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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카를 마르크스, 자본주의의 혁명적 변혁으로서의 철학 4
이재성(계명대) 교수
헤겔이나 마르크스 모두 ‘자기로부터의 괴리=조감적 시야’의 확보는 단순한 관조가 아니라 ‘생산=노동’에 몸을 던짐으로써 타자와의 관계 속으로 들어갈 때에만 달성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즉 노동하는 사람만이 ‘나는’이라는 말을 입에 올릴 수 있다는 뜻이다.
‘생산=노동’에 의한 사회관계에 뛰어들기 전에는 본질이나 특성이 결정된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존재하기는 하겠지만 ‘나는 무엇인가’를 정의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나’는 결코 스스로를 직관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나를 직관한다’는 것은 타인들 속으로 뛰어든 ‘나’를 풍경으로 조망할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제자를 갖지 못한 선생에게 내재하는 ‘스승의 위엄’과 같은 것이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좌파에 속하면서 헤겔의 부정철학에 대한 반기를 들고 반성개념을 생산개념으로, 이데올로기를 실천으로 이행시키면서, ‘자아의식’을 ‘노동’으로 치환시켰다. 마르크스는 헤겔 철학에 내재한 근본적인 문제로써 주체와 객체를 나누었을 때, 주체의 인식이 있는 그대로의 대상을 인식할 수 있는가를 확인하고 증명할 방법이 없다고 보았다.
역사는 철학적 설명보다는 역사 전개의 운동 양식으로부터 경험적으로 읽어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마르크스에게 “사유가 대상적인 진리를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는 결코 이론적인 문제가 아니라 실천적인 문제”였다.
철학의 목표는 영원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 속에서 올바름을 파악하는 문제가 된다. 즉 영원한 진리는 사라지고 실천적 맥락 속에서만 진리가 존재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에게서 모든 비판적 활동, 모든 철학적 활동의 기초는 혁명적 실천이었다.
근대 철학이 추구하는 ‘영원한 진리’는 마르크스의 관점에서는 잘못된 시도였다. 그는 자기 사유의 진리성을 대상과 일치하는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성, 힘, 차안성을 실천 속에서 증명하는 문제로 보았다.
인간의 주체는 인간의 활동적 생활 과정, 즉 사회적 관계 속에서 파악된다. 그리고 그 주체는 사회적 실천을 통해 만들어지는 사회관계 속의 구성물이다. 마르크스는 주체를 출발점으로 인간의 본질을 관념이나 정신에서 도출하는 관념론과 투쟁하는 과정에서 주체 개념을 물질적/사회적 관계로 환원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의 핵심은 자본주의가 단순히 인간들 사이의 경제적 불평등을 조장한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인간을 철저하게 소외시킨다는 데에 있다.
소외(Entfremdung)란 원래 인간이 만들어낸 산물이 인간에게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지배하는 현상을 말한다. 자본주의에서 임금 노동자들은 생산의 주체이다. 그러나 임금 노동자들은 자신의 생산물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생산물에 의해서 지배당한다.
마르크스는 이것을 ‘노동의 소외’라고 부른다. 임금 노동자 계급은 ‘시민이면서도 시민이 아닌 자, 인간이면서도 인간이 아닌 자’였다. 그들은 ‘소외’된 인간이었다. 마르크스는 소외를 인간적 현상이 아니라 정치적 현상으로 파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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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성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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