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매당집三梅堂集의 유금오산록遊金烏山錄에 대한 심고審考(2)
김광수
경북향토사연구회(구미)
Ⅱ. 금오산유산록(金烏山遊山錄)
2. 유금오산록의 노정
금오산 유산록 노정을 보면 삼매당 선생의 부친인 양탄 김공과 와유당 박진경이 인근의 대소 사인 15인을 거느리고 함께 유산한 일자는 계미년(癸未, 1643) 9월 11일이다. 이듬해 양탄공이 졸서하고 그후 3년 후인 병술년(丙戌, 1646) 11월 중동(仲冬)에 정리 완성되었다. 그 노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계미년(癸未, 1643) 9월 11일 금오산 대혈사(大穴寺)에 모였다.
대혈사(大穴寺)는 금오산의 도선굴(道詵窟) 아래에 있던 사찰이다. 대혈(大穴)은 큰 바위 절벽 아래에 굴(窟)이 있어 이를 지명으로 대혈로 부르고 표기하였다. 현재의 해운사(海雲寺) 아래 사역(寺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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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매당집 천 유금오산록 |
| 금오산성(金烏山城) 대혜문(大惠門) 12일 대혜문(大惠門)은 금오산성(金烏山城) 외성(外城)의 동문(東門)이다. 금오산의 폭포계곡(瀑布谿谷)으로 내성(內城) 금오정(金烏井)에서 곡수(谷水)가 흘려 내려 대혜골(大惠谷)에서 읍민에게 큰 혜택을 주는 계곡으로 관문(關門)을 겸한 문루(門樓)이다.
화암사(華巖寺) 화암사는 대혜문을 지나 외성의 대혜창(大惠倉), 대혈사(大穴寺) 아래에 있었던 사찰로 현재에 그 유지가 남아 있다.
욕담(浴潭) 욕담은 대혜폭(大惠瀑)의 폭포수가 떨어지는 아래에 있는 소(沼)이다. 종족(宗族) 김공(金羾)의 호가 욕담(浴潭)으로 대혜폭 바위 면에 각자 되어 있다.
대혜폭(大惠瀑) 대혜폭은 금오산성 내성의 구정칠택(九井七澤)에서 내려오는 곡수(谷水)가 모여 대혜골의 폭포수이다. 해발 400m 금오산 중간 지점에 위치하며 낙차의 수고는 약 27m이다. 일제강점기 경상북도지사 오카자키데쓰로(岡崎哲郞)가 유람(1935)하여 우렁찬 폭포 물소리를 듣고 그 물소리가 마치 금오산을 울린다 하여 명금폭(鳴金瀑)이라 명명하고 각자(刻字)하였다. 당시 수행한 선산군수는 이학귀(李學貴)였다. 후대에 모두 지워 대혜폭으로 명칭을 회복하였다.
도선굴(道詵窟) 암벽의 큰 굴이라 하여 대혈(大穴)로 기록되어 있으나 전라도 영암(靈巖) 출신의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출가후 행각기(行脚期)인 29세에서 31세 사이에 수도한 암혈(巖穴)로 득도(得道)하였다 한다. 김천 증산면(甑山面) 수도산(修道山) 수도암(修道庵)의 창건과 상통하며 창주도선국사비(刱主道詵國師碑)와 삼층쌍탑(三層雙塔), 석조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이 현존하고 있다. 도선굴의 규모는 깊이 7.2m, 폭 4.8m, 높이 4.5m 로 일제강점기인 1937년 선산군 구미면장 김승동(金升東)이 당시 구미시장을 개설하고 그 비용을 부담하여 오르는 통로를 개척하고 쇠사슬로 난간을 설치하였다. 정축년(丁丑年, 1937) 개석통로(開石通路) 암각과 금오산굴통로기(金烏山窟通路記)가석판이 굴내의 암벽에 부설되어 있다.
용각암(龍角巖) 용각암은 대혜폭포에서 좌측 가파른 비탈길 첫 번째 할딱고개를 올라 가면 해발 450m 위치에 거대한 바위가 있는데 뾰족하게 나온 부분이 용의 뿔을 닮았다고 하여 용각암으로 불리게 되었다.
흘송대(屹松臺) 흘송대는 해발 800m에 위치하며 용각암에서 가파른 비탈길을 올라 보봉(普峯) 마애불(磨崖佛)과 금오산성 내성(內城) 북문 공북문(拱北門) 갈림길의 높은 언덕위에 있다. 돌출된 언덕으로 주변에 용트림하며 등굽은 노송이 있어 흘송대라 전한다.
금오산성(金烏山城) 내성(內城) 북문(北門) 흘송대에서 정상 가는 길을 두고 오른쪽으로 돌아 등고선 방향 서쪽으로 가면 북문으로 추정되는 공북문 석축과 문루의 신방석(信防石)으로 추정되는 받침돌이 있고 이곳이 내성의 북문 성문이다. 이곳의 비탈길을 따라 서쪽으로 가면 금오산성중수송공비(金烏山城重修頌功碑)가 있다.
만승사(萬勝寺) 만승사는 북문에서 성안마을 금오정으로 가는 길목인데 골짜기 안에 서북향으로 그 유지가 남아 있다.
금오산성(金烏山城) 내성(內城) 금오산성 내성의 금오산성송공비 아래 50m 지점에 용출수인 금오정(金烏井)이 있다. 이곳이 대혜폭의 근원이 되며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고 흘러 나와 못을 이루고 대혜폭포로 계곡을 타고 흘러 내린다. 산성(山城)마을과 성군(城軍)의 주둔시 선조(宣祖) 병신년(丙申年, 선조 29년, 1596)에 샘이 아홉이요, 못이 일곱이라 구정칠택(九井七澤)이 이루어 졌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중수 당시 선산부사는 배설(裵楔)이었다. 그 각자가 대혜폭 아래 바위면에 각자가 지금도 남아 있다.
건성문(建城門) 내성의 서문(西門)으로 선산(善山府), 개령현(開寧縣), 김산현(金山縣), 지례현(知禮縣)로 나가는 통로이다. 그 아래 우장리(牛場里)에는 성내 짐을 운반하며 마소를 부리고, 먹이던 쉬바탱이 우장(牛場) 마을이 있다.
서격대(西擊臺) 건성문에서 북쪽방향으로 절벽 위의 길을 이동하면 서격대(西擊臺)가 있다. 주변에 성군(城軍)들이 주둔하며 곡물(穀物)을 도정(搗精)하던 돌절구(石臼)가 두 곳 있다. 이것으로 보아 격대에서 보루(堡壘)를 겸한 주거시설이 있었음을 확인 해 주는 유물이다.
갈항사(葛項寺) 서문 건성문과 서격대를 내려오면 신라의 고찰 갈항사(葛項寺) 유지가 있다. 당시 삼매당 선생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 최학사(崔學士) 고운(孤雲)선생이 쓴 비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최치원(崔致遠) 선생의 비가 있었음을 고증하고 있는 대단히 중요한 기록이다. 이 사찰은 신라 원성왕(元聖王) 김경신(金敬信)의 원찰(願刹)이며 천보(天寶) 17년(景德王 17년, 758)에 조성된 국보 99호 삼층쌍탑 동탑(東塔)의 기단면석(基壇面石)에는 54자 명문(銘文)의 조탑기(造塔記)가 있다. 그 외에도 보물 제 245호 석조여래좌상, 비로자나불좌상, 수많은 신라, 고려 와편(瓦片) 유물이 산포하고 있다. 필자는 수십년전 감나무 밭둑의 석축에서 연화문(蓮華紋)이 부조된 비좌(碑座)를 목격한 일이 있다.
서봉(西峯) 내성 암대(巖臺)를 지나 서봉에 이른다. 서봉에는 근년(1974년)까지 공군통신소(空軍通信所) 제201 장거리통신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대구 산성산(山城山)과 대전 식장산(食藏山)을 중계해 주는 장거리 통신중계소로 지금도 안테나와 철탑을 세웠던 대좌와 건물의 유지 콘크리트가 남아 있다.
진영(陣營) 유숙 13일 진영은 금오진(金烏鎭) 영장(營將)의 지휘소이다. 진영에는 제승당(制勝堂)이란 편액이 걸려 있었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이원익(李元翼)이 금오진에 진영을 두고 도체찰사(都體察使)의 진영을 두어야 한다고 장계하였으며, 평시에는 선산도호부사(善山都護府使)가 금오진절제사(金烏鎭節制使)를 겸직하고 있었다. 흘송대 아래 암벽에는 경종(景宗) 2년(壬寅, 1722) 4월 선산부절제사 박중규 애휼비(善山府節制使 朴重圭 愛恤碑)와 숙종 46년(庚子, 1720) 4월 별장 국윤신 애휼비(別將 鞠允臣 愛恤碑)가 암각 마애비로 남아 있다. 삼매당이 유산시(癸未, 1643)에는 별장(別將) 이적(李積)이 통제하고 있었다.
북격대(北擊臺) 서격대에서 북쪽으로 수백보를 이동하면 북격대(北擊臺)이다. 주변에 성군(城軍)들이 주둔하며 곡물(穀物)을 도정하던 돌절구(石臼)가 두 곳 있다. 이는 격대(擊臺)에서 보루(堡壘)를 겸한 주거시설이 있었음을 확인 해 주는 유물이다.
진남사(鎭南寺) 진영의 중심에서 동남향으로 진남사(鎭南寺)가 있었다. 선조(宣祖) 39년 병오(丙午, 1606)에 화주 승(化主 僧) 태순(泰淳)이 52칸을 창건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산성이 폐하고 마지막까지 남은 사찰이 진남사이다. 때로는 승장(僧將)과 승군(僧軍), 객승(客僧)이 머물렀던 유수처(留守處)이다. 내성을 래방한 수많은 인사들이 진남사에서 유숙(留宿)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남문(南門) 내성의 남문은 대양문(大陽門)이다. 성의 남방이며 성주(星州)와 약목(若木)의 방향으로 이동하는 문루이다. 현재에도 석대와 석축이 견고하게 남아 있다.
석문(石門) 내성의 석문은 현월봉에서 약사봉으로 가는 암문이다. 약사봉과 현월봉을 사이에 두고 암벽이 통로처럼 형성되어 있다. 약사암으로 가는 암벽에 성장(城將) 정진행(鄭鎭行)의 마애 암각이 있다.
약사봉(藥師峰) 약사암이 있어 약사봉으로 바위 봉우리 전체가 보주 모양이다. 신라시대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초창한 것으로 전해지며 약사여래좌상(藥師如來坐像)을 모시고 있어 약사암 약사전(藥師殿)이다. 삼형제불(三兄弟佛)로 인근의 황악산(黃嶽山) 직지사(直指寺) 삼성암(三聖庵), 수도암(修道庵) 약사전(藥師殿)의 약사여래불과 삼형제불이라 전해지며, 인근 개령(開寧)의 사족 단양인(丹陽人) 우상학(禹象學)이 기록한 1935년 중수기가 있다.
공원대(控遠臺) 약사봉(藥師峰) 위의 암봉에 공원대(控遠臺)가 있다. 두 팔을 벌려 멀리 바라본다는 의미로 동향(東向)으로 통망(通望)이 좋다. 그 아래쪽에 동양사(東陽寺)가 있다.
돌적암(湥寂庵) 현월봉 아래에 돌적암 유지가 남아 있다. 현재에도 석축이 외벌, 두벌, 세벌 축대로 남아 있으며 구역이 구분되어 있어 동향으로 통망이 좋다.
현월봉(懸月峰) 현월봉은 금오산의 최정상으로 해발 976m이다. 구미 원평동에서 바라보면 남방으로 마치 봉우리에 달이 걸려 있는 듯한 형상으로 해동초성(海東草聖) 고산(孤山) 황기로(黃耆老, 1521~1567) 선생의 후망대(堠望臺) 각자가 현월봉 표지석 아래 남향으로 훼손된체 남아 있다. 과거 미군 통신부대 공유지로 미공군이 1950년 샬롬사이트로 개설하여 한국전쟁중에 통신중계임무를 하다가 52년 미육군통신대로 임무를 이관하였다. 53년 10월 한미방위조약에 따라 미군이 지난 2014년 9월 구미시민의 강력한 요구로 주한미군이 금오산 정상 일대 공여구역(주한미군 지위협정의 규정에 의하여 대한민국이 미합중국에게 주한 미군의 사용을 위하여 제공하거나 제공한 구역) 2만2천585㎡ 중 산정구역 5천666㎡를 반환하였으며, 현재에도 미육군 무인통신중계소가 운영중이다.
신선사(神仙祠) 현월봉에서 내려오면 구미시 원평동에서 보면 가장 높은 봉우리로 보이는 성주봉(聖主峰) 아래 있다. 고대로부터 제사유적(祭祀遺蹟)이 남아 있으며, 석단(石壇)의 일부가 지금도 남아 있다.
암문(暗門) 암문은 보봉(普峰)에서 보봉사 마애불(磨崖佛)로 내려가는 바위 사이의 통로이다. 급경사로 돌을 쌓아 방어가 용이하고 한 사람이 통행을 겨우 할 정도로 은밀한 이동 통로이다. 그 아래 작은 암혈(巖穴)과 석간수(石間水) 약수(藥水)가 있으며 보봉사 스님들이 이 석간수를 이용하였다.
보봉사(普峰寺) 보봉(普峰) 아래 암벽에 의탁한 사찰이다. 암벽의 모서리에 보물 제490호로 지정된 마애보살입상(磨崖菩薩立像)을 부조(浮彫)하였다. 보살입상의 전체 높이는 약 5.5m로 두광(頭光), 주형거신광(舟形擧身光), 광배(光背)를 양각하여 삼중광배(三重光背)로 중첩하고 두광의 위에는 빗물이 흘러 내리도록 수구(水溝)를 좌우로 마련하여 마애상을 부조하였다. 불신(佛身)에 비하여 양팔이 무릎 아래까지 내려와 팔이 길어 과장된 표현이다. 두상은 보관(寶冠)을 쓰고 법의(法衣)는 U자형의 주름을 잡았다. 대좌는 복엽연화대좌(複葉蓮華臺座)를 부조하여 모서리 곡면(曲面)을 이용하였다. 암벽에 가구(架構)를 구성하여 사찰을 건조하였으며 주변과 석축 아래에 신라시대 당초문(唐草紋) 와당(瓦當)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주변에서 반입된 것인지는 불명확하나 신라시대부터 사찰이 조영된 흔적이 있으며, 마애불은 고려시대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망원대(望遠臺) 보봉(普峰) 아래 돌출된 절벽위 망원대(望遠臺)가 있다. 각자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동포루(東砲樓) 내성의 끝자락 동향의 조망하기 좋은 곳에 동포루(東砲樓)다 있다. 현재는 석축과 흔적이 남아 있다.
암문(暗門) 동포루(東砲樓) 아래에 동쪽 방향으로 내려가는 바위 암벽사이의 은밀하고 가파른 통로이다. 아래에 동양사 절터가 있다.
동양사(東陽寺) 동포루 암문을 통해 내려가면 동양사(東陽寺) 유지가 있다. 사지(寺址) 아래에는 후대에 안동장씨(安東張氏)의 묘역이 조성되었다. 개활지 아래에는 안동장씨 증좌부승지(贈左副承旨) 남오(南塢) 장신립(張信立 1626~1690)선생의 묘소가 있으며 후손 묘소가 누대에 걸쳐 조성되어 있다.
이상으로 삼매당(三梅堂)의 부친 양탄(陽灘) 김양(金瀁)과 와유당(臥遊堂) 박진경(朴晉慶, 1581~1665)이 날을 잡아 유산(遊山)하고 함께 수행한 인근의 사인들의 유산행적을 김하천(金廈梴)이 기록하였다. 그 유금오산록(遊金烏山錄)을 근거로 돌아 보고 남아 있는 유적을 심고(審考)하였다.
다음편에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