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새재(29)
이정록
29. 어류동(御留洞)
선조님들의 고달프던 삶이 새재아리랑 가락으로 남아 가슴을 적시는 문경새재 아리랑 곡조가 흘러나오는 아리랑 노래비가 있는 원두막에서 잠시 잠깐이겠지만 얽히고 얽힌 잡다한 세상만사 한번쯤 벗어 놓을만한 곳이다.
협곡을 벗어나면 새재에서 유일한 조그마한 분지(盆地)가 있다. 여기가 옛날 새재를 넘나들던 길손들이 머물렀던 동화원(옛숙박 시설)이 있었던 곳이다. 그리고 30~40여년 전만하여도 동화원 주변으로 화전민들이 살았었다. 도립공원 정화사업의 일환으로 이주를 시켜 지금은 빈터로 남아있다. 이곳에 조령초등학교 분교가 있었는데 동화원 주변으로 마을이 한창 번성했을 때는 조령초등학교 분교 학생 수가 30명이 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중에 충주사람 신충원이 축성한 제2관문 덕택에 왜군이 재침한 정유재란 때에는 이곳 동화원 분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피란을 하였다고 한다. 이곳은 임금님의 어가(御駕)가 머물러 난을 피할 수 있을만한 곳이라고 하여 어류동(漁留洞)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곳이다.
태촌(泰村) 고상안(高尙顔)선생 문집에 어류동에 관한 기록이 전한다. 御留城在聞慶主屹山中 地甚平衍 而城外三面皆絶壁也 獨其一面 可築城利御 而又澗水滔滔 大旱不絶 眞第一形勝也 士人 姜茂先上疏乞築山城 且合四縣 以爲重鎭 自上嘉其意 而領相任其計可必行 故別遺御史 度其形勝 詢謀僉同 而適國家多事 不免中輟…中略 어류성은 문경 주흘산 속에 있는데 그 지세가 매우 평평하고 드넓다. 그리고 그 성 밖으로는 삼면이 모두 절벽으로 이루어져있다. 유독 그 한 쪽으로만 성을 쌓으면 적을 방어 할 수 있는데, 그곳에는 골짜기의 물이 졸졸 흘러내려 심한 가뭄이 들 때라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 이는 참으로 제일가는 길지라고 할 수 있다.
선비인 강무선(姜茂先)이란 이가 상소를 올려 이곳에다 산성을 축조 할 것과, 네 고을을 통합하여 중진(重鎭)을 만들 것을 아뢰었다. 주상께서 이 상소를 보시고 가상하게 여겨 영의정으로 하여금 그 일을 살펴보게 하였던 바 반듯이 해야 하는 일이라 하여 어사(御使)를 파견하고 그 형승을 잘 살펴보고 아울러 여러 사람들로부터 모두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당시에 마침 나라에 여러 일이 많아 중간에서 그 일을 중단하고 말았던 것이다. …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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