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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목원 황화실 작가 4. “ 밉다해서 그 사람과 원수되지 마라.”


조진향 기자 / joy8246@naver.com입력 : 2023년 01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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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를 가운데에 두고 황화실 작가(좌측)와 동생들


- 3편에 이어-


5. 어린시절

가족이 3.8선을 다섯 번 넘었어요. 어머니는 신의주 사람이고, 아버지는 평양이 고향인데, 아버지는 일제시대 때 선생님을 하셨고, 어머니는 수예와 뜨게질을 가르쳤어요. 아버지는 해방되던 해에 혼자 먼저 내려와서 교편생활을 하셨어요. 엄마가 동생을 업고 3.8선을 넘었는데 다 와서 잡혀서 신의주로 압송됐데요. 혼자서 아이들을 키울 수가 없으니까 외할머니와 함께 내려왔다고 해요. 아버지를 수소문하니 경기도에서 교편을 잡고 계시고 처음 분교장으로 발령이 났데요. 제가 일곱 살 때 학교 들어갔는데 6학년 언니들이 업고 다녔어요. 아버지는 퉁소와 나팔을 잘 불었고 방송국에 나가서 불기도 했고, 창도 잘 하시고 그래선지 제가 창을 좋아하고, 칠곡문화원에서 창을 십년 정도 배웠어요.

↑↑ 집앞에서 남동생과 함께

부모님이 이북에서 살 적에는 정말 잘 살았어요. 아버지는 학교 선생님으로 교원자격증을 가지고 계셨고, 중국어, 일어, 영어까지 다 하셨어요. 그런데 이남에 내려오니 저축해놓은 돈도 아무 소용이 없고, 여기서도 교편을 잡으셨지만 생활이 넉넉하진 않았어요.

↑↑ 황화실 작가의 부친

우리나라가 다시 평양을 수복했을 때 군인들을 따라 올라갔어요. 황해도에 아버지가 사놓은 땅이 많았나봐요. 아버지가 외갓집에 땅을 쓰라고 줬는데 거기서 며칠 쉬었다 가려고 찾아가니 땅주인이 왔다고 감자고 콩이고 머리에 이고 가져오고, 잔치가 난거에요. 거기서 실컷 먹고 밤에 자는데 밤새 트럭이 후퇴를 하더라는 거예요. 그게 1.4후퇴죠. 1월 4일이면 얼마나 춥겠어요. 임진강 다리는 끊겼고 임진강에 얼음이 얼었어요. 후퇴다. 우리도 내려가야 되겠다. 그래서 다시 내려왔죠. 임진강 다리를 건너는데 소달구지에 짐을 싣고 가니 얼음이 깨질 거 아니에요. 쩡 소리도 나고 얼음 깨지면 죽죠. 나는 못 걷는데 우리 언닌 잘 걸었어요. 화실이 안 오면 내버리고 간다. 그러면 막 울면서 또 따라가고. 임진강 다리 넘어서 인민군이 쫙 서있는 거예요. 그래서 인민군이 “나랑 놀래.” 그러면 아버지가 나를 부르면서 빨리오라 그래서 아버지 따라가고, 그렇게 피난 왔는데 전쟁통 중간에 꼈지요. 아버지는 이불 속에 항상 지리부도를 가지고 다녔어요. 그런데 인민군한테 붙들려서 간첩이라고 붙잡혀 갔어요. 그곳에 끌려가니 소좌인지 소위인지 모르겠는데 아버지가 가르치던 학생이 있더래요. 신의주상고에 계셨는데 신의주상고 학생이더래요. 아이구 선생님하며 반기더니 나중에 사병이 업고 집에 온거에요. 아버지는 죽을 고비를 참 많이 겪었죠. 군대 따라가서 신의주 조카집에서 밥이라도 얻어먹고 온다고 올라갔는데 고생을 말도 못하게 했죠. 걸어서 걸어서. 그때는 충청도 충주로 가서 좀 살다가 부산으로 갔죠.

↑↑ 결혼식날 어머니와 함께

6. 어머니의 가르침

모친이 늘 “너가 밉다해서 그 사람과 원수되지 마라. 너가 원수를 갚지 않아도 다 자연이 갚고 누군가가 갚기 때문에 그 사람 밉다고 원수 만들 생각하지 말라”고 배웠어요. 그래서 아이들 보고도 “원수가 있거든 미워하지 마라. 누가 대신 갚아주겠지. 내버려둬도 다 벌 받더라. 잘못하면 다 벌받고 산다. 자기 양심대로 사는 게 제일 좋다.”고 가르쳤어요. 그런데 양심대로 사는 것도 힘들어요. 모친이 항상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라.” 하셨고, 저는 거짓말을 싫어해요. 거짓말하면 신의가 없잖아요. 그리고, 남한테 피해 주지말고 나 혼자서도 살 수 있는 데까지 살아보자 그러죠. 자기 자신을 스스로 챙기고 살자 생각해요. 남편이 날 도와주겠지, 아내가 날 챙기겠지 이런 생각 하지말고 아프면 자신이 챙겨야지 누가 챙겨요? 너가 알아서 살라고 애들한테도 이야기해요. 어디서나 양심지키고 착실하게 살면 사람들이 시간 지나가면 알아주지 저 잘났다고 해봐야 누가 알아주나요? 겸손하지 않고 나 잘났다 나만 잘났다 그럴 수는 없잖아요? 나이가 들면 젊은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아요.

한국 여성들은 너무 남편한테 기대고 그 사람이 다 해주길 바라는데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여자도 경제력이 있어서 자기가 책임질 수 있어야죠. 65살이 되니 노령연금도 받고, 좋은 선생님을 만나 개인전도 해보고, 잘 살았죠. 남편이 있었다면 의지했을 거예요. 남편이 있어도 의지를 안 하려고 노력해야 돼요.

- 이상으로 4편으로 나눠 목원 황화실 작가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마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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