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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벽진면 미륵종 연화사 원행스님 1, `무슨 일이든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


조진향 기자 / joy8246@naver.com입력 : 2020년 08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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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부처님에 대한 믿음에서 기인한 절의 유래와 그곳을 스쳐간 사람들의 신앙과 삶도 함께 스며 들어있다. 

각박한 세상 속에 진실한 신앙과 삶에 대한 깨달음을 따라가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첫 번째 순서로 대한불교 미륵종, 연화사의 주지 원행스님의 삶과 신앙을 7회에 걸쳐 소개할 예정이다.<편집자주>


↑↑ 중앙에 아미타불. 왼쪽이 지장보살. 오른쪽이 관세음보살. 그리고 아기 부처님을 모시고 있다.



1. 성당에서 만난 관세음보살

그 순간 내 뇌리 속으로 관세음보살이라는 말이 휙 지나갔다. 누가 가르쳐준 적도 없는데 머릿속에서 벼락치듯 그 단어가 떠올랐다.

‘내가 왜 여기있지? 왜 이 자리에? 난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닌데!’

그 순간 미사를 마치고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던 신부님을 향해 나도 모르게 고개를 세차게 두어번 저었다. 신부님은 갑작스런 내 행동에 냉담하게 굳은 표정으로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렸다.

‘저 분과는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그 길로 성당 마당에 세워둔 차를 타고 떠나버린 신부님은 그후 성직자의 길을 포기했다는 후문이 들렸다.

그때부터였다. 부처공부를 해야겠다는 강렬한 욕망이 든 것은. 그걸 발심 또는 초심이라고 하던가. 부처님을 찾기 시작한 그 길은 고통스럽고 험난한 여정이었다.

머릿속이 핑 돌면서 눈앞이 어지러웠다. 한 수사님은 한쪽 방향으로 돌던 기가 급작스레 방향을 틀면 굉장히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렇게 마음의 병이 시작됐다.

성당과 인연의 고리가 끊어진 곳에 관세음보살이 있었고, 부처님과의 연결고리가 됐다. 그때 내 나이 28살. 어머니는 그때까지 단 한번도 내 앞에서 부처님을 입에 올린 적이 없었다.

13살때부터 28살까지 오로지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밖에 몰랐다. 성당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여름성경학교에 가고. 서울 혜화동 카톨릭학교에도 열심히 다녔으니까. 한 순간 내가 그렇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고향에서 함께 성당을 다니던 할머니들은 ‘가라는 시집은 안가고 성당을 저렇게 열심히 다니니 틀림없이 수녀가 될거야’라고 말하곤 했는데, 어느날 갑자기 머리를 빡빡 깎고 나타난 나를 보고 그 얼굴들이 놀라움으로 붉게 물들었지.

↑↑ 연화사 극락전과 산신각(극락전 좌측)


2. 32살 원행. 머리를 깎다.

정신병이 걸린 동시에 부처님을 알게 된 후, 부처공부를 하자니 조계종에선 우울증 약을 먹는 나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절했다.

하는 수 없이 어머니가 세운 절 소속 종단인 미륵종 종단을 찾아가 충무원장 큰스님을 만나 머리를 좀 밀어주십사 부탁을 드렸다. 그곳에서 가사장삼을 수하고 비구니계와 사미계를 받고, 원행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내겐 나를 지도할 은사가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묻고 답하며 부처님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공부하다보니 조계종 비구니 스님들하고 인연이 있어 그분들에게 배우기도 하고, 스님들이 입던 승복을 받아입기도 했다. 그렇게 조금씩 인연이 돼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이제야 조금 중물이 들어가는게 어떤건지 알 것 같다.

무엇보다 초심을 잃지 않는게 중요하다. 내가 간절히 원한 건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에게 진리에 대한 가르침을 받는 것.

부처님도 출가할 때 은사가 있어서 6년 고행을 함께한 게 아니라 스스로 성을 뛰쳐나가 보리수 나무 아래서 꼼짝도 안하고 도를 깨우쳤다.

우연히 부산역 맞은편 관음정사에서 종우스님에게 비구니의 어묵동정(걷고 머물거나 앉거나 누워있을 때, 즉 일상생활의 순간순간을 말한다)을 배우고, 나는 누구인가 생각해 봄으로써 자신에 대한 정체성에 눈뜨기 시작했다.

몸이 아파 정신병원에도 가고, 정신과 약을 오래 먹다보니 나태한 생활을 했다. 그래서 더 이상 나태해선 안된다는 생각에 불교서점에 가서 불교서적이나 불교의식 서적을 사와서 혼자 열심히 공부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니 절에 다니던 신도들도 많이 떨어져 나가 가난한 절이 됐다.

- 2편에 계속 -



↑↑ 원행스님과 절을 지키는 강아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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