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안다는 것은 무엇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불행하게 하는지 안다는 뜻이에요. 또 어떤 길이 진정한 사랑과 안녕으로 향하는 길인지 알고 그 길을 선택할 줄 안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그동안 배운 것보다 우리가 훨씬 더 크고 힘 있고 장엄한 존재임을 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자신을 온전히 알고 또 사랑할 때 그 사랑과 알아차림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달할 수 있어요. 두려움 가득하고 무언가 결핍되어 있고 기능도 못하는 자아가 아니라 온전히 깨어 있고 충분히 보살핌받고 최고 볼륨에 맞춰져 있으며 기쁨으로 가득한 자아를 지니고 사는 것이 우리 자신을 위해서 또 다른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누군가를 실망시킬까봐 두려워하는 것은 진정한 자신을 잃어버리는 첩경이다. 진정한 자신을 허락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날 밤 내가 설령 세상 사람들 전부를 실망시킨다고 해도, 어떻게 하면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할지 고심하던 예전의 나로는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주고 또 주었고 결국은 나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줄 것이 없게 되자 암에 결렸었다.
임사 체험 이후로 인류의 기발한 상상력에 깜짝깜짝 놀라게 될 때가 있다. 특히 인류가 수천 년 동안 만들어놓은 사후 이야기들이 그렇다. 임사 체험 전에는 나도 죽음을 극단적으로 무서워했다. 암에 걸린 것도 다 내 나쁜 업보 때문이라고 믿었고, 죽은 다음에도 그동안 알게 모르게 지은 지에 대한 벌을 받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죽은 뒤 좋은 업보를 받기 위해 한 일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런 행동들은 아무리 좋아 보인다 해도 사랑이나 공감, 연민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라 나쁜 업보를 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임사 체험 동안 나는 육체만 떠나 있었던 것이 아니다. 나는 내 인종, 문화, 성별, 종교까지 다 떠나 있었다. 물질적 자아가 마음속에 일생 동안 쌓아왔던 가치와 믿음의 층들을 모두 벗겨낸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 물질적 삶의 정체성을 이루던 모든 것이 내 본래의 무한한 자아와는 아무 상간도 없음에 놀라고 말았다. 내 무한한 자아가 그러한 요소들을 갖고 있지 않다면 그 모든 층들을 벗겨낸 다음 남는 것은 무엇일까? 그 모든 층들을 다 벗겨내도 나의 자아는 작아지지 않았다. 아니 훨씬 더 큰 무엇이 되어 있었다. 나는 순수한 본질이었고, 순수한 의식이었고, 순수한 사랑이었다. 그리고 신 자체였다. 이름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느낀 그 전체성에 꼭 들어맞는 어휘는 어차피 없으니까 말이다. 다만 나는 나 자신과 내가 살면서 만난, 나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도움을 주기도 한 모든 사람에게 오직 공감과 연민과 사랑만을 느꼈다. 그리고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조차, 그들도 나도 몰랐지만, 다 나를 위해 그랬음을 알게 되었다.
사후에 심판받을 거라고 믿으면 지금 여기에서의 삶은 대체로 부정적인 방식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믿으면 저 세상에서 일어날 일을 계속 두려워할 것이고, 사랑과 선 자체를 위해 사랑하고 착하게 살기보다는 사후에 처벌받을 것이 두려워 사랑하는 척, 착한 척 살아갈 것이다. 두려워서 하는 행동은 사랑해서 하는 행동과는 다르다.
임사 체험 동안 나도 살면서 잘못한 것들을 후회했지만, 그 후회는 온전히 나 스스로 한 것이지 외부의 어떤 존재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나를 내려다보며 내가 잘못하기를 기다렸다가 내가 잘못하자 이때다 하고 처벌하는, 나와 분리되어 있는 심판자 따위는 없었다. 우리는 자신이 감시받고 심판받으며 그 심판은 우리 밖의 누군가가 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이원성의 세계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이원성의 셰계에서는 오직 순수한 의식, 순수한 조건 없는 사랑, 그리고 완전한 수용만이 존재한다. 우리 바깥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모든 것이 분명해진다. 그리고 피해가와 가해자 둘 다 같은 의식의 한 부분임을 깨닫게 된다. 우리와 그들이 아니라 우리만 있을 뿐이다. 우리는 모두 동전의 양면인 것이다.
, '나로 살아가는 기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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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타 무르자니의 두 번째 책 <나로 살아가는 기쁜>은, 첫 번째 책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를 쓴 후 삶에서 다시 부딪히는 전통적이고 문화적인 편견으로 인해 사람들이 고유의 순수한 의식이 얼마나 상처받고 고통받았는지를 되돌아보며 잘못된 신념이나 문화적 편견을 짚은 책입니다. 작가가 암으로 죽음의 세계를 직면하고 현재의 삶으로 다시 돌아오기로 결심한 것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는 아버지와 친구의 조언과 함께 그녀가 사랑하는 남편과 어머니의 마음을 고스란히 느꼈기 때문이고 이곳으로 돌아와 사람들에게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주기 위해서 였습니다. 죽음 이후 암이 완치되고 세상 사람들에게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본래의 자신이 어떠한 존재였는지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후 세계에 가게 된다는 지옥과 천국이라는 곳은 실재 존재하지 않고 단지 사람들이 만들어 낸 기발한 상상력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불안하고 두려워하게 만드는 삶으로부터 벗어나 순수한 존재, 아무 조건없이 사랑받는 존재로서 자신을 회복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작가는 잘못된 신념 열가지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습니다. 1. 행한 대로 받는다. 2.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이기적이다. 3.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다 주어라. 4. 내 안의 무언가가 잘못되었으니 고쳐야 한다. 5. 의료 체계가 내 건강을 책임진다. 6. 그건 단지 우연일 뿐이다. 7. 죽으면 죄과를 받는다. 8. 영적인 사람은 에고(자아)가 없다. 9. 여자는 남자에 비해 열등하다. 10. 늘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거나 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나를 맞추려고 하다보면 본래의 자신을 잃게 된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그것보다 진정으로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가슴에 따르는 삶을 살게 될 때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된다고 합니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고 아프게 하는 사람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거나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는 순수한 존재이자 무한하고 조건없는 사랑을 받는 존재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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