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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편에 이어 -
□ 학교에서 드론을 직접 가르치셨는데 중점으로 추진하는 사업은?
여기 드론이 있다. 작지만 한세트가 13만원 정도다. 2018년에 먼저 익숙하게 조정하려고 개인적으로 마련한 드론도 있다. 이후 학교에 구비해서 아이들을 직적 지도하기도 했다. 지난해엔 한반마다 한시간씩 드론 조정 기본교육을 해서 한때 드론 붐이 일기도 했다.
올해는 드론에 좀 더 집중할 생각이다. 방과후부서로 드론부를 신설하고 외부 강사를 채용했다. 드론교육을 확대해서 미니 드론보다 좀 더 크고 관심을 가질 만한 드론을 구비할 생각이다.
작은 드론이라도 처음엔 동기유발이 잘 됐다. 드론으로 카메라 촬영도 하고, 영상촬영도 된다.
카메라로 아침놀이 시간에 운동하는 장면을 촬영하기도 한다. 영상을 찍어 학교 누리집에 올리기도 하면서 동기 유발도 하고 학부모들에게 홍보도 했다.
그동안 아이들이 드론을 제법 많이 가지고 놀았다. 교장실에서 보관하고 누구든 드론을 가져가서 쉬는 시간, 점심시간, 방과후시간에 날린다.
어떤 분들은 교장실에 애들이 마음대로 드나들어도 되는지 묻는데 저는 교장실을 저의 공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교장실에 아이들이 오는 건 당연하다.
애들이 와서 ‘교장선생님 오늘 드론하고 싶어요’ 그러면 오냐 가져가거라. 아이들이 언제든지 와서 가져갈 수 있도록 드론 배터리를 충전해두고 있다. 언제든지 쓰고 저희들이 또 충전해놓는다.
드론을 갖고 놀다가 부딪혀서 망가지면 어쩌나 그런 걱정하지 말고 안전하게 가지고 놀다가 잘못되는 것은 교장선생님이 책임질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너무 조심하다보면 애들이 소심해진다. 일부러 멀리 날리지만 않으면 된다.
그래서 날개 부품도 미리 준비해뒀다. 드론에서 제일 많이 망가지는 게 날개다. 어디에 부딪히면 날개가 잘 부러진다. 그럼 날개만 갈아 끼우면 새 거다. 망가지면 다시 갈아 끼워주면 새것이 된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고 꽤 많이 바꿔줬다. 제가 고치는데 관심이 많으니까 웬만하면 제가 다 해준다.
학교가 바뀌려면 교장부터 바뀌어야 하는 것처럼 이것도 마찬가지다. 교장실이 아이들에게 위엄을 떠는 방이 돼서는 안 된다. 언제든 아이들이 노크하고 들어와서 이야기할 수 있고, 거기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드론이 있으니 좋은 일이 아닌가?
또 하나는 올해 특수유치원이 들어온다. 일반학교에 특수학급이 있듯 저희 학교도 특수학급이 있다. 특수학급이 있는 학교는 종종 있지만 특수 유치원은 잘 없다. 저희 학교에 병설유치원이 있는데 특수 유치원이 생긴다. 그래서 지금 공사 중이다.
올 3월에 특수교육이 필요한 3명의 아이가 특수유치원에 들어온다. 절실히 필요한 시설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유치원 특수학급은 없었다. 인근 칠곡군 왜관에 있지만 각 시군마다 거의 없다.
특수 유아를 키우는 부모입장에서는 이점이 굉장히 힘들다. 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나서 키우기도 힘든데 그 아이를 맡을 교육기관이 없다. 그래서 시설이 있는 대도시로 떠나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집은 이곳이지만 어쩔 수 없이 가야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지난 가을 세분의 부모님이 마음을 모아서 저한테 왔다. “저희들한테는 너무나 절실하니 꼭 좀 받아달라”고 했다. 그 일은 학교장의 결정사항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학교에서 꺼린다. 솔직히 잘 안 만들려고 한다. 특수아를 받아들여서 통합교육으로 일반아이들과 같이 때로는 섞이기도 하고 분리되기도 하는 교육이 이뤄져야한다. 그러면 일반학급 부모들이 특수아하고 어울리는 자체를 꺼리는 부모들이 있을 수 있다. 정말 잘못된 생각이지만. 그러다보면 정상적인 학급도 분위기가 와해될 수 있다. 그러다보니 다른 학교에서는 잘 안 하려고 한다.
그러나 저는 과감하게 받아들였다. 왜냐면 우리보다 잘사는 나라들 대부분이 다르고 부족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 함께 끌어안고 살아간다.
우리나라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고 성장하는 복지국가로 가려면 그런 아이들도 끌어안고 함께 가야된다. 그래서 저는 제가 챙기겠다고 나라도 챙기면 성주군에 유치원 특수학급이 한곳이라도 생기지 않겠나 싶다.
그러면 성주군에 있는 어려운 아이나 남과 다른 아이가 여기 올 수 있다. 어느 누가 안 해도 제가 우리 학교에 특수유치원을 신설하겠다며 도교육청에 요구했고, 도에서 승인을 받았다. 그래서 지금 공사 중이다. 이 일로 부모님들이나 특수교육을 바람직하게 이해하는 부모님들이 좋게 이해하고 있다.
이곳은 바람직한 인성을 가진 아이를 키워내는 것이 가장 큰 목표고 비전인 학교다. 부족한 아이나 남다른 아이라도 함께 가는 것, 그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교육기관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한다.
□ 기억에 남는 제자가 있다면?
제가 작년 3월초에 교장실에 인형 두개를 가져왔는데 하나는 도라에몽이고 하나는 다른 캐릭터 인형이다. 어떤 용도냐면 1학년에 입학했는데 적응 못 하는 아이들이 항상 있다. 적응 못하는 아이들을 달래기 위한 도구이다.
한번은 아이 하나와 엄마를 우연히 발견했다. 9시가 거의 다 되가는 시간인데 수돗가에서 엄마랑 씨름을 하고 있었다. 팔을 잡으면 뿌리치고 그래서 제가 가까이 다가가서 왜 그런지 물었다.
아이는 여자애인데 씩씩거리면서 화가 나 있고, 엄마는 옆에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다가 아이가 입학하고 힘들어하면서 엄마하고 안 떨어지려하고 교실에 안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그 엄마와 아이를 교장실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 아이보고 앉고 싶은데 앉으라고 했더니 바로 인형 옆에 엄마랑은 떨어져서 앉았다. 엄마랑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아이에게 저 인형 이쁘지 않아? 그러니까 고개를 끄덕하고, 교장선생님이 너한테 인형을 주고 싶은데 그랬더니 표정이 확 달라졌다.
저 인형의 주인은 너 같아. 그랬더니 좋아하길래 “왜 다른 친구들은 선생님들과 공부를 하는데 너는 왜 가기 싫은 거야?” 일학년이다 보니 말보다 표정으로 이야기해서 제가 거의 이야기했다.
“오늘 이 시간 이후로 엄마랑 잘 떨어져서 교실에 들어가는 것 교장선생님과 약속할 수 있니? 그럼 내가 이 인형 줄게”그랬더니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인형을 안겨주고 약속했다. “오늘 이후 너가 약속을 못 지키면 교장선생님한테 이 인형을 다시 가져오고 크기가 같은 다른 인형을 하나 더 사와야 돼, 엄마한테 용돈받은 걸 아꼈다가 벌칙으로 인형을 하나 더 가져와야 된다”고 약속했다.
그 이후로도 계속 관찰했고 아침에 엄마하고 씨름을 하는지 안하는지 눈에 보인다. 일학년으로 분리불안인데 그게 쉽게 바뀌겠는가? 교장 선생이 인형을 준다고 해서 하루 만에 바뀔 거 같으면 그렇게 힘들게도 안 했을거다.
여전히 엄마랑 씨름하는데 위치가 달라졌다. 이전에 공개적으로 하다가 거기서는 못하고 계단 뒤나 구석에 숨어서 엄마랑 씨름하고 있는 게 내 눈에 띄었다.
그래서 보고도 못 본체 지나갔는데 일일이 간섭하면 애가 스트레스를 받는다. 못 본 체하고 넘어가긴 했지만 그 아이는 나를 보고 의식하는게 느껴졌다. 언젠가는 조금이라도 바뀌려니 하고 계속 지켜봤더니 결국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 떨어졌다.
그 이후 급식소에서 밥 먹을 때 지나가면서 “인형은 잘 있지?” 물으면 “네”라고 대답했고 그 이후에도 계속 관심을 가졌다.
담임선생님의 역할도 있지만 교장선생님의 역할도 중요하다. 담임선생님도 아이를 위해 나름 노력했지만 아이들 입장에서 볼 때는 같은 역할이라도 담임선생님보다 교장선생님의 관심에서 그 정도가 더 크게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저는 잘하는 아이보다는 부족한 아이들을 더 많이 기억한다. 2002년 구미 원호초에 근무할 때 맡았던 특수아이가 생각난다. 그 아이는 정말 어려웠다. 자폐아인데 4학년 40명이 한반이었다.
그 아이는 싫거나 울적하면 하루 종일 소리를 질렀다. 아무도 통제가 안됐다. 우리 반 40명중에 39명이 어떻겠나? 입장을 바꿔놓고 39명의 부모들은 또 어떤 생각을 가질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힘겨운 한해였다. 그때 그 아이의 엄마는 특수학교로 안 보내고 일반학급에 통합교육을 원했다. 그 아이가 지금은 나이가 꽤 됐을거다. 연락이 되진 않지만 그 녀석이 두고두고 제 머릿속에 남는다.
어쨌거나 교육이 그런 아이들도 함께 가야되는 건 맞지만 뭔가 방법적으로는 좀 더 고민해봐야 되지 않았나. 무조건 부족한 아이를 챙기고 배려한다고 같은 반에 두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많은 생각을 했던 해였고 그래서 잊지 못할 아이다.
그 당시는 힘겨웠다. 왜냐면 일반 아이들을 챙겨 수업을 해야 하는데 그 아이한테 시간을 빼앗겨서 39명의 아이를 내버린다면 또 담임의 역할이 아니지 않나?
그때 제가 무엇을 생각했느냐면 이 아이가 손재주가 있고, 그림을 잘 그렸다. 뾰족한 연필로 세밀하게 그림을 그리는데 굉장히 재주가 있었다. 그래서 시험삼아 만화그림을 줬더니 그림을 그리는 동안은 조용했다. 그래서 수업시간에 그림그리기 숙제를 줬고 그러면 조용히 그림에 열중했다.
그렇지만 나중에는 그리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만화는 그리기가 쉬우니 일반 사진, 실물 사진을 줬다. 사진은 어려워했지만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그렸다. 그래서 나중에 제가 머리를 굴렸다. 이 녀석이 어떻게 하면 집중하는 시간을 오래할까 하고.
그래서 생각한 게 학급에서 단체로 찍은 40명이 있는 사진을 크게 뽑아서 그리라고 줬다. 처음에는 보더니 신경질을 내면서 불만을 표현했다. 그래도 너는 잘 할 수 있어, 그려봐. 하면서 용기를 불어넣어줬더니 어쨌든 시작은 했다.
그런데 웬걸, 한 삼분의 일쯤 그렸나, 그리다가 말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는데 맨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소리를 지르는데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나 보다.
그 이야기를 세월이 지난 지금에선 웃으면서 할 수 있는데 그 아이한테는 엄청난 숙제였을 거다. 결국 그 그림은 완성하지 못 했다. 그 아이가 지금은 20대 후반쯤 됐으리라 생각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제가 그런 아이들에 대해 공부하고 챙기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 아이가 세밀화를 잘 그린다는 소문이 나서 다른 반 선생님들이 그림을 그려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그 아이를 보는 시선이 조금 바뀌긴 했다, 물론 반 아이들이 많이 힘들었다. 담임인 제가 다른 시선을 그 아이에게 보이면 반 아이들이 다 똑같이 볼 거 같아 굉장히 조심하고 노력했다. 우리는 힘들지만 함께 가야된다고 늘 아이들한테 강조했고, 아이들이 이해했다. 그 방법밖에는 없었다.
지금도 기억해보면 그랬을 때 아이들이 따라와 주고 대견했다. 요즘은 학급에 그런 아이가 있다면 글쎄 1년을 참아줄 수 있을까? 한달, 1주일도 참기 어려울 듯하다.
그때는 큰 문제없이 넘어갔고,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학부모들이 몰라서 그때 넘어갔을까? 분명히 아이들을 통해서 이야기를 전해 들었는데 그 친구에 대해 나쁘지 않게 전달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그 중심에서 선생님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다.
- 3편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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