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에는 무더위를 피해 은행이나 관공서를 방문하는 것도 좋고, 주말에는 공공도서관이나 문화예술회관 전시회 관람을 추천합니다. 시원한 곳에서 책을 읽고 그림이나 공연을 보면서 수준높은 여가를 즐기면서 건강하게 여름나길 바랍니다.
대구문화예술회관에는 매주 예술가들의 개인전과 단체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6월 17일부터 7월 19일까지 1층 전시실에는 대구지역 중견작가 4명의 미디어 작품 설치, 서예, 회화 작품과 자료, 인터뷰 영상을 통해 작가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고 한층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아카이브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1전시실에는 ‘바람이 되어(Become the wind)’라는 주제로, 장자의 소요유와 제물론에 대한 고찰을 바탕으로 물성에 대한 허무적 시각과 비물질적 세계에 대한 사유를 담은 김희선 작가의 미디어 설치작품 6점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곳에 들어서면 시원한 파도 소리와 함께 파도가 밀려오는 동영상이 펼쳐집니다. 마치 해변을 옮겨온 듯,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는 바닷가를 거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남곽자기는 팔걸이에 몸을 기댄 채, 하늘을 우러러 길고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은 마치, 짝을 잃은 자의 쓸쓸함 같았다. 곁에 서 있던 자유가 조심스레 물었다.
“선생님, 몸을 말린 나무처럼 하시고, 마음을 식어버린 재처럼 놓아두려 하십니까? 지금 기대어 계신 모습은, 예전과는 다릅니다.”
남곽자기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잘 물었구나, 이제 나는 나를 잃었다. 너는 그것을 아느냐? 너는 사람의 숨소리는 들었으나, 대지의 숨소리는 듣지 못했고, 대지의 숨소리는 들었으나, 하늘의 숨소리는 듣지 못했구나.“
자유가 다시 물었다.
“감히, 그 길을 여쭙습니다.”
남곽자기는 말했다.
“대지는 숨을 쉰다. 그 숨결을 바람이라 부른다. 이 바람이 일지 않으면 고요하지만, 바람이 일면 만 갈래 구멍마다 소리 내어 운다. 너는 그 휙휙 스쳐 가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느냐?
높은 산 깊은 숲속에, 둘레가 백 길이나 되는 큰 나무들, 그 나무에 뚫린 구멍들은, 어떤 것은 코를 닮고, 어떤 것은 입을 닮으며, 어떤 것은 귀를 닮고, 어떤 것은 문빗장 같기도 하고, 귀고리 같기도 하며, 둥근 고리 같기도 하다. 어떤 것은 웅덩이 같고, 어떤 것은 깊은 구덩이 같기도 하다.
그곳을 지나는 바람은 가늘게 울기도 하고, 급류처럼 분노하며 흐르기도 하며, 구불구불 휘돌기도 하고, 울부짖거나, 부르짖기도 한다. 어떤 소리는 응답하듯 일어나고, 또 어떤 소리는 모여들다 이내 스러진다. 맑은 바람이 불면 작은 목소리로 화답하고, 거센 바람이 몰아치면 거친 합창이 일어난다.
그 안에는, 스스로 우는 것도 있고, 굽어드는 것도 있으며, 포효하는 것도 있다. 앞서 부르면 뒤에서 응답하고, 서로 부르고, 서로 받아주며, 흐르다가 밀리고, 밀리다가 울면서 흐른다.
천지의 큰 덕은 생명이다. 생명은 화합을 낳고 화합은 완성을 낳으며 완성은 가라앉음을 낳고 가라앉음은 비움을 낳는다. 만물은 태어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드러난다. 대지가 숨을 쉬고 만물은 그 숨결을 따라 스스로를 북돋운다. 이를 누가 주재할 수 있겠는가?
대지에는 대지의 주재자가 있고 작은 것에는 작은 것의 주재자가 있으며 만물에는 만물의 주재자가 있다. 흐르고 흘러가는 것은 천지의 허허로운 터요 만물이 시작되고 끝나는 곳이다. 이를 일컬어, 대동’이라 한다.
작가가 재구성한 장자의 ‘재물론’ 일부
커다란 나무 상자는 목관을 암시하고 그 속에 들어있는 마른 고목은 사람의 육신을 비유하는 듯합니다. 사람이나 사물의 경계가 없는, 나와 우주의 동일시, 나비가 나인지 내가 나비일지도 모르는, 삶과 죽음의 벽을 뛰어넘는 찰나의 순간,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말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2전시실은 ‘서예농사(Sowing Words)’를 주제로 이정 작가의 서예 작품과 영상 작품 12점을 선보입니다. 문자를 붓으로 쓰는 행위를 작품을 심고 가꾸는 농사에 비유하여, 성실한 농부처럼 꾸준히 반복해서 작업해 온 시간의 축적과 그 속에 담긴 내면의 감정과 수행이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수행과 결합할 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무대 위의 댄서와 무대 아래 쪽 스탠딩석의 청중은 같은 시간을 보내지만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는 누군가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내가 좋아서하는 일인가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일이냐는 그만큼 다른 의미겠지요. 그럼에도 묵묵히 견디며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들, 자신의 몫을 충분히하고 있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그를 지탱해주는 뿌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문자를 심고, 시간을 거두다.
서예는 내게 있어 끊임없는 질문이자 탐구의 원천이다. 이번 작업은 오랜 시간 쌓아온 기록이며, 문자를 통해 자연과 시간을 바라보고 본질에 가까이 가고자 하는 ‘서예농사’의 과정을 담았다.
나는 서예를 창작의 출발점이자 중심으로 삼아 오랜 시간 작업을 지속해왔다. 문자를 쓴다는 것은 단순히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시간을 견디고 반복을 감내하며 내면을 가꾸는 일이다. 획(劃)과 문자를 쓰는 반복된 동작 속에서 나는 스스로의 태도와 정체성을 발견하고, 문자의 형태를 넘어서 삶과 예술, 표현과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되묻는다.
‘서예농사(Sowing Words)'라는 이름은 이러한 작업의 철학을 상징적으로 담은 말이다. 나는 문자를 씨앗처럼 심고, 붓질을 통해 천천히 가꾸며, 의미를 서두르지 않고 기다린다. 이 모든 과정은 마치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며 밭을 일구는 농부의 마음과도 닮아 있다.
내 작업에서 문자는 더 이상 의미만을 전달하는 언어가 아니라, 반복되는 붓의 움직임 속에서 생겨나는 또다른 형상이자, 의식의 흔적이다. 이번 작업에서 나는 서예의 전통과 정신을 바탕으로하되, 그것을 오늘의 시각언어로 다시 써보고자 했다. 형식은 해체되고, 여백은 생각이 머무는 공간이 된다. 문자는 때로는 흩어지고, 때로는 엉겨 추상적인 형상으로 나타난다. 그 속에서 나는 서예라는 오래된 예술을 현재의 감각으로 살아 움직이게 만들고자 했다.
‘서예농사’는 나에게 있어 반복과 안내, 축적의 시간 속에서 조금씩 쌓아올린 기록이자, 문자를 통해 자연과 삶, 예술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과정이다. 이번 전시는 그 속에서 수확한 하나의 결실이자,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다.
이정 ‘서예농사(Sownig Words)' 작가 노트
하늘에서 해석되지 않는 문자가 비처럼 쏟아져 내리고 아랫쪽에 놓인 서예 연습지 묶음들이, 작가의 매일이 쌓여 이루어놓은 결실이자 시간의 흔적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당신의 흔적과 결실도 어딘가에 매일 조금씩 쌓여 가겠지요?
3전시실은 ‘GOOD MORNING'이라는 주제로 심윤 작가의 회회 작품 14점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림을 보는 순간 ’아, 피곤하겠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매일 전쟁터같은 일터에서 죽을 것처럼 일하는 현대인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가장이라는 책임감, 외로움, 사회인으로서의 책무가 느껴집니다.
이번 전시 GOOD MORNING은 현대인의 삶을 전쟁터에 비유하며, 무기력과 소진 속에서 반복되는 일상을 탐구하는 작업이다. 전시는 아침이라는 시간을 물리적 시간이 아닌, 정서적 피로가 가장 두드러지는 시점으로 바라보는 데에서 출발한다. 이 시간은 곧 현실을 다시 마주하고, 살아남기 위한 전쟁터로 나서는 전환의 순간이다. 이 전시는 그러한 흐름 속에서 삶과 죽음, 의무와 체념, 무게와 공허가 뒤섞이는 그 경계의 순간을 찾아보려 했다.(중략)
현실과 소멸이 서로를 응시하는 구성, 그것은 ‘굿모닝’이라는 인사가 단순한 하루의 시작이 아니라, 다시금 소진과 생존을 반복해야 하는 고단한 순환의 일부임을 보여주고자 했다.
작품은 대체로 흑백의 명도 차만으로 구성되며, 에어브러시를 활용해 부유하는 듯한 경계감과 흐릿한 감각을 강조하였다. 나는 이 시리즈에서 색을 거의 쓰지 않았다. 대부분은 흑백이다. 하지만 일부 작품들 예를 들어 ‘Wake Up'의 배경 빛, 혹은 ’Good Morning' 자화상의 역광 아래 붉은 미색에만 미세하게 색을 허용했다. 현실은 무채색처럼 느껴지지만, 그 안에 누적된 감정은 어딘가에서 희미하게 세어 나오지 않을까.
무기력과 고통은 때로는 의연하고, 때로는 우스꽝스럽다. 라오콘처럼 얽매이고, 아틀라스처럼 짓눌리며, 프로메테우스처럼 간을 혹사시키며 살아가는 이 시대의 우리들, 나는 그 얼굴과 등을 그리고 있다. 거창한 서사가 아니라, ‘하루를 시작하는 일상’ 속에 숨겨진 드라마를 조용히 꺼내고 싶었다.
심윤 ‘GOOD MORNING’ 작가노트 중에서
무기력과 고통에 짓눌리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를 견디고 한걸음씩 앞을 보고 걷고 있는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작가는 관람자 스스로에게 자신이 짊어진 일상의 무게와 내면의 고통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주고자 합니다.
4전시실은 ‘기록되지 않은 것(Whispers Unwritten)’을 주제로 무관심과 편견, 소외로 인해 기록이 멈춘 존재들에 관한 시선을 화폭에 담은 정지현 작가의 회화 20여 점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일상의 평범한 풍경들을 연극이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포착해 시각예술의 편집증적 성격을 탐구하며, 일상의 풍경들이 구현되는 데는 어떤 의도가 있으리라는 비판적인 시각을 던집니다.
어느 날, 작업실에 앉아 있는데 ‘실종자 000를 찾습니다’라는 문자가 도착했다. 무심코 지나치곤 했던 익숙한 문장, 그러나 그 안에는 흐릿한 얼굴들이 숨어 있었다. 그 얼굴들을 바라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나도, 우리도 실종자처럼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이름은 있지만 불리지 않고, 존재하지만 기억되지 않는 사람들.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 나는 그들을 다시 그리고 싶었다. 사라진 이들을 생각하며 흐릿하게 지워진 얼굴을 따라 손을 움직인다. 이 흐릿한 얼굴들 속에서 당신이, 혹은 당신이 아는 누군가를 떠올리길 바란다.
정지현 작가노트 중에서
모자이크처럼 흐릿한 윤곽을 지닌 얼굴들이 빼곡이 들어찬 작품을 처음 대면했을 때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이 있었고, 그 얼굴 가운데 내가 있을 것만 같은 친근하면서 잊혀진, 잊혀질 우리라는 생각이 명치끝을 싸하게 했습니다. 매일 태어나는 사람보다 잊혀져가는 사람들이 더 많은 현실 속에서 나는 누구를 기억하고 있고, 나 또한 기억해 줄 누군가를 기다리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잊혀져 갈 누군가를 기록하는 작업이 그림뿐 아니라 사진이나 글, 무엇으로든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전시실은 작가들의 인터뷰 영상과 작품 도록, 자료를 볼 수 있는 아카이브 공간으로, 관람객들이 작가의 작품세계를 편안하게 이해하고 작품활동에도 참여하도록 마련한 공간입니다.
네 분의 작가와의 만남이 2025년 7월 12일(토) 14시 대구문화예술회관 미술관 ‘스페이스 하이브’ 로비에서 진행될 예정입니다. 전시나 작가에 대해 관심있는 분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참여인원 40명), 대구광역시 통합예약시스템에서 6월 17일부터 선착순 접수하고 있으며 무료로 참가할 수 있습니다. 당일에 전시회 관람을 하면서 작가와의 만남에 참여도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