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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처난 소나무(사진 경상북도 문경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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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28)
이정록
28. 상처 난 소나무
새재길에 예쁘고 고운 풍경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고달팠던 흔적도 남아있어 우리의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새재 아리랑비를 지나 3관문으로 오르는 길옆에 서있는 상처 난 소나무를 만나게 되는데, 두 개의 빨래판을 V자형으로 맞대어 놓은 듯한 야릇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V자형의 이 애처로운 톱자국의 상처는 일제강점기 때 송진(소나무의 진액)을 채취한 흔적이다.
소나무의 깊은 상처를 10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가슴에 안고 살아야 했던 소나무의 애처러운 모습이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은 태평양 연안 동아시아의 약소국을 강탈하여 식민지로 삼고 태평양의 지배세력이 되고자 태평양 전쟁(일명 대동아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태평양 연안은 미국이 그 주도권을 쥐고 있었으므로 일본은 하와이 진주만에 있는 미국 해군 기지를 기습공격하면서 태평양 전쟁은 발발하게 되었다.
일본은 태평양 전쟁을 치루는 동안 물자의 궁핍을 해결하기 위하여 우리나라 국민에게 정규적으로 거두어들이는 세금 외에 공출(국민으로부터 필요한 물자를 강제적으로 거두어들이는 것.)이라는 명목으로 수많은 인력과 물자를 약탈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은 보국대라는 이름으로 중장년층의 남자를 군수품 공장이나 태평양전쟁을 치루기 위한 군사 시설 현장에 강제 동원하였고,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나이어린 처녀를 군수물자 공장으로 끌고 가 노역을 강요하였다.(나중에는 군 위안부에 편입하기도 하였다.)
일본은 태평양 전쟁이 불리하게 진행되자 물불도 가리지 못하는 미치광이가 되어 조선의 학생들을 학도병으로 징발하여 태평양전쟁에 총알받이로 내세우고, 군 위안부라는 천인공노할 제도를 만들어 군인들의 사기를 고취하기 위하여 꽃다운 어린 처녀를 잡아다가 성노예로 만드는 만행을 저지르게 된다.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달을 무렵 부족한 군량미를 충당하기 위하여 다음 해에 농사를 지으려고 종자를 땅을 파고 깊이 숨겨둔 것까지 악착같이 탈취해갔고, 무기를 제조해야 할 쇠붙이가 모자란다고 백성들의 밥그릇(놋쇠) 그리고 교회의 종까지 쇠붙이란 쇠붙이는 깡그리 빼앗아갔다.
이렇게 미쳐 날뛰는 판국에 소나무진액(송진)을 정제하여 항공유(도움이 되면 얼마나 된다고)로 사용한다면서 마을마다 과다한 물량을 배정한 것도 모자라 어린 소학교(보통학교) 학생까지 송진 체취 현장으로 내몰았다.
이 때문에 소나무란 소나무는 모두다 송진을 체취하기 위하여 빨래판 같이 톱으로 상처를 내어 송진을 체취해야 하는 수난을 당하게 되었다. 빨래판 같은 상처를 낸 부위는 잘록하여 보기가 안쓰럽지만 위로는 정상적으로 성장하였다.
우리나라의 산에 자라는 수많은 수목(樹木)중 소나무가 대표 수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 민족의 굳건한 의지를 소나무가 대신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아서 더욱더 애처롭게 느껴진다. 일본의 이런 말도 안 되는 수탈의 악몽 같은 이 흔적을 알아보는 이가 그리 많지 않은 것이 또한 마음을 아프게 한다.
다음편에는 어류동이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