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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상강정上江亭에 대한 고찰(2)/이정록


조진향 기자 / joy8246@naver.com입력 : 2025년 12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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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상강정上江亭에 대한 고찰(2)

이정록
경북향토사연구회 회원(문경)

 남이(南怡)는 1443년 세종 22년에 태어났다. 1460년 세조 6년 약관의 나이도 되기 전인 17살의 나이에 무과에 장원급제하여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 세조 12년 다시 발영시(拔英試)에 급제하였다.

 남이는 괴이한 인연으로 계유정란공신 권람의 딸에게 장가를 들었는데 일찍 사별하였다. 남이는 1467년 명을 받아 포천(抱川)·영평(永平) 등지에서 도적을 토벌했고, 이시애(李施愛)가 반란을 도모하자 대장(大將)이 되어 구성군(龜城君) 이준(李浚)·조석문(曺錫文)·허종(許琮)·강순(康純)·어유소(魚有沼) 등과 토벌에 참가하여 공을 이루어 적개공신(敵愾功臣) 1등에 책록되고 의산군(宜山君)에 봉해졌다.

 같은 해 서북변(西北邊)의 건주위(建州衛) 여진을 토벌하는 등의 공으로 승승장구하여 공조판서에 제수 되었고 그 이듬해인 1468년에는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管)을 겸했으며, 이어 병조판서에 발탁됐다. 

 남이는 약관의 나이에 호조·병조 판서를 지냈으나 그를 시기하는 유자광 등에 의하여 역모의 누명을 쓰고 능지처참이라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한명회와 계유정란(癸酉靖難)을 주도했던 남이의 장인 권람은 그때 이미 세상을 떠났으므로 수렁에 빠진 남이의 방패막이가 되어주지 못했다.

백두산 돌을 칼 갈아 없애고 白頭山石磨刀盡
두만강 물은 말을 먹여 없애리 豆滿江水飮馬無
남자 이십 세에 나라를 평안케 하지 못하면 男兒二十未平國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하겠는가. 後世誰稱大丈夫

 유자광이 남이의 역모를 고변할 때 이 한시의 3행 (男兒二十未平國)의 평(平) 자(字)를 얻을 득(得) 자로 고쳐 (男兒二十未得國)으로 개조하여 모함했다고 한다.



 남이가 국문을 당할 때 강순이 영의정의 직책으로서 국청에 들어와 참관했다. 그를 보고 남이는 어전(예종)에 아뢰었다.

 “강순대감도 이 모의에 간여했습니다.”
 깜짝 놀란 강순이 예종에게 자신은 이 사건과 무관하다고 강변했다.

 “신은 본래 평민으로서 밝으신 임금을 만나 벼슬이 정승에까지 이르렀는데 또 무엇을 구하려고 남이의 역모에 간여했겠습니까?”
임금이 고개를 끄덕이자 남이가 다시 아뢰었다.

 “전하께서 대감(강순)의 거짓말을 믿고 죄를 추궁하지 않는다면 일을 그르치게 될 것입니다!”
라고 하니, 이에 임금이 마음을 고쳐먹고 형리를 시켜 강순에게도 국문을 가하게 했다. 강순이 나이 80세였으므로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거짓 자백을 하였다.

 국문이 끝나고 감옥으로 가면서 강순이 남이에게 항변하였다.

 “남이야, 너는 나에게 무슨 원한이 있기에 나를 모함하였느냐?”
 이에 남이가 두 눈을 부라리며 되받아쳤다.

 “원통한 것은 저와 대감이 매한가지입니다. 대감께서는 제가 역적모의를 하지 않은 것을 누구보다 잘 아시고 영상 자리에 계시면서 저의 무고함을 밝히지 않으시니 이것은 불충입니다. 영상께서는 불충하였기에 죽는 것이니 원통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러자 강순은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남이가 후사가 없이 죽자 왕실에서는 정선공주의 제사를 지낼 사람이 없게 되자 부득이 외손인 신숙빈에게 외손 봉사를 시키고 음직(蔭職)으로 사헌부감찰(정6품)을 제수하였다. 그런데 사헌부감찰이라는 직책이 관리들의 비위를 규찰하는 일을 담당하는 직책이라 처사공의 성품에 적합하지를 않아 처사공께서는 벼슬길에서 물러나 있었는데 공의 성품이 모질지 못함을 안 조정에서 한적한 경상도 거창수령으로 다시 발령을 내려 공은 몇 번 사양하다가 거창 현감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그때 하필이면 무오사화(戊午史禍)가 일어난 때라 영남의 많은 선비가 도륙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처사공께서는 벼슬길에서 물러나기를 결심하고 장인인 안귀손(安貴孫)공과 함께 문경 가은 소양동(瀟陽洞)으로 입향(入鄕)하여 문경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이었다.


다음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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