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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고요/도종환


조진향 기자 / joy8246@naver.com입력 : 2025년 10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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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

                     도종환

담채색 능선 위로 새들이
줄지어 날아가고 있었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멀어서일까
돌아가야 할 시간의 무거움 때문일까
고요는 참으로 존엄하였다
고요의 존엄함을 조금 더 지켜주기 위하여
나는 가만히 눈을 감았고
하늘은 큰 팔 벌려
저녁의 맑은 잿빛과 가사(袈裟)빛 적막을 감싸안았다
한 해가 저물고 있었다
버려야 할 말이 얼마나 많았는가
세상을 속이는 현란한 기술은 얼마나 넘쳐났는가
부끄러움이
언제부터 이렇게 부끄러운 줄 모르고 활보했는가
내일부터 며칠 산간에는 눈이 오고
내가 있는 곳은 안개비 뿌린다고 한다
고요을 따라 멀리 순례라도 떠나야겠다
나를 데리고
눈 내리는 적요의 깊은 숲으로 들어가야겠다
세상은 갈수록 경박해지고
나도 자주 갈피를 못 잡곤 했다
고요가 나를 지워줄 것이다
고요의 존엄이 나를 지켜줄 것이다

                         <정오에서 가장 먼 시간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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