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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金泉의 향안鄕案과 계안稧案에 대한 고찰考察(1)/ 이갑희


조진향 기자 / joy8246@naver.com입력 : 2025년 10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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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성족계



김천金泉의 향안鄕案과 계안稧案에 대한 고찰考察(1)

이갑희
경북향토사연구회 회원(김천)


I. 들어가며

 옛날 사람들은 즐거운 일이 있거나 어려움이 봉착하였을 때 계모임을 통하여 친족, 이웃, 친한 벗들과 함께 나누는 미덕(美德)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계모임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지만 계의 시초는 신라시대 추석에 행해졌던 가배(嘉俳)라는 길쌈놀이의 소요 경비를 분담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한편 고려시대에 사찰(寺刹)의 유지와 교리의 발전을 위해서 형성된 보(寶)를 계의 일종으로 보기도 한다.

 계의 종류를 열거하면 친족 간에 길흉사를 상부상조하기 위하여 만든 족계(族契), 선현의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조직된 학계(學契), 또한 관직생활의 고락을 함께하는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든 관계(官契), 친목을 도모하기 위하여 조직된 친목계(親睦契) 등으로 나눌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계의 목적은 상부상조이며 전통사회에서 결속과 공생을 위한 협동자치 조직으로 구성원이 사망하는 것으로 대부분 종결 되지만 한편으로는 후손들에게 이어져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으니 아름다운 풍속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계에 대하여 김천지방의 향안과 계모임의 형태를 현재 기록으로써 자료가 남아 있는 것을 바탕으로 고찰해 보고자 한다.

Ⅱ. 조선시대(朝鮮時代) 김천(金泉)의 향안(鄕案)

 김천은 조선시대에는 3개의 고을로 형성되어 있었다. 즉 김산군(金山郡), 개령현(開寜縣), 지례현(知禮縣)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김산군은 현재의 김천 시내를 중심으로 개령현은 현재 김천시의 북동쪽에 지례현은 현 김천시의 남부 쪽에 위치하여 있었다. 이 3개의 고을별로 향안(鄕案)에 대하여 시사(市史) 및 각종 문헌에 등장하는 것을 발췌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김산향안(金山鄕案)

 향안(鄕案)이란 지방에 거주하는 유향소(留鄕所) 품관의 명단이다. 경재소에 비치된 경안(京案)에 대치해 작성되는 것으로 품관좌목(品官座目), 향적(鄕籍) 향중좌목(鄕中座目)등으로 불렀다. 『김산향안(金山鄕案)』은 1861년(철종12) 양사당(조선후기의 사숙(私塾))을 중수하던 중 대들보에서 발견된 것이다. 「김산향안」에 등재된 양반 사대부들은 김산군의 유향소(일명 향청)을 출입하면서 김산군의 공론을 주도하는 위치에 있었다.

 『김산향교지』에 1613년(광해군5)에 작성된 '향안'이 남아 전하는데 이것은 원래 임진왜란 전에 만들어졌다가 전란 중에 불타서 1613년에 재작성된 것이라고 한다. 그 뒤 1654년(효종5)에 수안(修案)을 했고 1672년(현종13)에도 수안하였다. 1672년의 경우 새로 작성된 향안에 불만을 품은 부로(父老)들이 향청으로 달려가 소란을 부리다가 김산군수 윤리(尹理)가 부로들을 구금하는 불상사도 일어났다고 전한다. 이로 인해 한동안 향안을 만들지 않다가 1787년(정조11)에 다시 만들었다 라는 내용만 있을 뿐 자료가 산실되고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 문집으로 전해지는 내용만으로 대략 짐작은 할 수 있다. 김천출신의 감호(鑑湖) 여대로(呂大老)선생의 감호문집(鑑湖文集)에 김산향안의 서문이 전하며 또한 김천 봉산면 출신의 동기(東畸) 정원소(鄭遠韶)선생의 동기유고(東畸遺稿)에 향안중수서문이 기록되어 있다. 그 서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감호문집의 김산향안중수서

 고을에 안(案)이 있어온 것은 옛날부터이다. 이에 이것으로써 명물을 분변(分辯)하고 이것으로써 선악을 규명하니 안(案)을 설치한 것이 어찌 헛된 일이리오? 임진년 옛 안이 적에 의해 불타버려 성명이 그 전함이 없어지게 되었다. 부로들은 탄식하며 감회를 일으켜 나에게 새로 만드는 것으로서 부탁하였다.

 내가 책을 아름답게 꾸미고 따로 이름을 서술하고 아울러 선조의 계통도 기록하였다. 사이에는 당(堂) 이름과 행실로 칭송 및 몸을 일으킨 사적이 있는 사람은 이를 아래에 대략 적어 놓아서 뒷사람들이 사모하여 우러러 보는 터전을 삼았다. 그 뒤 향론이 완전히 정해지지 않아 해가 지나면서 능히 원고를 완성하지 못하였다. 그런 까닭으로 잠시 전례에 의거하여 다만 이름을 왼쪽과 같이 쓴다.

 아 앞 사람이 이미 이 안을 기록한 것은 뒷사람의 부형이다. 뒷사람으로 장차 이 안을 기록할 사람은 앞 사람의 자제이다. 대체로 사람이 부모의 이름만 들어도 오히려 차마 말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부형의 이름이 책 속에 위엄스럽게 있는 것에 있어서이겠는가? 뒷사람으로 이 안을 대하는 사람은 장차 어버이를 사모하고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을 금하지 못할 것이다. 대체로 이와 같다면 우리 고을은 효도하고 공손한 기풍에 가까워질 것이다.
 만력 계축(1613)가을 칠월 하순 향인 여대로가 서문을 짓는다.

鄕之有案古矣 於以辨名物 以之糾善惡 案之設 豈徒然哉 歲壬辰 古案火于賊 姓名泯其傳 父老慨然興感 屬余以新之 余欲粧黃方策 而別叙名字 兼錄先係 間有堂名行穪及發身事蹟者 畧䟽名下 以爲後人景仰之地 厥後鄕論未完 歷年歲不克成稿 故姑因前例 只書名字如左。嗚乎 前人之已錄於此案者 後人之父兄也 後人之將錄於此案者。前人之子弟也 凡人聞父母之名 尙不忍言 况父兄之名字儼然於卷中者乎 後之人對此案者 將不禁思親敬長之心矣 夫如是則吾鄕其庶幾孝悌之風乎 萬曆癸 秋七月下澣 鄕人呂大老序。

2) 동기유고의 김산향안중수서

 사대부가 향당(鄕黨)에 처함에 혹은 세덕(世德)으로 서로 이웃이 되기도 하고 혹은 지망(地望)으로 서로 사귀기도 하는 것이다. 마치 여남(汝南)의 진순(陳筍)과 장안의 위두(韋杜)와 같은 경우인데 모두 방책(方冊)에 이름이 남아 전해지는 것이 그치지 않았으니 이것이 향안(鄕案)을 설치하는 까닭이다. 생각건데 우리 금릉(김천)은 본래 잠신(簪紳)이 문학을 논하던 고장으로써 영남밖으로 드러났으니 옛날 향안이 있었던 것이다.

 지난 임진왜란 이후 옛날 문적이 잿더미 속으로 사라져 여러 번 문헌을 고증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때 돌아가신 부로(父老)들의 전승이 끊어졌는데 특별히 하니의 향안을 수즙(修葺)하여 향사당(鄕射堂)에 봉안하였으니 그 각을 높임은 마치 갱장(羹牆)의 첨모(瞻慕)와 같음이 있으니 그것은 방한(防限)이다.

 정철(釘鐵)이 참절(斬截)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으니 대개 그 사이에 남간(濫竿)하는 경우가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이다. 그 단서를 궁구 하고자 돌이켜 보면 중차대(重且大)하지 않음에 말미암은 것인가? 불행히도 폐하여 행하지 않은 지가 거의 수 백년이 흐른 오랜 기간이라 내가 일찍이 슬퍼하여 중수할 생각을 할 까닭인데 뜻은 있었으나 행동에 나가지 못하였다.

 요 몇 년 동안에 한 두 동지(同志)와 옛날 향안을 봉심(奉審)하여 경완(擎玩)을 막 마치니 절로 깨닫지 못하는 중에 숙연히 공경심이 우러났다. 이어서 이를 슬퍼하여 널리 향론(鄕論)을 채록하고 계속하여 새로운 향안을 완성하였으니 100년토록 서로 전하여 살펴보고 소장하길 바란다.

 아아 향안에 있던 선배들은 바로 지금 사람의 선조(先祖)인 것이요 고향의 지금 사람은 곧 선배에겐 후손이 되는 것이다. 이에 선배의 유적을 조술하여 마침내 지금 사람의 새로운 향안을 완성하였으니 이 어찌 우리 고장의 성대한 일이 아니라 하겠는가?
 정해년(1887년) 7월16일(旣望)에 오천(烏川) 정원소는 서문을 쓴다.

士夫之處鄕黨 或以世德而相隣 或以地望而相追 若汝南之陳筍鄠 北之韋杜率 皆留名方冊 傳之不磨 此鄕案之所由說也 惟我金陵 素以簪紳文學之鄕 著於嶺外 亦有鄕案舊矣 粤在黑龍兵僖之後 舊籍沒入灰燼 幾至文獻之無徵矣 伊時先父老憖其泯傳 特爲修葺一案 奉安于鄕射堂 其尊閣也 有如羹檣之瞻慕 其防限也 無異釘鐵之斬截 盖無一人濫竿於其間 突厥端 由顧不重且大歟 不幸廢而不修者 殆至數百年之久 余嘗慨然思所以重修 而有志未就積 有年所近 與一二同志 奉審舊案 擎玩甫畢 自不覺肅然起敬 繼以愴感於是乎 博采鄕論 續成新案 俾爲百歲 相傳之眼藏 嗚呼 在案之先輩 卽今人之祖先也 在鄕之今人 卽先輩之後仍也 玆述先輩之遺蹟 迺成今人之新案 庸詎非吾鄕一之盛事也哉 歲在疆圉大淵獻 流火月旣望
烏川鄭遠韶序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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