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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제일승경(淸道第一勝景) 공암풍벽(孔巖楓壁)(2) / 조성재


조진향 기자 / joy8246@naver.com입력 : 2025년 09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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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암풍벽(사진 경상북도 청도군청누리집 캡처)


청도 제일승경(淸道第一勝景) 공암풍벽(孔巖楓壁)(2)
- 모성암(慕聖巖) 시문(詩文)을 중심으로

조성재
경북향토사연구회 회원(청도)


Ⅳ. 공암에 대한 기타 기록들

 거연정의 외원 격인 공암은 운문면 대천리에서 경주로 가는 길목인 운문면 공암리에 자리하고 있다. 높이 약 30미터의 반월형 절벽을 일러 풍벽이라 하며, 동쪽 끝 봉우리 아래 커다란 구멍이 있어 구멍바위 즉 공암(孔巖)으로 불린다. 이 산줄기를 선현들은 용바위[龍巖]라고도 했다. 수몰되기 전의 공암리 중심 마을을 ‘용방(물을 마주하고 큰 용방과 작은 용방이 있었다.)’이라 했으니 여기서 연유한 것으로 보여진다.

 공암이란 이름은 좁게는 용바위 정수리 부분의 구멍을 가리키지만, 넓게는 구룡산에서 비롯한 산줄기 전체를 지칭하기도 하며, 다른 이름으로 역시 구멍바위란 뜻의 두암(竇巖) 또는 굴암(屈巖)이라고도 한다. 두암은 오산지의 저자 수헌 이중경의 부친인 이기옥(李璣玉)의 호이기도 하니 바로 여기서 취한 것이다.

岩之盡處 山脊之上, 有竇直下, 可容一龍. 以石投之, 附耳聽之, 石聲琅琅, 自近而遠, 終至於細微不可聽之底, 則其深難量也. 人言古人有墜銀盃者, 其後銀盃, 轉出山底潭中云. 行人投石者, 日數十, 自古及今, 尙未塡穴, 則知是穴之下, 通于淵, 石皆轉出於流水, 而名竇岩者以是也. 山水之勝, 甲於雲門之中, 故先君, 嘗樂遊此地, 仍以自號焉. 余每至此, 不勝感懷也.
바위가 끝나는 곳 산등성이 위에 수직으로 난 구멍이 있는데 한 마리의 용을 수용할 만했다. 돌을 그곳에 던지고 귀를 대고 들어보면 돌 소리가 낭랑하게 가까이서부터 차츰 멀어져 끝내는 미세하여 들을 수 없을 정도의 아래에 이르니 그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웠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옛 사람 가운데 은잔을 떨어뜨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 뒤에 은잔이 산 아래 못 가운데로 굴러 나왔다고 한다. 행인 중에 돌을 던지는 이가 날마다 수 십 명이나 되지만 옛날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구멍이 매워지지 않았으니 이 구멍의 아래가 연못과 통하여 돌이 모두 흐르는 물로 굴러 나온 것이며, 두암(竇岩)이라 한 것도 이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산수의 빼어남이 운문에서 가장 으뜸이기 때문에 선군(先君)께서 일찍이 이곳에서 즐겁게 노니시고 두암으로써 호를 삼으셨다. 나는 매번 이곳에 올 때마다 감회를 이길 수 없었다.

 수헌 선생의 <우리 집안의 산수[吾家山水]>에 나오는 공암에 대한 설명이다. 이상동 외 번역서인 『청도사족의 운문산 유람록』에는 수헌 외에도 손기양, 장화식 등의 글에도 공암에 대한 언급들이 있다. 또한 1991년 발행된 『청도군지』에는 가사 <운문구곡가>가 실려 있는데 박하담의 <운문구곡가>와는 다르게 공암을 일곡으로 해서 하류로 내려오면서 구곡 ‘박연정’에서 끝맺는다. 일곡만 살펴보겠다.

운문산수 어떻더냐 묻는 이가 있다면은
강을 따라 숲과 정자 노래하는 것이로다.
한가하다 자랑하여 별난 것을 찾지마라.
그가운데 어진 이들 지난 곳을 찾겠노라.
일곡은 어데메요 공암의 풍벽이라
꽃머리로 옷깃하니 누구 위한 얼굴인고
곽경재의 지난 일은 빙자할랴 어이없고
유수와 뜬구름도 첩첩이도 푸르구나.

 『청도문헌고』에 실린 <오산팔경서(鼇山八景序)>에서 석농(石農) 조병희(趙秉禧)는 ‘공암풍벽(孔巖楓壁)은 풍교(風橋)와 비슷하다.’고 하였다.


Ⅴ. 공암에 대한 노래들

 공암의 빼어난 경치는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시흥(詩興)을 불렀다. 디지털청도문화대전에 의하면 공암을 노래한 대표적인 시로 청도팔경을 노래한 연호 이원기, 계양 김창우의 노래를 들고 있다. 『청도문헌고』에서 언급한 일재 장준형의 시 외에, 외지인들을 중심으로는 주세붕(周世鵬, 1495~1554)의 <과공암말서지역(過孔巖秣西芝驛)>, 황응규(黃應奎, 1518~1598)의 <유공암(遊孔巖)> <과공암기김백순(過孔巖奇金伯純)>, 김극일(金克一, 1522~1585)의 <공암(孔巖)>, 손기양(孫起陽, 1559~1617)의 <장유공암득졸운시양군(將遊孔巖得拙韻示兩君)> <족성공암연구정양군(足成孔巖聯句呈兩君)>, 조정(趙靖, 1555~1636)의 <공암도중(孔巖道中)> 2수, 그리고 이중경의 앞의 글에 실린 이심홍(李心弘, 1569~1657)의 시 2수, 수암 유진(柳袗)의 시 일부, 심재 조긍섭(曺兢燮)의 시 등이 전한다. 이중 몇 수만 소개하겠다.

공암(孔巖)
                     일재(一齋) 장준형(蔣俊馨)
산은 높아야 좋고 물은 깊어야 좋고 山取其高水取深
그러고 보면 여기서 사람 마음이 보이지 此間看取在人心
온전하게 감추인 것 다 명승이 되니 得全慳秘方爲勝
구름과 안개가 푸른 숲을 감추었다 말하지 말게 莫道雲煙鎖壁林

공암풍벽(孔巖楓壁)
                      심재(深齋) 조긍섭(曺兢燮)
강이 서리고 돌이 터진 지 몇 년이던가 江盤石坼幾經年
돌 비탈길 지나고 오솔길 지나니 이미 늠연하네 度磴穿蹊已凜然
창과 도끼가 있더라도 깎아내기 어렵고 縱有殳斨難削斲
원숭이 아니고야 올라갈 수 있겠는가 除非猿貁得攀緣
시림의 옛 나라는 차가운 강물 밖에 있고 始林故國寒流外
사간의 허물어진 비석은 낙조 가에 보이네 司諫荒碑落照邊
이르건대 내 거처하는 곳 산수가 좋으니 謾說吾居山水好
종래에 참으로 옹중천을 보겠네 向來眞見甕中天

공암도중 2수(孔巖道中 二首)
                          검간(黔澗) 조정(趙靖)
푸른 산 붉은 언덕 티끌세상 떠났는데 靑壁丹崖絶世塵
그 누가 斤斧로써 眞元 펴게 하려나 誰施斤斧洩元眞
얼크러진 숲속에는 高士가 숨었으리 猶疑薜荔高人在
다시 산을 향해 樵夫에게 물어 보노라. 更向山阿問負薪

학 떠난 훤한 공중 사람조차 안보이고 鶴去雲空不見人
맑은 산 푸른 물에 정신조차 깨끗하네 山明水綠是精神
봄이 와 복사꽃이 온 동네에 만발하니 春來滿洞桃花發
어랑 따라 나루터를 다시 물을까 하네 擬逐漁郞再問津

과공암말서지역(過孔岩秣西芝驛, 공암을 지나 서지역에서 말을 먹이다)
                             신재(愼齋) 주세붕(周世鵬)
유천역에서부터 근원을 찾아 들어오니 窮源入自楡川驛。
삼족당엔 따로 봄이 마련되어 있네. 三足堂中別儲春。
구름은 공암 밖까지 따라오는데 雲棧還從孔岩出。
서지에는 버섯 따는 사람도 볼 수 없네. 西芝不見采芝人。


Ⅵ. 공암에 새겨진 시문(詩文)

 공암을 노래한 시문들은 주로 개인의 문집 등에 실려 있지만 여느 경승지에서 보듯 이름을 새긴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 이유는 우선 공암 주변의 바위질이 글을 새기기 좋은 암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창 수승대나 괴산 화양계곡 등의 바위는 화강암으로 글을 새기기 좋은 암질이지만, 공암의 바위들은 색깔도 어둡고 가공도 어려운 막돌에 가까워 글을 새기기에 부적합하다. 또한 글을 새겨도 바위 면의 박락(剝落)이 심해 오래 유지되기도 어렵다. 그래도 드물게 글을 새겼으니 가장 오래된 기록은 수헌 이중경의 앞의 글이다.

郡宰柳公袗, 嘗遊于此, 歸謂余曰 “吾今而後, 知其雖在幽獨之中, 不可爲不善也.” 余曰 “何謂也?” 曰 “吾遊孔岩, 得四韻詩, 題于溪畔最深處白石之上, 以爲無人到此見之者, 其後李直講之英, 至其處, 見我拙題云, 吾心愧之.” 其一聯曰
“衆鳥高飛時見背 群峯羅立摠低頭”
군수 류진(柳袗)이 일찍이 이곳에서 노닐다가 돌아와 나에게 말하기를,
“제가 지금에서야 비록 홀로 있을 때에도 불선(不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라고 했다. 내가
“무슨 말입니까?”
라고 하자,
“내가 공암에서 노닐 적에 사운시(四韻詩)를 얻어 계곡 가장자리 가장 깊은 곳의 흰 바위 위에다 적고는 이곳에 이르러 그것을 보는 사람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 뒤에 직강(直講) 이지영(李之英)이 그 곳에 이르러 나의 시를 보았다고 하니, 저의 마음이 부끄럽더군요.”
라고 했다. 그 첫 번째 연에 이르기를,
“뭇 새들 높이 날다 때때로 등을 드러내고
뭇 봉우리 줄지어 서서 모두 고개를 숙이네.”
라고 했다.
즉, 수암 유진이 이곳에 시를 새겼고, 그것을 후에 이지영이란 사람이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이 시는 공암에서 찾기가 어렵다. 오랜 답사에도 불구하고 이 시가 새겨진 바위를 찾지 못하였다.
현재 공암에는 풍호대(風乎臺)와 석문(石門) 인근 두 곳에 글이 새겨져 있다. 먼저 풍호대에는 백운거사 윤현기의 시가 새겨져 있다.
우러르니 산은 우뚝하며 험준하고, 昂而有山節彼巉顔
내려보니 물은 맑음과 찌꺼기가 분명하여지네. 頫而有水其鑑净滓
삼가 자네의 행동이 자연을 둘러보기에 바쁘니, 謹爾容止競其瞻視
오호! 온 풍광을 읊는 노래는 끝이 없도다. 于以風詠汔乎無竟

 풍호대를 지나 석문 쪽으로 오르면 먼저 높은 바위에 면을 조금 다듬고 새긴 시가 있다. 모성암(慕聖巖)이다. 모성암을 지나 석문이 끝나가는 지점에도 역시 비슷한 형태로 다듬어 새긴 시가 보인다. 부앙대(俯仰臺) 시다.

부앙대(俯仰臺)

저 절개는 아득히 높아서 節彼彌高
이처럼 쉬지도 않는구나. 如斯不息
언덕길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堆道在兹
오를 때도 생각하고 내려갈 때도 깨닫네 昂思俯則

모성암 새김 글

尹炳權(윤병권)
炳馹(병일):윤병일(1898∼1974)
炳采(병채):윤병채(1901∼1962)

 삼형제의 이름이 나란히 적힌 이 글은 1930년경에 새긴 것으로 짐작된다. 청도 독립운동가(1928년 다물단에 기부금 냄.) 형제들이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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