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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주암정의 사계(3) / 이정록


조진향 기자 / joy8246@naver.com입력 : 2024년 07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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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암정의 여름

주암정의 사계(3) 
이정록

3. <夏> 주암정의 연꽃

주암정에서 저 멀리 정면으로 아련하게 보이는 산이 천주산이다. 산의 형상이 하늘을 떠 바치고 있다하여 천주산(天柱山)이라고 명명하였다 한다. 그 천주산 자락을 휘돌아 내려오는 개울물이 동로천(東魯川)이고 김용사가 있는 운달산에서 발원한 개울물이 대하천(大下川)인데 이 두 개울물이 산북 삼거리에서 만나 금천(錦川)을 이룬다. 금천은 이곳 마을사람들의 젖줄이다.

대하천인 석천(石川)에서 광탄(廣灘)을 지나면 냇물의 흐름이 완만해지면서 예쁜 조약돌과 함께 고운 모래가 깔린 금천이 열린다. 금천은 수량이 풍부하여 주변의 농지에 관계용수를 공급하여 선사시대부터 금천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

봄철이면 아이들이 버들강아지 피어난 금천에서 송사리를 잡고, 여름이면 천변에 소를 놓아두고 멱을 감고, 겨울이면 금천의 꽁꽁 얼어붙은 얼음 위에서 썰매를 타는 놀이터였고, 아낙네들은 냇가 맑은 물에 빨래를 하며 고된 시집살이를 빨래방망이를 두드리며 수다로 고달픔을 풀어내는 공간이었다. 금천 맑은 물이 바위절벽 밑을 휘돌아 깊은 소를 이루고 절벽 위에는 정자를 지어 사시사철 변하는 금천의 아름다움을 시로 풀어냈던 선비들의 풍류도 모두가 금천이 있었기에 흥취를 돋을 수 있었다.

금천의 물길 굽이굽이가 명승이어서 금천 물굽이가 돌아가는 아홉 구비에 구곡을 설정하고 석문구곡이라 이름하였다. 금천의 물굽이 아홉 구비 선경의 석문구곡원림을 경영하신 분은 근품재(近品齋) 채헌(蔡瀗) 선생이시다.

석문구곡은 산양면 녹문리를 안고 돌아가는 금천 물굽이 서편에 제1곡인 농청대(弄淸臺)를 시작으로 금천 물살을 거슬러 오르면서 제2곡은 주암(舟巖), 제3곡이 우암대(友巖臺), 제4곡이 벽립암(壁立巖), 제5곡이 구룡판(九龍坂), 제6곡이 반정(潘亭) 그리고 동로천과 대하천이 합류하는 비교적 여울이 넓게 펼쳐진 곳에 제7곡인 광탄(廣灘)이, 약간의 경사진 대하천을 따라 거슬러 오르면서 대하천 첫 구비에 제8곡인 아천(鵝川), 달고개로 넘어가는 삼거리에 석문정이 있는 마지막 구비가 제9곡인 석문(石門)이다.

석문구곡원림 아홉 굽이가 모두 경치가 빼어나지만 그중에서도 제2곡인 주암정의 경치를 으뜸으로 꼽는다. 여름철에 주암정에 오르면 넉넉한 금천의 물굽이가 가슴 가득 안겨온다. 주암정 앞에는 관개용인 보(洑)가 설치되어 있는데 냇바닥이 고운 모래와 조약돌이 적당하게 혼재되어 있고 물 깊이 또한 깊지 않아서 아이들이 물놀이하기에 딱 좋은 곳이다. 여름이면 주암정 앞은 맑은 금천과 주변에 숲이 푸르러 여름 내내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주암정은 연못가에 조성된 조그마한 뚝방 잔디밭 길이 깔끔하고 그 잔디밭 뚝방길을 따라 주암정 연못으로 흘러드는 실개천의 물이 재잘거리며 흐르는데 다정한 이의 속삭임 만큼이나 감미롭다.

신록이 한창 피어날 때면 주암정은 담벼락과 이어진 바위 벼랑과 출입문 위로 능소화 덩굴이 온 천지를 능소화 세상으로 만들듯이 칭칭 휘어 감고 6월 하순으로 접어들면 능소화는 나팔을 닮은 화사한 꽃을 탐스럽게 피워낸다.

↑↑ 주암정의 자귀나무

환상적인 뚝방길엔 일산을 펼친 듯이 의연한 자태의 자귀나무가 실타래 같은 분홍색 꽃술을 늘어뜨리고, 사람의 한 키를 조금 넘은 배롱나무(나무백일홍)가 빨간 꽃을 피워 풍치를 돋운다.

당송팔대가의 한사람인 송나라 왕안석의 영석류시(詠石榴詩)라는 시 구절 중 <만록총중홍일점(萬綠叢中紅一點)>이라는 시구가 있는데 <홍일점>이란 푸른 잎 가운데 한 송이의 꽃이 피어 있다는 뜻으로, 여름철 꽃이 귀한 시절 푸른 녹음 속에서 홀로 피어난 석류꽃을 보고 읊은 시구인데 여럿 속에서 유난히 이채를 드러내는 것이나, 많은 남자들 사이에 여자 하나가 있는 것을 비유하는데 <만록총중홍일점(萬綠叢中紅一點)>의 그 홍일점인 석류꽃은 없지만 아무튼 주암정 연못가에는 녹음이 짙은 계절에도 꽃이 가득하니 <別有天地非人間>이라는 이백의 시구가 또 연상되게 하는 곳이다.

주암정에서 여름에 피는 꽃 가운데 절정은 수련이 아닌가 한다. 주암 채익하의 10대 종손 채훈식 씨가 수년 전 용궁 산택지에서 서너 뿌리 가져와서 심었다는 수련(睡蓮)이 이제는 연못을 가득히 채워 7월 초순이면 분홍색 연꽃이 피어나는데 그 우아하고 순수하고 정결한 모습은 천상(天上)의 비경(祕境)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 주암정의 연꽃

성리학의 비조(鼻祖)로 알려져 있는 북송의 대유학자 주돈이(周敦頤)는 연꽃을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했다고 한다. 주돈이의 연꽃 사랑은 지극하여 애련설(愛蓮說)이라는 시를 남겼다.

愛蓮說(연꽃을 사랑함에 대하여)

水陸草木之花 可愛者甚蕃  물과 땅에 초목의 꽃 중에는 사랑스러운 것이 매우 많다.
晉陶淵明獨愛菊  진나라의 도연명은 유독 국화를 사랑했고,
自李唐來 世人甚愛牡丹  이씨의 당나라 이래로 세상 사람들은 모란을 몹시 사랑했으나,
予獨愛蓮之  나는 홀로 연꽃을 사랑한다.
出於淤泥而不染  진흙 속에서 나왔으나 물들지 않고,
濯淸漣而不妖  맑은 잔물결에 씻겨도 요염하지 않고,
中通外直 不蔓不枝  속은 비었으되 밖은 곧아 덩굴은 뻗지 않고 가지도 없으며,
香遠益淸 亭亭淨植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 우뚝 깨끗하게 서 있으니,
可遠觀而不可褻翫焉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으되 함부로 다룰 수는 없다.
予謂 菊花之隱逸者也  나는 말 하겠다. 국화는 꽃 중의 은일자요,
牧丹花之富貴者也  모란은 꽃 중의 부귀한 자요,
蓮花之君子者也  연은 꽃 중의 군자라고,
蓮之愛 同予者何人  연꽃에 대한 사랑은 나와 같은 이가 몇 사람인고?
牡丹之愛宜乎衆矣  모란에 대한 사랑은 많은 것이 당연하리라.

연꽃을 사랑한 북송의 대유학자(大儒學者) 주돈이(周敦頤)는 성리학(性理學)의 기본이 되는 태극(太極)과, 음양(陰陽) 오행(五行)이 만물 속에서 생성 발전되는 과정을 도해(圖解)한 ‘태극도설(太極圖說)’을 저술하여 성리학의 이론적 기초를 쌓은 사람이다. 

주돈이의 이론은 정호(程顥) · 정이(程頤) 형제를 거쳐 주희(朱熹, 주자)에 의해 집대성 되었는데 주희가 보다 체계적으로 성리학을 전개하는데 주돈이의 이론이 바탕이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주돈이는 자가 무숙(茂叔)으로 중국 강서성의 여산(廬山)에 있는 염계(濂溪)에서 염계서당을 짓고 살았으므로 주렴계(周濂溪)라고도 한다. 또한 주돈이는 광풍재월(光風齋月)이라는 사자성어의 주인공이기도 한데 “舂陵周茂叔, 其人品甚高, 胸懷灑落, 如光風霽月. : 용릉의 무숙(茂叔), 주돈이(周敦頤)는 그 인품이 고상하고 마음이 대범한 것이 마치 맑은 날의 바람과 비 갠 날의 달과 같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주암정 연못에 만개한 연꽃을 보노라면 성리학의 비조인 무숙 주돈이를 떠올리게 된다.

-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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