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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해병대 부사관 아버지를 이어받은 군인의 꿈, 정교부 성주예비군지역대 기동대장


조진향 기자 / joy8246@naver.com입력 : 2020년 07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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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교부 ▲강원도 강릉 출생(50세) ▲성주예비군지역대 기동대장 ▲경북도지사 표창장, 국회의원 표창장, 경북도의장 표창장, 육군참모총장 표창장 등 다수 수상 ▲바르게살기운동 성주군연합회 가족사랑글짓기 대회 최우수상(2019년), 우수상(2020년) 수상 ▲적십자 헌혈유공 은장, 금장(2018. 1. 27)

말보다 행동이 앞서기는 어렵다. 헌혈에 대해 숭고하다고 이야기하지만 막상 행동으로 옮기기는 더 어렵다.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느냐가 그 사람이라는 말이 있듯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 또한 드물다. 

얼마전 바르게살기운동 성주군협의회와 청년회가 진행한 ‘코로나극복을 위한 사랑의 헌혈 나눔’에서 지금까지 모아온 헌혈증서 70장을 기중한 정교부 성주예비군지역대 기동대장에게 어린시절의 꿈과 헌혈을 하게된 계기가 무엇인지에 대해 들었다.


■ 두달에 한번하는 전혈, 2주후에 하는 혈장헌혈

2012년 예비군중대로 오면서부터 헌혈을 시작했는데 인터넷에서 혈액부족이나 특히 소아암 환자들의 소식을 접하고 돕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다른 특별한 이유는 없다. 시작한 지 8~9년 됐는데 두달에 한번 전혈과 성분헌혈을 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100회가 다 되어간다.

성분헌혈은 기계가 혈액에서 혈장이나 혈소판을 분리해서 뽑은 후 피는 다시 채혈자에게 넣어주는 헌혈로 3-4일이면 정상으로 돌아오지만 2주에 한번 가능하다. 전혈은 일반적인 헌혈로 피를 뽑고나서 회복되는 기간이 지난 두달 후 헌혈이 가능하다.


■ 헌혈 후 몸상태는?

몸이 많이 피곤하다. 매주 토요일 오전에 헌혈하고 12시쯤 집에 오면 그대로 서너시간을 푹 잔다. 가족들은 헌혈하고 나서 잠만 잔다고 하는데 몸이 많이 피곤하다. 헌혈한 후 3-4시간은 쉬어야 한다.

전혈은 10분에서 15분, 성분헌혈은 30분에서 40분 정도 걸린다. 피를 뽑은 후 분리해서 성분만 추출하고 다시 넣어주니까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헌혈하고 나면 무거운 것을 못 들게 하는데 오른손은 써야하니 주로 왼팔에 헌혈을 한다. 시간이 오래 걸려 힘들기는 하지만 돈 안들이고 봉사하는 제일 좋은 방법이 헌혈이다.

↑↑ 2018년 1월 50회 헌혈기념으로 대한적십자사 헌혈유공 금장을 수상한 정교부 기동대장

■ 두달에 한번 전혈을 하고 2주에 한번 혈장헌혈을 하면 겹치지는 않는지?

겹칠수가 없다. 전혈을 하고난 두달 후부터 전혈이든 혈장이든 헌혈을 할 수있다. 예를 들면 6월 1일에 혈장헌혈을 하면 2주 뒤인 6월 15일에 혈장이나 전혈을 할 수 있다. 전산에 기록되기 때문에 마지막 헌혈부터 일정기간이 지나야 헌혈할 수 있다.


■ 헌혈후 헌혈기부권으로 3,500원을 기부한다.

헌혈후에는 햄버거 교환권, 영화 할인권, 헌혈기부권 등을 준다. 그중 헌혈기부권을 신청하면 헌혈후 내 이름으로 3.500원씩 기부된다. 한번할 때마다 3,500원씩 기부하는 거다.

또 연말정산도 된다. 헌혈할 때 과자나 음료수가 미리 준비돼 있어 헌혈하기 전 물도 두잔 정도 마시고, 체력 보충을 해야하기 때문에 음료수나 과자도 마음껏 먹으라고 한다.


■ 처음 헌혈할 때 거부반응이 일어나지 않는지?

처음엔 헌혈장소까지 가기가 힘들었다. 무섭다기보다 헌혈의 집이 구미에 있고, 집이 칠곡이라 거리가 멀어서 시작하기가 힘들었다.

현역 때는 전방에서 근무하다보니 헌혈을 못했다. 경기도 연천, 강원도 철원지역은 말라리아 유행지역으로 약을 먹기 때문에 헌혈 자체가 안된다. 헌혈을 하고 싶어도 못했다.


■ 현역과 예비군중대에 복무한 기간은?

1990년부터 2011년까지 현역으로 복무했다. 2011년 1월 31일 전역 후 예비군중대 지휘관 시험을 준비해서 그해 10월 합격하고 2012년 1월 1일부터 칠곡대대 북삼읍대에 근무하기 시작했다.

대대에서 짧게는 5년에서 최대 7년까지 있을 수 있고, 5년이 지나면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다. 연장하고 싶다면 1년 단위로 2번 연기할 수 있어 한 지역에 7년간 근무할 수 있다. 칠곡대대에는 5년 6개월 근무하고 성주대대에 2017년 7월 1일자로 왔으니 만 3년됐다.


■ 지역 예비군의 역할은?

예비군의 주임무는 전시에 그 지역을 지키는 일이다. 평시는 전시에 대비해 예비군 훈련과 관리를 하고, 부수적으로 해당 읍면에서 대민지원 요청이 들어오면 대대에 보고해서 지원할 수 있는 역할을 한다. 즉, 지역사회와 군을 연결하는 중간역할을 하고 있다.


■ 성주군지역대 여성예비군소대의 활동은?

성주읍과 행복홀씨 MOU를 채결해 충혼탑과 공적충훈비 주변에 풀을 뽑거나 환경을 정화하는 일을 맡고 있다, 그리고 독거노인 위문품 전달과 현역 훈련지원, 6.25전사자 유해발굴 지원 등 주로 봉사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


■ 개인적으로 참여하는 봉사활동이 있다면?

오태한마음선도단에서 북삼 오태중·고등학생을 위해 야간에 순찰을 돌면서 학생들의 안전한 귀가를 돕고, 청소년 선도활동을 2015년부터 시작해 5년 됐다.

2주에 한번 정도 근무시간 이후 야간에 참여하고 있다. 월 1회인데 평균 두 번정도 참여하는데 현재 코로나19 때문에 봉사가 잠정 중단됐다.

또 굿네이버스 국제아동돕기는 2012년부터 시작했다. 초등학교 들어가는 몽골어린이에게 매달 3만원씩 결연을 맺어 지원해 왔는데 지금 16살 정도 됐다.

↑↑ 굿네이버스 국제아동돕기로 맺어진 몽골어린이

북삼읍대에 있을 때는 독거노인과 조손가정에 월 5만원씩 지원하기도 했다. 그리고 북삼읍 오평에 사는 6.25참전 유공자 한영교 할아버지는 보금자리주택사업의 일환으로 선발해서 집수리 공사를 지원하고 그 이후에도 계속 찾아뵜는데 몇해 전에 돌아가셨다.

↑↑ 북삼읍 오평 6.25참전 유공자 한영교 어르신과 함께


■ 어린시절 꿈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장래희망이 군인이었다. 아버지가 해병대 직업군인이셨다. 군복이 어려서부터 그렇게 좋았고,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고3까지 장래희망이 한번도 변함없이 군인이었다. 꿈을 꾼대로 이뤄졌고, 올해가 군생활한 지 30년째다.

거창한 꿈이 아니라 소박해서 이룰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버님이 해병대 부사관 출신으로 월남전에도 참전했다. 19년간 군생활을 하다가 상사로 전역한 후 제가 중학교 2학년인 1985년에 뇌출혈로 돌아가셨다.

올해 바르게살기 성주군연합회가 주관한 가족사랑 글짓기대회에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글로 써서 우수상을 받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나이가 49세, 지금 제 나이가 쉰이니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아졌다. 군인이셨던 아버지 사진이 딱 두장 남아있다. 2002년 태풍 루사때 집이 침수돼 사진이 다 없어졌다.

↑↑ 정교부 기동대장이 간직하고 있는 아버지 사진

■ 어린시절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있다면?

아버지는 해병대 출신으로 남을 돕거나 주는 것을 좋아했다. 또 술을 즐기셨다. 강릉 옥계가 고향인데 바닷가에서 아버지 친구 중 선장들이 많으니까 배가 들어오면 고기나 조개를 몽땅 사와서 동네에 다 나눠줬다. 아버지가 사오면 세수대야에 고기를 담아 동네 집집마다 돌리고, 조개도 바가지에다 담아 다 나눠줬다.

누구 집에 쌀이 떨어졌다면 우리는 굶어도 그집에는 갖다줬다. 그러니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하셨다. 우리는 굶어도 남이 굶는 건 못보는 성미였다.

아버지가 베푸는 것을 좋아했는데 돌아가시고나니 빚만 엄청 많이 남았다. 그래서 결혼을 앞둔 형이 결혼비용으로 모은 돈으로 빚을 갚고 1-2년 미뤘다가 결혼했고, 누나가 일찍 생업전선에 뛰어들고, 어머니와 저도 막노동을 해서 빚을 갚았다.

지금이라도 살아계신다면 잘 해드렸을텐데 어머니도 가끔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살아계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리워하신다.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군기를 잡거나 엄격하진 않았다. 그런데 가족여행을 간다든가 기억에 남는 추억이 별로 없다. 사업을 했지만 어려워 항상 술에 취해 있거나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지금은 그런 모습도 그립다.

↑↑ 정교부 기동대장의 부모님 사진


■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정년까지는 군생활을 하면서 헌혈이나 봉사를 계속할 예정이고, 퇴직 이후를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대학교에 복학해서 복지학과 공부를 할까도 생각 중이다, 그때가 되면 여유가 생기고 앞으로 20년은 더 일할 수 있다.


■ 좌우명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해야할거라면 남보다 내가 하자는 생각이다. 남에게 지시하기보다 내가 먼저 하는 편이 속이 더 편하다.


■ 청소년이나 청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제 아이들에게도 항상 이야기한다. 뭔가 하라고는 강요하지 않는데 단 나중에 공부 안해서 후회할 일은 하지말라고 한다.

자기 꿈대로 이뤄지는 게 현실에서는 없다. 꿈이 자기 희망대로 이뤄지면 좋겠지만 꿈을 이루는 사람은 극소수다.

난 아이들에게 허황된 꿈을 꾸지말고 지금할 수 있는 것을 하라고 한다. 변호사나 의사가 될 거야라는 허황된 꿈을 갖기 말고 내가 지금할 수 있는, 내 능력에서 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지라고 이야기한다.

청년들도 사실 군생활 후 사회에 나가면 돈을 많이 벌고 싶고, 이런 저런 꿈을 이야기하지만 사실 나가보면 어렵다. 직업 갖기도 힘들고 꿈에 맞는 직업을 갖기는 더 힘들다.

높은 곳만 보지말고 낮은 곳도 봐야한다. 나보다 못한 사람도 있고 낮춰서 보면 일자리가 많다. 높은 곳만 보기 때문에 일을 못 찾는 거다. 자기 능력에 맞게 직업을 찾아야지 높은 곳만 봐서는 안된다.

자신의 현재 실력과 능력에 맞는 직업부터 도전해 나가라고 조언한다. 현실을 직시하고 작은 것부터 이루면 그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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