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사물의 가장 순수한 형태인 수학적 도형이 이럴진데 복잡한 사물, 나아가 사회적 현상 같은 것이 의식의 대상이라면 애초부터 객관적 태도란 공염불에 불과할 것이다.
예컨대 교육제도라는 사회적 문제가 의식의 외부에 독립된 대상이라면, 그래서 실증주의에서 말하듯 누구의 눈에나 명백한 것이어서 관찰과 연구를 통해 해답을 알 수 있는 것이라면, 왜 이렇게 아침저녁으로 교육제도가 바뀌는 것일까?
백년지대계라는 교육제도가 정권에 따라, 주무 장관에 따라 걸핏하면 바뀌는 불합리한 일들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이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실증주의적 착각 때문이다.
외부의 대상은 언제나 본질의 일부만을 의식에게 보여줄 뿐이다. 원뿔을 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나 삼각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나 모두 원뿔이라는 본질의 일부만을 말하고 있을 따름이다. 대학별 본고사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나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나 모두 교육제도라는 본질의 일부만을 이야기하고 있을 따름이다.
13. 그렇다면 본질의 전부, 본질 자체를 알 수 있는 절대적인 지식은 어떻게 획득할 수 있을까? 후설은 그것을 의식 외부(즉 사물 존재)에서 찾을 게 아니라 의식 안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원뿔을 원뿔로서 경험하게 되는 것은, 무조건 원뿔을 열심히 관찰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 원뿔에 대한 여러 시점(혹은 관점)의 관찰을 의식 안에서 종합함으로써 가능하다.
후설에 따르면, 의식은 전통 형이상학과 달리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실증주의에서는 의식을 외부 대상과 마찬가지로 고정된 실체처럼 취급했지만, 의식의 존재방식은 외부 대상과는 전혀 다르다.
비유하면 의식은 비닐봉지와 같다. 비닐봉지는 그 자체로 형태가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무엇을 안에 집어넣어야만 형태를 갖춘다. 그렇게 해서 정해지는 형태는 안의 내용물에 따라 달라진다. 책을 담으면 사면체가 되고 공을 담으면 구가 되는 식이다. 그렇다면 비닐봉지의 존재방식과 내용물의 존재방식은 달라야 할 것이다.
14. 후설이 그의 주저 『이념들I』에서 “전체 현상학을 포괄하는 주제는 지향성이다”라고 천명했듯이 엄밀학으로써의 철학을 근본이념으로 하는 현상학이 탐구하여야 할 사태는 ‘지향성intentionalität’이다.
지향성 개념은 후설의 스승인 브렌타노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본래 중세 스콜라 철학의 개념이던 지향성은 브렌타노가 발견하여 심리학의 기본개념으로 도입했다. 스콜라 철학에서 지향성 개념은 물리현상과 심리현상을 구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즉, 물리적 현상과는 달리 모든 심리적 현상은 자기 속에 어떤 대상을 간직하고 내포하고 있다(intendere=안에 가지고 있다, intentionalität=지향성). 즉 사랑에는 사랑의 대상이, 증오에는 증오의 대상이 들어있다.
스콜라 철학에서 지향성은 이와 같은 내재성의 의미였으나 브렌타노는 ‘의식은 언제나 대상에 관한 의식’이라는 관계적 의미로 지향성을 규정한다. 브렌타노도 지향성은 아직 의도나 목표 추구가 아니라 단지 어떤 것이 대상으로써 의식 속에 내재함을 의미한다.
후설이 보기에 브렌타노의 지향성은 마치 거울에 영상이 비치듯이 모든 의식작용이 자기 속에 대상을 간직함, 의식 속에 소유함을 말하는 것이고 의식과 대상이 일대일 대응함을 의미하는데 불과하다.
브렌타노는 심리적 현상을 표상(表象 : 소리를 들음, 색을 봄, 온냉을 촉각함), 판단(사유, 회상, 기대, 확신, 의심), 그리고 감정적 동요(희노애락, 희망, 애증) 등 세 가지로 구분하고 이 세 가지 현상의 상호관계를 추적하고 있다.
15. 후설은 브렌타노가 아직 심리학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브렌타노의 심리적 현상이라는 개념 대신에 지향적 체험이나 작용이라는 말을 쓸 것을 제안한다. 따라서 후설의 지향성은 의식이 대상과 일대일 대응한다는 정적 관계가 아니라 의식이 어떤 것을 대상으로 인식한다,
즉 의식의 대상성을 형성한다는 동적 성격을 의미한다. 후설의 지향성은 대상 인식, 대상 형성이라는 목표를 지니며 목적론적 성격을 띠게 된다. 후설에게 지향성은 주객의 상관관계를 의미하며 대상과 의식작용의 불가분리성을 의미한다.
브렌타노에서 결여된 지향성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① 대상이 작용 속에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이 지향적 작용의 목표가 되고 있는 대상과 관계 맺는 것이다. 의식은 대상으로 향한다.
② 지향작용은 대상화한다. 지향적 대상은 감각자료(sense-data)의 형태로 주어져 의식에 의해 대상으로 된다.
③ 지향작용은 통합한다. 예를 들면 한 나무가 푸르고 크며 흔들린다면 그 모든 내용을 분리된 다른 나무가 아니라 한 나무에 귀속시킨다.
④ 지향작용은 관계를 맺는다. 즉 한 대상의 앞면과 뒷면 그리고 위아래를 서로 연관시킨다. 한 대상의 앞면을 볼 때 그 뒷면에 대한 기대를 갖는다.
⑤ 지향작용은 구성한다. 지향작용은 지향적 대상을 구성하며 한 대상의 전체상을 만들어 낸다.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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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성 계명대(철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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