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언니를 알게 된지는 30년째다. 첫직장의 한 기숙사에서 사회생활 적응하느라 허둥대던 나에게 언니는 따스하고 친절하게 고민과 대화를 나눌 상대였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기숙사에서 늦은 시간, 언니들과 밖으로 나가 사먹던 떡볶이와 어묵 국물맛은 아직도 따스하다. 이런 곳이 회사구나 알아갈 무렵, 월급과 손님 접대 등 잡다한 일에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 지도 모르는 나날을 보냈다.
적성과 맞지 않는 뒤치다꺼리 업무에 어지간히 지겨움을 느끼고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했다.
언니와의 대화는 이렇게 지루한 회사생활 사이사이의 활력소가 되어 주었다. 그러던 언니가 시집을 갔다.
신랑은 같은 직장에 근무하다 퇴사한 전임 소장님. 언니처럼 솔직하고 일 잘하는 사람을 데려가는 분은 어떤 분일까 궁금했다. 언니의 결혼식장에서 처음 만난 형부는 수수하고 순박한 인상이었다.
언니와는 가끔 편지와 전화를 주고받으며 안부를 묻곤 했다. 밀양으로 시집간 언니는 딸기농사를 지으면서 아들 진이와 딸 이야기를 가끔 보내주기도 했다.
나도 몇 년 후 결혼하면서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며 가정살림을 꾸렸고, 회사 사람들의 결혼식장에서 J언니를 가끔 만났다. 징검다리를 건너듯 둘다 안부를 묻는 거리를 유지했다.
귀여운 아이들의 사진을 문자로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였다. 언니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며느리로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딸기농사를 지으며 얼굴이 새까맣게 그을렸고, 나도 살림을 사느라 옆도 뒤도 돌아볼 사이없이 나이를 먹었다.
언니의 아들 진이가 군대를 제대하고 나 또한 큰아이가 회사에 취직했을 무렵, 진이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24살. 한창 나이에 어디가 아픈 걸까? 듬직하고 착하기만 한 진이가 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루 빨리 진이가 났기를 얼마나 기원했던가? 내심 진이를 만나고 싶었음에도 한번도 만나지 못한 점이 후회가 된다. 언니의 카카오스토리에서 명절에 친척들과 웃음짓던 진이의 모습을 사진으로 만났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날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날아왔다.
부산과 서울병원을 오가며 힘든 검사를 하고, 재활한다는 말이 들려오긴 했지만 급작스레 2016년 8월 24일 진이가 하늘나라로 떠났다. 건장하고 젊은 사람이 어떻게 그리 쉽게 가버릴 수 있는지.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너무 안타까웠다. 언니와 형부의 상심은 얼마나 크고 아플지 상상할 수도 없었다. 무슨 말이 위로가 되고 힘이 될 수 있을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스물다섯 해를 살고 그렇게 진이는 떠났다. 만난 적은 없지만 언니 부부에게 든든한 희망이 돼 주던 진이가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언니는 카카오스토리에 그동안 올리던 소식을 내렸다.
세월이 흘러 1주기때 언니는 진이를 위해 이 책 ‘그리움으로 물들다’라는 시집을 냈다. 언니말로는 시집이랄 것까지는 없고 아들이 보고싶어 못 견딜 때마다 부산이나 경남 등지로 자전거를 끌고 나갔고, 떠오르는 대로 써놓은 글들을 모은 것이라고 말했다.
보고싶다
맑으면 맑은대로 비내리면 비내린대로 따스하면 따스한대로 추우면 추운대로 그대가 보고싶다
산 그림자 내려와 마을어귀 서성일 때 가로등 불빛 졸고 있을 때 무수한 별빛 쏟아져 그리움으로 머물 때 달빛 별빛 구름속에 가려져 나의 별을 허둥지둥 쫓을 때 늘 시리도록 보고싶다
계절이 바뀌고 세월이 흘러 언젠가 찾아오겠지 언젠가 찾아가겠지 무심한 시간 속에서 오늘도 보고싶다 나도 2016년 3월 12일 동생이 하늘나라로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라 그 상실감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동생을 위해 1주기 미사에 참여한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해준게 없다.
넌 아니?
널 몹시 좋아했다는 사실을 널 엄청 의지했다는 사실을
널 무척 자랑스러워했다는 사실을 널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사랑했다는 사실을
넌 아니? 널 무지 보고싶어 가슴앓이했다는 사실을 널 그리워하며 날마다 하늘과 별을 보며 대화했다는 사실을
널 가슴에 묻고 추억 듬뿍주어 고마워했다는 사실을
(꽃이 흩날림에 추억이 자리잡아 고백하다)
이 책에선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보고픔, 사랑과 상실감이 묻어난다. 어디에도 풀어놓지 못하고 가슴에 묻은 아들에 대한 마음을 글로 쏟아 놓았다. 그래서일까? J언니는 여전히 씩씩하게 웃고 밝고 긍정적이다.
몹쓸병
머릿속이 새하얀 물안개처럼 가슴속이 날아오르는 오색풍선처럼 온몸이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그대의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물들다 (보고픔에 목말라서) ---------------------
당신
오늘따라 너무나 보고싶다
날마다 보고싶다고 말하면 너무 아플 것 같아 들키지 않을 만큼만 살짝
날마다 그립다고 말하면 더 그리워서 헤어나질 못할 것 같아 애써 그리움으로 혼자 덩그러니 -----------------
보고픔
꽃의 눈짓도 아프고 싱그러움의 손짓도 아프다
상큼한 바람의 발짓도 아프고 스쳐지나가는 공기의 몸짓도 아프다
그대가 남기고 간 추억까지 아프다
그냥 아프다 ---------------
너
너무 아름다워도 시리다 너무 행복해도 슬프다 너무 좋아도 아프다 너무 즐거워도 아리다
너와 함께 할수 없다는 게
나
너는 아느냐 내가 뭘 갈망하는지 ---------------------
척
아시죠? 아무렇지 않은 척 잘 이겨내는 척 못 이기는 척
걱정않는 척 괜찮은 척 시기하지 않는 척
긍정적인 척 밝은 척 활발한 척
척척척 견뎌낼려고 미치도록 견디고 있을뿐인데
실은 한번도 큰소리로 울어본 적이 없는, 속으로만 삭히고 괜찮은 척, 잘 이겨내는 척, 씩씩한 척하는 마음을 자연에게 말을 걸면서 서서히 내려놓고 비우는 과정이었던 것같다.
내려놓아보기
햇살이 웃습니다. 내마음도 웃습니다 참새들이 노래합니다 내 가슴에 울림이옵니다 들꽃 풀도 손짓합니다 내눈도 윙크합니다 사그랑 거리는 아름드리 나무가 싱그러움을 줍니다 꼭 안아봅니다
마음의 문을 열며 받아들입니다 나의 하늘이 엄지를 치켜 세워줍니다 머리와 가슴도 엄지척 해줍니다 내 사랑이 늘 지켜보고 응원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한 못난 엄마입니다 환하게 웃어봅니다 사랑합니다 (살짝 생각바꾸기) --------------------------
전화
다이얼을 돌립니다 뚜뚜뚜 연결음 뿐
그대 목소리 숨결 웃음 전해올까봐 쉼없이
가슴이 뜁니다 마음이 전해져 “사랑해요 걱정하지 마세요“ 달콤한 음성이 들립니다. ---------------------------------------
그래야지…
빙그레 웃습니다 꽃도 신록도 좋아하기로 했습니다 사르르 안깁니다
그대와 많이 닮았습니다 사랑스럽고 싱그럽고 향기롭고 행복도 웃음도 줍니다
사실 예전에도 알았습니다 그대와 할수없음에 무의미했습니다
마음을 여니 그대도 세상도 아름답고 이뻐보입니다 ---------------------------
1주기
뜨락엔 살랑살랑 바람이 분다 마음엔 사랑사랑 그리움이 분다
아지랑이 춤추듯 일렬로 차례 기다리며 셔터 누를 때마다 행복한 모습들이 흘러든다
한컷 한컷 울다 웃다 찡그리다 뽀루퉁하다 삐에로 놀이에 젖는다
너에게만은 환한 미소로 다가가고 싶어
미어지게 시리게 아픈 마음 뒤로 감춘 채 해바라기처럼 마냥 웃으며 ---------------------------
100여편의 시에서 진이를 그리워하는 애절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아들 또래의 청년들에게 떡국을 손수 끓여 대접하고 싶어하는 마음, 아들이 급작스레 세상을 떠나기까지의 과정을 담담하게 적어놓은 ‘비석’이라는 글을 보고야 그동안의 과정이 어떻게 됐는지를 알 수 있었다.
2016년 8월 24일 어찌 잊으리... 로 시작하는 글은 지난해 강원도 양구에서 전역해서 복학후 학교를 잘 다니던 아이에게 왼쪽 발가락 하나가 힘이 빠진다는 증세로부터 시작된다. 부산모대학병원을 거쳐 이름난 병원을 다니며 할수있다는 검사는 다 해보았지만 별이상이 없다는 답변.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병으로 메르스 공포도 잊고 서울모병원에 입원해 검사와 재활을 거쳐 퇴원하고, 재활 잘하면 괜찮을거라는 교수님 말씀을 듣고 기뻤다고. 진이는 힘든 검사와 재활을 하면서도 얼굴을 한번도 찡그리지 않았단다. 그런데 재활해도 호전이 없어 다시 찾은 병원에서 ‘급성악성종양’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형부는 모든 일을 접고 서울병원에서 진이에게 매달렸고, 2015년 9월 25일 수술을 시작으로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서도 진이는 부모님이 걱정할까봐 웃으며 힘든 내색도 하지 않아 더 미안하고 감사했다고.
언니는 언젠가 진이가 일어나리라 믿었고, 부산으로 내려와 치료를 계속하면서 식탁에서 가족들과 둘러앉아 밥을 먹고, 친구들이 찾아주고, 둑길을 산책하며 어린시절, 대학, 군생활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 올 봄을 기다렸다고. 그랬건만 진이는 가을하늘 속으로 여행을 떠나고 말았다.
진이가 좋아하던 시래기국과 계란프라이, 된장찌개를 끓이며 떠오른 생각, 가족과 친척, 친구들과 대학동기들, 군대 선임과 동기들이 진이를 그리워하며 보내준 편지, 진이가 아르바이트 해서 선물한 운동화와 티셔츠, 야구와 농구를 좋아하던 진이를 담아 2017년 8월 24일 자그마한 책을 엮어냈다.
50권을 인쇄해서 너에게도 보낸 줄 알았다며 언니가 가지고 있던 마지막 남은 책 한권을 며칠 전 보내왔다. J언니는 "그동안 끊임없이 자전거를 탔고, 눈물이 흐르면 흐르는 대로 나무나 풀꽃, 새와 이야기하면서 슬픔을 달랬는데 그러면 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허리 디스크가 오고, 무릎과 발목 연골이 다 닳았단다“며 웃는다.
병원을 찾았더니 언니는 겪은 일은 이야기했다. 언젠가 자전거를 타다가 깜박 생각에 빠져 다칠 뻔했을 때 언니가 많이 다치진 않았지만 그 순간 “진아 고마워”라는 말이 저도 모르게 나오더라고 늘 진이가 곁에 있다는 걸 느낀단다.
진이가 짧지만 잘 살다간 거 같다고, 내년 5주기에는 지금까지 틈틈이 적은 글을 또 한권의 책으로 엮을 계획이라고 한다.
언니에게 또 다른 목표가 생겼다. 언니의 글이 몇해 전 샘터에도 실렸고, 백일장에 뽑히기도 했다. 그리고 신춘문예에도 도전하는 모습에서 애잔한 마음을 떨치고 열정적으로 잘 살아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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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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