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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니체, 존재(存在) 철학에서 생성(生成) 철학으로3 이재성(계명대)


조진향 기자 / joy8246@naver.com입력 : 2022년 02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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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존재(存在) 철학에서 생성(生成) 철학으로3 

이재성(계명대)

13. 자연 상태의 인간은 ‘자기보존’이라는 순수하게 이기적인 동기에 의해 행동한다. 공리주의자들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자기보존에 노력하는 것은 인간이 지닌 본래의 ‘권리’라고 생각했다(홉스, 로크, 벤담). 

그러나 모두가 자연권을 행사하면 자기가 원하는 것을 타인에게서 빼앗아도 좋다는 말이기 때문에 인간들은 끝없는 투쟁 상태에 놓이게 된다. 홉스는 이것을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 불렀다. 그러나 모두가 모두를 적으로 삼는 ‘배틀 로열’ 상태에서는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없다. 

자연권 행사가 허용된 사회에서는 일부 압도적 강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개인이 자기보존, 자기실현의 욕망을 충족할 수 없다. 즉 자연권 행사의 전면적 승인은 자연권 행사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모순을 낳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적 욕구를 단념하고 사회계약(social contract)에 기초해서 창설된 국가에 자연권의 일부를 위임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사리사욕 달성을 위한 확실한 방법이라는 판단을 하게 된다. 이것이 공리주의자들에 의해 상상된 ‘도덕의 계보학’이다.


14. 법률이나 도덕, 재판, 법적 제도가 없는 상태에서는 사유재산 확보가 어렵다. 사람들은 사유권을 보전하기 위해 사유권 일부의 제한을 수용했다. 즉 타인이 것을 완력을 발휘해서 빼앗는 것은 ‘해서는 안 되는’일이 되었다.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선악의 규범이 성립한 것이다. 

그러나 그 도덕률은 어디까지나 ‘사유재산의 보전, 개인의 자기보존, 자기실현’, 말하자면 ‘자연권의 최대의 행사’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 선악의 규범 자체에 어떤 보편적인 의미나 인간적인 가치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이기주의를 철저하게 추구하면 언젠가 이타주의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 공리주의 도덕관이다.


15. 그렇다면 니체의 도덕관은 공리주의 도덕관과 어떻게 다른가? 니체의 도덕관은 근대 시민사회의 도덕론이 아니라 대중사회의 도덕론이란 점에서 획기적이다. 니체의 대중사회는 구성원들이 무리를 이루어 ‘이웃 사람과 똑같이 행동하는’ 것을 가장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것이 바탕이 되는 사회를 가리킨다. 

비판이나 회의 없이 전원이 눈사태를 피해 달려가듯 동일한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것이 대중사회의 특징이다. 니체는 이러한 비주체적인 군중을 ‘짐승의 무리’라고 불렀다. 짐승 무리가 지닌 단 하나의 행동 준칙은 ‘타인과 동일하게 행동한다’는 것이다. 짐승 무리는 누군가 특별하거나 탁월한 것을 싫어한다. 짐승 무리가 지닌 이상은 ‘모두 동일하게’이다. 그것이 짐승 무리가 지닌 도덕이다. 니체가 비판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16. 짐승 무리가 지닌 도덕은 사회의 균질화, 평균화를 지향한다. ‘만인이 평등한 것’은 도덕에서 가장 빛나는 이상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마음을 하나로 해서 모든 특수한 요구, 모든 특권과 우선권에 대해 완강하게 저항’하고 ‘동등하게 동고동락하고, 같은 종교를 신봉하고, 느끼고 살고 고민하는 한 모든 것에 동정할’ 수 있게 된다.(『도덕의 계보』) 

이런 식이면 모두 비슷한 얼굴을 하고, 비슷한 생각을 하고 비슷하게 느끼게 된다. 그리고 개체의 차이를 구별하기 어려운 흐물흐물한 ‘덩어리’가 생성된다. ‘모두가 동일하게’를 목적으로 하는 짐승 무리가 지닌 도덕은 어떤 의미에서 공리주의적이다.


17. 또한 짐승 무리에는 조리 있는 추론이 존재하지 않는다. 짐승 무리는 주체적인 판단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짐승 무리가 가진 관심은 어떻게 해서 ‘균질적인 무리’를 유지할 것인가에 쏠려 있다. 이를 위해서 구성원 전원은 이웃 사람과 동일한 판단, 동일한 행동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공리주의적 시민사회에서는 시민들이 계산한 ‘결과’로서의 전원의 결단이 일치하지만 짐승 무리에서는 전원 일치 그 자체가 ‘목적’이다. 바로 여기서 짐승 무리를 위한 도착적 도덕이 탄생한다. ‘도착적’이라고 하는 것은 짐승 무리는 어떤 행위가 도덕적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을 그 행위에 내재하는 가치나 그 행위가 그에게 가져다줄 이익이 아니라 단순히 ‘다른 사람과 동일한지 아닌지’를 기준으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타인과 동일하면 ‘선’, 다르면 ‘악’이 된다. 이것이 짐승 무리가 지닌 도덕의 유일한 기준이다. 이러한 짐승 무리는 우리시대에 대중이 보여주는 존재양태에 그대로 부합한다.


18. 지금까지 강한 힘에 굴복해서 짐승 무리가 된 사회집단은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 존재했다. 그러나 근대의 짐승 무리는 그것과 결정적으로 다르다. 현대인은 ‘모두가 동일하게’ 되는 것 자체에서 ‘행복’과 ‘쾌락’을 찾아내려 하기 때문이다. 상호참조하며 이웃을 모방하고 집단 전체가 한없이 균질화 되어가는 것에 깊은 희열을 느끼는 인간에게 니체는 ‘노예’(Sklave)라는 이름을 붙였다. 

니체 도덕론의 가장 큰 특징은 이 초라한 대중사회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노예’에 대칭되는 ‘귀족’을 세상을 구할 영웅으로 묘사하는데 있다. 귀족은 대중사회의 모든 결함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무구하고 고상한 존재이다. 인류의 미래를 맡길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노예가 상호모방의 포로라면 귀족은 자기 외부에서 참조할 항목이 없는 자립자이다. ‘외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이자 ‘행동하기 위해 외적 자극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이 바로 니체가 말한 ‘귀족’이다. 

귀족의 행동은 공리주의적 시민처럼 숙고한 끝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노예처럼 외부에 의한 굴복도 아니다. 귀족은 무구하며 직접적이고 자연발생적으로 자기 내부에서 치밀어 오르는 충동에 자기의 몸을 완전히 맡기는 사람이다. 

“기사적‧귀족적인 가치판단의 전제가 되는 것은 강렬한 육체, 싱싱한 젊음, 풍부함, 거품이 넘쳐흐르는 듯한 건강, 그리고 이들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 조건, 즉 전쟁이나 모험, 사냥, 무도, 투기, 그 밖에 일반적으로 자유롭고 쾌활한 활동을 포함한 모든 것이다. 모든 귀족 도덕은 의기양양한 자기긍정에서 생긴다.”(『도덕의 계보』)

4부에서 계속

↑↑ 이재성 계명대(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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