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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존재(存在) 철학에서 생성(生成) 철학으로 2
-현대 사유의 문을 열다-
이재성(계명대)
7. “예술의 발전은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이중성과 관련이 있다”는 유명한 말로 시작되는 이 고대 그리스 문화론에서 니체가 목표로 한 것은 고대 그리스인이 느꼈을 공포와 도취를 그 스스로 자기 내부에서 만들어 추체험하는 것이었다.
『비극의 탄생』을 쓰는 동안 니체는 거대 고대 사람이 되어 감격하고 전율했다. 예컨대 그는 『비극의 탄생』에서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 분석을 시도한다. 보통 연극 관객은 어떤 경우에도 무대 위에서 연기되는 사건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의식하고 있다.
그에 반해 그리스 비극에 등장하는 코러스는 이야기의 단순한 방관자가 아니다. 사건을 계속 주시하며 때로는 사건에 경악하고 개입도 한다. 여기서 니체는 “코러스는 ‘이상적인 관객’이다”라는 주장을 하며 “그리스인의 비극 합창단은 무대 위의 인물을 살아 있는 실제 인물로 생각해야만 했다. 오케아노스 딸들의 합창단은 거인 프로메테우스를 눈앞에서 실제로 보고 있다고 믿으며, 무대의 신은 자기 자신과 똑같이 실재하는 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비극의 탄생』)
따라서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는 등장인물처럼 무대 위의 드라마에 휩쓸려 소리치고 울고 웃으며 그 사건을 내부로부터 살려낸다. “완전하고 이상적인 관객이란 무대 위의 세계가 미적으로가 아니라 육체적, 경험적으로 자기에게 영향을 미치게 하다고 가르치고 있다. 오, 그리스인들에 대해서는!”(『비극의 탄생』)
8. 니체는 관객이 코러스를 매개자로 해서 비극이 지닌 ‘사물의 밑바닥에 있는 생명’을 다룰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매우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분석이 무대에 펼쳐지는 세계를 ‘살아 있는 육체를 가진 경험적인 것으로 느끼고 받아들인’ 그리스 코러스의 감동을, 니체 스스로 ‘살아 있는 육체를 가진 경험적인 것으로’ 느끼고 받아들인다는 ‘이중구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니체는 그리스인의 이질적인 것에 대한 ‘공감의 방법’에 ‘공감’한 것이다. 니체의 이런 생각은 먼 시대, 먼 조상의 경험을 전승하기 위한 매우 독특하면서도 정통적인 방법이다. 예컨대 기예를 전승할 때, ‘스승을 보지 마라. 스승이 보고 있는 것을 보라’는 말을 한다. 제자가 스승을 보고 있는 한 제자의 시야는 ‘지금 자기’의 위치를 바꿀 수 없다. ‘지금의 자기’를 기준 삼아 스승의 기예를 해석하고 모방하는 것에 만족한다면 기예를 대를 거듭할수록 낙후되고 변질되고 말 것이다.(오늘날의 수많은 전통 기예가 이런 이유로 추락하고 있다)
추락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스승 자체나 스승의 기예가 아니라 ‘스승의 시선’, ‘스승이 욕망’, ‘스승의 감동’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스승이 그 작업이나 기예를 통해서 ‘실현하고 했던 것’을 사정거리에 둘 수 있다면, 그리고 자기의 제자에게도 그 심상을 전할 수 있다면 ‘지금의 내’가 보기에 어느 정도 이질적으로 보인다고 해도 ‘원초의 경험’은 오염되지 않고 현대에 되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9. 그리스 비극을 보고 감동받은 그리스인들의 ‘감동의 방법’ 그 자체에 감동했다는 ‘곱해진 감동’에 의해 니체는 ‘모든 문명의 배후에 끊이지 않고 살아남아 세대나 민족사가 여러 번 바뀌어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을 다루고자 했다. 헤겔은 이것을 ‘자기의식’이라고 주장했다.(자기의식은 ‘지금의 나’로부터 벗어나 상상적으로 규정된 이질적인 자리에서 자기를 돌아보는 것을 의미)
니체는 고전문헌학자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곳의 다른 문화 속에 있는 사람들의 신체적인 경험을 바로 ‘그 몸이 되어’ 내부에서 상상적으로 추체험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자기의식’의 획득가능성을 모색했다. 먼 태고의 낯선 곳에 사는 사람의 몸속으로 편안히 들어가, 한계를 모르는 신체적인 상상력으로 증명된 지성만이 적절한 ‘자기인식’을 가능하게 한다는 사실을 통찰했던 것이다.
10. 그러나 니체가 동시대인들을 향해 ‘우리는 우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라고 격렬하게 비판했던 것은 편안한 지성의 움직임이 치명적인 방법으로 손상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니체는 동시대인들이 ‘억측에 의한 판단’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고 단정한다.
니체의 동시대인, 즉 19세기 독일의 부르주아이며 그리스도교 신자였던 그들은 스스로 보기에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가치판단이나 심미판단을 역사적으로 형성된 편견이나 선입견이 아닌 인류 일반에게 보편적으로 타당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들은 어떤 특정한 시대의 특정한 지역에서 통용되는 고유의 편협하고 왜곡된 세계관에 사로잡혀 있었고 그것은 ‘세대나 민족사가 계속 변해도 영원히 불변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자기의식의 이 치명적인 결여 때문에 니체의 눈에는 동시대인들의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고 자기가 어떤 방법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를 모르는 끔찍한 바보로 비쳤던 것이다.
11. 그렇다면 왜 이처럼 바보들이 19세기 말에 갑자기 많아진 것일까? 니체의 계보학적인 사고는 그 역사적인 연원을 따지고 묻는다. 간단히 말하면, 니체의 그 이후 모든 저작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서 현대인은 이렇게 바보가 되었는가?’라는 제목을 붙여도 무방하다. 여기서 니체의 도덕론(道德論)을 통해 그의 계보학적인 사고의 모습을 살펴보자.
12. 니체는 자신의 도덕론에서 인간에게 자명한 것으로 간주되는 ‘선악’(善惡) 개념을 끄집어낸다. 그리고 ‘선악’ 개념이야말로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밝히려 한다. “우리의 선악은 과연 어떤 기원을 가지고 있을까? (...)
인간은 어떤 조건을 토대로 선악이라는 가치판단을 생각해낸 것일까? 그리고 그들 가치판단 자체는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 그것들의 가치판단은 이제까지 인간의 진보를 저해해 왔는가 아니면 촉진시켜 왔는가?”(『도덕의 계보』) 이처럼 니체는 선악의 관념을 의심한다.
선악이라는 가치기준은 언제 생겼을까? 무엇을 위해, 어떤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생겼을까? 누가 발명했을까? 그리고 그 발명은 과연 인류에게 도움이 되었을까? ‘도덕이 무슨 도움이 될까?’ 이것은 매우 도발적인 물음이다.
물론 이런 물음은 니체가 처음 제기한 것이 아니다. 이미 영국 경험론 철학자들, 즉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 에 의해 오랫동안 연구되어온 물음이다. 선악의 관념은 각 사회집단이 지닌 역사적 조건에 따라 변화한다는 것에 대해 그들은 니체와 동일한 입장을 취했다. 그렇다면 그들과 니체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무엇인가?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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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성(계명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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