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새재(22)
이정록
22. 용추(龍湫)와 기우제문
새재를 찾는 풍류객들이야 용추가 풍광이 수려한 단순한 선경에 불과하겠지만 푸실을 비롯한 이웃 주민들에게는 아주 특별한 장소였다. 심한 가뭄이 닥치면 이곳 용추에서 기우제를 지냈기 때문이다.
농사만이 천직이었던 시절, 변변한 수리시설이 없던 순전히 하늘에만 의존하여 농사를 지어야했던 그 시절에는 혹심한 가뭄은 농민에게는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논바닥은 거북등처럼 쩍쩍 갈라지고 하루가 다르게 곡식들이 타들어가는 것을 바라봐야 하는 농민들의 심경을 어찌 말로써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비를 기다리다 기다리다 농민들은 결국 기우제를 지낼 수밖에 없었다. 용추의 널따란 바위에 짐승의 피를 뿌리고는 비를 내려줍소사 하는 농민들의 간절한 소망을 담은 제문을 읽으면서 하늘에 제사지냈다.
하늘과 땅의 모든 신인 팔왕이 선녀들과 어울려 함께 노닐던 곳에, 용이 승천한 그 신령한 장소에 피를 뿌려 더럽혔으니 그 오염된 핏자국을 씻어 내리기 위해서라도 비를 내리겠지 하는 절박한 바람이었던 것이다. 오죽 절박했으면 용이 승천한 그 신성한 곳에 피를 뿌려 용의 노여움을 사면서까지 비를 갈망 하였을까. 용추는 이렇게 농민들의 애절한 사연을 담고 있는 곳이다.
농민들이 기우제를 지내면서 축원을 빌었던 용추 기우문을 소개한다. 기우문은 한 번 지내서 비를 내려주지 않으면 두 번 그리고 세 번, 네 번째 까지 기우제를 지냈나 보다. 첫 번째부터 네 번째까지 기우문이다.
龍湫祈雨文 蔡彭胤 有湛者淵 有赫其靈 欱雲吐雷 厥施滿盈 我民之蘓 靈享其報 胡諐者陽 彌月斯杲 氛霧朝屯 凄飈夕簸 大地立赤 涓澤不下 川溝絶灌 民束其手 土毛旣焦 夫其曷後 夏至云徂 霓望逾渴 身叨民寄 憂甚焚焫 生類且盡 神亦何賴 無爲神羞 惠我滂沛
용추기우문 채팽윤 “깊숙한 못에는 밝은 신령이 있어 구름을 일으키고 우뢰를 토하여 비의 은택을 온 고장에 베풀었습니다. 우리 백성이 소생하면 신령에게 은혜를 갚고 신은 그것을 누릴 것입니다. 어찌하여 음양이 잘못되었는가 여러 달을 가물어 아침에는 안개 끼고 저녁이면 바람이 선들거려 대지가 다 타도록 비 한 방울 오지 않습니다. 도랑에 물이 마르니 백성은 손을 놓고 아무 일도 할 수가 없고 초목은 이미 말랐는데 하지가 지나도록 하늘을 쳐다보며 목마름만 한탄합니다. 몸은 피곤하고 백성은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근심이 쌓여서 속은 타들어 가고 살아있는 것은 모두 다 죽게 되면 신께서는 무엇에 의지하려 하십니까? 신께 드릴 제수도 마련하지 못할 형편입니다. 우리에게 큰비를 쏟아지게 하여주십시오."
再次祈雨文 今玆亢旱 亦孔之酷 何植不燔 何流不涸 秧疇赤坼 移注????時 失今不雨 民靡孑遺 守土無政 遭此旱魃 無面臨涖 日夕憂慄 咎在邑長 彼民何殃 始籲北湫 玄感茫茫 奔逬離次 竭蹶乞靈 惟爾有神 實助發生 噓皷雲雷 以無蘊蟲 疵癘之來 夫亦神恫 劉胥以鋪 孰薦馨香 衆心喁喁 惟神是望 無屯其膏 立賜沛然 載興羣 。用答誠虔
두 번째 기우문 "지금도 가뭄이 심한데 또다시 혹독해지면 어찌 심은 곡식이 타들어 가지 않고 흐르는 물이 마르지 않겠습니까. 모내기 한 두둑이 갈라져도 물을 대지 못하는데 지금도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하나의 백성도 남지 않아 나라를 지키고 정부가 없는데 이에 한발을 만나 살펴볼 면목이 없어 임하여 아침저녁으로 근심하고 두려워할 따름입니다. 수령에게 허물이 있는데 저 백성에게 어찌 재앙을 내려 아득하고 망망하게 하고 뿔뿔이 흩어지고 이별하게 되면 신령께 의지함도 고갈되니 오직 신께서 계신다면 도움을 발동하시어 구름과 벼락을 울리고 해충과 질병이 오는 것을 무릇 또한 신께서도 두려워하고 누가 형향을 추천하여 모두를 흠모하게 하여 오직 신께서는 이를 바라보아 소낙비를 내리시어 모든 말라가는 것을 일어나게 하신다면 정성스럽고 경건하게 보답하오리다."
三次祈雨文 維夏之旱 汰至切伏 滲滲霡霂 渰渰信宿 屯雲寢離 烈陽旋曝 將興之苗 索然就厭 如孩獲乳 未咽而奪 哀民何辜 而毒降罰 如以邑長 已避賢路 再叩于湫 莫我肯顧 憂心譙譙 誰因誰訴 惟山之靈 實主玆土 司厥陰陽 阜我稌黍 生類斬伐 胡不降監 若濟焚溺 無晷刻淹 馨發澤應 以洽以霑
세 번째 기우문 “여름 가뭄이 계속되다가 초복(初伏)에 이르러서야 이따금 가랑비가 내리고 한 이틀 동안 비구름이 끼어 있더니 구름이 점차 흩어지면서 햇볕이 쨍쨍 나니, 이제 막 생기(生氣)가 돌던 싹들이 다시 시들어 마치 어린아이가 젖을 물고 채 빨기도 전에 젖을 빼앗기는 것과 같습니다. 불쌍한 이 백성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혹독한 벌을 내리십니까. 이 고을 수령으로 현로를 피하기도 하였고 두 번씩이나 용추(龍湫)에 기우제를 지냈는데도 어찌하여 우리를 돌아보지 않습니까. 근심으로 타는 마음 누구에게 호소하란 말입니까. 신령은 실로 이 고장을 주관하는 분이니 음양을 다스려서 풍년 들게 하소서. 백성이 죽어가는데도 어찌하여 굽어살피지 않습니까. 이 재난 구제하려거든 촌각을 머물지 마시고 피어나는 향내 따라 은택을 내리시어 이 고장을 흠뻑 적셔 주십시오.”
第四次祈雨文 誠之至變天地 靈之見貫幽顯 胡今玆罄牲弊 陽益固陰益閉 豈誠微無攸通 而靈邈亶蒙蒙 密雲蒸風散之 溽霧夜日熯之 惟忝稷亦奏枯 矧水苗葛之蘇 川谷塵源野亦 農遑遑謖號泣 何辜天降玆酷 官無狀甿代讁 雖屛伏敢寧怠 更三日天不惠 民具劉神何福 與槁族沃災魃 在一擧毋留刻 惟爾有神尙歆格 不待詞畢下甘澤 『希菴集』 卷29
네 번째 기우문 "진실로 천지 사이는 지극히 변하니 영(靈)께서는 저승과 이승을 꿰뚫어 보시는데 어찌 지금 이렇게 제물을 올리며 축원하고 있는데도 빛은 더욱더 내려쪼이고 비가 올 가망은 아예 없는 것입니까? 이렇게도 정성이 적다고 베풀어주지 않고 영께서는 어찌 저 멀리만 계십니까? 빽빽했던 구름은 더운 바람에 날려가고 눅눅하던 밤안개조차 날이 밝으면 없어지니 모든 곡식은 다 말라 죽게 되었습니다. 하물며 모판에 어린싹조차도 말라 소생하지 못하고 시내와 계곡에도 아예 물이 없고 들판 역시 그렇습니다. 농부들은 허둥대며 하늘을 우러러 울부짖고 있습니다. 어찌해서 하느님은 이 혹독함을 내려서 원망을 사십니까? 관청에서도 손을 놓고 농부들은 하늘을 원망만 하고 있습니다. 진실로 엎드려 아룁니다. 편안하게 게으름을 피워 또다시 삼일이 다 지나도록 하느님의 은혜가 베풀지 않는다면 백성들은 다 죽게 되는데 신께서도 어찌 복이 되겠습니다. 더불어 말라 죽는 재난을 없애주신다면 지난 일은 가슴에 새겨두지 않겠습니다. 정말로 신이시라면 음향 하시고 이 축문을 다 읽기를 기다리지 마시고 단비를 꼭 내려 주십시오."
중종의 묘정에 배향된 조선조 중종조의 명신 용재 이행 선생의 문집인 용재집 권7에 새재를 지나면서 「용담(龍潭)」이라는 제목으로 용추에서 지은 칠언 배율 시 한 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배율 후반부에 가뭄으로 마음 아파하는 농민들을 배려하는 선생의 온정이 있기에 여기에 소개한다.
용담(龍潭)
嶺南山水今古知 <영남의 산수는 고금에 알려졌는데> 龍潭形勝天下奇 <용담의 그 경치 천하에 손꼽힌다네> 鳥嶺高在九天上 <새재는 높아 구천에 솟아 있고> 下有一派長蛇馳 <아래로 물줄기 뱀처럼 길게 내달리네> 長蛇踠蜿赴長壑 <다시 굽이쳐 긴 골짜기로 빠져드니> 似與潭底神龍期 <마치 못 아래 신룡과 만나려는 듯> 老我過此已三四 <늙은이가 이곳을 서너 번 지났었지만> 每來延佇耽淸漪 <그 때마다 가만히 맑은 물 구경했었지> 今日況與洪生同 <하물며 오늘은 홍생과 같이 가는 길> 洪生好奇世無之 <그 사람 더없이 구경하길 좋아 한다네> 再三拜跪爲我設 <거듭 절하고 내게 가만히 하는 말> 淨眼平生會未窺 <눈 씻고 보아도 평생 처음인 경치라네> 巖石紛紛散花雨 <바위에 어지럽게 꽃잎이 비처럼 뿌리고> 水上馥馥紅雲披 <물 위엔 몽실몽실 붉은 구름 덮였어라> 天公戱人故多事 <조물주 사람 놀리려 일 많이 만든다더니> 萬相一一生姸姿 <이곳의 모든 경치 참으로 곱기도 하여라> 三農渴雨望雲漢 <농부들 비를 갈망해 저 하늘 바라보는데> 遊子道上愁炎曦 <나그네 길 위에서 이 더위나 걱정일세> 安德驚霆起龍蟄 <어찌하면 저 물속의 용을 놀래 깨울까> 我今繁石投此詩 <내 이 시 돌에 매어 물속에 던지리라> (용재집(容齋集) 권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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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고 합니다. 그것은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지요. 사람들의 목마름에 하늘도 무심하지는 않은 걸까요? 아니면 비가 내릴 때가 되어서 내리는 걸까요? 옛 사람들에게 물은 목숨과도 같은 것이었지요. 그런데 가뭄이 들어 곡식들이 타들어가면 농민들의 마음도 타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라 고을의 수령인 원님도 그 모습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기에 기우제를 드렸습니다. 한 번, 두 번 올려도 하늘이 꿈쩍도 하지 않자 세 번까지는 어르고 달래는 기우제를 올립니다. 그러다가 결국 네 번째에는 협박성 엄포를 놓습니다. 백성이 다 죽고 난 다음 누구에게 흠향을 받으시려는지, 지금까지 서운했던 것 모두 잊을테니 사흘 안에 비를 좍좍 내려줍소사 빌고 있습니다. 얼마나 소박하고 친밀한 기우제문인지요. 그만큼 우리 선조들은 신과 가까웠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입니다. 정화수 한그릇을 떠놓고 하늘에 비는 그 마음이 우리들의 핏줄을 타고 흐릅니다.
다음편에는 교귀정이 이어집니다. |