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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상강정上江亭에 대한 고찰(3)/이정록


조진향 기자 / joy8246@naver.com입력 : 2026년 01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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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상강정上江亭에 대한 고찰(3)

이정록
경북향토사연구회 회원(문경)

 상강정은 속리산 문장대에서 발원한 낙동강의 지류인 농암천이 쌍용계곡을 지나 농암면을 관통하고 상강정을 휘돌아 가은읍에서 희양천과 합류한다. 상강정 앞을 돌아가는 그 물줄기가 꿈결같이 아련하다. 옛날에는 이곳 상강정 주변 산자락에 봄이면 진달래가 만발하고 마을에는 집집마다 살구꽃이 장관을 이루어 꽃 대궐을 연상케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진달래도 살구꽃도 귀한 몸이 되었지만 정자 앞에 널따랗게 펼쳐진 들판을 보노라면 가슴 가득 풍요로움을 느낀다. 강변을 따라 늘어선 소나무는 옛날에 심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노송이 되어 긴 그림자를 강물에 드리우며 사시사철 푸른 자태로 상강정의 풍치를 돋우고 있다.

 처사공께서는 이런 평화로운 대자연 별천지 속에 은거하며 생활할 때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오언 절구 시 한 편이 전한다.

산도 있고 물도 있는 이곳에 有山有水處
영화도 욕됨도 없는 내 몸이 無榮無辱身
밭 갈며 하루를 보내고 耕田消白日
약초 캐며 청춘을 보낸다오 採藥送靑春


 상강정은 깎아지른 절벽 위 처마 끝에 지어진 제비집처럼 위태위태하게 벼랑 끝자락에 몸을 의지하고 있다. 상강정으로 오르는 길이 시멘트로 조성한 층계를 올라야 하는데 계단이 좁고 가파로와 정자로 오르는 길이 만만치가 않다. 이런 불편함 때문인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것이 상강정의 흠이라면 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층계를 올라 상강정에 다다르면 상강정 정자의 뜰이 넓지는 않지만 담장을 두르고 있어 안정감은 있고 멀리 바라다보이는 전망이 너무 좋아 입에서는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발밑을 흐르는 농암천의 맑은 물, 천변을 따라 늘어선 소나무, 소나무 너머로 펼쳐진 넓은 들판. 들판이 끝나는 저 멀리 보이는 까마득한 산… 산…

 삼강정은 마을과 가까우면서도 속세를 떠난 신선의 세계가 연상될 만큼 때 묻지 않은 자연경관이 상강정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철철이 바뀌는 상강정의 풍경이 어느 한철 예쁘지 않을 때가 있을까마는 한여름 찌는 듯한 삼복지간에 시원히 흐르는 농암천 물줄기와 귀를 시끄럽게 하는 매미소리가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고, 저 멀리 산마루 저만큼 두둥실 피어 나는 뭉개구름이 또한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상강정 담장 안 동쪽에 별도로 모셔진 정려각(旌閭閣)이 있는데 이 정려각(旌閭閣)은 처사공의 장모님이신 강릉최씨의 정려각이다. 조선 세종때 이조참판을 지낸 최치운(崔致雲) 따님이신데 남편인 사직공이 별세하자 다음과 같은 애사(哀詞)를 지어 제사 지내고 식음을 끊어 사직공을 따라 저세상으로 갔다.
중종대왕(中宗大王)께서 최씨부인의 절행(節行)을 들어시고 최씨부인을 포양(褒揚)하여 정려(旌閭)를 내렸다.

붕새와 황새 함께 노닐 때는 鳳凰于飛
화합하여 노래하며 즐거웠는데 和鳴樂只
붕새 날아가서 돌아오지 않으니 鳳飛不下
황새 홀로 슬프게 우는구나. 凰獨哭只
머리 갸우뚱 하늘에 물어봐도 搔首問天
하늘은 다만 묵묵할 뿐 天黙黙只
하늘과 바다가 아무리 넓은들 天長海濶
이 내 한 만큼 끝이 없겠는가. 恨無極只

 열녀 최씨 정려각(烈女 崔氏旌閭閣)은 중종년대(中宗年代)에 가은읍(加恩邑) 전곡리(前谷里)에 세워졌었는데 1550년경 소양동(瀟陽洞)에 상강정(上江亭)을 건립하면서 상강정 경내로 옮겨 세웠으며 1980년대 가은~농암간 도로 확장으로 상강정(上江亭)과 함께 현 위치로 옮겼다.

 처사공(신숙빈) 장모님이신 열녀 최씨부인의 얘기를 하자면 강릉의 명소인 오죽헌(烏竹軒) 얘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강릉 오죽헌은 최씨의 친정아버지인 최치운(崔致雲)공께서 처음 건립한 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건립된 오죽헌은 최치운의 아들 최응현(崔應賢)에게 물려주게 되고 최응현이 후사가 없어 부득이 사위인 이사온(李思溫)에게 물려주게 되었다. 

 장인인 최응현(崔應賢)에게서 받은 오죽헌(烏竹軒)은 이사온(李思溫)도 후사가 없어 오죽헌을 다시 자신(이사온)의 사위인 신명화(申命和)에게 물려주게 된다. 이사온에게 오죽헌을 물려받은 신명화가 신사임당의 아버지이며 또한 신명화는 처사공의 둘째 형인 신숙권의 아들이다. 이런 연유를 거쳐 처사공의 처 외조부(崔致雲)께서 건립한 오죽헌이 처사공의 조카(申命和)에게 대물림되는 야릇한 인연으로 돌아오게 되어 신사임당과 율곡이 오죽헌에서 태어나는 인연으로 이어진 것이다.

瀟陽之上江亭 卽我先祖處士先生 晩年遐遯之地也 先生以太宗大王第三女 貞善公主之外孫主 公主祀(時 宜山之子 南怡伏法 國家先生主祀) 際命屢下 歷監察·縣監等職而燕山戊午 士類綱打無意進仕 與司直安公挈家南下 卜居於瀟之陽 山之夾洞天而左右者至江而止 或蒼崖壁立 或巖石陟起 上曰上江 下曰下江 築亭自娛 自號曰處士 鄕邦後進 遠近士友 聞風負笈者多 先生愈自謙誨 不以師道自處而 其諄諄敎誨 未嘗怠焉 旣以聖明臨御 旌招屢勤 恩禮備至 而高踏之志介如也 易簀而顧子弟曰 吾以喬木世家 當昏朝善類殲刈之日 不能出一言匡救 逮逢聖明 徒受恩命 是吾罪也 死後勿書職號 勿請誌狀 以招人譏云云 後人依歿而社之禮 建社于遺墟而俎豆之 自是一丘一壑 莫非我先祖遺囑餘芬而 況於上江亭乎

 소양(瀟陽)의 상강정(上江亭)은 곧 나의 선조이신 처사 선생께서 만년에 멀리 은둔하여 계시던 곳이다. 선생은 태종대왕의 제3녀인 정선공주의 외손자로 공께서 그분의 제사를 맡아 지내고(그때 의산의 아들인 남이(南怡)가 법에 죽고 없어서 국가에서 선생에게 제사를 올리게 했다.) 벼슬을 제수하는 명이 여러 번 내려서 감찰(監察)·현감(縣監) 등 직을 역임하셨다.
 연산조 무오년에 선비들이 일망타진 되는 것을 보시고 벼슬에 나아갈 뜻이 없어서 사직 안공(문성공 안유의 현손인 안귀손)과 더불어 가족을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와 소양의 양지에 사시니 산은 좁은 동천(洞天) 좌우로 강에 이르러 멈추어서 혹은 푸른 절벽이 벽처럼 서있고 혹은 암석이 높게 이루어져서 위에 있는 강은 상강(上江)이요 아래 강은 하강(下江)이다. 정자를 짓고 스스로 즐기시며 호를 처사라고 하셨다.
 나라 안의 여러 고을에서 후진들과 원근의 사우들이 풍문을 듣고 먼 곳에서 공부하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선생께서 더욱 겸손하셔서 사도(師道)로써 자처하지 않고 자세하게 가르치는데 조금도 게을리하지 않으셨다. 얼마 안 되어 성명(聖明)이 내리심에 여러 차례 벼슬을 권하는 은혜로운 예가 갖추어 이르렀으나 높으신 뜻은 한결같았다.
  임종에 이르러 자제들을 돌아보고 이르시기를 “내가 대대로 큰 벼슬을 한 명문으로 어두운 조정을 만나서 어진 이들이 죽어 없어지던 날에 능히 한마디 말로 바르게 구하지 못하였는데 마침 성명(聖明)을 만나서 오히려 은혜로운 명을 받은 것이 나의 죄이다. 죽은 뒤에 직함을 쓰지 말고 지문(誌文: 묘지 봉분 옆 땅에 묻는 작은 돌에 글을 적은 것을 말함)이나 행장(行狀)의 (글을) 청하여 사람들의 기롱을 자처하지 말라.”고 하셨다.
 뒷사람들이 돌아가신 뒤에 사(祠)를 세워 예를 할 때 유허에 사를 세워 제향하니 이로부터 한 언덕 한 골짜기가 나의 선조께서 남기신 발자취요 남아서 꽃다움이 아닌 것이 없는데 하물며 상강정(上江亭)에 무엇을 더 보태야 하겠는가.

 위의 상강정 중수 기문은 숭정기원 후 5년(1650) 후손 현국(鉉國)의 중수기 전문(前文) 일부이다. 이 기문을 보면 처사공께서 운명하기 직전에 유언하기를 “내가 대대로 큰 벼슬을 한 명문으로 어두운 조정을 만나서 어진 선비들이 죽어 없어지던 날에 능히 한마디 말로 바르게 구하지 못하였는데 오히려 은혜로운 명을 받아 사헌부감찰 거창현감을 지낸 것은 나의 죄이다. 라고 하시며 죽은 뒤에 직함을 쓰지 말고 지문(誌文)이나 행장(行狀)의 (글을) 청하여 사람들의 기롱을 자처하지 말라.”고 하며 처사로 남고자 하신 것은 공의 청렴결백함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처사공의 장인은 고려의 대유(大儒)인 안유(安裕)의 현손(玄孫)이다. 안유(安裕)는 우리나라에 성리학을 처음 전래(傳來)한 분으로서 문묘에 배향된 동방 18현 중 한 분이다.

 중종(中宗) 임금이 등극하시어 처사공에게 수차례 출사(出仕)할 것을 권했으나 그때마다 사양하시고 고사(固辭) 하시니 지개(志槪)가 한결같았다. 공께서 중종 15년(1520년) 돌아가시니 향년 64세였다. 공은 영강를 굽어보는 구수동 연소혈(燕巢穴) 자좌오향(子坐午向)에 배위이신 순흥안씨와 쌍분으로 영면(永眠)하시고 공의 5세손 석번에 의하여 행장을 찬하고 한천서원(寒泉書院)에 배향되었다.

 공은 장인인 사직공과 함께 많은 후학을 양성하였는데 후손과 후학들이 한천서원 전신인 소양리사를 숙종초에 창건하여 사직 안귀손 공과 한천처사를 봉안하고 1694년에 농암면 농암리 가실목 한천으로 옮겨 한천향사(寒泉享祀)로 개칭하여 오다가 추담(秋潭) 성만징(成晩徵) 선생을 추배하였으나 대원군 집권 시절 전국적으로 시행된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다. 광복 직후인 1946년에 한천서원 옛터인 농암면 농암리 가실목 양지바른 산자락에 한천단(寒泉壇)를 설단(設壇)하고 1984년 개수(改修)하여 매년 3월 중정일(中丁日)에 제향(祭享)하고 있다. 한천단의 편액은 문희공의 17세손 해공(海公) 신익희(申翼熙) 선생의 친필로서 가실목 한천서원 옛터인 한천단(寒泉壇) 출입문인 솟을대문에 걸려있다.


이상으로 문경 상강정上江亭에 대한 고찰을 모두 마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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