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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목원 황화실 작가 3, “하루 살면 이게 내 길이다 생각하고, 내려놓고 살아요. ”


조진향 기자 / joy8246@naver.com입력 : 2023년 01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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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편에 이어-


3. 여고시절부터 취직까지

자란 곳은 부산인데 데레사여고를 나와서 군수사령부에 근무했고 결혼하기 전까지는 부산에서 살았어요. 그때는 언니도 학교가야 하고, 집안 형편이 어려우니까 아버지가 장학금 받는다고 데레사여고에 넣었어요. 언니는 고등학교 나와서 큰 공장에 경리로 일했어요.

↑↑ 데레사여고 3학년 때 황화실 작가


취직할 때, 사령부에 있던 장교들이 사복을 입고 면접 시험을 보러 다녔어요. 어떤 사람이 자신이 시험관이라고 따라 오라고해서 갔더니 집 약도와 주소를 적어달라고 해요. 그러더니 합격했다고 가래요. 그게 끝이에요. 시험 합격했다고 해서 가보니까 합격자 명단에는 나와 있어요. 그런데 합격통지서가 안 오는거예요.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날 저녁, 소령 정복을 입은 사람이 짚차를 타고 우리집에 왔어요. 저 사람이 누군가 했더니 그 시험관인 거에요. 그 사람이 아버지를 만나러 온 거예요. 술 한잔하면서 딸네미를 잘 보호하고 사무실에 근무하도록 할테니 걱정마시라고 하곤, 사령부로 누구를 찾아오라 해요. 그래서 사령부 면회실로 갔더니 그가 나왔어요. 그때 하이힐을 신었는데 계단을 내려가면서 손을 잡아주는데 다른 사람들이 보고 막 박수치면서 “소령님, 최고 다!” 하는거예요. 사무실에 들어가니까 빵하고 사이다를 하나씩 놓고 회식을 해요. 내가 온다고. 첫날 내 자리에도 있더라고요. 그분이 과장이고 난 직원이었죠. 여기 앉아서 일하라고, 어려울 거 하나 없으니 천천히 배우라고 해서 일하게 됐죠. 거기서 화학장교인 남편을 만났어요. 거기서 그 사람을 만났죠.

↑↑ 처녀 시절 황화실 작가(좌측)


군수사령부에 있을 때 대통령 표창을 받았는데 나 혼자 그 사무실에 있으니까 상만 나오면 내가 받았어요. 정말 옆에서 많이 도와주고 상복도 있고, 사람복도 많았어요. 그러다 결혼해서 살림하느라 공부할 시간이 있었겠어요? 슬프다, 기쁘다 이런 감정을 안 가지려고 노력할 뿐이죠. 오늘 하루 살면 이게 내 길이다 생각하고 지금은 내려놓고 살죠. 다 내려놓고 살아요.



4. 결혼과 자녀 교육

결혼하면서 아곡리로 시집왔는데 남편이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아들 둘을 데리고 시집에서 아이들이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살았어요. 둘째가 고등학교 들어갈 때, 경북기계공고에 상의도 안하고 원서를 넣어서 합격했어요. 엄마가 고생한다고 일찍 돈 벌겠다고 그래요. 그래서 둘째에게 고등학교 졸업하면 대학교 가라고 했어요. 큰애가 대학다니니까 둘 다 대학가면 내가 힘들다고 작은 애가 먼저 군대에 갔어요. 그런데 큰 애도 ROTC 장교로 군대에 가니 아들 둘이 함께 군대에 간 거예요. 작은 애는 최전방에서 운전병으로 군대 생활을 했어요.

아이들이 어릴 때 “엄마가 내일 죽을수도 있다.”고 늘 이야기했어요. 그때는 힘들었어요. 지금도 삶에 그다지 애착을 느끼진 않아요. 생 자체가 고(苦)잖아요. 삶이라는 게 힘들잖아요. 좋은 일이 있어도 좀 있으면 또 슬픈게 오고, 좋은 일이 있어서 좋은거 보다 그 뒤에 싫은 일이 자꾸 오잖아요. 그래도 다른 사람보다 더 웃고, 더 열심히 살려고 노력해요. 내일 죽을 수도 있으니까. 열심히 글씨를 쓰고, 져서야 되겠습니까? 어디가도 지는 건 싫어해요. 뭘해도 이겨야지. 그래서 애들에게 내가 없으면 너희 스스로 살아야되니 무슨 일이 생기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거기에 대한 책임도 지고, 이렇게 어려서부터 가르쳤어요. 그렇게 키웠어요. 그래서 애들은 스스로 직장을 구하고 돈을 벌어서 장가도 갔어요.


난 굉장히 냉정하게 길렀어요. 나는 밥 갖다 바치는 엄마가 아니고 너희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보호하는 선생님이라 생각해라. 그렇게 길렀죠. 친정 어머니도 애들한테 정을 떼고 키우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거짓말 하지말고 정직하고 배짱있게 살라고 해요. 제 딴엔 열심히 산다고 산거죠.
 
↑↑ 장남 임관식 때


애들 아빠는 당시 경북대를 나왔으니까 머리가 좋고 공부도 잘 했고, 그러니까 내가 시집 왔죠. 다니던 직장에 육군 대위나 육군 중위가 넘쳐나는데도 남편을 택한 건 그만한 이유가 있죠. 사람은 참 좋은 사람인데, 일찍 가는 바람에 안타깝죠. 그때는 남편을 사랑하니까 죽기살기로 결혼한다고 했죠. 안 그랬으면 칠남매 맏이인 남편에게 부모님이 시집을 보내겠습니까? 촌이라는 데를 멋모르고 왔죠. 불을 때서 밥을 짓는데 밥도 할 줄 모르고 그걸 다 해냈네요. 디딜방아를 찧어서 묵을 만들고, 백 포기 넘는 김장도 다해서 먹고, 그땐 시어머니께서 젊으니까 따라다니면서 배웠죠. 4대 봉제사도 다 지냈어요. 종손에 시아버지 형제분이 여섯형제라 제사 때마다 오셨어요. 시댁이 대갓집이고 잘 살았어요. 방도 크고 대청마루도 있고, 사랑방과 대청에 사촌 시동생들이 오면 제삿밥을 먹고가곤 해서 사촌 시동생들이 잘해줘요. 남편이 돌아가시고 나서 큰 아이 스무살까지 시댁에 살다 분가했죠. 큰 아들이 영남대 경영학과에 합격하면서 왜관으로 나왔어요. 대학교를 다니기에 교통이 불편하니까 아파트를 사서 나왔어요.

↑↑ 차남 군제대 때

애들이 군대 다녀오고 스물다섯 살쯤 됐을 때, 아이들을 불러 앉혀놓고 말했어요. 너희가 이제부터는 엄마를 먹여살려라, 이제 엄마가 너희를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하지 말라고 했어요. 나는 악착같이 벌어서 자식들에게 주고싶은 생각이 없어요. 힘들게 벌어서 왜 애들한테 다 갖다 바쳐요? 엄마는 아무 것도 없으니 너희가 알아서 살라고 했어요. 그애들은 저희가 독립해서 살아요. 난 독립 안하는 자식들 보면 그건 부모책임이라고 생각해요. 부모가 독립을 못 시키는거죠. 부모가 어려서부터 교육을 시키고 자립심을 키워 줘야죠.


- 4편에 계속 -

* 게제된 사진은 황화실 작가님의 동의하에 게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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