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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한밤마을활성화센터 |
| 군위 (사)한밤마을 문화관광마케팅연구소(소장 홍원식)는 8월 26일(월)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한밤마을활성화센터에서 권태룡 전 한성대 교수와 이민용 성균관유도회 대구본부 예절원장을 초빙해 전통놀이와 의례에 대한 특강을 개최했다.
군위 양산서원이 운영하고 성균관 유교문화활성화사업단이 주관하는 이 프로그램은 문화체육관광부 유교지원국고보조사업으로 '성균관유교아카데미'의 일환으로 열렸으며, 두번째 특강은 9월 2일(월) 오후 2시에 열린다.
권태룡 교수는 전통놀이에 대한 정의와 양반과 선비가 즐겨하던 쌍육놀이의 유래, 쌍육놀이에 대한 기록, 쌍육놀이 방법을 소개하고 참가자들이 쌍육놀이를 즐겁게 체험할 수 있도록 지도했다.
지금까지 '놀이'는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많아 쓸데없는 짓이나 시간낭비인 개념으로 인식되었으나, 어린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놀이를 통해 스스로 훈련하고 사회의 다양한 요구와 개인의 욕구 사이의 괴리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성장하도록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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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한밤마을활성화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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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놀이는 인간이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목적없이 행하는 행위로, 재미를 얻고 물질적 보상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하는 유희적인 활동이다. 흥미가 있는 것을 스스로 행하고 느끼는 활동의 총칭이며, 놀이의 핵심은 '즐거움'이다.
양반 윷놀이인 '쌍륙'은 쌍륙판(크기 80*40cm)에 두 사람이 각자의 말 15개씩을 진열해 놓고 2개의 주사위를 죽통에 넣고 흔들어 던져 나온 수만큼 돌을 전진시켜 상대편의 말을 다 빼내고 적진에 먼저 들어가면 승리하게 된다. 이를 쌍륙, 악삭, 십이기, 육채라고도 한다. 주사위가 모두 6이 나와야 이길 확률이 높으므로 보통 쌍륙이라고 부른다.
조선조 말기까지 궁중이나 사대부 등 남녀 간에 행해졌고, 조선 중기에는 중류 이상 가정의 부녀자들에게까지 전파된 놀이였다. 중국 북사 권94 백제전(당의 학자 이연수 편찬)에 백제국에 투호, 저포, 롱주, 악삭 등의 잡희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삼국지 위지 동이전(진수 편찬)에도 고구려국, 백제국, 신라국은 투호, 저포, 롱주, 악삭 등의 잡희를 즐겨한다는 기록이 있다.
한국에서는 견합잡록(심수경 찬), 다산시문집, 동국이상국전집 제1권.제6권 고율시, 동사강목, 상촌선생집, 심리록, 귀암집, 매월당집, 성호사설, 무명자집 시고, 율곡선생전서 제27권,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여씨향약언해 등 다수의 문헌에 기록되어 있고, 혜원전신첩(신윤복 그림) 30편 중 쌍륙삼매라는 그림이 있다.
쌍륙놀이는 참 쌍륙놀이, 여기 쌍륙놀이가 있다. '여기 쌍륙놀이'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놀이판, 말(흑.백 바둑돌 각 15개), 주사위 2개를 참가자들에게 나눠주고 2~4명씩 조를 나눈 후 흑.백의 말을 놀이판 바깥쪽에 둔다. 이때 말이 놓여진 곳은 창고라고 하여 외집이 되고, 놀이판 위는 내집이라 부르며 그곳에서 논다.
내집에는 장군 자리, 1~6까지의 네모칸이 있고, 장군 자리에 말을 놓을 수 있는 조건은 주사위 두 개를 던져 같은 수가 나오면 말 하나를 놓는다. 장군 자리에는 말 3개까지만 놓을 수 있다.
주사위 두 개를 던져 다른 수, 예를 들면 4와 5가 나오면 이를 나졸이라고 하며 4와 5칸에 각각 말을 1개씩 놓는다. 나졸 자리에는 말을 두 개까지만 놓을 수 있고, 두 개가 모두 채워지면 말을 놓을 수 없고 무효다.
장군에 3개, 나졸 1에서 6까지 칸에 2개씩 말이 놓여 12개를 채우면 이번에는 반대로 주사위를 던져 나오는 숫자의 말을 밖으로 빼낸다. 장군과 나졸을 모두 먼저 빼낸 쪽이 승자가 되는 놀이다. 점수는 장군은 1개당 20점, 나졸은 10점으로 상대방에게 남아 있는 말에 점수를 매겨 합쳐서 점수를 계산한다.
특히 쌍륙(주사위 2개가 6일때)이 나오면 장군 중에 최고 장군이기 때문에 나의 말을 장군자리에 놓거나 혹은 빼던지, 상대방의 장군이나 나졸 중 1개의 말을 빼거나 넣어 방해할 수 있다.
이날 참가자들이 쌍륙놀이를 직접해보니 처음엔 규칙을 몰라 어려워했지만 곧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나오며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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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한밤마을활성화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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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용 원장은 '관.계례, 성인으로서 책무를 일깨우는 예'에 대해 강의했다. 요즘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치르는 통과의례인 관혼상제를 간소화하거나 생략하여 그 의미가 퇴색되었으나 실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방편이자 조상들의 지혜가 깃든 절차이다. 그 절차(의례)가 가문이나 가풍마다 달라 복잡하고 형식적인 것으로 여겨져 사라지기도 했지만 전통문화를 지키고 전수하고자 하는 곳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각박하고 치열한 현실 속에서 인간의 근본정신을 탐구하여 현재 삶에서 실현가능한 것은 반영하는 지혜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고전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고, 형식보다는 내용과 숨어있는 정신에 촛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혼상제 중 가장 먼저 치르는 것이 관.계례이다. 태어나 부모의 보호를 받으며 성장하여 어른이 되었음을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의식절차로, 성인이 되어 의무와 책임을 다하라는, 또 다하겠다는 의미로 책성인지례를 행하였다. 성년에 이른 남자에게는 관례라하여 관(모자)을 씌우고 어른의 복색을 입히는 의례로 삼가례를 행하였고, 계례는 성년에 이른 여자에게 머리를 올려 쪽을 지어 비녀를 꽂아주며 어른의 복색을 입히는 단가례를 행하였다.
관.계례는 <후한서>에 의하면 '새와 짐승들이 자라서 홀로 살아갈 수 있을 때 새에게는 볏이 생기고, 짐승에게는 뿔과 수염이 생겨 의젓한 모습을 갖추는 것과 같이 인간에게 관면과 갓끈을 늘어지게 하여 머리 장식을 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관례는 중국 황제에게서 비롯되었는데, 황제는 동이의 자부선인에게 배우고 내황문을 얻어서 돌아와 염제신농씨를 이어 백성들에게 생활방식을 가르쳤다고 전한다.
신라 신문왕 6년 <예기>를 들여왔으나 관례에 대한 기록은 없고, 고려 광종16년에 태자 주에게 원복을 가한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인종, 명종 때까지 관례를 실시한 기록이 <고려사>에 있다. 조선 태종이 의례상정소를 설치했고, 세종 때 국조오례의를 제정하여 왕세자와 문무관의 관례를 실시했고, 성종, 중종, 숙종 때 관례를 시행한 기록이 보이고, 조선말에는 조혼의 폐습과 실학의 영향으로 단가례로 간소화 되다가 근대화 과정에서 단발령과 의제개혁 등으로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관례를 치른 후 의복이 갖추어진 후 얼굴과 몸이 발라지고 안색이 가지런해지며 말이 순조롭다. 그러므로 관례는 예의 시작이다'라는 글이 <예기>에 나온다.
관.계례의 참뜻은 머리모양을 바꾸는 외형적인 변화가 아니라 어른으로서 긍지와 책무를 일깨우는 의례로, 관.계례를 행한 뒤 성인으로서 장차 부모에게 자식의 도리를 다하게 하고, 아우로서 형에게 동생의 도리를 다하게 하고, 신하로서 임금에게 도리를 다하게 하고, 젊은이로서 어른을 존경하는 젊은이의 도리를 다하게 하는 뜻이 있다.
관.계례를 위한 준비물과 참여자, 절차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관례는 20세가 되는 남자에게 행하는 의례로, 머리용품, 옷, 고유제에 필요한 물품을 준비하고 가족(관자의 친권자)과 손님(빈, 주례자)과 절차를 진행(집례)하거나 도와줄 사람(빈상, 찬자, 집사)을 정하고 나서 절차에 따라 진행한다.
시가례는 시작하는 예식으로 머리에 상투를 틀어 댕기를 묶고 망건을 씌우고 관건을 들고 시가축사를 한다. "좋은 달 좋은 날을 가려 비로소 어른의 옷을 입히나니, 너는 이제 어린 마음을 버리고 어른으로서의 덕을 좇아 오래도록 장수하며 행복을 누릴지어다."하고 관건의 끈을 매어주고, 관자(관례를 행하는 당사자)는 방으로 들어가 동자복인 사규삼을 벗고 어른의 평상복인 심의로 갈아입고 자리에 선다.
재가례는 갓을 잡고 서서 재가축사를 한다. "좋은 달 좋은 때 이어 너는 어른의 출입복을 입었으니 삼가서 너의 거동을 의젓하게 가질 것이며, 너의 덕을 더욱 높여서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큰 복을 누릴 지어다"라고 축원하고 갓을 씌우고 갓끈을 매어준다. 관자는 방으로 들어가 어른의 출입복(도포)를 입고, 신은 당혜로 바꾸어 신고 띠를 두르고 나와 선다.
삼가례는 복두(유건)을 잡고 삼가축사를 한다. "성년이 되는 해 아름다운 날에 너는 이제 어른의 옷을 다 갖추었다. 동기간에 우애하고 세상의 아름다운 덕을 빠짐없이 이루어 건강하게 오래도록 수를 누려서 하늘이 주는 경사를 모두 받을 지어다."라고 축원하고 갓을 벗기고 복두를 씌운다. 관자는 방에 들어가 어른의 예복인 도포(관복)를 입고 나와 선다.
내초례는 술을 마시는 의식으로 술잔을 들고 내초축사를 한다. "술은 맛이 좋고 맑으며 의식에 드리니 아름답고 향기로우니라. 절하고 받아서 좨주하고 마실지니라. 술을 마시는 데는 너의 분수에 맞아야 하느니 지나쳐서 몸을 해쳐서는 아니되느니라. 건강을 잊지 말고 조신할지어다."라고 축원하며 술잔을 주면 관자는 꿇어앉아 왼손에 잔대를 잡고 포와 해를 집어 바닥에 놓고, 술을 세 번 지운다.(좨주, 마신다)
내자례는 자를 지어주는 의식으로 빈이 관자에게 자를 내리면서 내자축사를 한다. "관례의 모든 절차를 이미 갖추었으므로 너의 자를 지어주나니 아름다운 글자와 깊은 뜻에 맞도록 행세할 것이며 잘 간직해 길이 보전토록 하라. 너의 자는 ( )자와 ( )자니라."하며 글자가 가진 뜻을 설명해 준다. 관자는 사례말씀으로 "저 ( ) ( ) 는 비록 부족한 점이 많사오나 감히 밤낮으로 어른의 가르치심을 받들어 행하겠나이다."라고 답한다.
현우사당, 현우존장은 관례가 끝난 후 사당에 알현하고, 부모께 재배하는데 어른이 된 아들의 절이므로 일어서서 받는다. 웃어른이 계시면 부모가 데리고 가서 절하며 뵙고 이때도 일어서서 받는다. 같은 항렬은 맞절하고, 아랫사람은 관자에게 먼저 절한다. 친척어른을 뵙고 나서 손님을 대접한다.
내례빈은 이웃 어른을 찾아뵙고 인사하는 것으로 이웃어른들은 모두 답배한다.
관례를 하고나면 혼인하지 않더라도 어른으로 대접한다. 말씨는 해라에서 하게로, 옷은 아이 옷에서 어른 옷으로, 이름은 관명에서 자나 당호(여성)를 받고, 말인사를 하면 반드시 답례를 받고, 품삯은 반품에서 온 품삯을 받는다고 한다.
계례는 15세가 된 여자에게 행하는 의례로 머리를 쪽찌는 비녀, 빗, 댕기, 배자, 당의(녹의홍상), 작은 상을 3개(비녀용, 배자용, 초례용) 준비하고 가족(계례 당사자 어머니), 계자(계례 당사자)와 손님(빈, 현숙하고 예를 잘아는 집안의 나이든 부인)과 진행(집례)하고 도울 사람(시자, 집사)을 정하여 절차에 따라 행한다.
계례에서 댕기를 풀어 빗질하고 쪽을 짓고 비녀를 들고 "좋은 달 좋은 날을 골라서 비녀를 꽂고 어른의 옷을 입히나니 이제 어린 마음을 버리고 어른으로서의 덕을 좇아, 오래도록 정숙하며 장수해서 행복을 누릴 지니라"라고 축원하고 비녀를 꽂아준다. 계자는 방에 들어가 배자나 당의로 갈아입고 원자리에 선다. 내초례, 내자례, 현우사당, 내례빈은 관례의 절차와 같다.
요즘은 성년례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성년이 되는 남녀에게 성인으로서의 긍지를 갖게하고, 어른으로서 사회에 대한 책무를 일깨우며 사회인으로서 의무를 다하게하고 사회에 참여하도록 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
관.계례는 청소년들에게 고유의 문화와 미풍양속을 가르치고 실천하게 하면서 선조들의 지혜와 정신, 문화를 이어가게 하는 것으로, 요즘은 각 가정에서 개별적으로 하거나 단체나 학교 등에서 거행하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