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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로 풀어본 한개마을 이야기(1)/이기백


조진향 기자 / joy8246@naver.com입력 : 2026년 04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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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풍수로 풀어본 한개마을 이야기(1)

이기백
경북향토사연구회 회원(성주)


Ⅰ. 한개마을 조성내역

 한개마을은 세종 때 성산이씨 15세손인 이우(李友)에 의하여 터를 잡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개령 대조동에서 홀어머니와 두 동생과 살면서 오직 학문에만 열중하였든 이우는 세종의 부름을 받고 벼슬길에 나가게 되었다.

 그 후 진주 목사를 역임하고 세종 27년(1445)에는 경기좌도 수군첨절제사를 역임하였는데 어전에서 사직 인사를 올릴 때에 세종께서는 이우의 고향을 물으시고 세종 20년(1438)에서 24년(1442)까지 18왕자와 세손의 태장지를 만들고 세종 21년(1439) 사헌부 주청으로 성주읍 경산리에 성주사고를 설치할 때 서진산 밑으로 이사하도록 이르셨다는 말이 구전으로 전해오고 있다. 

 이우가 한개마을을 개척한 것은 당대에 풍수지리를 잘 아는 지관의 말에 이끌려서 지금의 한개마을 터를 잡았을 것이라 여겨진다. 이우의 어머니인 정언공 배위 성산여씨(星山呂氏) 묘소(선남면 도성리)와 이우의 처 광주김씨(선남면 문방리)가 한개마을 인근에 있음은 그가 한개마을의 터를 잡고 살았음을 미루어 볼 수 있다.


Ⅱ. 마을 이름 한개의 유래

 ‘한개’라는 마을 이름은 예전에 이곳에 큰 개울 또는 나루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한’은 크다는 뜻이고 ‘개’는 개울이나 나루를 의미하는 말이다. ‘한개’라는 이름은 곧 ‘큰 개울’ 또는 ‘큰 나루’를 의미하는 순 우리말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Ⅲ. 마을의 지형 지세

 한개마을은 소백산의 줄기인 황악산의 동쪽 금오산과 연결된 도고산(347m)의 맥이 이여져 영취산(331m)에 이르러 마을의 주산이 되었다. 영취산에서 남쪽으로 갈라진 왼편 산줄기와 서남쪽으로 갈라진 오른편 산줄기가 마을을 감싸듯 청룡등 백호등이 되어 뻗어 내리고 남서쪽 백천으로만 열려있는 소규모의 유역분지로 영남 제일의 길지를 이루고 있다. 

 옛부터 마을 앞 백천 유역에는 모래가 많아 과수원이나 밀, 보리, 고구마, 땅콩 등 밭 작물과 채소 등을 재배하였고 백사장에는 버드나무를 심어 목재료로 활용하여 왔다. 마을 앞 시냇물은 초전면 소성리에서 발원하여 용봉리를 거쳐 월항면 안포리로 내려오는 백천의 시냇물과 벽진면 용암리 고당산에서 발원하여 성주읍쪽에서 내려온 이천의 시냇물이 마을 앞 삼봉에서 합류하여 서쪽에서 동쪽으로 마을을 환포하며 선남면 쪽으로 흘러 낙동강으로 유입된다.

 한개마을 주산인 영취산에서 서남쪽 방향으로 형성된 해발이 낮은 고도(35~70m) 에 매우 완만한 경사도(2~10도)를 자리하고 있으며, 마을 앞 낮은 곳은 주로 논과 과수원으로 이용되어 왔다. 마을 좌우에 있는 청룡과 백호등은 급경사지(20~40도)로 마을을 포근히 둘러싸고 있어 폭설이나 강풍 등 기상재해가 비교적 적은 곳이다.

 마을 뒷산인 영취산 정상부는 거대한 암석이 노출되어 있고, 아래로 마을쪽으로 내려오면서 점점 크기가 작고 모서리가 둥근 암괴류 등이 표면에 박리현상을 일으키면서 극와고택 후원까지 싸여 있다.
경신년(1920) 대홍수 때 감응사 뒷산에서 굴러내려 왔다는 큰 바위가 지금도 마을의 동편 가옥 인근(이영돈) 옆 도랑에 머물러 서 있다.

 마을 전체로 볼 때 뒤편은 경사가 있고 토색은 황토색이나 아래로 내려오면서 점점 그 색이 옅어져서 회백색 또는 회색으로 변해 있다. 동편과 서편의 지형과 토성도 다소 다름을 알 수 있다.

 마을 동편 감응사에서 내려오는 도랑(소하천)은 비교적 지하에 암반이 많고 밑으로 흐르는 물이 말단부에서 샘으로 용출된다. 다소 높은 청룡등을 끼고 있어 아침 해 뜨는 시간이 조금 늦다. 한편 서편은 백호등이 가까워 바람이 적고 아침 해 뜨는 시간이 빠르며 지대도 약간 높고 경사가 있어 자연배수가 잘된다. 자하에 암반이 적고 토양은 황토색 또는 황백색 양토로 되어 있다.


Ⅳ. 마을 내 거주 명당의 위치

 성산이씨 15세손인 진주목사 우(友) 선조께서 터를 잡은 후 장남 유구(悠久)의 후손들은 그 후 어느 시기에 이곳을 떠나 지금은 성주 구연(龜淵) 정화리(井花里) 및 고령 양전(良田) 합천 소사(所沙) 평촌(坪村) 외곡(外谷) 묘산(妙山)과 창녕 영산(靈山) 등지에 우거해 있다.

 차남 영구(榮久)는 손자대에 절손 되었다. 그리하여 셋째 아들인 진사 양(陽)이 아들 손형(遜亨), 시형(始亨), 겸형(謙亨), 승형(升亨), 亨)의 5子를 두어 마을에서 함께 살았다. 그 후 맏집(遜亨), 셋째(謙亨), 넷째(升亨)는 무후(无后) 되고 둘째인 시형(始亨)이 외동 아들 발(勃)을 두었고, 발(勃대에 성범(成範), 성간(成簡), 성절(成節), 성잠(成箴), 성주(成疇) 등 5子를 두어 오늘의 대포(大浦), 중포(中浦), 도촌(道村), 하촌(下村), 동촌(東村), 남계(南溪)파의 파조가 되었다. 

 한편 진사공 양(陽)의 다섯째 아들인 복형(復亨)께서 외아들 영손(英孫) 손자 숙동(淑東)을 두었는데 그 후손이 교항(橋項)의 파조가 되었으며, 그 후 현재의 대구시 달성군 옥포면 교황으로 이거하여 교항 마을의 입향조가 되었다. 

 각 소파의 명칭 역시 고향인 한개마을과 무관하지 않다. 맏아들인 성범(成範)은 웃마을에(현재 서녘 웃막) 둘째인 성간의 후손은 마을의 입구 앞길 부근((道村)에, 셋째인 성범의 후손은 웃마을 아래와 도촌 사이(下村)에, 넷째인 성잠의 후손은 웃마을의 동쪽(東村)에, 다섯째인 성주의 후손은 웃마을의 남쪽(하촌의 동쪽) 개울 남계(南溪) 부근에 그리고 작은집인 숙동(淑東)의 후손들은 다리목에 (橋項) 각각 터를 잡아 한 동네에서 함께 살다가 각자 생활의 거주지를 찾아 이향하였으나 소파의 명칭은 지금도 옛 한개마을에서 살았던 곳의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Ⅴ. 마을 내의 지명 구분

 마을내의 명당 지명은 자연스럽게 붙여진 이름이다. 경계선도 불분명하고 중복된 지명을 부르는 곳도 있다. 집안간에는 구역별로 집단을 이루고 살았으며 때에 따라 약간의 문화적 차이도 다소 있었다. 특이한 것은 남인과 노론이 마을에 함께 살면서도 집안 대소간에는 별 다툼이 없었다. 이는 아마 혈육지간 자생으로 조직된 친목계 모임이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1) 동녘
마을 가옥들의 중심선인 위로 극와댁 아래로 해저댁을 기준으로 청룡등 쪽인 동편을 동녘이라 부른다.
⋅문중재실 2곳(월봉정, 첨경재), 정자 1곳(일관정), 마을회관 1동
⋅청룡등의 높은 용맥에 가리어 아침 해 뜨는 시간이 다소 늦으나 오후에 햇볕이 길다.
⋅초가집이 많으며 주로 계파의 종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2) 서녘
마을 가옥들의 중심선인 위로 극와댁 아래로 해저댁을 기준으로 백호등 쪽인 서편을 서녘이라 부른다.
⋅문중재실 1곳(서륜재), 서당 2곳(여동서당, 한주정사)
⋅아침 해 뜨는 시간은 빠르지만 백호등에 가리어 동녘보다 해가 일찍 진다
⋅고택들 대부분이 이곳에 자리하고 있고, 숙파의 종인들이 주로 거주

3) 웃마을(웃막)
정확한 구분선은 없으나 통상적으로 불리우는 바에 따르면 마을 동서간 통로인 중앙길(한양가는 과거길)을 따라 진사댁 위쪽을 말한다.
⋅지대가 높고 약간의 경사가 있다.
⋅전통 한옥(기와집)이 많다.
⋅주로 숙파, 백파, 중파, 종인들이 거주함

4) 아랫마을(아랫막)
마을의 동서간 통로인 중앙길(한양가는 과거길)을 따라 진사댁 아래쪽을 말한다.
⋅지대가 다소 낮고 평지다.
⋅초가집이 많다.
⋅거주자 중 계파, 백파 종인들이 많다.


다음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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