 인물, 논어, 문인화, 향토사 등 다양한 인문학 프로그램을 진행하였으며. 합창과 기악은 연말까지, 논어, 맹자는 양산서원 원장님이 계속 진행하고 있으며, 홍보가 제대로 되지않아 많은 분들이 모르고 있어 안타깝고, 모두 자력으로 봉사하다보니 다소 미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내년에는 더 풍성한 프로그램으로 인사드리겠다."고 전했다.  

권태룡 교수는 '인간의 도리로 전통놀이를 배운다'는 주제로 현대적 놀이 이론에 대해 소개하고 논어 제7편 술이에 나오는 공자님의 "놀아도 잡스럽지 않게 예술로써, 도에 뜻을 두고, 덕에 익숙하고, 인仁에 기대고, 예藝에 노닐리라"는 말씀처럼 양반과 선비들의 놀이문화, 특히 군위 지역 양반.선비.유림들은 어떤 놀이를 하였는지 강의했다.

군위 지역에서 즐기던 놀이는 시회와 시조놀이, 종경도(승경도), 전춘(화전놀이), 쌍륙(악삭), 저포희, 유객판(칠교놀이), 낙화놀이, 투호, 술잔치, 활쏘기놀이 등이 있었다.

시회詩會란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시를 짓고 감상하는 모임으로, 대표적으로 '낙강 시회'가 1196년(고려 명종26) 백운 이규보로부터 1862년(조선 철종13) 계류당 류주목의 시회까지 상주 낙동강에서 666년 동안 51회나 열렸다고 한다. 군위읍에 있는 남계서원은 조선 중기 유림들이 제사를 설립하면서 시회 등의 장소로 사용하다가 1624년(인조2)에 서원으로 승격된 기록이 남아있다.

시조時調에 가락을 붙여 노래처럼 읊은 것을 시조창이라 하고, 음악적 요소를 조금 배제하고 문학적 요소와 놀이적 요소를 가미하여 시를 짓고 감상하면서 모임을 주재한 것이 시회였다. 몇 년 전까지 일부 지역에서 진행됐으나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

시조를 적은 놀이딱지를 가지고 시조의 초.중.종장을 맞추며 놀던 '시조놀이'는 가투歌鬪, 화가투畵歌鬪라 부르며, 1명이 창수(읽는 사람)가 되어 읽는 쪽(패)를 읽는 동안 나머지 사람들이 그 시조에 해당하는 집는 쪽(패)를 먼저 찾아내는 이가 득점하는 놀이다. 일본의 가투놀이와도 비슷하고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크게 유행하였다.

종경도는 승경도, 승정도, 종정도라고도 하며, 조선시대 문무백관의 승진 순서를 그리고, 윤목(오각형 주사위)을 던져 그 수만큼 나아가게 해서 빨리 높은 관직에 오른 사람이 이기는 일종의 보드게임이다. 조선시대 양반자제들이 하던 놀이로, 수많은 관직의 등급과 상호관계를 익히고 놀이를 통해 관직에 대한 체계적인 관념을 알려주고, 벼슬에 오르는 포부를 키워준 놀이였다. 초기에는 주로 서울 상규계급 젊은이나 부녀자들 사이에 행해졌으나 점차 지방으로 전파되었고, 계절에 상관없이 실내에서 즐겼으나, 점차 정월에 많이 하게 되었다. 성현의 용재총화에는 이 놀이를 하륜이 창안했다는 기록이 있다.

전춘餞春은 음력 3월 봄날을 보내기 아쉬워 잔치를 베풀고 하루를 즐기는 민속놀이이자 세시풍속이다.  봄을 아쉬워하며 음식을 준비해서 산이나 계곡을 찾아 글을 짓고 풍류를 즐기던 놀이다. 천렵이나 화류놀이(꽃달임)으로 하루를 즐기고, 여인들은 화전놀이를 하기도 했다. 

쌍륙(악삭)은 던진 주사위에서 나온 숫자만큼 말을 옮기는 놀이로 쌍륙(여섯)이 나오면 반드시 이긴다 하여 쌍륙이라고 한다. (쌍륙놀이는 본지 2024년 8월 27일자에 소개됨)

 저포희는 윷놀이와 비슷한데 놀이판은 정사각형으로 되어 있고, 좌우로 18칸씩 나누어 오방색으로 방향에 맞게 색이 칠해져 있고, 윷가락이 5개이고 던져서 나오는 윷의 명칭에 정해진 규칙대로 말을 옮기는 놀이로, 끝까지 도착하여 말을 다 빼면 이기는 놀이다. 저포희는 한때 쇠퇴하여 사라진 것을 권태룡 박사 등 학자들의 연구로 최근 복원되었다.

유객판은 칠교놀이라고도 하며 사방 10cm쯤 되는 나무판을 7조각으로 잘라, 여러가지 형태를 만드는 놀이로 칠교판, 칠교도, 유객도라고도 한다. 남녀노소 누구나 때와 장소에 상관없이 즐길수 있는 놀이로 발전하여 널리 행해지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손님이 왔을 때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이나 집주인이 집을 비워 기다리는 시간에 지루하지 않도록, 책을 내어놓거나 유객란을 내어놓기도 했다.

낙화落花놀이는 줄불놀이, 낙화유라고 하며, 군위 지역 선비들의 뱃놀이나 시회, 사월 초파일, 정월대보름 밤에 불꽃을 관상하던 놀이이다. 뽕나무나 소나무 껍질을 태워 만든 숯가루를 한지 주머니에 채우고 그것을 나뭇가지나 긴 장대나 추녀 끝이나 강가 절벽 위 줄에 매달아 불을 붙이면 주머니에 든 숯가루가 타면서 불꽃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멋진 광경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을 낙화놀이라고 했다.     

투호는 화살을 투호병에 던져 넣는 놀이로 청. 홍색의 화살을 더 많이 던져넣는 편이 이기는 놀이로 마음을 다스리는 놀이라고 한다. 고구려, 백제 때 궁중과 상류사회에서 즐겼고,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주로 궁중과 고관들이 잔치 때 즐겼다고 한다. 양반 부녀자들이 집안에서 많이 즐겼으며 서민들은 접하기 어려웠다. 신윤복의 풍속도에 '투호'를 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술잔치는 유림이 봄. 가을 해마다 두 차례에 한 사람이 글을 읽으면 순서대로 잔을 돌리면서 음식을 먹는데 이때 술 마시는 예절, 젓가락 쓰는 예절, 다른 사람에게 술잔을 주는 예절 등 술을 마시는 형식과 예절을 배우는 놀이이다.

이외에도 활쏘기, 박시놀이, 삼장군 단오놀이, 비심놀이, 월워리청청, 상여소리, 농요, 방아찧기 놀이, 글읽는 소리, 널뛰기, 연날리기, 달집태우기, 농악놀이, 지신밟기, 버들피리 불기, 돈치기, 숨바꼭질, 풋굿, 복놀이, 줄다리기, 장치기, 팽이치기, 썰매타기, 진치기, 공기놀이 등이 전통놀이로 전해져 온다.


이민용 원장은 '혼인 정신 및 절차'에 대해 강의했다. 

혼인의 예는 남녀분별을 밝히는 도리로, 이것이 무너지면 부부 사이가 거칠어져 간음과 사악한 죄가 많아진다고 <예기>에 기록되어 있으며, 혼례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큰 일이며, 부부가 평생을 가꾸어 가야할 아름다운 약속(백년가약)이자 해로동혈할 동반자로 맺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공자는 부부가 분별되며, 부자가 친하며, 군신이 엄해야 하나니 이 세가지가 바로 잡아지면 모든 것이 따라서 바로잡아지는 것"이라고 했다. 사회의 기초단위인 가정은 부부로부터 시작되며 예를 다하여 맺어진 부부가 있어 떳떳하게 인류가 존속될 수 있다.

혼인의 혼婚은 장가든다는 뜻이고, 인姻은 시집간다는 의미로 예전에는 예식이 저녁 때 행했기에 혼昏을 썼으나 지금은 혼婚과 통용된다. 이는 혼인날 신랑이 신부 댁으로 가서 신부를 데리고 와 신랑 집에 당도하여 해 저무는 시간이 되어 혼례를 거행하였다는 <의례>의 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여자(매씨)를 통해 혼사가 진행되어 시집간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예기> '혼의'에 의하면 '남녀가 분별이 있은 뒤에 부부가 의가 있고, 그 뒤에 부자의 친함이 있고, 그 뒤에 군신에 바른 길이 있기에 혼례란 예의 근본'이라고 하였다. 예를 갖추어 초빙하여 혼인하면 아내가 되고 예를 갖추지 못하고 급히 아무렇게나 만나는 것은 첩이 된다고 하였으며, 예는 부부가 삼가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고, 혼인의 예는 남녀의 분별을 밝히는 도리라하여 남자는 외실, 여자는 내실에 거처하였으며, 이는 존비에 맞게 서로 공경하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부부는 사회구성의 최소 단위인 가정을 이루어 자녀 양육, 부모 봉양, 조상 섬김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혼인정신은 삼서정신이라고 해서 조상 및 부모, 절대자, 배우자에게 서로 서약하는 삼서정신과 평등정신에 따라 남자와 여자가 몸을 합해 부부가 되면 남편이 높으면 아내도 높고, 남편이 낮으면 아내도 낮다고 하여 옛날에는 부부가 되면 남편의 작위에 따라 부인도 그에 합당한 작위를 내렸다고 한다.

혼인의 조건은 반드시 이성간의 결합이고, 적령기는 남자는 16세부터, 여자는 14세부터 가능하며, 현행 민법에서도 근친이나 중혼이 아니라면 남녀가 18세에 달하면 혼인할 수 있다. 또 8촌 이내의 동성동본간에는 혼인할 수 없다. 이는 근친번식이 장애아 출산 위험이 높고 생존력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상 중일 때는 혼인을 피하였다.

전통혼례의 절차는 중매인을 통해 혼담이 오고가서 청혼서를 보내고 혼인을 허락하면 혼인을 약속하게 되며, 불허하면 청혼서를 정중히 되돌려 보내는 것으로 불허의 의사를 표했다. 허혼서가 오면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사주(사성, 주단, 단자라고 하며 신랑의 생년월일시를 적은 것)와 납채서를 함께 보내 혼인할 날짜를 정한다. 사당이 있으면 사당에 고하고, 사당이 없으면 선조의 신위를 마련하여 고했다. 그리고 길일을 택하여 신랑 집에 보내는 택일 또는 납기, 연길이라 하여 혼례를 준비하고 생리일을 피하여 날짜를 정하여, 납기서와 함께 신랑집으로 보냈다. 그러면 납폐 즉, 폐백을 드린다는 의미로,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혼인 승낙에 따른 감사편지와 함께 혼수 예물을 보냈다. 

예물은 붉은 보로 싼 함 속에 넣어 보내는데 신랑아버지가 신부 집에 보내는 편지(납폐서, 혼서지, 예장지)를 함께 가지고 가며, 신부는 평생 장롱 밑에 두었다가 관 속에 넣어 간다고도 했다. 납폐를 일러 '예물 보낸다', '예물 왔다'라고 하며, 신랑 집에서 복록이 많고 첫 아들을 둔 사람을 사자, 즉 함진아비로 삼아 혼함을 매고 신부 집으로 가져가게 하였다. 신랑 집 혼주는 병풍을 치고 상에 올려 놓고 집사자에게 당부하여 보냈다. 납폐의 종류와 수량은 <가례예절>이나 <예기>, <오례의> 등에 따라 정성을 다하여 폐백과 폐물을 마련하였다.

신부 측에서는 정갈한 자리에 붉은 보를 덮은 상을 마련하여 납폐서를 예의를 갖춰 받았으며, 신부 측은 신랑 측 일행을 대접하고 약간의 노자를 주어 노고를 위로하였고, 신랑집에 답서를 보냈다.

혼인예식은 혼인 당일 치르는 대례로 서부모례, 초자례, 초녀례, 전안례, 교배례, 합근례 등의 절차에 따라 진행했다. 

초자례와 초녀례는 혼인당사자가 조상과 부모의 은덕을 기리는 의식으로, 서부모례이다. 혼례를 거행하는 날 아침에 조상에게 고하고 부모의 교훈을 받으며, 신랑은 떳떳한 장부로서 지아비의 역할을 다할 것을 서약하고, 신부 또한 그 본분을 다할 것을 서약하는 예이다. 

초례란 신랑이 신부 집으로 가서 전안례를 행하고, 이어서 교배례와 합근례를 행하는 의례이다. 초례청은 대례청 혹은 전안청이라고 한다.

전안례는 자미성군(인간의 화복을 맡은 천관으로 칠성님, 북두성군, 북두진군이라고 함)의 전령으로 여기는 기러기를 드리며 백년해로를 맹세하고 수복과 자손번영을 기원하는 의례이다. 혼례에 기러기를 사용하는 것은 혼인한 사람이 서로 정절을 지키며 일부종사하라는 뜻이다.

전안례를 마치고 신랑은 신부를 기다렸다가 대례청으로 가서 백년가약의 예식을 치른다. 교배례, 교수례, 합근례로 진행되며, 신랑신부가 되었음을 공개적인 장소에서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교배례는 신랑신부가 처음으로 만나 절하는 의식이다, 교수례는 신랑신부가 천지신명께 백년해로를 서약하는 의례이다. 합근례는 하나의 박이 두개의 바가지로 나뉘었다가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 하나가 되었음을 선언하는 의식이다. 서배우례라 한다. 대례 후 초야(합궁례)를 치르고 정식 부부가 된다.

이민용 원장은 "전통적인 혼례예식이 절차가 복잡하고 번거로워 거의 사라지고 간소화 되었지만, 부부가 평등한 존재로 서로 예의를 지키고 존중하며, 사회의 최소 단위인 가정을 올바르게 지킨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며, 혼례의 의미를 알고 후손들에게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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