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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후설의 현상학 : 엄밀학으로서의 철학2 / 이재성(계명대)교수


조진향 기자 / joy8246@naver.com입력 : 2022년 04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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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설의 현상학, '엄밀학으로서의 철학'2

이재성(계명대)

1편에 이어 

6. 자연주의는 르네상스 시대 이래 비약적으로 발전한 자연과학, 특히 수리 물리학의 성과에 크게 자극받고 고무되어 제3자적 관찰, 실험, 수리화 및 법칙화 등의 물리학적 방법이 모든 학문의 참된 방법일 수 있으며, 역사학 등의 정신과학조차도 수리 물리학적 방법을 사용할 때만 참된 의미의 학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철학적 입장이다. 

따라서 자연주의는 이러한 수리 물리학적 방법을 다른 모든 지식 영역과 의식 영역에도 적용하려 한다. 후설은 이 자연주의를 1) 그것이 지닌 물리학적 방법의 특권에 대한 근본 신념과 관련해 ‘물리주의Physikalismus’라고 부르기도 하고, 2) 감각 경험적 실증성이 지닌 특권에 대한 근본 신념과 관련해 실증주의라 부르기도 하며, 3) 제3자적인 객관적 관찰이 지닌 특권에 대한 근본 신념과 관련해 ‘객관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후설은 자연주의의 근본적인 오류는 본질적 대상 혹은 이념적 대상이나 의식 등과 같이 물리적 대상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방식과 인식방식을 지니는 대상들을 물리적 대상처럼 취급하는데 있다고 본다. 

당시 실험심리학을 수단으로 인간과학(정신과학)의 기초를 마련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후설은 이 시도가 불가능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의식과 존재의 관계를 인식론의 관점에서 검토해야 하며 존재는 의식행위의 관련항으로서만 알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후설은 이 의식 행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보았다. 이런 일은 의식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학문만이 할 수 있으며, 바로 이 일이 현상학이 스스로 설정한 임무이다. 대상의 다양한 유형을 명료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의식의 기본양식을 밝혀야 하기 때문에 후설의 사태는 언제나 심리학과 가까이 있었다. 

그러나 심리학과 달리 현상학에서 의식은 매우 특수한 방식으로 문제가 된다. 즉 ‘의식은 의미를 구성’하는 일이 일어나는 곳이다. 인간이 직관하려면 의식의 이런 행위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지각·표상·상상·판단·느낌 등의 성격은 직접성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사태 자체로’는 실재론을 위한 요구가 아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문제가 되는 사태는 의식의 행위이고 이 행위 속에서 구성된 객관적인 것이다. 이 사태가 바로 후설이 ‘현상’이라고 부른 영역이다. 그러므로 현상학의 대상은 ‘순수 내재적 직관에 파악된 절대자료’이고 현상학의 목표는 의식행위의 본질적 구조와 이 행위에 대응하는 객관적인 것을 발견하는 데 있다.


7. 역사주의는 19세기 후반에 비약적으로 발전한 역사학을 비롯한 제반 정신과학에 편승하여 성립된 철학 사조이다. 후설은 역사주의는 역사적 현상을 파악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범주들을 통해 모든 현상들을 파악할 수 있다는 철학적 입장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의미의 역사주의에 의하면 모든 존재자들의 근본 법주 중의 하나는 ‘역사성’이며, 따라서 모든 것은 역사성과 상대성을 지닌다. 그러나 역사주의는 “모든 것이 역사성과 상대성을 지닌다”는 명제가 가진 논리적 난점 외에도 초역사적인 영역, 예컨대 수의 영역이나 본질 영역의 존재를 부인하고, 그와 더불어 사실의 문제와 타당성의 문제를 혼동하는 근본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다. 

“2 더하기 5는 7이다”라는 수학적 명제는 역사 속에서 발견되었으며 발견이라는 이러한 사실의 차원과 관련해 “이 명제는 역사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 명제가 역사적 상황이 변화함에 따라 때로는 부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타당하기도 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수학적 명제의 타당성은 역사성을 지니지 않는다. 따라서 후설은 현상학을 모든 사상가가 특정한 역사 환경 속에 빠져 있다고 강조하는 역사주의와도 구별했다. 그는 역사주의가 상대주의를 함축하기 때문에 반대했던 것이다. 

그는 빌헬름 딜타이가 세계관의 여러 유형을 분류한 데 신뢰를 표현했지만 여러 유형의 세계관의 상대성에서 반드시 나오는 회의주의를 의심하고 거부했다. 역사는 사실과 관련되지만 현상학은 본질의 인식을 다룬다. 후설에게 딜타이의 세계관 이론은 진정한 과학에 필요한 엄밀성을 달성할 수 없는 것이었다. 

후설은 철학을 엄밀학으로 정초해야 하고 철학자는 의식 속에서 의미의 기초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칸트에게 경험적 사실이 상대적 타당성만을 가지고 절대적 또는 필증적 타당성을 갖지 못하듯이 후설에게도 철학은 본질의 과학적 인식을 위한 것이지 사실의 과학적 인식을 위한 것은 아니다.


8. 이렇듯 자연주의와 역사주의가 공통적으로 범한 근본적인 오류는 자연, 정신, 예술, 종교, 본질, 초월적 의식 등 그 존재와 인식 구조에서 서로 구별되는 다양한 사태 영역이 있음을 망각한 채 ‘자연’(자연주의) 혹은 ‘역사’(역사주의) 등 특정한 사태 영역에만 타당한 존재와 인식 원리를 일반화하여 모든 사태 영역에 무차별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 데 있다. 

자연주의와 역사주의의 입장을 따를 경우 모범적인 예로 등장한 사태 영역을 제외한 여타의 사태 영역을 그 사태 영역의 본질에 합당하게 파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차단되는데, 이는 바로 자연주의와 역사주의가 철학의 목표는 참된 인식의 구현에 있다는 철학의 근원적인 이념과 상반되는 일종의 ‘사이비 철학’임을 의미한다. 

이처럼 사이비 철학으로 전락하게 되는 자연주의와 역사주의는 후설의 마지막 저술인 『유럽 학문의 위기와 초월적 현상학Die Krisis der europäischen Wissenschaften und die transzendentale Phänomenologie:Eine Einleitung in die phänomenologische Philosophie』(1936)의 핵심 주제인 ‘철학의 위기’의 진원지이며, 바로 이러한 철학의 위기에서 현대 과학 일반의 위기, 더 나아가 현대인이 처한 실존적 위기가 발생한다는 것이 후설의 진단이다.


9. 후설의 현상학은 “철학은 모든 것의 원리, 뿌리에 관한 학이다”라는 전통적인 철학의 이념을 근원적으로 새롭게 부활시켜 현대 과학 일반이 처한 위기, 더 나아가 현대인이 처한 실존적 위기를 극복함을 목표로 삼는데, 후설에 따르면 이러한 목표는 엄밀학(strenge Wissenschaft)으로서의 현상학을 수립할 때 달성될 수 있다. 

엄밀학으로서의 현상학은 사용되는 모든 철학적 개념들이 엄밀할 경우 실현될 수 있다. 어떤 개념이 엄밀하다 함은 1) 그 개념을 통해 그 개념이 지시하는 사태를 다른 여타의 사태들과 구별하면서 확인할 수 있고, 2) 그 개념을 이루고 있는 부분적인 요소들이 충분히 분절되어 있어야 한다. 즉 그 개념이 명석성과 판명성을 지니고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10.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철학의 근본을 가장 엄밀하게 추구한 대표적인 철학자는 데카르트와 칸트다. 그래서 그는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를 근대철학의 1차 전환으로, 그리고 칸트의 선험철학을 2차 전환으로 규정한 다음, 진정 엄밀한 철학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최종 단계를 자신의 과업으로 삼았다. 

다른 학문과 달리 철학은 가장 근본적인 것부터 문제 삼아야 한다. 실증주의자들이 그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당연시하고 넘어갔기 때문에 참된 의미에서의 ‘실증’도 추구하지 못하고 오히려 결과적으로 자신들이 가장 혐오하는 형이상학에 빠져버렸다. 

실증주의에서 당연시하는 ‘의식’이야말로 가장 해명하기 어려운 수수께끼이자 신비로운 현상인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의식의 경험이 가능한가? 인간은 어떻게 해서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가? 경험을 경험이도록 해주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실증주의에서는 경험의 주체와 대상을 ‘이미 주어진 것’으로 당연시하고, 형이상학에서는 말만 다른 ‘선험적인 것’으로 간주하며, 종교에서는 신이 인간의 경험의 실제 주체라고 본다. 그렇다면 실증주의도, 형이상학도, 종교도 아닌 ‘진정한 철학’, 엄밀학에서는 무엇이 경험을 주재하고 있는가?

3편에 계속

↑↑ 이재성 계명대(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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