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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초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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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30)
이정록
30. 초곡천(草谷川)
새재는 초곡천이 흐르는 골짜기를 따라 길이 꿈결처럼 이어져 간다. 초곡천의 청아한 물소리와 어우러져 새재는 먼먼 얘기속의 그리움처럼 그렇게 누구든 말려들고 만다.
매월당 김시습은 새재는 청산 아득한 곳으로 들어간다고 하였고 양곡 소세양은 새재는 푸른 병풍 속으로 들어가는 듯 하다고 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大川三. 一曰洛東江. 基源有三. 一出奉化縣北太白山黃池 一出聞慶縣草岾 一出順興小白山 合流至 尙州. 爲洛東江’ 라고 기록되어 있다.
<큰 하천이 셋인데 그 하나가 낙동강이다. 낙동강 발원지가 세 곳이 있는데, 봉화현 북쪽 태백산 황지와, 문경현 북쪽 초점과, 순흥 소백산이다. 세 곳에서 발원한 물이 상주에서 합류하여 낙동강이 된다. >
문경현 북쪽 초점이 지금의 새재를 지칭하는 말이다. 새재의 초곡천이 낙동강 발원지인 것이다. 강의 발원지는 통상 산(山)인데 고개를 발원지로 지칭하는 것은 이례적(異例的)이다.
새재와 초곡천은 이렇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숙명적인 만남이다. 새재는 초곡천이 있었기에 운치를 더해 갈 수 있었고, 초곡천은 새재를 만났기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가 있었다. 개울물은 흘러가다가 절벽을 만나면 폭포가 되기도 하고 웅덩이를 만나면 소(沼)를 이루기도 한다. 초곡천 물은 예쁘고 고운 돌들만 보듬는 것이 아니다. 우악스럽게 생긴 놈 미욱하게 생긴 돌들도 똑같이 안고 어루만지면서 수도 없이 많은 세월을 흐르면서 모두 다 곱고 착한 모습으로 바꾸어 놓았다.
책바위 밑에서 발원한 낙동강의 삼대(三大) 지류의 하나인 초곡천은 한양과 영남을 오가는 많은 사람들의 환송(歡送)을 받으면서 깎아지른 절벽 밑을 흐르기도 하고 송림이 욱어진 숲속을 지나기도 한다.
지금 새재는 재미로 넘는 고갯길이지마는 조선조 오백년이 흐르는 동안 새재는 나라 안의 고갯길의 대명사로 지칭되면서 숱한 사람들이 넘었던 고갯길이였다. 꿈을 안고 넘기도 하고 희망을 품고 넘기도 하였다.
눈물을 삼키며 넘기도 하였고 슬픔에 잠겨 넘기도 하였다. 숱한 사람들이 숱한 사연을 안고 넘었던 새재 길에 초곡천은 언제고 길손들의 반려자가 되어 주었다. 시인 묵객들에게는 시심을 일깨워 주었고 목마른 이에게는 갈증을 해소해 주고 더위에 지친 길손에게는 더위를 식혀주었다. 어느 악기의 선율보다 더 감미로운 가락을 끝없이 연주하는 초곡천의 물소리는 길손들의 희로애락(喜怒愛樂)도 함께 담고 있었다.
조선조 인조조에 홍문관 부제학 대사헌 대사간 이조판서 등의 요직을 지내신 지봉유설의 저자 지봉 이수광선생은 새재의 절경을 오언 율시 한편으로 노래하였다. <途中> 길을 가면서 岸柳迎人舞 <언덕위의 버들은 춤사위로 길손을 맞이하고> 林鶯和客吟 <숲속의 꾀꼬리는 과객과 노래로서 화답 한다> 雨晴山活態 <비 개인 산의 자태는 생기가 넘쳐나고> 風暖草生心 <따스한 바람이 불어오니 초목(草木)에 새잎이 돋아나는 구나> 景入詩中畵 <좋은 경치는 시 속에서 그림으로 돌아오고> 泉鳴譜外琴 <약수물 떨어지는 소리는 악보에 없는 거문고 가락이라> 路長行不盡 <길은 멀어 가도 가도 다함이 없는데> 西日破遙岑 <저녁 해는 먼 산봉우리에서 저무네.>
산과 물, 물과 길, 이보다 더 긴밀하고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것이 있을까? 산과 물, 그리고 물과 길이, 가장 잘 어울려있는 곳이 문경새재다. 이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초곡천을 끼고 이어지는 <문경새재 과거길>이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서 일곱 번째로 그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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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새재 과거길 |
| 아직 얼음이 풀리지 않은 초곡천 개울가에 뽀—얀 버들강아지가 피어나면서 초곡천의 봄은 열리기 시작한다. 산골짜기의 잔설이 녹아내리면 초곡천 여울에선 겨울에 못다 한 얘기꽃을 피운다. 봄비라도 곱게 내리는 날에는 그리움처럼 물안개가 피어올라 잊었던 추억들을 불러 일으키고 봄볕이 고운 날은 다정한 이의 목소리를 들려주기도 한다.
어느 산골짝 물이 맑지 아니한 물이 있을까마는 초곡천 물은 정갈하기가 이를 데 없다. 신록이 피어나는 5월의 초곡천은 아침 이슬처럼 영롱하다. 초록의 신록이 온 천지를 덮으면 초곡천 물빛도 초록으로 닮아가고 흐르는 물소리조차 초록으로 살아난다. 이따금씩 울어주는 뻐꾸기 울음과 개울물 소리가 어울려 환상적인 하모니를 연출하기도 한다.
초곡천의 백미는 단풍이 곱게 물드는 가을이 아닌가 한다. 무엇이 그토록 부끄러운지 새재의 얼굴은 온통 홍당무가 되어 저녁노을보다 더 곱다. 가슴이 시리도록 붉은 단풍은 하늘도 땅도 초곡천 물빛까지도 빨갛게 물들여 놓고 초곡천 물결위에 한 잎 한 잎 붉은 단풍잎을 띄어 보내면 새재의 단풍은 절정을 맞이한다.
조선 선조 때 한성부좌윤 지중추부사를 역임한 태천(苔泉) 민인백(閔仁伯) 선생의 태천집 5권에 초곡천의 가을 풍경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聞慶之爲縣 在鳥嶺之南 山水之勝 甲于一道 鳥嶺乃南行大路 而奇峰斷石 淸川澄潭 在在奇壯 入追楓菊相耀二十四橋之間 客子應接不暇頓忘身在行役中也 … 中略> 문경현은 조령 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산수의 아름다움이 경상도 가운데서도 으뜸이다. 조령은 영남지방으로 가는 대로인데 기이한 봉우리와 깎아지른 듯 한 절벽 맑은 시냇물이며 깨끗한 물이 고여 있는 소(沼)가 기이하고도 웅장하게 펼쳐져 있다. 단풍이 떨어지고 들국화가 곱게 피어있는 스물 네 개의 다리 사이로 들어가면 길가는 나그네는 가지런한 주변 풍광에 머무느라고 새로운 경치를 맞이할 여유가 없고 자기 자신이 길을 가고 있다는 것조차 망각하게 된다.
기이한 봉우리와 깎아지른 듯한 절벽, 맑은 개울물과 깨끗한 물이 고여 있는 물웅덩이, 단풍이 곱게 물든 가을날 들국화가 피어있는 새재의 길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지만 스물 네 개의 다리를 볼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초겨울 새재를 넘으면서 초곡천의 풍경을 시로 남긴 다산 정약용 선생의 칠언 율시 한편 감상해 보자.
嶺路崎㠊苦不窮 <조령의 기이하고도 험한 산길 가도 가도 끝이 없는데> 危橋側棧細相通 <위험한 돌다리 기울어진 사닥다리 건너서 겨우 겨우 지나간다.> 長風馬立松聲裏 <거센 바람결에 말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솔바람 소리는 가슴속에 스며드는데> 盡日行人石氣中 <온 종일 길을 가는 길손은 바위 기운 속을 오고 간다네> 幽澗結氷厓共白 <계곡물은 얼어서 벼랑까지 하얗게 펼쳐졌고> 老藤經雪葉猶紅 <눈 맞은 늦은 칡넝쿨의 잎은 아직 붉은 색이 남아있는데> 到頭正出雞林界 <산마루에 다다르니 여기가 옛 신라 땅의 경계라> 西望京華月似弓 <서쪽으로 한양을 바라보니 조각달만 걸렸네.> 다산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제1집 1권
다음편에는 책바위가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